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크리스천 성도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궁금해 했을 선악과에 대한 글을 포스팅하고자 합니다. 저도 여러 성도님들과 마찬가지로 이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여러 목사님들의 설교말씀을 듣고 기독교 관련된 여러 영상들과 인터넷 글들을 보았습니다만 만족할만한 답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이성과 판단력을 가지고 제 나름대로 성경을 해석하여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께 저의 견해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것들은 전부 제 주관적인 견해임을 미리 밝힙니다.
먼저 창세기 2장 16절~1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네가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아마도 거의 모든 성도님들은 위의 말씀을 보면서 '먹지 말라'는 명령과 사람이 그 명령을 어긴 것에만 주목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네가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라는 문장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즉, 만약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뜻입니다. 먹지 말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만약 '먹으면'이라는 뜻은 먹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먹을 수 없다면 '먹으면'이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앞을 내다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게 하시려고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심어 놓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먹게 하셨을까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선과 악을 알게 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후반부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선악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입니다. 선악을 아는 하나님의 속성은 자유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선과 악, 즉 진리와 거짓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게 바로 자유의지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선악을 안다는 것은 자유의지의 발현과 동시에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마치 인간이 진리에 이르는 회개와 동시에 구원받는 것과 비슷한 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4절 말씀을 보면 "그것들로 말미암아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나니 이것은 이 약속들을 힘입어 너희가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나와 있습니다. 구원받은 인간은 훗날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선한 일을 행하려면 우선 선악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인간이 선과 악을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또한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죽음은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죽음의 예표인 잠, 즉 수면도 이때 생겼다고 생각함, 잠에서 깨는 것은 부활을 예표). 만약 선악과를 먹지 않게 되면 죽음이 없게 되고 죽음이 없으면 인간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시스템에 속하지 못하게 되고 천국과 지옥의 분리수거도 불가능하게 됩니다. 이 말이 조금은 어렵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최대한 쉽게 설명 드리자면,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 때에는 검수단계를 반드시 거치게 됩니다. 품질에 이상이 없으면 품질보증서를 발급하고 상품으로 출시하게 되지만, 품질에 이상이 있으면 폐기하거나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저는 구원이 일종의 품질보증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의 최종 완성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육적으로 태어날 때 마귀의 세상에 속한 마귀의 자식들로 태어납니다. 성장하면서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이성과 양심과 판단력으로 스스로 깨달아 믿음을 가질 때 비로소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고 그제야 하나님께서 보실 때 완성품이 되는 것입니다. 즉, 품질검수 단계를 거쳐야만 최종 완성품으로서의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최종 완성품인 것입니다. 그 전의 인간들은 아직 미완성된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완성으로 죽게 되면 품질보증서가 없기 때문에 지옥으로 폐기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처음부터 완벽한 인간, 즉 애초부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인간을 창조했으면 선악과와 죽음과 구원은 필요 없지 않았을까...하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궁금증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믿음을 가지고 있고 어떤 악한 일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자유의지가 없는 사람입니다. 자유의지가 없으면 진정한 의미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로보트일 뿐이죠. 하나님께서는 로보트를 원하지 않습니다. 로보트는 완벽한 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깨달아 믿음을 가져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것이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입니다. 자유의지가 있는 인간만이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유의지는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판단은 선과 악을 알게 되었을 때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을 알지 못할 때는 자신의 판단이 선한 판단인지 악한 판단인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여자(하와)가 뱀에게 속아서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만, 창세기 3장4절~5절을 보면,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하니라." 라고 나와 있습니다. 단순히 속은 게 아니라 '반드시 죽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으며 또한 자기 자신이 신처럼 되고자 하는 욕심도 있었던 것입니다. 여자의 판단 속에는 이미 악한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그녀는 자기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을 할 당시에는 선악과를 먹기 전이기 때문에 아직은 선과 악을 알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에도 이미 악한 본성을 가진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본성은 죽을 때까지도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가 바로 인간의 악한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악한 본성이 없으면 자유의지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이제 아담과 여자가 선악과를 먹은 직후의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들 두 사람의 눈이 열리므로 그들이 자기들이 벌거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자기들을 위해 앞치마를 만들었더라. 그들이 그 날 서늘한 때에 동산을 거니시는 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주 하나님의 얼굴 앞을 떠나 동산의 나무들 가운데 숨으매(창세기 3장7절~8절)" 위의 구절에는 아담과 여자의 눈이 열렸다고 되어 있으며 벌거벗은 몸을 가리기 위해서 앞치마를 만들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왜 하필 앞치마였을까요? 앞치마는 생식기 정도만 가릴 뿐입니다. 전체 몸을 가리지 못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간의 눈이 열렸다는 것은 눈으로 들어오는 인간의 욕구를 느끼게 되었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이 욕구에는 성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기 이전에는 사람도 짐승과 마찬가지로 번식기와 비슷한 생리현상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번식기가 아니면 성행위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성행위 자체에는 아무런 나쁜 느낌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이후에는 번식기와 상관없는 욕정이 생겼으며 벗은 나체의 생식기는 그런 욕정의 수치심을 상징하는 것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앞치마로 가려야 했던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성욕이 왜 수치스러운지 의문을 품는 성도님들도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성욕은 식욕과 배설욕, 수면욕 등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이고, 남자와 여자는 육적으로 이성에게 여러 가지 시각적, 촉각적, 후각적, 지적 끌림과 오르가즘을 느끼고 싶게끔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인간의 성욕 또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왜 죄가 될까 의문을 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죄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은 이후에 죄가 인간에게 들어왔습니다. 선악과를 먹었으니 악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악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 그게 바로 죄가 들어왔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악한 행위를 하는 것이 바로 죄이며,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 바로 악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선과 악을 안다고 해도 악이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없으면 단순이 선악을 안다는 지식만 가지고는 죄책감을 느낄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악한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고 부끄러워하는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양심이라는 것을 넣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는 순간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게 된 동시에 악을 행하는 것이 바로 죄이며, 죄는 나쁜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치마로 가린 것이며 하나님을 피해서 동산의 나무들 가운데 숨은 것입니다(창세기3장8절).
