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저는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님을 밝힙니다. 그렇다고 중도파도 아닙니다. 저는 단지 극소수의 부자 기득권보다는 다수의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더 좋아할 뿐입니다. 저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반대하고 LGBTQ를 반대하고 낙태를 반대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약육강식 부익부빈익빈 자본주의 시스템도 반대합니다. 자본주의는 결국 극소수가 거의 모든 부를 다 가져가게 되고 맙니다. 미국은 상위 1%의 부가 전체 부의 1/3을 차지하고 있고 하위 50%는 전체 부의 2%도 안 된다고 합니다. 한국도 이미 상위 10%의 부자들이 하위 50%에 비해서 거의 200배의 부를 가져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전 세계 자본주의 국가들이 심각한 부작용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결코 완화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점점 더 심화될 것입니다. 성경에는 오른 쪽이 선하다고 되어 있습니다만, 현재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좌파적 또는 우파적 경제, 이념, 정치 관념과 성경말씀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오늘날 우파와 좌파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보면 오른쪽이 선하다는 성경말씀이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리에 이르게 하는 표지판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인간이 만든 자본주의 시스템은 성경적 진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죠.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 사랑하셨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천대받던 창녀들을 구원해주셨고, 그 당시 가장 취약했던 과부와 고아들을 돌봐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좌파들이 가장 싫어하는 전두환 대통령과 우파들이 가장 싫어하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 조금 살펴보고자 합니다. 물론,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모든 내용은 순전히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니까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정치적 견해는 일종의 종교적 신념과 같아서 항상 싸움의 빌미가 되곤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역대 대통령의 순위는 아래와 같습니다.
이승만 > 박정희 > 전두환 > 김대중 > 노무현 > 이명박 > 노태우 > 박근혜 > 문재인 > 김영삼
아마도 위와 같은 순위를 생소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거의 대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파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왜 이명박 대통령 보다 위에 있을까 하고 의문을 제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국민들의 삶의 질을 가장 우선순위로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을 두둔하고 외국인 지문날인을 폐지하고 무분별하게 외국인 노동자들, 특히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와 같은 저질 무슬림들을 받아들여 수많은 부녀자 강간사태를 발생시킨 점 등 잘못한 점이 많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서민정책 중 하나인 개인회생제도라는 것을 도입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자살의 위기에서 건져낸 업적이 있는 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는 언론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여 모든 언론과 사람들이 대통령을 욕하고 조롱해도 아무런 고소고발이나 탄압도 받지 않는 최고의 언론자유 시대를 만들어낸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대통령이 일반인을 모욕죄로 고소하는 무지막지한 언론탄압의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고위급 정치인의 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은 소리 없이 지면에서 사라지거나 자살당하거나 합니다. 지금은 모든 언론이 권력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할 말도 못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전두환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두 분 모두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좌파들의 전두환에 대한 오해와 우파들의 김대중에 대한 오해를 조금이나마 풀어주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전두환은 사형선고를 받았던 김대중을 사면복권 해 주었고, 김대중은 사형선고를 받았던 전두환을 사면복권 해 주었죠. 사실, 우파와 좌파의 대립적인 시각과는 달리 두 분 사이는 원만했습니다.
우선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제 개인적 평가입니다. 그는 대한민국 최초로 헌법에 개인의 행복추구권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그 정도로 그는 국민의 복지를 최고의 정치 덕목으로 생각했던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는 집권 기간 내내 역대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으며, 7년 내내 가장 안정적인 물가를 유지했습니다. 전두환은 정치색을 배제하고 정부 각 부서에 가장 유능한 전문가들만을 기용했습니다. 인재가 넘치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웅산 테러로 많은 전문가들이 희생되었으나 또 다른 전문가들이 그 뒤를 이어 안정적인 국가경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국민들은 여론조사에서 70프로 이상이 나는 중산층이라고 응답했습니다. 저축률도 역대 최고였고, 누구나 5년 정도만 열심히 일하면 내 집 장만이 가능했던 시대가 바로 전두환 시대였습니다. 또한 이승만 정부 이후 37년간 시행되어 왔던 야간통행금지 제도를 폐지하고, 교복 자율화, 두발 자율화, 프로스포츠 시작, 영화검열완화 등 이전에 비해 사회 문화 전반에서 개인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되었습니다.
