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서 성경의 기본 교리들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미 구원받은 성도님들은 그냥 패스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남겨진 사람들이 읽을 것이기 때문에 크리스천, 즉 교회 성도는 아닐 겁니다. 환난성도들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문장 속에 크리스천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환난성도라고 이해하고 읽으시면 됩니다.
아마도 크리스천 성도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해 보았을 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여러 가지 욕구를 넣어 주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식욕, 성욕, 수면욕, 배설욕 등의 욕구는 본능적인 것으로서 이성적인 제어가 힘듭니다. 물론 성욕의 경우에는 일정부분 제어가 가능합니다만, 마음속으로 느끼는 감정까지 제어하기는 쉽지 않죠. 그래서 과연 성경에서는 인간의 성욕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참고할 성경은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입니다.
용어의 이해 - 음행의 성경적 의미
성경에 적혀 있는 간음, 음행, 음란 등의 단어가 주는 뉘앙스 때문에 많은 크리스천 성도들이 성적인 죄의식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구약과 신약을 합쳐서 간음은 총 53건, 음행은 총 63건, 음란은 총 4건이 검색됩니다. 간음이란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를 배신하고 다른 사람과 동침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다른 신을 섬기는 행위를 뜻합니다. 음행으로 쓰인 fornication이란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이성과 섹스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 둘은 모두 침실을 더럽히는 행위로서 명백한 죄입니다(로마서13장13절). 구약성경에서의 음행은 간음과 동일한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의 음행은 조금 다릅니다. 불신의 행위와 부적절한 섹스를 동시에 의미합니다. 우선 불신의 행위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음녀(바빌론음녀)와의 음행을 뜻하는데 이는 구약성경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이방신을 섬기는 행위를 뜻합니다. 그리고 유다서에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낯선 육체(천사)와 성행위를 하고자 했던 사람들을 일컬어 음행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유다서1장7절). 이들은 정죄를 받도록 옛적부터 미리 정해진 자들(유다서1장4절), 즉, 불신자들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음행은 자기 몸에 죄를 짓는 것(고린도전서6장18절)을 뜻하는 경우로도 쓰였습니다. 이런 음행은 16절에서 '창녀들과 결합하는 자'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창녀들과의 동침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로마시대는 이방신을 섬기는 신전이 곳곳에 있었는데 그곳에는 무녀(巫女)들이 창녀의 역할을 했습니다. 도시의 남자들은 그녀들과 음행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고린도에도 그런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누구든지 음행이 아닌 이유로 자기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 나와 있습니다(마태복음5장32절,19장9절). 히브리서에는 음행은 잠자리를 더럽히는 짓이라고 나와 있습니다(히브리서13장4절).
신약성경에서의 육체적인 음행과 간음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각각 fornication과 adultery입니다. 포니케이션이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음행이라면 어덜터리는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성과 잠자리를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5장32절을 보면, 자기 아내를 음행이 아닌 이유로 버리지 말라는 구절에서의 음행이 adultery가 아니라 fornication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 구절을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여기서의 아내란 결혼한 아내가 아니라 정혼한 아내를 뜻하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치르지 않고 정혼만 해도 아내로 봅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스토리를 기억하시나요?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임신했습니다. 그 당시 마리아는 요셉과 결혼식을 앞둔 정혼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마리아가 음행한 것으로 오해하여 몰래 버리려고 했습니다(마태복음1장19절).
사도행전15장을 보면 최초의 기독교 종교회의로 알려진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몇 가지 중요한 결정을 합니다. 우상에게 바친 음식을 먹지 말고 짐승의 피를 먹지 말고 목매어 죽인 것을 먹지 말고 음행을 멀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기록한 책입니다. 사도행전15장까지도 아직은 유대인들이 교회의 주된 구성원이었기 때문에 할례와 같은 유대인들의 풍습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교회 내에 여러 가지의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회의를 거쳐서 유대인의 모든 율법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결의했습니다. 다만, 오랜 세월동안 목매달아 죽인 짐승과 피를 먹지 않았던 유대인들을 배려하기 위해서 그런 음식은 먹지 말자고 결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디모데전서4장3절을 보면 음식물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감사함으로 먹으면 된다고 나와 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굳이 유대인들의 율법을 지켜서 피가 들어 있는 순대국 등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말씀에 따라서 피를 먹고 싶지 않으면 먹지 않아도 됩니다. 이것은 믿는 사람들에 따라 자유롭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는 인간이 사육하는 동물의 피에는 어떤 불순물 같은 것이 들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먹지 않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0장8절을 보면 어떤 자들이 음행하다가 이만 삼천 명이 쓰러졌다고 나와 있는데, 이 구절은 민수기25장의 사건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팀에 머물 때 모압의 딸들과 육체적인 음행을 했기 때문에 죽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는 섹스행위 자체 때문에 죽었다 보다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이방 여인들과 음행을 했기 때문에 죽었다고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방 여인들이 다른 신을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시팀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때에 백성이 모압의 딸들과 행음하기 시작하니라. 그들이 자기 신들에게 희생물을 드리는 곳으로 백성을 부르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니라. 이스라엘이 스스로 바알브올에게 연합하였으므로 주의 분노가 이스라엘을 향해 타오르니라.(민수기25장1절~3절)
고린도전서10장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시험을 허락하시는데(13절), 그 시련을 이겨내고 우상숭배를 피하라는 말씀입니다. 앞서 말씀하신 것들, 즉 음행하다 쓰러지고(8절) 그리스도를 시험하다 뱀들에게 멸망당하고(9절) 불평하다 파멸시키는 자에게 멸망당하고(10절) 하는 것들은 구원받아 이집트를 탈출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저지른 죄들이며 우리를 위해 본보기가 되었던 것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우상숭배를 피하고 마귀와 교제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고린도전서10장14절, 20절, 21절).
