열 처녀 비유가 중요한 이유는 환난 전 휴거냐 환난 후 휴거냐 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도 열 처녀 비유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성경의 난해구절들 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구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때에 하늘의 왕국은 마치 자기 등불을 가지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으리라.(마태복음25장1절)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된 자들은 그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이 닫히니라.(마태복음25장10절)
제가 가장 헷갈린 부분은 위의 마태복음25장10절입니다. 열 처녀 중 기름이 떨어진 다섯 처녀는 혼인잔치에 못 들어간다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성경지식으로는 그리스도 예수님과 교회의 결혼은 셋째 하늘에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혼인만찬도 7년 동안 천국에서 이루어진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열 처녀의 비유에서는 7년의 환난이 지난 후에 지상에서 또 다른 혼인만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논리적으로 딱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생각도 해 보았고 구글 검색을 통해서 답을 찾아보려고도 해 보았습니다만, 만족할만한 답변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정동수 목사님의 성경 강해 영상에서도 이와 관련된 얘기는 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이메일을 드렸습니다만 답장이 없으셨습니다. 제가 자주 보고 있는 성경교사님 채널에도 문의하여 답장을 받았습니다만, 여전히 제 궁금증을 해소하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찾아본 결혼, 혼인만찬의 장소, 열 처녀에 대한 견해들은 크게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견해
결혼 = 7년 환난 이전 천국에서
혼인만찬 = 천국에서 7년간
열 처녀 = 들러리
둘째 견해
결혼 = 7년 환난 이전 천국에서
그리고 7년간 천국에서 대기
혼인만찬 = 7년 환난 후 지상에서
열 처녀 = 들러리
셋째 견해
결혼 = 7년 환난 이후 지상에서
혼인만찬 = 결혼 후 지상에서
열 처녀 = 교회
넷째 견해
결혼 = 7년 환난 이후 지상에서
혼인만찬 = 결혼 후 지상에서
열 처녀 = 들러리
저는 첫째 견해를 믿고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믿고 있는 성도들은 대부분 첫째와 둘째 견해를 믿고 있었으며, 프로테스탄트 교단 소속 성도들은 대부분 셋째 견해를 믿고 있었습니다. 일부 프로테스탄트 성도들과 김영현 전도사는 넷째 견해를 믿고 있더군요.
열 처녀 비유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가기 전에, 우선 마태복음24장과 25장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말씀하는 예언과 비유라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아직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입니다. 아직도 구약시대라는 것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따라서 열 처녀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올리브산 설교말씀은 24장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25장까지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들로 도망하라(24장15절), 겨울이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24장20절), 등의 말씀으로 알 수 있다시피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현재 이스라엘 국민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겨울일 때는 호주 등은 여름이기 때문에 남쪽 지역의 크리스천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씀이죠. 그러므로 교회에게 들려주는 말씀은 아닌 것입니다.
그녀가 수놓은 옷을 입고 왕께로 인도되며 그녀의 뒤를 따르는 그녀의 동료 처녀들도 왕께로 인도되리니(시편45장14절)
왕의 결혼을 표현하는 위의 시편 말씀에도 신부의 뒤를 따르는 동료 처녀들이 있다고 나옵니다. 따라서 열 처녀들은 교회가 아니라 들러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단 한 번도 교회를 복수명사인 '처녀들'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한 처녀(고린도후서11장2절)'라고 단수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등불을 들고 가는 열 처녀들은 고린도전서15장51절의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라는 표현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는 7년 환난이 끝나는 시점이라고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때에'라는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25장은 24장과 함께 연결된 장입니다. 24장29절에서 '그 날들의 환난 뒤에'라고 하신 뒤, 사람의 아들이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보리라(마태복음24장30절)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열 처녀가 나타나는 시점은 7년 동안의 환난이 끝나고 예수님께서 지상에 재림하는 바로 그때를 의미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의 기다리는 신랑은 그리스도 예수님이 분명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견해가 일치합니다. 다만 열 처녀가 기다리는 신랑이 결혼식과 혼인잔치를 마치고 오시는 분인지, 아니면 앞으로 결혼식을 치루기 위해 오는 신랑인지 그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성경에 해답이 나와 있습니다.