박정희 정권도 경제성장률이 높았으나, 박정희 정권 말기에는 오일쇼크로 경제성장률이 6.5%대로 하락했고 전두환 집권 초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정도로 경제가 나빴던 시기였습니다. 전두환 정부는 그것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성장을 기록했으며, 선진국만 개최해왔던 하계 올림픽을 유치하기에 이르러, 당시 세계 언론은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불과 30년 만에 이룩한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전두환 정부의 올림픽유치는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무역대국으로 점프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물가안정과 더불어 전두환 정부의 가장 큰 업적은 기회의 균등을 가장 잘 실천했던 정부였다는 것입니다. 비리의 온상이었던 입시 제도를 학력고사 한가지로 통일하고, 사교육을 전면 금지하여 가난한 서민들에게도 신분상승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전두환 정부 때는 가난한 연탄 배달부 아들도 교과서만 열심히 공부하면 서울대에 합격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일부 대학생들은 몰래 숨어서 불법과외를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신고를 하면 포상금을 받게 되기 때문에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부 불법과외가 있었다고 해서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를 만들었던 전두환 시절을 폄훼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두환 대통령의 또 하나의 업적은 주택임대차보호법입니다. 세입자가 전입신고시 확정일자를 받는 것도 바로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죠. 그 전까지는 집주인이 바뀌거나 저당이 설정되어 경매로 넘어가면 세입자는 임차보증금을 떼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러나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생긴 이후부터는 확정일자를 받은 세입자는 보증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가안정, 사교육금지,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전두환 정부의 3대 서민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최저임금법이 최초로 제정된 것도 전두환 정부 시절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일본 미국과 협력하여 해저 광케이블 개설 사업에 참여하여, 현재의 초고속 인터넷의 기초 인프라를 건설하였으며, 논과 밭뿐이던 서울 강남 일대를 개발하여 오늘날의 서울의 얼굴을 완성하였습니다. 전두환 정부는 환경문제에도 크게 관심을 기울여 전국적인 산림녹화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며 매년 우기 때만 되면 하수구 범람으로 도시에 피해를 주던 한강과 그 주변을 정비하여 오늘날의 멋진 한강 치수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하철을 대대적으로 건설하여 대중교통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였습니다. 세계적인 대도시로서의 외형은 거의 대부분 전두환 시절의 인프라 건설에 의해서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전두환 정부도 잘 했던 것만 있는 것은 아니죠. 그는 삼청교육대를 만들어서 정당한 재판도 없이 정신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일반 국민들을 수주에서 수개월간 구금하고 폭력을 사용했으며 강제로 군사훈련에 준하는 육체노동을 시켰습니다. 물론 삼청교육대에 입소한 대다수는 범죄자와 시민들을 괴롭히던 양아치들이었습니다만, 그 중에는 억울한 사람들도 있었고 심지어 사망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일 것입니다.
그리고 전두환 정부의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은 12.12사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12.12는 전두환의 쿠데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김재규와 정승화 일당의 쿠데타를 사전에 진압한 작전이 바로 12.12라고 생각합니다. 12.12에 대해서는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사실, 12.12만 가지고도 여러 페이지 분량의 긴 내용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전두환 정부는 군사정권이라는 태생적 한계임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아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서민들을 위한 정치는 역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전두환은 사실 경제적으로는 우파라기보다는 좌파에 가까운 인물이었습니다. 각종 생필품 물가를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고, 사교육을 금지하고, 임차인 보증금을 보장하는 것 등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논리로 볼 때는 매우 좌파적인 정책인 것입니다. 그는 57세의 젊은 나이에 7년 단임제 약속을 실천하고 물러났습니다. 그의 7년간의 국가운영은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마도 우파들은 김대중이 훌륭한 대통령이라는 제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예전에는 우파 쪽에 가까웠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알게 된 이후 역사를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게 되면서 김대중도 훌륭한 지도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전두환 정부 못지않게 엄청난 경제성장을 달성했습니다. IMF를 이렇게 빨리 극복하고 초고속 성장을 했던 나라는 없었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유일합니다. 일부에서는 알짜 기업들을 헐값에 팔아넘기고 극복한 IMF가 무슨 소용이 있냐고 비판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한국만 외국인 지분이 높은 기업이 많은 게 아닙니다. 세계 모든 나라의 유명한 기업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외국인 지분이 높습니다. 특히 미국인들의 지분이 높죠. 이것이 자본주의 주식회사의 특징인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 이후로도 외국인들은 꾸준히 한국 기업들의 주식을 매입했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국민연금 제도를 전국민에게 강제로 실시하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강제조항이 아니었죠. 이로 인해서 서민들은 최소한의 노후대책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종 비리의 온상이던 지역보험, 공단보험, 기업보험을 모두 통폐합하여 건강보험공단을 설립하여 국민건강보험을 체계화 시켰습니다. 이로서 서민들이 저렴하게 병원을 이용하고 처방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부러움을 사고 있는 한국의 건강보험시스템이 이토록 안정적으로 체계화 된 것은 모두 김대중 정부 당시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 4대 사회보험제도가 체계화된 것도 바로 이때부터입니다. 또한 모든 검열을 폐지하여 영화산업과 음악산업이 부흥했습니다. 따라서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퀄리티가 높아지게 되었으며, 한류문화를 최초로 수출했던 시기도 바로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습니다.
