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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아이들에게 성정체성을 강요하는 미국(성경은 동성애를 반대한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말에 50개 모든 주에서 동성결혼이 통과되었고 미성년자의 성전환수술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도 통과되었습니다. 그에 대한 LA 한인 시민들의 의견을 담은 영상이 있어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한인방송 라디오코리아에서 진행한 인터뷰 영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RCN-Mu8sXM

 

처음에 나오는 중년 여성의 말도 어이가 없습니다만, 학원 원장이 하는 말이 정말 충격적입니다. 미국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너는 여자와 남자 중에 어떤 걸 하고 싶어? 중성까지 다 할 수 있어. 선택을 해야 하는 거야.”라고 강요한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들은 어린 학생들은 “어? 난 여잔데 선택을 하는 게 뭐지?”라고 생각하면서 혼란을 겪는다고 합니다.

 

미국이 이제는 갈 때까지 간 모양입니다. 멀쩡한 아이들도 저런 말을 듣게 되면 당연히 정체성에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이성적인 판단력이 성숙하지 못한 미성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저런 식으로 넌지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기도록 하는 말을 주입하는 사람들이 과연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지 의문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일부 크리스천들 중에도 동성애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성경이 동성애를 금지하지 않는다고까지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든 이후 제일 처음으로 명령하신 말씀이 다산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이셨습니다(창세기 1장28절). 남자와 남자가 결혼을 하면 다산할 수 있나요? 여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면 다산할 수 있나요? 이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정면으로 어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동성애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은 지 몇 년 안 되는 초보자입니다만, 왜 성경이 동성애를 반대는 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양심과 이성과 자유의지를 가지고 제 나름대로 판단해서 최대한 논리적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실 분들 중에는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다 하여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다고 말을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면 논리적으로 반박을 하고 설득을 하면 될 것이지 토론을 거부하고 남의 입부터 막으려는 짓은 결국 자신들의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 밖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인간의 사랑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금지하는 동성애의 핵심 문제는 동성간의 육체적인 섹스입니다. 저는 남자와 남자간의 사랑도 있을 수 있고, 여자와 여자와의 사랑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수한 의미의 인간적인 사랑이지 동성간 섹스가 포함된 것이 아닙니다. 요나단도 다윗을 사랑했습니다(사무엘기상 20장17절).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 진실한 우정을 나누는 의미로서 사랑을 했을 뿐 서로 육체적인 성욕을 가지고 사랑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동성애를 옹호하는 사람들 중에는 다윗과 요나단이 동성애를 한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합니다만, 성경에는 다윗과 요나단이 섹스했다는 구절 또는 성관계를 암시하는 구절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하트(출처: Piaxabay)

 

* 아래에 나오는 성경 구절들은 모두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성경에서 인용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18장22절에서 “너는 여자와 함께 눕는 것 같이 남자와 함께 눕지 말라. 그것은 가증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시며, 20장13절에도 “또 남자가 여자와 함께 눕듯이 남자와 함께 누우면 둘 다 가증한 짓을 행하였으므로 반드시 그들을 죽일지니 그들의 피가 그들에게 돌아가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1장26절~27절에도 “이런 까닭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수치스런 애정에 내주셨으니 이는 심지어 그들의 여자들도 본래대로 쓸 것을 본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라. 이와 같이 남자들도 본래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를 향해 욕정에 불타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보기 흉한 짓을 행함으로 자기 잘못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자기 속에 받았느니라.” 여기서 여자들이 본래대로 쓸 것을 본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바꾸었다는 뜻은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성전환수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끼리의 동성애를 뜻한다고 봐야 합니다. 27절의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보기 흉한 짓을 한다는 뜻은 당연히 남자와 남자의 육체적인 성행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28~32절을 보면, “그들이 자기 지식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 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버림받은 생각에 내주사 합당하지 못한 그 일들을 행하게 하셨으니 그들은 모든 불의와 음행과 사악함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하며 시기와 살인과 논쟁과 속임수와 적개심으로 가득하고 수군수군하는 자들이요, 뒤에서 헐뜯는 자들이며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이요, 업신여기며 교만하고 자랑하는 자들이며 악한 일들을 꾸미는 자들이요,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지각이 없고 언약을 어기는 자들이며 본성의 애정이 없고 화해하기 어려우며 긍휼이 없는 자들이라. 그들이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죽어야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알면서도 같은 일들을 행할 뿐만 아니라 그런 일들 행하는 자들을 기뻐하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우상숭배로 인하여 동성애를 하게 된 자들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온갖 나쁜 짓들을 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들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씀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9절에도 “불의한 자들이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속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자나 간음하는 자나 여성화된 남자나 남자와 더불어 자신을 욕되게 하는 남자나”라고 나와 있습니다.