요한계시록 2장부터 3장까지는 예수님께서 지금 현재 있는 교회들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챕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음행에 대해 세 번 말씀하셨는데 처음 한 번은 버가모 교회를 책망하시면서 말씀하셨고 나머지 두 번은 두아디라 교회를 책망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 모두 fornic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fornication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육체적인 성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버가모와 두아디라 교회를 책망하실 때 사용하신 fornication은 육체적인 것을 넘어서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위로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버가모 교회에게 하신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몇 가지 있나니 이는 거기에 발람의 교리를 붙잡는 자들이 네게 있기 때문이로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들을 먹게 하고 또 음행하게 하였느니라.(요한계시록2장14절)
위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발람의 꾀에 걸려 넘어져서 음행했다는 뜻인데 앞서 민수기25장과 같은 내용입니다. 주의 분노가 이스라엘을 향해 타오른 이유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이방신 바알브올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두아디라 교회에게 하신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몇 가지 있으니 이는 네가 이세벨이라는 그 여자를 용납하기 때문이라. 그녀가 자기를 가리켜 여대언자라 하며 내 종들을 가르치고 꾀어 음행하게 하고 또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들을 먹게 하는도다. 내가 그녀에게 그녀의 음행을 회개할 여지를 주었으나 그녀가 회개하지 아니하였도다.(요한계시록2장20절~21절)
위에서의 이세벨은 실제로 두아디라 교회에 있던 여자를 뜻할 수도 있지만 이름이 이세벨이라는 것을 보면 교회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 대다수의 목사님들과 성경학자들은 여기서의 이세벨은 구약성경의 열왕기에 나오는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을 뜻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녀는 두로와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이었는데(열왕기상16장31절), 자기 남편 아합을 설득해서 바알을 섬기게 하였으며 유대의 대언자들을 죽이는 등 온갖 사악한 짓을 했던 악녀였습니다.
즉, 신약성경에 나오는 음행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이방신을 섬기는 행위, 창녀와의 동침 등 부적절한 육체적 성행위를 하려고 시도하거나 혹은 실제로 저지른 경우, 혹은 배우자를 배신하고 바람을 피운 경우, 이렇게 세 가지의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음란의 성경적 의미
이제 음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마태복음12장39절,16장4절, 마가복음8장38절에 나오는 음란은 영어성경에서 간음과 동일한 단어인 adulterous를 사용했는데 음란한 세대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방신을 섬기는 행위를 뜻합니다. 다만 에스겔16장30절에서의 음란은 adulterous가 아니라 창녀를 뜻하는 whorish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역시도 앞의 문장 28절과 29절을 참고하면 하나님을 배신한 행위를 의미합니다. 즉, 성경에 나오는 간음, 음행, 음란 등은 대부분 이방신을 섬기거나 우상숭배를 뜻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구약성경에서는 거의 다 그러했으며 신약성경도 대다수가 그러했습니다.
