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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주께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심은 이유와 인간을 구원하는 이유

이미지 출처: Pixabay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서 성경의 기본 교리들을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크리스천 성도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궁금해 했을 선악과에 대한 글을 포스팅하고자 합니다. 저도 여러 성도님들과 마찬가지로 이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여러 목사님들의 설교말씀을 듣고 기독교와 관련된 여러 영상들과 인터넷 글들을 보았습니다만 만족할만한 답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이성과 판단력을 가지고 제 나름대로 성경을 해석하여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께 저의 견해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요한계시록4장11절, 이사야서43장7절, 21절, 로마서15장9절, 에베소서1장6절). 둘째는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게 되어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시키고자 하심입니다(베드로후서1장4절). 셋째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서입니다(창세기1장27절).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시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넷째는 셋째 하늘에 있는 창조물들에게 하나님의 갖가지 지혜를 알려주시고자 하심입니다(에베소서3장10절).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것들은 전부 제 주관적인 견해임을 미리 밝힙니다. 먼저 창세기 말씀을 보겠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네가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2장16절~17절)

 

아마도 거의 모든 성도님들은 위의 말씀을 보면서 '먹지 말라'는 명령과 사람이 그 명령을 어긴 것에만 주목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네가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라는 문장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즉, 만약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뜻입니다. 먹지 말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만약 '먹으면'이라는 뜻은 먹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먹을 수 없다면 '먹으면'이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앞을 내다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게 하시려고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심어 놓으셨다는 뜻입니다.

 

그 증거가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참으로 그분께서는 세상의 창건 이전에 미리 정하여졌으나 이 마지막 때에 너희를 위해 드러나셨으며(베드로전서1장20절)

 

이것은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의 창건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친히 우리를 택하시며 자신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로 입양하심으로써(에베소서1장4절~5절)

 

위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창세 이전에 이미 세상의 죄를 제거하시는 어린양으로 정해진 사실을 알려주시는 성경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이전에 이미 인간이 타락할 것을 아시고 모든 계획을 다 세워 두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먹게 하셨을까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선과 악을 알게 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후반부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선악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입니다. 선악을 아는 하나님의 속성은 자유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선과 악, 즉 진리와 거짓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게 바로 자유의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들로 말미암아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나니 이것은 이 약속들을 힘입어 너희가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베드로후서1장4절)

 

구원받은 인간은 훗날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되어 있습니다. 시편107편1절을 보면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선한 일을 행하려면 우선 선악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선함은 악함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선함이라는 단어 자체에 이미 판단한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선은 악에 대해서 비교 우위에 있는 판단의 명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선과 악을 알아야만 합니다. 만약 인간이 선과 악을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명심하셔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선하시다고 할 때의 선이란 인간의 기준이 아닙니다.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는 인간기준의 선한 행위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모두 더러운 누더기와 같은 것입니다(이사야서64장6절).

 

또한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죽음은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죽음의 예표인 잠, 즉 수면도 이때 생겼다고 생각함, 잠에서 깨는 것은 부활을 예표). 만약 선악과를 먹지 않게 되면 죽음이 없게 되고 죽음이 없으면 인간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시스템에 속하지 못하게 되어 천국과 지옥의 분리수거도 불가능하게 됩니다. 이 말이 조금은 어렵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최대한 쉽게 설명 드리자면,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 때에는 검수단계를 반드시 거치게 됩니다. 품질에 이상이 없으면 품질보증서를 발급하고 상품으로 출시하게 되지만, 품질에 이상이 있으면 폐기하거나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저는 구원이 일종의 품질보증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의 최종 완성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육적으로 태어날 때 마귀의 세상에 속한 마귀의 자식들로 태어납니다. 성장하면서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이성과 양심과 판단력으로 스스로 깨달아 회개하고 믿음을 가질 때 비로소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고 그제야 하나님께서 보실 때 완성품이 되는 것입니다. 품질검수 단계를 거쳐야만 최종 완성품으로서의 인간이 되는 것이죠.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최종 완성품인 것입니다. 그 전의 인간들은 아직 미완성된 인간입니다. 즉, 선악을 알게 된 인간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된 후 그리스도의 피를 믿어 다시 태어나면 품질보증서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미완성으로 죽게 되면 품질보증서가 없기 때문에 지옥으로 폐기되는 것입니다.