언론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김대중 정부 이후부터입니다. 국민들이 자유롭게 발언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었습니다. 전국적인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가 건설된 것은 김대중 정부가 세계 최초였습니다. 이때부터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과 댓글이 봇물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언론의 자유가 좋은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거짓 정보가 난무하게 된 폐단도 생겼으니까요. IT산업이 급속하게 발전한 것도 이때부터였습니다. 그와 함께 전자정부 시스템을 구축하여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켰습니다. 「전자정부구현을위한행정업무등의전자화촉진에관한법률」제정('01. 3. 28.), 시행('01. 7. 1.)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정부와 공공기관의 웬만한 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되었죠. 또한 간단한 민원업무는 관공서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국민의 권익을 증진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이 바로 전자민원시스템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각종 불편불만 사항이라든지 공무원의 잘못 등에 대해 민원을 제기하려면 일일이 해당 부서를 찾아가서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전자민원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간편하게 민원을 제기할 수 있게 되었으며, 즉각적인 피드백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토요일을 공휴일로 정하는 주5일 근무 제도를 적극 추진했던 정부도 김대중 정부였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겠습니다만 당시에는 IMF 탓인지는 몰라도 주5일 근무 제도를 반대하는 여론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특히 재계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일단 시범적으로 행정기관에 적용한 후 2002년 7월부터 전국의 모든 은행에 주5일 근무제를 전격적으로 실시했습니다. 그 이후로 여론도 변화하여 노무현 정부 들어서 근로기준법이 개정되고 전국적인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되게 된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의 서민정책 중 서민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정책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형편이 어려워서 막막한 사람이 구청이나 동사무소에 어려운 사정을 호소하면 일정 액수를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 덕분에 구걸이나 자살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기초생활보장법과 함께 제가 생각하는 김대중 정부의 가장 큰 업적 중의 하나는 일본문화의 개방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그 당시에도 한국인들의 반일감정은 매우 강했습니다. 바로 직전 정부였던 김영삼 시절에는 중앙박물관(일제시대 조선총독부건물)을 해체하여 없애버릴 정도로 일본을 미워했던 시절이었죠. 그렇게 전 국민이 반대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김대중은 전격적으로 일본문화를 개방했습니다. 또한, 독도를 중간수역으로 하는 등 일본과의 마찰을 피하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위안부문제도 김대중 정부 시절에 끝맺음을 했습니다(물론, 훗날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서 번복하긴 했습니다만,). 그래서 당시에는 일본과의 교류와 무역도 활발했고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시각도 매우 우호적이었습니다. 아마도 역대 최고로 한일관계가 좋았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물론 국민들 사이에 김대중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는 부분이 많을 겁니다. 특히 북한의 핵개발을 도왔다는 것이 가장 큰 이슈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핵무기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입니다. 북한도 당연히 핵무기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북한은 300만명이 아사했다는 고난의 행군 시대였습니다. 아마도 지구 역사상 가장 참혹한 시기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이 지원한 돈은 북한 주민들의 아사를 막은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부의 우려대로 북한 군자금으로 쓰였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군자금으로 쓰였다고 해도 대부분은 군인들 식량문제를 해결하는데 쓰였을 겁니다. 당시 북한 군인들은 13년간 복무를 했다고 합니다. 여자도 10년간 복무를 했다고 합니다. 군인들 자체가 그냥 북한 주민들이나 마찬가지라고 봐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로 인해서 군인들이 주민들의 음식을 빼앗아 먹는 것을 막았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겁니다. 북괴 정권이 밉지 북한 주민들이 무슨 큰 죄가 있겠습니까. 무려 300만명이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 맞다 생각합니다. 게다가 김대중이 지원한 돈은 한국입장에서는 별로 큰돈도 아니었습니다. 