정욕의 성경적 의미
그러나 성경에는 간음, 음행, 음란 이외에도 정욕과 색욕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두 단어에 대해서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정욕은 영어성경에 대부분 lust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 단어가 오늘날에는 성욕을 뜻하는 단어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원래는 인간의 모든 욕망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속한 정욕(디도서2장12절)', '여러 가지 정욕(디도서3장3절)', '마음의 정욕(로마서1장24절)', '육신의 정욕(로마서13장14절)', '너희 지체 속에서 싸우는 너희의 정욕들(야고보서4장1절)', '이전 정욕들(베드로전서1장14절)', '사람들의 정욕(베드로전서4장2절)',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베드로후서1장4절)', '자기 정욕대로 걷는 자들(유다서1장16절)' 등의 앞뒤 구절을 참조하면 정욕이란 범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며 죄성을 지닌 아담의 피를 지닌 인간의 태생적 한계를 뜻하는 단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색욕의 성경적 의미
이제 남아 있는 단어는 색욕입니다. 색욕은 신약성경에 총 6번 나옵니다. 영어성경에 lasciviousness로 되어 있는데, 오늘날 일반 영어 사전에는 음탕하고 선정적이라는 뜻으로 나와 있으며,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마제스티 에디션의 부록으로 실려 있는 성경사전과 킵바이블닷컴의 성경사전에는 색욕(lasciviousness)을 '합당치 못한 성욕'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킹 제임스 성경에서 색욕(lasciviousness)으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는 아셀게이아(ἀσέλγεια, 스트롱 넘버 766)입니다. 바이블 허브에서 이 단어를 검색하면 그냥 일반적인 방탕이나 음란함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터무니없는 행위나 공중도덕에 충격을 주는 행위라는 의미가 내포된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색욕 이외에도 로마서13장13절과 18절에서 방탕(wantonness)으로, 베드로후서2장2절에서 악독한(pernicious)으로, 베드로후서2장7절에서 더러운(filthy)으로 각각 번역되었습니다. wantonness를 영어사전으로 검색해 보면 그냥 방탕이 아니라 무자비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pernicious도 치명적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filthy 또한 아주 지독히 더럽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헬라어 아셀게이아는 사회통념을 넘어서는 행위를 뜻한다고 봐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색욕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앞서 말씀드린 정욕과 비슷한 개념으로서의 색욕입니다. 다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이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생각이 포함된 욕구라는 측면에서 정욕과는 좀 다릅니다. 방종한다는 의미의 욕구로 보입니다. 아마도 많은 성경학자들과 목회자님들의 해석도 이와 비슷하리라 생각됩니다.
둘째는 성욕의 개념으로서의 색욕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색욕은 일반적인 성욕과는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색욕은 동성애나 짐승과의 수간 등 비정상적인 성욕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다서를 보면 색욕으로 인해서 천사들과 성관계를 하고자 했던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멸망당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서를 보면 색욕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공통의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쓰려고 모든 열심을 내던 차에 성도들에게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너희가 힘써 싸우라고 내가 너희에게 써서 권면할 필요가 생겼나니 이는 알지 못하는 가운데 기어들어온 어떤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 그들은 이 정죄를 받도록 옛적부터 미리 정해진 자들로서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며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고 유일하신 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니라.(유다서1장3절~4절)
우선 이 구절에서 알지 못하는 가운데 기어들어온 사람들은 '너희들'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입니다. 이것만 봐도 이미 불신자들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위의 구절에서 "유일하신 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은 영어 성경에는 "denying the only Lord God, and our Lord Jesus Christ"로 나와 있는데,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님에 따르면 이 구절은 원래 그리스도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라는 뜻이 담겨있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불신자들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마지막 때에 자기 정욕대로 걸으면서 조롱하는 사람들이라고 나와 있습니다(유다서1장18절, 베드로후서3장4절).
그러므로 유다서에서의 은혜를 색욕으로 바꾸는 사람들은 불신자들 중에서도 특히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씀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투덜거리고 불평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정죄를 받도록 옛적부터 미리 정해진 자들은 믿는 자들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라고 봐야 합니다. 즉, 불신자들이라는 뜻이지요. 다만, 이는 하나님의 미리 아심(베드로전서1장2절)을 통해서 정죄하시기로 정하셨다는 뜻이지 태어날 때부터 불신자로 정해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불신자 본인이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믿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에 정죄를 받은 겁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자들과는 다릅니다. 은혜를 어떻게 색욕거리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에베소서2장8절). 그러나 불신자들은 은혜를 거절하죠. 믿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는 것, 즉 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은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어지는 7절의 소돔과 고모라에서 낯선 육체를 따라간 것입니다. 불신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은혜를 색욕거리를 바꾼 짓이라는 거죠. 그로 인해서 영원한 불로 보복을 당하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다서 1장4절의 색욕은 불신의 결과이며 주님의 천사들과 성행위를 하고자 했던 동성애자들, 즉 불신자들의 행위로 봐야 합니다.
자위에 대하여
일부 사람들은 자위도 색욕이라고 주장합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과하지만 않다면 자위가 방종의 결과이거나 비정상적인 성욕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욕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넣어주신 본능입니다. 인간이 인간의 본능인 성욕 자체를 없앨 수 있을까요? 물론 성욕을 자제하려고 노력은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완전히 성욕을 끊겠다고 작정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금욕주의가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일까요? 인류의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면 오히려 금욕주의는 하나님을 대적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사탄의 최대 걸작이라 일컬은 천주교가 바로 대표적인 금욕주의 종교입니다. 카톨릭 사제들과 수녀들은 성욕을 억제하면서 평생 독신으로 살아갑니다. 불교도 마찬가지죠. 오늘날 변개된 카톨릭 성경이 만들어지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3세기 초의 기독교 교부 오리겐(오리게네스)도 철저한 금욕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거세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금욕은 어찌 보면 자기 자랑입니다. '내가 이만큼 금욕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과 나는 다르다. 이런 나의 행위를 하나님께서 알아주실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스스로의 행위를 가지고 의에 이르려고 하는 것이죠. 저는 이성을 보고 성욕을 느끼는 감정과 스스로 욕구를 해결하는 자위행위가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넣어주신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본능이 없다면 어떻게 인류가 번창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후 인간에게 말씀하신 첫 번째 명령이 다산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창세기1장28절).