 

 

자유의지

 

여기서 또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처음부터 완벽한 인간, 즉 애초부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 창조했으면 선악과와 죽음과 구원은 필요 없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궁금증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믿음을 가지고 있고 어떤 악한 일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자유의지가 없는 사람입니다. 자유의지가 없으면 진정한 의미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로보트일 뿐이죠. 하나님께서는 로보트를 원하지 않습니다. 로보트는 완벽한 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깨달아 믿음을 가져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것이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입니다. 자유의지가 있는 인간만이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유의지는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판단은 선과 악을 알게 되었을 때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을 알지 못할 때는 자신의 판단이 선한 판단인지 악한 판단인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여자(이브)가 뱀에게 속아서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만, 뱀이 이브를 속인 것은 선악과를 바나나로 둔갑시키거나 이브에게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등의 마법을 사용한 게 아니었습니다. 뱀은 이브를 말로 유혹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하니라.(창세기3장4절~5절)" 라고 나와 있습니다. 단순히 속은 게 아니라 '반드시 죽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으며 또한 자기 자신이 신처럼 되고자 하는 욕심도 있었던 것입니다.

 

여자의 판단 속에는 이미 악한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그녀는 자기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을 할 당시에는 선악과를 먹기 전이기 때문에 아직은 선과 악을 알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선악과를 먹기 이전에도 이미 악한 본성을 가진 존재였다는 것입니다(이사야서45장7절 참조). 이런 본성은 죽을 때까지도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가 바로 인간의 악한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악한 본성이 없으면 자유의지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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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담과 여자가 선악과를 먹은 직후의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들 두 사람의 눈이 열리므로 그들이 자기들이 벌거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자기들을 위해 앞치마를 만들었더라. 그들이 그 날 서늘한 때에 동산을 거니시는 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주 하나님의 얼굴 앞을 떠나 동산의 나무들 가운데 숨으매(창세기 3장7절~8절)

 

성경공부를 조금이라도 하신 분들은 이 구절이 대신속죄의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성경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직접 짐승의 가죽으로 아담과 이브의 옷을 만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창세기3장21절). 즉, 인간의 수치를 가려주시기 위해서 짐승의 피를 흘린 것입니다. 성경에는 피 흘림이 없이는 죄의 사함이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히브리서9장22절).

 

또한 여기서의 앞치마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 인간이 자기 스스로의 의로 자신의 죄를 가리고자 하는 것을 의미하는 상징물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아벨은 짐승의 피로 하나님께 봉헌하고자 하였으나 가인은 농작물을 봉헌하였습니다. 즉, 아벨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 죄를 용서받고자 하였고 가인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인간의 방식대로 죄를 용서받고자 한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는 아벨을 시기하고 질투하였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자기도 아벨 못지않게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다 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게 바로 오늘날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인간이 스스로 만든 규칙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가인의 봉헌물에는 관심을 갖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가인은 미움의 감정이 극에 달해서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짐승의 피를 흘려야만 죄가 덮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아담과 이브의 가죽옷 사건 때 이미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셨을 겁니다. 가인도 아마 부모님으로부터 그 사실을 전달받았을 겁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최초의 대언자가 아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누가복음11장50절~51절).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말씀하셨던 것을 아벨에게도 다시 한 번 말씀하셨을 겁니다.

가인이 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벨이 최초의 대언자였다는 것은 가인은 대언자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가인에게도 명령의 말씀을 주셨다면 가인도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해주었을 것이고 하나님의 대언자로 기록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가인이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는 내용이 없고 대언자라고 기록되어 있지도 않기 때문에 그는 대언자가 아니라 단지 아벨로부터 대언의 말씀을 듣는 위치에 있던 사람이라고 봐야 합니다.