너희 허리에 띠를 띠고 너희 등불을 타오르게 하며 너희 자신은 마치 자기 주인이 결혼식에서 돌아올 때에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같이 되라. 그가 와서 문을 두드리면 그들이 즉시 그에게 열어 주리라.(누가복음12장35절~36절)
위의 성경말씀에서 보다시피 주인(예수님)이 결혼식에서 돌아올 때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어지는 40절 말씀에도 '너희가 생각하지 않는 시각에 사람의 아들이 오느니라'고 하셨기 때문에 재림을 나타내는 동일한 패턴의 성경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열 처녀가 기다리는 신랑은 이미 결혼을 한 예수님입니다. 다만 결혼식에 이어서 혼인만찬까지 했는지는 이 구절만 가지고는 불분명합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그분께 존귀를 돌릴지니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이르렀고 그분의 아내가 자신을 예비하였도다.(요한계시록19장7절)
위의 성경구절은 사탄의 세력인 바빌론이 무너진 18장 이후의 일이며 19장에서도 2절에서 음녀를 심판하셨다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7절에서의 혼인 잔치는 7년 환난 이후의 혼인 잔치라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또 그녀가 깨끗하고 희고 고운 아마포 옷을 차려입도록 허락하셨는데 그 고운 아마포는 성도들의 의니라, 하더라.(요한계시록19장8절)
하늘에 있던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그분을 따르더라.(요한계시록19장14절)
7절에서 그분의 아내라고 말씀하신 뒤, 바로 이어지는 8절 말씀을 보면 그녀가 깨끗한 아마포 옷을 입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의 그녀는 그분의 아내라는 것이 명확합니다. 7절의 '그분의 아내'와 8절의 '그녀'가 모두 단수로 표현된 것은 교회를 '한 처녀'라 표현한 고린도후서11장2절의 경우와 똑같은 표현 방식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19장14절을 보면 그녀가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의 무리라는 것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그분의 아내 = 아마포 옷을 입은 그녀 = 아마포 옷을 입은 군대들).
여기서 잠시 유대인들의 결혼 풍습을 살펴보고 다시 논점을 이어가겠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7년간의 혼인잔치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웬만한 성도님들은 아마 다 아시고 계시겠습니다만, 유대인들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하기 전에 정혼이라는 것을 먼저 합니다(고린도후서11장2절).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약혼과 비슷합니다만 많이 다릅니다. 정혼은 결혼식과 초야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부부로 봅니다. 따라서 정혼을 파기하려면 이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혼은 신랑 측에서 신부의 집에 지참금을 주어야만 성립됩니다. 따라서 결혼을 하겠다고 말로만 약속하는 오늘날의 약혼과는 차원이 다른 강력한 계약입니다.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피를 주고 우리 크리스천 성도들을 사셨습니다(사도행전20장28절, 고린도전서6장20절).
정혼 후에는 신랑이 신부와 살 집을 마련한 후에 신부를 데리러 옵니다. 보통은 1년에서 2년 정도 걸리는데 빠르면 6개월이 걸릴 수도 있고 늦으면 2년이 넘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데리러 오는 날짜는 신랑의 아버지가 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부의 들러리들이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대충은 알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이건 제 개인 의견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들러리들은 신부의 가족들이 아니기 때문에 각자 자기들 집에서 집안일을 해야 했을 겁니다. 들러리들의 집이 신부의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에는 신랑이 오더라도 빠른 대응을 하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1년 내내 신부의 집에 머물러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죠. 따라서 신랑이 오기 전 한 달이나 몇 주일 전에는 미리 연락을 주어야만 들러리들도 준비할 수 있었을 겁니다.
마태복음24장36절에는 아버지 하나님만 마지막 날을 알고 계신다고 되어 있습니다만, 디모데후서3장5절을 보면 마지막 때가 가까우면 불의한 자들에서 돌아서라 나와 있으며, 요한계시록22장10절~11절을 보면 불의한 자는 불의하게 두고 의로운 자는 의롭게 두고 거룩한 자는 거룩하게 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구절들을 논리적으로 보세요. 마지막 때가 가깝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면 어떻게 불의한 자들에게서 돌아서며 어떻게 불의한 자들을 그대로 둘 수 있겠습니까? 또한 마태복음24장42절에는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watch)고 하셨기 때문에 마지막 때가 대충 언제인지 느낄 수 있다고 봐야 합니다. 따라서 들러리들도 신랑이 언제 오는지를 대충은 알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유대인의 결혼식은 밤에 합니다. 왜 그런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만, 유대인들은 하루의 시작이 오후 6시부터이기 때문에 밤에 하는 것이라고도 하고, 등불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어둠 속에서 빛부터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떻든 들러리 처녀들은 신부와 함께 밤길을 걸어서 신랑의 집까지 가야 합니다. 어둡기 때문에 들러리들은 가는 동안 등불을 밝혀야 했고 길이 멀 경우를 대비하여 등불의 기름이 충분히 많았어야 했다고 합니다.
드디어 신랑의 집에 도착하면 결혼식이 거행되고 신부는 신부의 방에서 7일 동안 머물게 됩니다. 그 동안, 즉 7일 동안 혼인 잔치가 열립니다. 혼인 잔치 이후에 신랑은 신부를 신부방에서 데리고 나와서 베일을 벗기고 모든 하객들에게 신부를 보인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19장14절의 흰 아마포 옷을 입은 군대가 바로 예수님의 신부이며 예수님께서 구름 속에서 나타나실 때 자신의 아내를 온 세상에 보이는 겁니다.