참고로 성경에는 자위나 수음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자위를 연상시키는 장면이나 문장도 나오지 않습니다. (제가 미처 보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 성경에 이와 관련된 구절이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자위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만 봐도 자위는 죄가 되지 않거나 혹은 죄가 된다고 해도 큰 죄는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만약 이게 큰 죄가 된다면 하나님께서 왜 성경에 기록해 놓지 않으셨겠습니까. 물론 과도하면 죄가 되겠지요. 뭐든지 과도한 것은 죄가 되니까요.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과식하는 것도 죄가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자위의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넣어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는 성욕을 제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인간은 자신의 죄를 제거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는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자신을 만든 절대적인 존재를 찾게 됩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창조주 그리스도 예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성욕뿐만 아니라 아담의 본성으로서의 인간의 욕구는 절대로 제거되지 않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유일한 탈출구가 되는 것이죠.
자위행위를 하면 구원을 잃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과격한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수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용서받지 못할 죄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오히려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지옥에 갈 가능성이 더 큽니다. 왜냐하면 구원상실 교리는 예수님께서 단 한 번에 영원무궁토록 완벽하게 끝낸 일을 믿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믿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개인 사정에 의해서 결혼하지 못한 사람들도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결혼한 사람들은 부부간에 서로 육체적 관계를 맺기 때문에 성욕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 사는 사람들은 그게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결혼하지 못한 사람들도 배려해주시는 분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심지어 결혼한 사람들의 경우에도 부부관계가 소원하면 자위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음란한 영상을 보는 것에 대해서도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크리스천 성도는 그런 영상을 보면 안 됩니다. 교회는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말씀은 살인을 큰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범죄관련 영화들은 물론이고 슈퍼히어로 무비들조차도 사람을 너무나 쉽게 죽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장면은 괜찮고 야한 장면은 안 된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영화나 TV시리즈 드라마와 같은 경우에도 예쁜 여성과 멋진 남성이 출연합니다. 그들을 보고 조금이라도 음욕을 품었다면 그 또한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에 얽매이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한 번에 영원무궁토록 완전하게 하신 보혈대속의 믿음만을 붙잡아야 합니다. 스스로 율법의 속박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모두 없애주셨는데 왜 율법에 의지하려고 하십니까? 그렇다고 제가 구원받은 이후에 방종의 삶을 살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다시 태어나서 교회 성도가 되면 성화의 삶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육신을 입고 있는 이상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 한계를 인정하시고 죄가 죄를 짓는다는 사도 바울의 말(로마서7장20절)을 믿고 죄의 속박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게 진정으로 예수님의 피를 믿는 믿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갖 종류의 죄와 신성모독은 사람들이 용서받지만 성령님을 대적하여 신성모독 하는 것은 사람들이 용서받지 못하며 또 누구든지 사람의 아들을 대적하는 말을 하면 그는 용서받지만 누구든지 성령님을 대적하여 말하면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그는 용서받지 못하리라.(마태복음12장31절~32절)
위의 성경말씀을 보세요. 온갖 종류의 죄도 용서받고 신성모독조차도 용서받으며 사람의 아들, 즉 예수님을 대적하는 말을 해도 용서받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피를 믿는 믿음으로 용서받지 못할 죄는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위의 말씀에서 성령님을 대적하는 신성모독의 죄는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는 죄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를 클릭하셔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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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행과 믿음
예수님의 가계(家系) 족보에는 이방인 창녀도 들어 있습니다. 여리고성의 창녀 라합이죠. 하나님께서는 간음을 큰 죄로 보십니다. 그러나 라합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었고 두려워하였습니다. 라합은 비록 이방인 창녀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의 가계에 올려주신 겁니다. 창녀 짓을 하는 행위 보다 믿음을 더 높게 보신 겁니다.
또한 유다의 며느리 다말의 경우도 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명령한 형사취수(兄死娶嫂) 제도를 믿고 유다의 막내아들 셀라의 씨를 받고자 하였으나 시아버지 유다가 거절하자 창녀로 변장하여 유다의 씨를 받게 됩니다. 이 역시 하나님께서 엄히 금한 근친상간이었지만, 유다가 먼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으니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서 다말이 유다의 씨로 잉태하게 된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유다의 자손으로 오셔야 합니다. 이는 창세 이전부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로 계획하신 일입니다. 그런데 유다가 자신의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자 유다의 씨가 다말에게 들어가도록 허락하신 겁니다. 물론 이는 유다와 다말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그렇게 된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꺾지 않고도 모든 일을 가능케 하십니다.