 

창세기4장7절을 보면 가인은 이미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네가 잘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네 헌물은 받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겁니다.

 

제 생각에 가인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던 이유는 그의 속성이 악한 때문도 있습니다만, 그 명령이 아벨을 거쳐서 자기에게 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질투와 시기로 인해서 하나님의 명령까지도 거역하고자 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가인과도 대화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아벨로부터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였다면, 가인은 하나님께 기도하여 아벨로부터 전달된 하나님의 메시지가 사실인지를 확인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아벨을 미워하는 감정이 앞서서 판단하는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거역한 것입니다.

 

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아벨에게만 명령의 말씀을 주셨던 것일까요? 아마도 그 이유는 훗날 우리에게도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과거 유대 왕국에는 많은 대언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들에게 전달했으나 믿음이 없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오늘날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들도 가인과 똑같은 위기의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받은 대언자는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대언의 말씀은 존재합니다. 그것은 성경입니다. 오늘날의 불신자들은 성경말씀을 믿고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는 왜 하필 앞치마를 만들었을까요? 앞치마는 생식기 정도만 가릴 뿐입니다. 전체 몸을 가리지 못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간의 눈이 열렸다는 것은 눈으로 들어오는 인간의 욕구를 느끼게 되었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이 욕구에는 성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기 이전에는 사람도 짐승과 마찬가지로 번식기와 비슷한 생리현상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번식기가 아니면 성행위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성행위 자체에는 아무런 나쁜 느낌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이후에는 번식기와 상관없는 욕정이 생겼으며 벗은 나체의 생식기는 그런 욕정의 수치심을 상징하는 것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앞치마로 가려야 했던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성욕이 왜 수치스러운지 의문을 품는 성도님들도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성욕은 식욕과 배설욕, 수면욕 등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이고, 남자와 여자는 육적으로 이성에게 여러 가지 시각적, 촉각적, 후각적, 지적 끌림과 오르가즘을 느끼고 싶게끔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인간의 성욕 또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왜 죄가 될까 의문을 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죄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은 이후에 죄가 인간에게 들어왔습니다. 로마서5장12절을 보면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죄는 아담 이전에도 이미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었으니 악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악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 그게 바로 죄가 들어왔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악한 행위를 하는 것이 바로 죄이며,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 바로 악한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시대의 모든 율법을 딱 두 가지의 명령으로 압축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가는 큰 명령이요, 둘째 명령은 그것과 같으니 곧, 너는 네 이웃을 너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니라. 모든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이 이 두 명령에 매달려 있느니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2장37절~40절)

 

위의 구절에서 보다시피 하나님을 슬프게 하거나 사람을 상처받게 하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상대방에게 성욕을 느낄 때마다 섹스를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은 싫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면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욕정 자체에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선과 악을 안다고 해도 악이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없으면 단순이 선악을 안다는 지식만 가지고는 죄책감을 느낄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악한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고 부끄러워하는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양심이라는 것을 넣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는 순간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게 된 동시에 악을 행하는 것이 바로 죄이며, 죄는 나쁜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치마로 가린 것이며 하나님을 피해서 동산의 나무들 가운데 숨은 것입니다(창세기3장8절).

 

성경에 나와 있는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창세기26장을 보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자기 아내 리브가가 아름다웠기에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아갈까 두려워하여 리브가에게 자기의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라고 시킵니다. 그랄 지방의 왕 아비멜렉이 이 사실을 알고 이삭을 꾸짖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우리에게 행한 이 일이 도대체 무엇이냐? 백성 중의 하나가 네 아내와 쉽게 누울 수 있었으니 네가 우리에게 죄를 가져올 뻔하였느니라,(창세기26장10절)

 