일부의 의견으로는 새 예루살렘이 그리스도의 신부이기 때문에(요한계시록21장2절) 크리스천은 새 예루살렘 도시의 자녀들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갈라디아서4장26절에 나오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갈라디아서를 잘못 해석한 탓입니다. 갈라디아서4장은 앞뒤 문맥을 살펴서 해석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은 율법에 매여 있는 지상에서의 예루살렘과 은혜를 따르는 위의 예루살렘을 비교하면서 율법의 속박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인간은 모두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기 때문에 영적으로 비유를 하신 것이죠. 즉, 여기서 말하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새 예루살렘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아래의 예루살렘'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율법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영원한 생명, 즉 다시 태어난 크리스천 성도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은 천년왕국이 끝나고 흰 왕좌 심판이 있은 후 사탄의 삼위일체와 불신자들과 사망과 지옥이 모두 불 호수에 던져진 후(요한계시록20장14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지고 하나님에 의해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면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도시입니다(요한계시록21장1절~2절). 우리 크리스천들이 궁극적으로 살게 될 곳이죠. 따라서 새 예루살렘은 천년왕국의 기간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유대인의 혼인풍습을 간략하게 살펴본 바에 따르면, 예수님과 교회의 혼인 및 혼인 잔치는 셋째 하늘에서 7년간 진행됨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천국에서 열리는 혼인잔치의 기간은 성경에 명확하게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7년일 것이라 생각되는 이유는, 유대인의 결혼풍습에 신랑의 집에서 7일간 만찬이 있기 때문이며, 지상에서의 7년간의 환난기 동안 성도들이 옮겨진 곳이 천국이기 때문이며, 성경에는 다니엘의 칠십 이레의 경우나 에스겔서 4장 말씀처럼 하루를 1년으로 등가 적용한 경우가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특히 야곱이 레아 및 라헬과 결혼하는 창세기29장 말씀처럼 결혼의 경우에는 칠일을 칠년으로 등가 적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야곱의 고난, 즉 7년간의 환난기를 뜻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환난 이후의 잔치로 보이는 요한계시록19장7절에 나오는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무엇이란 말인가요? 19장1절부터6절까지의 성경구절을 참고하면 7절의 혼인잔치는 시기상으로는 7년 환난 이후인 것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게다가 혼인잔치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혼인잔치가 이르렀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미 끝난 잔치가 아니라 앞으로 거행된다는 뉘앙스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천국에서의 혼인잔치가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강동성서침례교회의 최육열 목사님에 따르면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유대인들을 위한 별도의 잔치이거나 혹은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별도의 잔치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상당히 그럴듯한 추론입니다만, 그러나 저는 이게 좀 어색하다고 생각됩니다. 열 처녀 비유는 물론이고 달란트 비유나 양과 염소의 비유의 뉘앙스를 보면 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최종 운명은 지옥에 간다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천년왕국 이전에 개최되는 어떤 잔치에 참여 못한다고 해서 지옥에 간다는 것은 좀 논리의 비약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서 말하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와 마태복음25장10절의 혼인잔치가 혹시 천년왕국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웹서핑을 하면서 천년왕국이 어린양의 혼인잔치라는 글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제가 곰곰이 생각을 해 본 결과도 그게 맞는 거 같기 때문입니다. 결국 열 처녀 중에서 다섯 명은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다섯 명은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들인데 이는 혼인잔치가 천년왕국이라야만 맞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태복음22장2절을 보면, "하늘의 왕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해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왕과 같으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의 하늘의 왕국은 천년왕국을 뜻합니다. 이 글을 논리적으로 잘 보시기 바랍니다. 하늘의 왕국이 자기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푸는 어떤 왕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아들을 위한다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천년왕국은 아버지 하나님, 즉 여호와 하나님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고 하셨기 때문에 천년왕국은 예수님도 됩니다. 즉, 천년왕국은 예수님을 의미하며 동시에 삼위일체 하나님을 뜻한다고 봐야 합니다.
마태복음22장의 하늘의 왕국은 예수님께서 초림하셨을 때 이루시고자 하였으나 실패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종들을 보내어 결혼식에 초대받은 자들을 불렀는데 그들이 거절하고 가볍게 여기고 혹은 종들을 붙잡아 모욕하고 죽였다고 나와 있습니다(마태복음22장3절~6절). 여기서 초대받은 자들은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사모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들을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왕국은 연기가 되는 것이죠.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유대인들이 왕국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나머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까지 초대하십니다(마태복음22장9절~10절). 큰길에서 만나는 자들 모두를 초대하라 하셨기 때문에 이방인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믿음을 가진 사람들(결혼식 예복을 입은 사람들 + 신실한 다섯 처녀 + 달란트를 불린 사람들 + 양의 민족들)만 천년왕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천년왕국을 뜻한다고 보는 게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라 생각합니다.
독자님들 중에 혹시 다른 의견이 있으시면 댓글 달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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