다윗의 경우만 해도 충신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탐해서 간음하고 우리아를 함정에 빠뜨려서 살해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일컬어 "내 마음에 맞는 사람(사도행전13장22절)"이라고 극찬하였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한 짓을 나무라셨으며 다윗을 징계하여 다윗의 말년에 아들들의 반란으로 큰 고난을 받게 됩니다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윗의 근본 속성 자체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내 마음에 맞는 자"라는 말씀을 성경 기록에 남기신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일컬어 "나의 친구(역대기하20장7절)"라고 극찬하신 바 있습니다. 그러나 친구라고 해서 모두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것은 아니지요.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칭찬은 성경 전체에서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훗날 천년왕국 때 예수님을 대신해서 통치할 수 있는 영광을 받게 됩니다(에스겔서34장23절~24절, 37장24절~25절).
하나님께서 왜 이런 기록들을 성경에 남겨두신 것일까요? 저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인지를 알려주시고자 이런 기록들을 남긴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은 아담의 육신을 물려받은 태생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고자 이런 일들을 성경에 기록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어떤 행위로 의에 이르고자 하기 보다는 오직 믿음에 의지하라는 강한 메시지를 여러 가지 예시를 통해서 보여주신 것이라 믿습니다. 물론 믿음으로 다시 태어난 성도들은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먼저입니다. 믿음 보다 행위를 앞세워서 의에 이르려하는 것이 더 큰 죄라는 것이며 인간이 인간의 행위를 정죄하고자 믿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세상의 창조 이전부터 계획하신 일을 변함없이 이루어 나가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장 고자에 관한 말씀
마태복음 1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고자에 대해 말씀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위를 죄악으로 생각하는 과격한 사람들 중에는 이 구절을 가져와서 자위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자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한 이유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남자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결혼한 후에도 아내가 싫증이 나면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그걸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내가 바람을 피우지 않는 한 버리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놀라서 "그럼 결혼하는 것은 좋지 않겠네요.(마태복음19장10절)"라고 말한 겁니다. 왜냐하면 한 여자와 평생을 산다는 것은 당시의 유대인 남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태어날 때부터 고자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사람들이 고자로 만든 경우도 있고(예를 들어 왕실 내시들), 하늘의 왕국을 위해서 스스로 고자가 된 사람도 있다고 하시면서 그런 경우는 특수한 경우니까 일반적인 경우에는 결혼을 하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위해 평생을 바칠 사람을 고자로 비유하셨는데 이는 실제로 생식기를 절단하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의 예레미야, 다니엘, 엘리야, 침례자 요한, 그리고 신약시대의 사도 바울, 사도 누가 등의 경우처럼 결혼을 포기하고 하나님만을 위해서 독신으로 사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받을 수 있는 자"라고 하시면서 이 경우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만 하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저는 위의 경우를 자위와 연결시켜서 해석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성경의 해석은 자의적으로 하면 안 됩니다. 성경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신의 상상력을 첨가해서 영적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곰곰이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창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자위할 수 있도록 창조하신 겁니다. 이걸 인정하셔야 합니다. 왜 자위를 하도록 하셨을까요? 아까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자위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용도로도 존재합니다만, 자위의 또 다른 기능은 성욕을 해소하기위한 것입니다. 만약 자위를 할 수 없다면 간음과 각종 성범죄가 만연하게 될 겁니다. 지금도 성범죄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자위라는 기능이 없으면 얼마나 더 심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번성을 위해서 성욕을 넣어주셨고 동시에 자위의 기능도 넣어주셨습니다. 이걸 이해하셔야 합니다.
성욕은 절제가 필요합니다.