이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도 다른 사람의 아내와 간음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유대인들조차 율법을 받지 못했던 모세 이전의 이방인들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에게 양심을 심어주신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십계명과 대언자들의 말씀을 통해 율법을 주셔서 사람들이 죄가 무엇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모든 율법을 다 지키면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라도 율법을 어기면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은 율법을 절대로 지키지 못합니다. 따라서 율법은 사람이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용도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대부분의 죄는 돈(권력,명예)과 성욕에서 나옵니다. 강력사건 뉴스 보도를 떠올려보세요. 살인 사건과 같은 강력 사건은 죄다 돈(권력,명예) 아니면 성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극찬했던 다윗조차도 성욕을 이기지 못하고 충신 우리야의 아내와 간음하고 우리야를 죽인 바 있습니다. 그 정도로 성욕은 강력한 것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추가적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도 선과 악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심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창세기를 보면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보라, 남자가 우리 가운데 하나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었도다. 이제 그가 자기 손을 들어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도 따서 먹고 영원히 살까 염려하노라, 하시고(창세기3장22절)"라고 나와 있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되는 것이 하나님 중의 하나같이 된 것이라고 하십니다. 즉,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아시면서 동시에 악을 누르고 선을 행하시는 능력을 가진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달리 죄를 짓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온전한 하나님이시자 온전한 사람이신 예수님께서도 죄가 없는 분이라고 나와 있습니다(히브리서 4장15절).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을 다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화도 내시고 눈물도 흘리시죠. 다만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든지 후회는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도 어쩌지 못하는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인간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나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죄를 짓게 됩니다. 따라서 아무리 자유의지를 선한 쪽으로 컨트롤 한다고 해도 죄를 짓는 것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보혈대속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방법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없애주셨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예수님의 보혈대속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도 인간의 자유의지가 작용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판단과 믿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에 부여한 양심과 이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선한 양심과 올바른 판단력(이성)은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물론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오기 때문에(로마서 10장17절), 선한 양심과 올바른 판단력을 가졌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것도 선한 양심과 올바른 판단력이 없다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어도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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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론

 

저는 하나님께서 인간이 태어나기도 전에 구원받을 사람을 강제로 정해 놓았다는 예정론을 믿지 않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에베소서2장8절). 믿음이 먼저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구원시스템 자체가 은혜입니다만, 구원받기 위해서는 믿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수많은 성경구절에서 믿어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믿음이 필요 없다면 믿어야 한다는 명령을 왜 하셨겠습니까?

 

예정론을 믿는 사람들에 따르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유의지에 개입하신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이전부터 선택한 사람이 만약 믿을 수 없는 상태에 있다면 그의 자유의지를 '고쳐서'라도 믿음에 이르도록 한다는 겁니다. 저는 이게 일종의 로보트와 같은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예정론을 믿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미리 아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선택하신다고 믿습니다. 미리 아심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건드리지 않는 선택입니다.

 

그때에 그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르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마태복음25장41절)

 

예정론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천국과 지옥으로 구분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위의 성경말씀을 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옥은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서 예비된 곳이라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지옥이 인간을 위해 예비된 곳이라는 구절이 없습니다. 이를 논리적으로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예정론자들의 논리가 맞는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예비하신 지옥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원래 지옥은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예비된 곳이지만, 일부 인간들이 하나님 알기를 거부하고 마귀들에 동조했기 때문에 마귀들과 함께 그곳에 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강제로 예정하신 것이 아니고 그들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그곳을 선택한 것입니다.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받지 않은 자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님을 거역하되 너희 조상들이 행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행하는도다.(사도행전7장51절)

 

