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년들이 읽는 소설책들은 그들의 영적인 가치관에 크게 영향을 끼칩니다. 청소년기에 형성된 가치관은 평생을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그동안 행위구원, 진화론, 둥근지구와 우주, 변개된 현대역본 성경, 거짓 수메르, 카톨릭, 딥 스테이트, 반유대주의, 리셋음모론 등에 대해서 경고의 글을 올렸습니다만, 오늘은 청소년들이 읽는 고전문학 소설들도 그에 못지않은 매우 위험한 마귀의 도구라는 사실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그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살펴보겠습니다. 자세한 줄거리나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을 검색하면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이 두 소설의 핵심적인 내용만을 가지고 이 책들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헤르만 헤세와 알베르 카뮈는 프란츠 카프카 더불어 대표적인 실존주의 소설가들입니다. 실존주의는 나의 욕구와 현실의 불일치를 부조리한 것이라고 인식하는데서 출발합니다. 그 부조리를 극복하는 길은 지금 현재 나의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고 기존의 모든 체계와 가치관을 뛰어 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당당하게 지겠다는 것이죠. 얼핏 보면 뭔가 멋있어 보입니다만, 이는 한 마디로 말해서 자기 멋대로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정당화하겠다는 것을 그럴듯한 말로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특히 실존주의에서는 인간의 죄에 대한 생각이 기독교적 가치관과 180도 다르기 때문에 한 번 실존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간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은 아무런 이유나 목적 없이 먼저 세상에 던져졌고(실존), 그 후에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간다(본질)는 것이죠. 그러나 성경에는 분명하게 인간이 죄인으로 태어났다고 나와 있으며 죄를 제거하지 못하면 지옥에 간다고 나와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아무런 이유나 목적이 없이 던져진 게 결코 아닙니다.
저는 철학을 믿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철학이란 거짓을 진실인 양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사람들을 속이는 것에 다름 아닌 것 같습니다. 참고로 성경은 철학을 헛된 속임수와 동급으로 취급합니다(골로새서2장8절 참조).
우선 소설 데미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단어는 아마도 '아브락사스'라는 신의 이름일 겁니다.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아브락사스'는 주후 2~3세기경에 영지주의 이단들이 실제로 믿었던 잡신의 이름입니다. 지금도 고대문헌과 마법사들이 사용했던 부적 등에 그 이름이 남아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아브락사스'가 마법주문 용어인 '아브라카다브라'의 어원일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평생 동안 동양철학과 신비주의에 심취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인도와 중국의 여러 종교들에도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심지어 마법, 연금술, 점성술과 같은 오컬트적인 것들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습니다. 이것들은 그의 문학세계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뿌리가 되었습니다.
선과 악, 즉 천사와 악마가 믹스되어 있는 잡신 '아브락사스'는 이 소설의 핵심입니다. 이 세상은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초등학생 정도만 돼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 정도 나이면 자기의 내면에 악한 속성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들도 거짓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양심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아무리 초등학생이라고 해도 악이 나쁘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주인공 싱클레어도 처음에는 자신의 내면에 들어있는 악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데미안을 만난 후 선과 악이 이분법처럼 나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피스토리우스를 만나면서 그것이 '아브락사스'라는 개념으로 구체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바 부인을 만난 후 드디어 방황을 끝내면서 더 이상 선과 악에 매이지 않는, 알을 깨고 나온 궁극의 아브락사스적인 인간이 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사회 통념상 도덕적으로 죄가 된다는 것을 자기가 인식한다고 해도 그게 그냥 자기 자신의 모습이라고 인정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실존주의자들은 이것을 당당해진 것이라고 표현합니다만, 사실은 뻔뻔해졌다는 것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헤세가 가까이했던 철학자 칼 융은 인간이 죄를 짓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을 "그림자의 억압"이라고 불렀습니다.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짓이라고 보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미안함이나 죄책감 대신 당당하게(?)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면 그 뿐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미안함이나 죄책감이 없으면 절대로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죄를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결국 창조주이신 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소설 이방인을 살펴보겠습니다. 데미안이 죄로부터 당당해진(?) 모습을 그린 소설이라면, 이방인은 '아브락사스적 인간'의 끝판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주인공 뫼르소는 배려심이 전혀 없는 캐릭터로 나옵니다. 그는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 무감각한 인물입니다. 그는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로 인해서 상대방이 상처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뫼르소는 참을 수 없는 강렬한 태양빛과 더위 때문에 사람을 총으로 쏴서 살해합니다. 계획적인 살인도 아니었고 증오나 원한에 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눈을 찌르는 태양의 빛 때문에 우발적으로 방아쇠를 당긴 것이죠. 우발적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그는 무려 다섯 발을 발사했습니다.
문제는 그의 태도입니다. 그는 자신의 범죄행위를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전혀 미안한 감정을 가지지도 않았습니다. 피해자나 피해자의 가족에게 사과하지도 않았습니다. 판사와 검사가 뫼르소에게 범행을 후회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진정한 후회라기보다는 일종의 번거로움(귀찮음)을 느낀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이라는 사건을 도덕적 죄악으로 인식하기보다, 평온했던 자신의 일상을 깨뜨린 귀찮은 잔해물 정도로 여겼습니다. 다만 그는 범행사실을 순순히 인정했고 형벌 또한 담담하게 수용합니다.
실존주의자들은 뫼르소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타인에게 고의적으로 고통을 주면서 쾌락을 느끼지 않았을 뿐더러,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태도 때문에 사이코패스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저도 그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사이코패스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사이코패스 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 뫼르소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이코패스는 그게 죄라는 사실 자체는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이코패스는 죄를 저지르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나 뫼르소는 자신의 행위가 죄라는 것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냥 국가에서 그게 죄라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하는 것이죠.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선이 아닙니다. 짐승과 인간은 달라야 합니다. 인간은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긴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상처받지 않게끔 행동하는 것이 왜 나쁜 것입니까? 배려는 거짓말이 아닙니다. 배려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너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22장37절~4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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