성욕은 정말 강력한 인간의 본능입니다. 인간이 다산하고 번창하길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넣어주신 본능이죠. 식욕만큼이나 강력합니다. 구원받은 성도일지라도 이러한 본능적 욕구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저지르는 죄들 중에 성욕으로부터 비롯된 것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성욕은 절제가 필요합니다. 본능 자체를 제거하려는 금욕주의는 권장하지 않지만, 절제는 권장합니다. 성경을 보면 절제는 성령의 열매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대적할 법이 없느니라.(갈라디아서5장22절~23절)
구원받은 성도는 다시 태어난 사람입니다(요한복음 3장7절, 요한복음 1장12절~13절, 베드로전서 1장23절, 고린도후서 5장17절). 새롭게 된 사람들이죠. 그러나 태어나자마자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처럼 성화될 수는 없습니다. 이제 갓 태어난 아기는 아직 연약합니다. 말씀을 더 먹어야 자라나는 겁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성도들이라고 해도 다시 태어나자마자 성욕과 같은 육신의 본능을 절제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특히 젊은 나이라면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라면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성도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성령님과의 영적 교감이 확대되면서 성화되는 삶이 반드시 나타나게 됩니다. 이런 일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성욕의 절제에 대해서는 후반부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 이후부터 육신과의 전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았다고 해도 몸은 아직 부활한 몸이 아니라서 성령님에 의해서 깨어난 영과 몸이 부딪치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성령을 대적하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대적하나니 이 둘이 서로 반대가 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너희가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갈라디아서5장17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로마서8장1절)
위의 성경말씀에서 보다시피 구원받은 이후에는 영과 육이 충돌하면서 갈등이 생기고 괴로움이 생기게 됩니다. 육신을 따라 걷게 되면 죄를 짓게 됩니다. 아무런 갈등도 없이 죄를 짓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그 때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구원받은 즉시 어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제 갓 태어난 아기가 어른처럼 행동할 수는 없는 겁니다. 따라서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 건 당연한 겁니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자주 반복하면 안 됩니다. 말씀의 젖을 먹고 점차 어른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갈라디아서5장19절부터 21절까지의 말씀은 과연 구원상실을 뜻하는 것일까?
성도님들이 가장 궁금해 하시는 성경구절은 아래 갈라디아서 말씀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성경구절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죄로 인해서 구원을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육신의 행위들은 명백하며 그것들은 이것들이니 곧 간음과 음행과 부정함과 색욕과 우상 숭배와 마술과 증오와 불화와 시기심의 경쟁과 진노와 다툼과 폭동과 이단 파당과 시기와 살인과 술 취함과 흥청댐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내가 또한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 같이 이것들에 대하여 미리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런 것들을 행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갈라디아서5장19절~21절)
이 부분을 설명해 드리기 전에 우선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성경 교리의 진리를 먼저 아셔야 합니다. 교회 시대에는 이 진리가 명확하고 지키기도 쉽습니다만, 환난 속에 남겨진 성도님들께는 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환난기 때에는 자신이 구원받았음을 행위로도 증명해야 합니다. 따라서 짐승의 표를 받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그걸 받는 순간 믿음이 없는 사람임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겁니다. 표를 받으면 무조건 지옥에 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행위구원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행위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래 링크로 확인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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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사람들이 구원받는 방법 - 행위구원은 마귀의 교리입니다.
휴거되지 못하고 남겨진 분들 중에서 구원받고자 하시는 분들은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을 주의 깊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구원받는 방법은 딱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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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5장은 15절까지는 율법주의자를 경계하라는 말씀이고 16절부터는 육신의 정욕을 경계하라는 말씀입니다. 두 경우가 다릅니다. 이점을 감안하시고 읽으셔야 혼동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15절까지는 할례를 받는 행위로 스스로 속박에 놓이려는 자들, 그리고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의에 이르고자 하는 자들, 즉 구원 받지 못한 유대인들을 향해 말씀하는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갈라디아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교회 내에 아직도 율법과 전통을 중시하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율법에 의해 의롭다고 인정받은 자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아무런 효력이 없고 너희는 은혜에서 떨어져 나갔느니라.(갈라디아서5장4절)
위의 구절은 구원상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인용하는 말씀입니다. "봐라. 은혜에서 떨어져 나갔다고 되어 있지 않느냐?"라는 거죠. 그런데 이 구절은 뒷부분 보다 앞부분이 중요합니다. 앞부분에 율법에 의해 의롭게 된 사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사람이 율법으로 구원받을 수 있나요? 율법에 의지한 사람은 불신자와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람은 애초부터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문장에서의 떨어져나간 은혜라는 의미는 처음부터 은혜와는 상관없는 자라는 뜻입니다.
너희가 잘 달렸는데 누가 너희를 막아 너희가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이렇게 설득하는 것은 너희를 부르시는 분에게서 나지 아니하느니라.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뜨게 하느니라. 나는 주를 통해 너희에 대하여 확신하되 너희가 조금도 다른 생각을 품지 아니할 줄을 확신하노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희를 어지럽히는 자는 자기의 심판을 담당하리라.(갈라디아서5장7절~10절)
여기서 너희는 갈라디아 교회 내의 구원받은 성도들을 뜻합니다. 달리기 경주는 성화와 관련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따라서 잘 달리고 있었는데 진리에 순종치 못하게 만드는 훼방꾼들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 훼방꾼들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며 누룩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누룩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악한 것으로 나옵니다. 부패하고 썩는 것을 의미하죠. 다른 생각을 품지 않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있는 반면 성도들을 어지럽히는, 즉 구원받지 못한 자들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유대인이 아닌 성도들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사도 바울은 이렇게까지 얘기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를 어지럽히는 자들이 아예 잘려나가기를 원하노라.(갈라디아서5장12절)" 교회 내에서 성도들을 어지럽히는 사람들은 아예 갈라디아 교회에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것이죠. 이 구절을 보면서 꼭 유대인들만 성도들을 괴롭힌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누구든지 교회 내에서 자기 자신의 의, 즉 율법을 세우려고 하는 사람들은 갈라디아 교회 내의 구원받지 못한 유대인들과 똑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며 구원받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죠.