위는 유대인 불신자들(산헤드린 공회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는 장면입니다. 이 구절에서 '거역하다', '거스르다'로 번역된 헬라어 '안티핍토(ἀντιπίπτω)'는 '반대하여 저항하다', '맞서 싸우다'라는 강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두드리시고 은혜를 베푸시려 하지만,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그것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대적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장16절)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믿는 자는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의 '누구든지'는 절대로 선택에서 제외된 사람이 있다는 뜻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조건이 없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는 말씀입니다. 즉, 누구든지 자신의 자유의지로 믿어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만약 인간의 자유의지와 관계없이 창세 이전부터 강제로 천국과 지옥이 정해져 있다면 지옥으로 정해진 사람은 아무리 믿으려고 노력해도 무조건 지옥행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에 맞지 않습니다. 믿으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강제하여 믿지 못하게 돼서 지옥에 떨어진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을 향해 불평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믿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도 믿음을 갖게 되고 어떤 사람은 믿으려고 해도 믿지 못하게 된다면 지옥에 가게 된 사람은 얼마나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믿을 때 구원받게 된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미래를 내다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창세 이전부터 이미 어떤 사람의 자유의지가 하나님을 믿게 될지 믿지 않게 될지를 모두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것이고 사도 바울에게 나타나신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자유의지가 하나님을 선택하게 될 것을 미리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미리 아심에 따라 창세 이전에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만, 성경말씀이 주어진 오늘날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나타나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미리 아심에 따라서 선택받은 사람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나타나십니다.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로마서10장17절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선택받은 백성은 그 말씀, 즉 그 영적인 빛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믿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겁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6장37절)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송할지어다. 그분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셨는데 이것은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의 창건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친히 우리를 택하시며 자신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들로 입양하심으로써(에베소서1장3절~5절)

 

세상의 창조 이전부터 우리를 택하셨다는 사실만을 믿고 있는 예정론자들은 위의 성경말씀들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천국으로 갈 사람들과 지옥으로 갈 사람들을 나눠놓은 게 맞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초보자들이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이 이 구절들만을 읽는다면 그런 오해도 가능할 겁니다. 그러나 성경은 일부의 구절들만 봐서는 안 됩니다. 전체적으로 보고 판단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에 따라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을 통해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에 이르도록 선택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화평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기를 원하노라.(베드로전서1장2절)

 

하나님께서 자신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자신이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자신이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로마서8장29절~30절)

보다시피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심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을 선택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다는 말씀도 미리 아심을 통해서 예정하시는 것이지 무조건 예정하시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6장37절에서의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미리 아심에 의해서 예정하신 자들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1장 말씀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 그냥 선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신다고 나와 있습니다. 에베소서1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셨다는 말씀이 거의 매 구절마다 나옵니다(3절, 4절, 7절, 10절, 11절, 13절, 20절 등).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선택하셨다는 뜻입니다. 에베소서1장 자체에 그 증거가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의 우리는 '믿는 우리'입니다. "구원의 복음을 들은 뒤에 그분을 신뢰하였고(에베소서1장13절)",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베소서1장15절)", "믿는 우리(에베소서1장19절)".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에베소서2장8절)

 

하나님께서는 지옥으로 가게 될 사람들도 하나님의 미리 아심에 따라서 선택하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선한 양심이 없고 판단력이 부족한 이집트 파라오를 강퍅하게 하셔서 더욱 더 믿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출애굽기 7장3절,13절). 물론 이는 파라오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멸시하면서 우상을 숭배하고 마음대로 동성애를 하는 자들을 버림받은 생각에 내버려 두어 계속 악한 상태에 머물도록 하셨습니다(로마서 1장21절~28절). 하나님께서는 자유의지가 사악하여 믿음에 이를 수 없은 사람들을 더욱 더 확실하게 지옥의 정죄에 이르도록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분께서는 사악한 자들은 결국 믿지 않게 된다는 것을 창세 이전부터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므로 불신자들에게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은 전달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들에게도 창조세상을 보고 깨달아 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을 알 수 있으며 그들이 변명할 수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변명할 수 없다'는 말씀을 논리적으로 잘 생각해 보세요. 이 말씀은 그들이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지옥을 선택했기 때문에 변명이 안 통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양심이 있어서 자신의 자유의지로 양심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거절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로마서1장20절, 로마서2장14절~15절).