 

위의 로마서 1장에 대해서 이는 동성애가 주제가 아니라 창조자이신 하나님 대신에 창조물을 경배하는 것에 대한 경고가 주된 목적이며 당시에는 그런 짓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동성애를 했기 때문에 동성애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로마서 1장25절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자 보다 창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겼느니라.”고 나옵니다. 저 역시 로마서 1장은 전체적으로 보면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연 동성애가 부차적인 문제일까요? 로마서 1장24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그들 마음이 정욕을 통해 부정함에 내 주사 그들이 자기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창조주 대신 창조물을 경배하는 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서로 동성애를 하게끔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창조물을 경배하여 정죄에 놓이게 된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동성애를 하게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또한 유다서 1장7절을 보면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불로 보복을 당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게 동성애를 하면 지옥에 갈 확률이 크다는 뜻이 아니면 뭘까요?

 

고린도전서 6장 9절의 ‘여성화된’이라는 그리스어 말라코이(μαλακός,[malakŏs])가 부드럽다는 뜻이기 때문에 동성애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부드러운 남자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한다? 이게 말이 됩니까? 문장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것입니다. 동성애를 옹호하기 위해서 이런 억지 주장까지 해야 하는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말라코이는 여성적인 부드러움을 가진 수동적인 남색, 즉 남창을 의미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뒤에 나오는 그리스어 아르세노코이타이(ἀρσενοκοίτης,[arsĕnŏkŏi- tēs])에 대해서도 동성애가 아니라 ‘학대하는 자’ 또는 어떤 다른 의미의 단어라고 주장을 하는데, 이 단어는 ‘남색하는 자’, ‘동성애하는 자’라는 의미로 훨씬 더 광범위하게 많이 쓰는 단어입니다. 굳이 학대한다는 의미의 단어를 사용해야 했다면 콜라파이조(κολαφίζω [kŏlaphizō], 학대하다, 마26:67, 막14:65, 고전4:11. 벧전2:20)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웠을 겁니다. 데이비드 라이트 교수(신약학)에 따르면 아르세노코이타이라는 단어는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했던 당시의 어떤 그리스 문학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단어는 바울이 구약성경의 레위기 18장22절과 20장13절을 읽고 동성애라는 것을 인지했던 상태에서 기록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막(출처: Pixabay)

 

소돔의 심판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명백히 군중들은 롯의 집을 방문한 천사 둘과 동침하려고 했습니다. 성경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분들은 다 아시겠습니다만, 천사들은 주로 젊고 잘생긴 남성으로 나타납니다. 군중들이 천사들을 단순히 만나려고 했다는 둥, 구타하려고 했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창세기 19장8절을 보면 롯은 천사들 대신에 군중들에게 자기의 두 딸을 내어 주면서 천사들을 지키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5절에서 군중들이 “우리가 그들을 알리라, 하니”라는 구절에서 알다(야다, 히브리어 יָדַע[yâdaʽ])라는 의미는 동침(섹스)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누가복음 1장34절을 보면 천사가 마리아에게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물어보는 장면이 나옵니니다. 이 외에도 창세기4장1절, 민수기31장18절, 민수기31장35절, 사사기11장 39절, 사사기21장12절 등에 나오는 안다는 뜻은 모두 동침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롯이 두 딸을 군중들에게 내어 준 이유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만, 롯이 천사들을 단순한 나그네라고 생각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낸 사자들이라고 인지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 해석이 정통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세기 19장2절을 보면 롯이 두 천사들에게 “내 주들이여 원하건대 돌이켜 당신들의 종의 집으로 들어와서 ...”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천사들을 향해서 ‘my lords(내 주들이여)’라고 부르며 자기 자신을 ‘your servant(주의 종)'이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두 딸을 내 준 것이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외아들을 직접 죽이려고 했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있는데, 결혼한 두 딸을 내 준 게 아닙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두 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위들이라는 말이 있으니 롯에게는 최소한 딸이 4명 이상 있는 것입니다.