그리고 13절~14절에서 사도바울은 자유를 육신의 욕심을 위해서 쓰지 말고 서로 사랑하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만일 너희가 서로 물고 삼킨다면 너희가 서로에 의해 소멸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갈라디아서5장15절)" 라는 경고로 율법주의자들과 크리스천 성도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논쟁과 혼란에 빠지는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한편 육신의 행위들은 명백하며 그것들은 이것들이니 곧 간음과 음행과 부정함과 색욕과 우상 숭배와 마술과 증오와 불화와 시기심의 경쟁과 진노와 다툼과 폭동과 이단 파당과 시기와 살인과 술 취함과 흥청댐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내가 또한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 같이 이것들에 대하여 미리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런 것들을 행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갈라디아서5장19절~21절)
16절부터는 죄를 범하고자 하는 육신의 정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한다는 말씀은 구원을 잃는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천년왕국에서 통치자로서의 상속유업을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왕국의 상속, 상속유업 등의 말씀은 모두 천년왕국에서의 통치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점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이들은 죄들을 수시로 지속적으로 범하는 자들입니다. 어쩌다 한두 번씩 범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은 천년왕국에서 통치할 상속유업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제 이해가 되시나요?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율법주의자들의 말에도 흔들리지 말고 육신의 정욕에 굴복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그 안에 굳게 서고 다시는 속박의 멍에를 메지 말라. 보라, 나 바울이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하시리라.(갈라디아서5장1절~2절)
갈라디아서 5장은 전체적인 주제가 1절과 2절에 나와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절대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자유롭게 했으니 오직 예수님의 피만 의지라하는 겁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이후에 죄들로 인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율법주의자들과도 다르고 죄책감 없이 습관적으로 지속적으로 죄를 범하는 자들과도 다릅니다. 신약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모든 내용으로 판단하면 교회시대에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대속을 진심으로 믿어서 다시 태어나면 무조건 구원받습니다. 성령님께서 영원히 내주하시기 때문에 절대로 구원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더 이상 우리의 죄들과 불법들을 기억하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히브리서8장12절).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인간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절대로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것 자체가 교만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저 그리스도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 안에만 있으면 됩니다. 성경에서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고민하지 마시고 항상 명백한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성경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수없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한 가지만 죄가 되는 것일까요? 갈라디아서 5장에는 시기심, 증오, 불화, 진노, 다툼 등의 죄목도 나옵니다. 이런 죄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야고보서를 보면 모든 율법 중에서 단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면 모든 것에서 죄가 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모든 것에서 유죄가 되나니(야고보서2장10절)" 따라서 인간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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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6장과 동성애에 관하여
성경은 동성애를 반대합니다. 그러나 동성애도 인간이 저지르는 많은 죄들 중 하나입니다. 즉, 용서받을 수 있는 죄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피로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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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정리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내용을 요약정리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나서 회심하기 전까지 600개가 넘는 율법들을 철저히 지키며 살았던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님에 의해서 다시 태어난 이후 자기가 그동안 지켜왔던 율법들을 단지 똥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금욕 등을 포함한 율법의 행위로는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으며 율법은 단지 인간이 죄인임을 깨닫게 해주는 용도라고 나와 있습니다(로마서3장20절,갈라디아서2장16절). 율법의 행위로 무언가를 해 보려고 하는 자들은 모두 저주 아래에 있다고도 했습니다(갈라디아서3장10절). 모든 율법은 이미 예수님께서 끝마침을 이루셨습니다(로마서10장4절).