만약 이 세상에 핵무기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 정도 돈으로 만들 수 있는 핵무기라면 굳이 김대중이 아니라고 해도 언제든지 만들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오늘날 거의 모든 반미 국가들은 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고난의 행군 시절에 대북지원을 하지 않았으면 북한이 저절로 망했을 것이고 쉽게 통일할 수 있었을 텐데 왜 도와주었냐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너무나 단순한 생각입니다.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제력 차이는 적게는 30배 이상 많게는 100배나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덜컥 통일을 해 보세요. 그럼 한국은 망하고 맙니다. 서독과 동독이 통일했을 때의 경제력 차이는 겨우 2배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 이후 수십 년간 국민들이 엄청난 고생을 해야만 했고 그 여파는 지금도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독일 국민들은 대다수가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겨우 2배의 경제력을 합친 결과가 이럴진대 100배 차이를 합친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마도 50년 이상은 가난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무작정 통일만 하면 모든 게 다 잘 풀릴 것이라는 생각은 안일하고 무책임한 생각입니다. 일부에서는 중국도 저렇게 발전했는데 북한이라고 안 될 것은 무엇이냐고 따져 묻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중국과 한국은 완전히 다릅니다. 한국이 망해버린 북한과 통일을 한다면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의 통일 밖에는 없습니다. 북한에 있는 사람들도 대한민국 국민들과 똑같이 대우를 해 주어야 한다는 뜻이죠. 반면 중국은 그럴 필요가 없죠. 중국은 인구대국입니다. 또한 공산당 독재 국가라서 인권유린이 비일비재한 나라입니다. 수억 명의 노동자들을 임금을 적게 주고도 오랫동안 노예처럼 부려먹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중국은 땅도 크고 자원도 많죠. 그런 중국도 개혁개방 이후 지금이 오기까지 거의 40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행군 당시에 북한이 망하도록 그대로 두었으면 한국으로 흡수가 되는 게 아니라 중국으로 흡수되었을 가능성이 더 컸을 것입니다. 그런 위험성도 고려해야만 했기 때문에 일단은 살려 놨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이라는 묘수를 생각해 냈던 것입니다. 북한이 개혁과 개방으로 스스로 발전해서 최소한 베트남 수준 정도는 올라와야만 그때 가서야 통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물론 햇볕정책은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다고 해서 시도 자체가 나빴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김대중 대통령이 좌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960년대~1980년대 당시에는 반공이념이 투철했던 시기였고 대통령의 권력이 막강했기 때문에 언론과 미디어에서 김대중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김대중이 박정희 대통령의 여러 가지 정책에 대해 반대하였기 때문이며, 반대하는 논리가 나름 설득력이 있었고, 또한 연설 실력도 뛰어났기에 그가 박정희 대통령을 위협하는 인물로 부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해하는 측면이 많다 생각됩니다. 그러나 김대중의 대선 후보 공약들을 보면 실제로는 좌파적인 정책이 거의 없었습니다. 해외 차관을 들여와서 전국적인 고속도로를 설치하겠다는 등 인프라 건설과 성장 위주의 정책이 더 많았습니다. 실제로도 그는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대기업 위주의 성장을 중요시했습니다. 게다가 친미친일 대통령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좌파일 수 있겠습니까?
우파와 좌파를 나누는 기준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쪽이 우파고, 개인의 자유 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쪽이 좌파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했으며 세계 최초로 초고속 인터넷을 전국에 깔아서 그의 임기 동안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은 어떠했습니까? 코로나를 핑계로 사람들을 모이지 못하게 하였으며 주사를 맞지 않으면 직장생활에서의 불이익까지 당하는 등 극도의 공포정치를 했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밥 먹는 것까지도 시비를 걸었으며 개인의 동선을 추적하고 공개하는 등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였습니다.
김대중은 노무현이나 문재인, 이재명 등의 친북친중 운동권 좌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크게 보면 김대중도 좌파들의 모태를 형성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좌파들의 패악질에 대해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만, 사실 저는 김대중 보다는 오히려 김영삼에게 더욱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김영삼 얘기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국가운영에 대한 저의 점수는 100점 만점에 70점 이상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정부처럼 여러 번 대통령을 했던 것도 아니고, 전두환 정부처럼 7년 동안 했던 것도 아닌, 단지 5년간의 업적 치고는 뛰어난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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