 

소돔이 동성애와 관련이 있다는 말은 신약에는 없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유다서 1장7절을 봅시다. “이것은 소돔과 고모라와 그것들의 주변 도시들이 같은 방식으로 자기를 음행에 내주고 낯선 육체를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로 보복을 당하여 본보기가 된 것과 같으니라.” 이 구절에서 낯선 육체는 천사를 말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소돔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이유가 나그네를 잘 대접하지 않고 겁박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고작 그런 이유로 하나님께서 소돔을 심판해야 했다면 구약에 나오는 모든 도시는 전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파괴되었을 겁니다. 창세기 19장4절을 보면 “그러나 그들이 눕기 전에 그 도시의 남자들 곧 소돔의 남자들 즉 늙은이든 젊은이든 사방에서 나온 모든 사람들이 그 집을 에워쌌더라.”라고 나옵니다. 롯의 집으로 몰려든 군중들은 전부 남자들이었습니다. 남자들이 동성애를 하려고 몰려든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율법을 오늘날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하면서 구약성경에는 일부다처를 허용하는 구절이 여럿 나오는데 그것도 지켜야 하냐? 라고 하면서 따지고 드는 분들이 있는데. 물론 신약 이후에는 성전의 휘장이 갈라지면서 하나님의 경륜이 바뀌었기 때문에, 신약에 나오는 사도들의 말씀 이외에는 구약의 율법을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위의 로마서 1장과 고린도전서 6장, 유다서 1장 등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신약에도 동성애는 안 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신약의 말씀들도 구약의 말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심어준 양심은 구약과 신약이 서로 다를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경륜이 바뀌었기 때문에 구약의 일부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일부 인권을 중시하는 크리스천들도 하나님께서 성소수자들, 즉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렌스젠더에게도 고귀한 생명을 주셨으니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 식의 논리라면 무슬림도 받아들여야 하고 적그리스도를 돕는 일루미나티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LGBT(출처: Pixabay)

 

하나님께서는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렌스젠더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이들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켜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대속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다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주십니다. 사람이 지은 죄들 중에 하나님께서 용서치 못할 죄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용서는 자신의 죄를 뉘우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진화론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도 믿을 수 있을까요? 진화론을 믿는 사람이 자기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고 뉘우칠 필요도 없으며 여전히 진화론을 찬성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게 가능할까요? 저는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진화론은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부정하는 것이고,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다윗도 자신의 충신 우리아의 아내와 간음하고 우리아를 사지로 보내 죽게 만든 큰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용서받은 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일컬어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사도행전 13장22절). 살인자도 용서해주시는데 동성애자를 왜 용서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렇다고 하나님께 용서받고 구원받은 사람이 계속해서 동성애를 하고 계속해서 살인할 수 있을까요? 에베소서 2장10절을 보면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오직 믿음으로 받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만, 일단 구원받은 성도들에게서는 선한 행위가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동성애가 죄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런 짓을 또다시 했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하나님께 다시 용서를 빌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동성애 또는 성소수자는 하나님의 저주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마서 1장에도 나와 있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를 거부하고 우상숭배하는 자들에게 동성애를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는 아마도 하나님을 거부하고 우상숭배하는 자들이 더 이상 그들의 유전자를 후손에게 남기지 못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남자로서 남자가 남자를 보고 성욕을 느낀다는 자체에 심한 거부감을 느낍니다. 성경에 그게 나쁘다고 나와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입니다. 마치 발밑을 지나가는 독사를 발견하면 화들짝 놀라서 피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그렇게 만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만약 성소수자의 존재가 하나님의 저주 또는 우상숭배의 결과가 아니라면, 성소수자들에 대해서 성정체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치료를 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죠. 이들을 적극적으로 치료해서 정상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성소수자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성소수자들이 존재한다고 해서 아무런 고민도 없이 그들을 하나의 정상인 집단으로 인정해 버리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오히려 방치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충분히 이들을 치료할 역량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안 한 체 그냥 인정해 버리는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일이며 결국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말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