 

그러나 그들이 창조주를 거부하고 진화론 등을 믿음으로 인해 기회를 놓친 겁니다. 일부에서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가 없었다고 주장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위에서의 파라오의 경우를 보세요. 파라오는 하나님의 예언과 기적들을 보고도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2000년 전에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이 땅에 오셔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수많은 기적들을 보이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즉, 자유의지가 악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기적과 말씀이 전달된다고 해도 믿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에 그가 이르되, 그러므로 아버지여, 원하건대 아버지께서 그를 내 아버지 집으로 보내소서. 내게 다섯 형제가 있사오니 그가 그들에게 증언하여 그들도 이 고통 받는 장소로 오지 않게 하소서, 하므로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대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이 저들의 말을 들을 것이니라, 하매 그가 이르되, 아니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죽은 자들로부터 그들에게 간다면 그들이 회개하리이다, 하니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그들이 모세와 대언자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비록 어떤 사람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날지라도 그들이 설득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누가복음16장27절~31절)

위는 유명한 부자와 나사로의 스토리입니다. 이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옥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려고 실제의 스토리를 말씀하신 겁니다. 죽어서 지옥으로 간 부자는 나사로가 자기 형제들에게로 가서 진리의 말씀을 전하면 그들이 회개하게 되어 지옥으로 오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아브라함에게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은 자가 부활해서 그들에게 간다고 해도 진리의 말씀을 거절할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자유의지가 악한 사람에게는 어떤 기적도 어떤 말씀도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만약 그들이 회개하고 진심으로 주님을 받아들였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라도 반드시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셨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사용하셔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도록 하셨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처음부터 믿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사악한 자가 죽는 것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그 사악한 자가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오 이스라엘 집아, 너희는 돌아서라. 너희는 너희의 악한 길들을 버리고 돌아서라. 어찌하여 너희가 죽으려고 하느냐? 하라.(에스겔서33장11절)

 

위의 성경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악한 자가 자기 마음을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예정론이 맞다면 하나님께서 굳이 사악한 자가 회심하기를 바라실 이유가 있을까요? 어차피 예정되어 있다면 하나님께서 저런 말씀을 하실 이유가 없을 겁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만약 인간이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아담과 이브는 죽지 않았을 것이고 그 자손들도 죽지 않았을 겁니다. 인간에게 죽음이 없다면 인간들은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살게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사는 게 과연 좋은 것일까요? 선악을 알지 못하여 죽지 못하는 인간들은 에덴동산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에 갇혀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겁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이런 상황을 원하실까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이런 존재로 만들지는 않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선악을 알게 되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은 후 구원받고 죽어서, 또는 휴거되어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되기를 원하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의 구원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할 이슈가 하나 있습니다. 선악을 알지 못한 체 죽은 어린아이들에 관한 겁니다. 크리스천 성도들과 어린아이들은 둘 다 구원받은 사람들이지만 똑같은 성격의 성도인지는 저도 판단하기 힘드네요. 아마도 천국에서의 역할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하나는 선악을 알지만 다른 하나는 선악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의 역할은 하나님만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 나름대로 추측을 해 보자면 아담으로 인해서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죄가 모든 인간에게 전가되어 모든 인간은 죄에 속한 몸으로 이 땅에 태어나기 때문에 아무리 어린아이라고 해도 아담의 원죄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어린아이는 아직 선악을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어린아이는 선악과를 먹기 이전의 아담, 이브와 비슷한 상태의 사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의 어린아이는 회심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본보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구원받은 성도들의 예표가 되는 사람들이 바로 선악을 알지 못하는 나이대의 어린이들이죠. 그래서 구원받을 때에도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받으라고 하는 것입니다(마태복음18장3절, 누가복음18장17절).

 

 

결론

 

조금 장황하게 되었습니다만, 이제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게 하신 이유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다산하고 번성하여 그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진리를 깨달아서 예수님을 믿게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최종 완성품인 사람들, 즉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일엔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인 자유의지가 작용하고 있으며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께서도 어찌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아담에 의해서 인간에게 죄가 들어왔고,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로 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직 구원받지 못한 인간들은 모두 생산 과정에 있는 미완성 인간들이며 품질이 확실한 최종완성품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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