성경에 나와 있는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창세기26장을 보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자기 아내 리브가가 아름다웠기에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아갈까 두려워하여 리브가에게 자기의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라고 합니다. 그랄 지방의 왕 아비멜렉이 이 사실을 알고 이삭을 꾸짖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우리에게 행한 이 일이 도대체 무엇이냐? 백성 중의 하나가 네 아내와 쉽게 누울 수 있었으니 네가 우리에게 죄를 가져올 뻔하였느니라,(창세기26장10절)" 이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도 다른 사람의 아내와 간음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유대인들 조차 율법을 받지 못했던 모세 이전의 이방인들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에게 양심을 심어주신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십계명과 대언자들의 말씀을 통해 율법을 주셔서 사람들이 죄가 무엇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모든 율법을 다 지키면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라도 율법을 어기면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은 율법을 절대로 지키지 못합니다. 따라서 율법은 사람이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용도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시대의 모든 율법을 딱 두 가지의 명령으로 압축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가는 큰 명령이요, 둘째 명령은 그것과 같으니 곧, 너는 네 이웃을 너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니라. 모든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이 이 두 명령에 매달려 있느니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2장37절~40절)" 위의 구절에서 보다시피 하나님을 슬프게 하거나 사람을 상처받게 하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상대방에게 성욕을 느낄 때마다 섹스를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은 싫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면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욕정 자체에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대부분의 죄는 명예욕(권력,돈)과 성욕에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극찬했던 다윗조차도 성욕을 이기지 못하고 충신 우리야의 아내와 간음하고 우리야를 죽인 바 있습니다. 그 정도로 성욕은 강력한 것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추가적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도 선과 악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심으신 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또한 창세기 3장22절을 보면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보라, 남자가 우리 가운데 하나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었도다. 이제 그가 자기 손을 들어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도 따서 먹고 영원히 살까 염려하노라, 하시고"라고 나와 있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되는 것이 하나님 중의 하나같이 된 것이라고 하십니다. 즉,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아시면서 동시에 악을 누르고 선을 행하시는 능력을 가진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달리 죄를 짓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온전한 하나님이시자 온전한 사람이신 예수님께서도 죄가 없는 분이라고 나와 있습니다(히브리서 4장15절).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을 다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화도 내시고 눈물도 흘리시죠. 다만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든지 후회는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도 어쩌지 못하는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인간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나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죄를 짓게 됩니다. 따라서 아무리 자유의지를 선한 쪽으로 컨트롤 한다고 해도 죄를 짓는 것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보혈대속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방법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없애주셨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예수님의 보혈대속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도 인간의 자유의지가 작용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판단과 믿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에 부여한 양심과 이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선한 양심과 올바른 판단력(이성)은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물론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오기 때문에(로마서 10장17절), 선한 양심과 올바른 판단력을 가졌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것도 선한 양심과 올바른 판단력이 없다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어도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선한 양심이 없고 판단력이 부족한 이집트 파라오를 강퍅하게 하셔서 더욱 더 믿지 못하게 하셨고(출애굽기 7장3절,13절), 창세로부터 만들어진 것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게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동성애를 하게 만드셨습니다(로마서 1장20절~28절). 즉, 하나님께서는 믿음에 이르기 힘든 사람들은 더욱 더 확실하게 지옥의 정죄에 이르도록 하시는 것 같습니다.
조금 장황하게 되었습니다만, 이제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약 인간이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아담과 이브는 죽지 않았을 것이고 그 자손들도 죽지 않았을 겁니다. 인간에게 죽음이 없다면 인간들은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살게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사는 게 과연 좋은 것일까요? 선악을 알지 못하여 죽지 못하는 인간들은 에덴동산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에 갇혀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이런 존재로 만들지는 않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구원받고 죽어서, 또는 휴거되어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되기를 원하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게 하신 이유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다산하고 번성하여 그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진리를 깨달아서 예수님을 믿게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최종 완성품인 사람들, 즉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일엔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인 자유의지가 작용하고 있으며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께서도 어찌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아담에 의해서 인간에게 죄가 들어왔고,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로 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직 구원받지 못한 인간들은 모두 생산 과정에 있는 미완성 인간들이며 품질이 확실한 최종완성품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린아이의 구원에 대해서는 아래 글을 참조하세요.
https://smallstars7.tistory.com/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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