내 안에 (곧 내 육신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내가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한 그것을 어떻게 행할는지는 내가 찾지 못하노라. 이는 내가 원하는 선은 내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내가 원치 아니하는 악, 그것을 내가 행하기 때문이라. 그런데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내가 행하면 그것을 행하는 자가 더 이상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거하는 죄니라. 그런즉 내가 한 법을 발견하노니 그것은 곧 내가 선을 행하기 원할 때에 악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이라. 내가 속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들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생각의 법과 싸워 내 지체들 안에 있는 죄의 법에게 나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내가 보는도다.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출하랴?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런즉 이처럼 나 자신이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로마서7장18절~25절)
보다시피 사도 바울조차도 자신의 죄를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 많은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믿음뿐입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만으로 의롭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결론을 내리노니 사람은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느니라(로마서3장28절)". 인간은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게 되며(에베소서2장8절), 구원받은 사람들에게서는 선한 행위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됩니다(에베소서2장10절).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해도 육신은 여전히 죄성을 지닌 아담의 피를 지녔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죄는 이미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없애주셨기 때문에 지옥에 갈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내가 계속해서 죄를 짓는다고 해도 지옥에 갈 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사례가 고린도전서에 나옵니다. 고린도전서5장을 보면 교회 내에 어떤 사람이 이방인들도 행하지 않는 극악한 음행을 저질렀는데,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이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를 사탄에게 넘겨주어 육체를 멸하도록 판단하였으니 이것은 영이 주 예수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린도전서5장5절)
즉, 이토록 무지막지한 죄를 저질렀어도 벌을 받는 것은 육신의 죽음, 즉 이 세상에서의 죽음뿐이며 그의 영은 주의 날에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성경구절은 구원받은 후에 죄를 지어도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고 주의 날에 부활해서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증언하는 사례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는 자연스럽게 선을 행하게 되기 때문에(에베소서2장10절 참조), 계속해서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계속 죄를 지어도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성경의 논리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그럴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구원받기 이전과 이후가 아무런 차이도 없이 똑같이 지속적으로 죄를 짓는다면 그는 말로만 구원받았다고 할 뿐, 실제로는 구원받지 못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지금 죄 때문에 구원을 잃을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취지로 글을 쓰고 있음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성경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일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분을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로마서4장5절)
여기서의 일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행위를 뜻합니다. 그런데 그런 행위를 하지 않고 심지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이미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은 사람은 칭의, 즉 예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들입니다. 행위와 상관없이 우리를 구원해주신 예수님을 향한 믿음, 그 믿음이 하나님께도 의로 여겨진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받는 주체는 우리의 혼과 영입니다. 몸이 아닙니다. 물론 몸도 나중에 부활 또는 휴거될 때 구원받습니다만, 그 전까지는 참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죄를 짓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는 죄(옛사람)가 짓는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로마서7장17절). 구약성경에는 창세기와 출애굽기 이외에도 민수기, 신명기 등 여러 책들이 있습니다. 창조의 진리와 구원의 진리만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면 창세기와 출애굽기만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민수기, 신명기 등의 책들은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아서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전히 아담의 피를 지닌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를 범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시고자 하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기 때문이라.(로마서8장1절~2절)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분의 씨가 그 안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라. 그는 하나님에게서 태어났으므로 죄를 지을 수 없느니라.(요한일서3장9절)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함을 우리가 아노라. 오히려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자신을 지키므로 저 사악한 자가 그를 건드리지 못하느니라.(요한일서5장18절)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일부러 죄를 지으라는 뜻으로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죄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라는 뜻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내가 믿었으니까 안심하라는 것이죠. 하나님의 가장 큰 명령을 지킨 것이니까요.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는 죄에 대해 굉장히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를 짓고도 태연하게 살아갈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회개의 기도를 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징계(이 세상에서의 징계를 뜻함)를 받는 경우도 생깁니다. 왜냐하면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히브리서12장8절).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율법이 아닌 은혜 아래에 있다고 해도 죄의 종이 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로마서6장15절~16절). 다만 여기서의 사망은 구원을 잃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단지 육신의 사망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망에 이르는 죄는 작은 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드러내놓고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거나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큰 죄를 뜻합니다(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참조).

제가 성경을 읽고 여러 목사님들의 설교말씀을 참고하여 판단한 개인적인 결론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육신의 욕망 그 자체 보다는 그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되거나, 다른 신을 섬기게 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거나, 혹은 어떤 인간의 행동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을 멸시하게 되거나 하는 등의 영적인 일을 더 중요하게 보시는 것 같습니다. 마귀도 인간의 육신의 행위 보다는 그로 인해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자기에게 경배하도록 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령충만으로 성화되는 삶
이제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성령에 따라 걷는 것, 즉 성화의 삶을 사는 것으로서 성욕을 절제하는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성령침례를 받아서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성령님께서 영원히 내주하고 계시기 때문에 육신의 본성과 충돌을 일으키게 됩니다. 육신의 본성이 악한 생각이나 악한 행위를 하고자 하면 망설이게 되고 다시 생각하게 되고 만약 악한 일을 하게 되면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속성을 지녔고 극도로 사악한 마음을 가진 인간이(예레미아서17장9절) 악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회개의 기도를 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구원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입니다. 만약 과도한 육신의 정욕으로 인해 괴롭다면 하나님 아버지께 진심으로 기도를 드려 보세요. 그러면 아버지께서 반드시 답을 주십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셨나니 곧 죄로 인해 자신의 아들을 죄 많은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사 그 육신 안에서 죄를 정죄하셨느니라. 이것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는 우리 안에서 율법의 의가 성취되게 하려 함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들은 육신의 일들을 생각하되 성령을 따르는 자들은 성령의 일들을 생각하나니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요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화평이니라.(로마서8장3절~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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