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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고 싶은 글

성경적 시각으로 보는 과거사 - 1부

오늘은 반일교육에 세뇌된 사람들에게 역사를 보는 시각에 관한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이 문제는 과거사를 다루기 때문에 조금은 민감한 주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사의 문제는 항상 정치적인 진영논리의 쟁점이 되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과거 사건에 대한 잘잘못을 따져보고자 하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따라서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제가 바라보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고 개별 사안을 바라 봤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하는 것도 여전히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학교와 방송, 네이버 뉴스 등에서 하루종일 반일 프레임만을 주입하기 때문에 이와는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씀드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의 말미에 말씀드릴 예정입니다만, 결국 역사를 보는 시각은 성경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천 성도가 아닌 사람들에게 이것을 먼저 말씀드리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조금은 길지만 일단은 성경적인 시각을 제외한 반일 프레임 이외의 시각이 어떤 것인지 아래의 내용을 먼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미일 국기(출처: KBS뉴스)

 

한국에서의 반일 여론은 순수한 면 보다는 세뇌된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반일 여론을 주도하는 세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주로 중국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친북세력도 있겠습니다만, 방송이나 언론, 영화 등을 움직이는 자금력 측면에서 보자면 중국세력이 더 막강합니다. 이들의 목적은 반일을 통해서 한미일 삼각 동맹을 깨뜨리고자 하는 것이겠죠. 결국 반일은 반미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여론전이 한국에서는 아주 잘 통합니다. 저는 그 이유를 한국인들 특유의 도덕주의에서 기인한다고 보는데, 한국인들이 도덕에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인들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만 봐도 알 수 있죠. 그 사람의 능력이나 비전 등을 보기 보다는 뭔가 부도덕한 점이 있으면 그 것에 몰입하여 모든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 버립니다.

 

저는 한국인들이 이렇게 된 이유는 조선시대의 DNA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백 년 이상을 유교 도덕주의 치하에서 살아온 유전자가 아직까지도 한국인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도덕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스스로는 도덕적이지 못할지라도 도덕적인 것을 중요한 가치의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국제문제를 볼 때도 대한민국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판단보다는 누가 더 명분이 있는가? 누가 더 도덕적으로 나쁜 놈들인가? 라는 문제에 집착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죠.

 

(저는 도덕적 판단이 나쁘다는 뜻으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도덕은 아주 중요한 가치 판단의 기준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안에 대한 도덕적인 기준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특히 역사의 쟁점이 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죠. 그러나 오늘은 도덕에 대해서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도덕에 대한 코멘트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사실 도덕에 대한 내용만으로도 여러 페이지 분량의 글이 필요합니다.)

 

과거 일본이 한국(대한제국)을 병합하고 통치하던 시절을 가지고 요즘은 일제강점기로 불러야 한다고 합니다만, 저는 일제시대라는 말이 더 정확한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일제시대라고 적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과거사에 대한 접근 방법은 현재의 규범으로 내 입장에서 과거사를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못살게 굴었냐는 것이겠죠. 오늘날의 도덕적인 판단이 작용하여 당시의 일본이 나쁜 놈들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 국제정세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위와 같은 시각에 동의할 수 없을 겁니다. 당시의 일본은 패권 경쟁의 구도 속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식민지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일본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에 싼 값에 자원을 사오고 잉여 생산물을 팔아먹을 식민지를 개척하는 일은 그들에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또한 조선의 입장에서도 영국, 독일, 러시아, 중국, 미국, 일본 등의 열강들을 막아낼 능력이 없었으며 그 틈 속에서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조선은 국력도 약했지만 고종과 민씨 일족이 워낙 부패했고 세계를 보는 시각도 협소했기 때문에 결국은 열강들 중 누군가에게는 먹힐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제국주의 삽화(출처: 위키백과)

 

오늘날의 규범으로는 다른 나라를 쳐들어가서 식민지로 만드는 것이 부도덕한 일이겠습니다만, 당시에는 식민지를 건설하는 일이 선()이었습니다.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네덜란드, 미국 등은 이미 여러 나라에 식민지를 건설했으며 당시의 식민지는 일종의 국력을 나타내는 지표였습니다. 일본도 여러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국력을 키웠을 뿐이죠. 당시 식민지를 건설하는 일은 마치 오늘날 다른 나라에 자동차나 스마트폰을 많이 판매하는 것과 다름없었던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당시의 한일합방은 고종을 비롯한 왕실과 집권 세력들이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합방 후의 호의호식을 보장받고 나라를 넘겨주었기 때문에 일방적인 침략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식민지지배에 대해서 사과했던 나라는 일본을 제외하고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독일의 사과는 식민지지배에 대해서가 아니라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것이었죠. 저는 일본인들의 사과도 진정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일본인들 대다수는 미개했던 나라에 문명을 선사했기 때문에 오히려 지배국이었던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형식상으로라도 사과를 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겠죠. 사실 외교적으로 볼 때 그 나라의 수장인 총리가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 중 80% 이상의 나라들이 식민지였습니다. 식민지가 부도덕한 것이라는 인식은 1차 대전 이후 윌슨에 의해서 민족자결주의가 발표되고 여러 독립 국가들이 생겨난 이후의 일입니다.

 

조선시대 곤장(출처: 위키백과)

 

그 당시를 살았던 우리 조상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선 당시의 환경을 떠올려 보세요.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넓은 길이 없었고, 제대로 된 배수로가 없었고, 상하수도 시설도 없었고, 거리에는 똥오줌, 전염병, 위생상태가 엉망인 우물, 민둥산, 초가집 등이 떠오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어떠했을까요? 극소수의 양반층과 대다수의 가난한 백성들과 노예들이 떠오릅니다. 그들은 양반들의 소모품이었죠. 여성들은 성을 착취당했고 남성들은 노동에 시달리다가 죽어야 했습니다. 심심하면 끌려가서 볼깃살이 터지도록 매를 맞았고 인두로 지지고 주리를 트는 고문을 당하기도 했죠.

 

일본은 한국을 병합한 후 제일 먼저 거리의 똥을 치우는 데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였습니다. 그리고 대대적으로 거리를 정비하기 시작했고 하수처리시설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매독 등의 전염병을 치료하고 예방했습니다. 각종 도시 인프라 시스템과 학교, 병원, 백화점 등의 건물들을 건설했으며 산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나무심기는 박정희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입니다만, 일본이 통치하던 시절에도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래서 해방 당시에는 전국적으로 산에 나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승만 정부 이후 전후방에 군부대들이 들어서면서 이른바 후생산업을 빙자해서 너도나도 벌목을 했습니다. 나무를 베어내 시장에 팔아서 자금을 마련했던 것이지요. 이로 인해서 대량의 나무들이 사라졌으며 산이 황폐화 되었습니다. 게다가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후 그나마 남아 있던 나무들까지 땔감으로 베어내기 시작하면서 다시 민둥산이 되어버린 것이죠.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Print.aspx?news_id=NB11216960

 

일제강점기 서울시 최대 사업은 'X 치우기'…경상지출의 81%

 

news.jtbc.co.kr

 

,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똥오줌 범벅이고 전염병 등으로 위생이 엉망인 환경에 살면서 이씨 왕조와 양반들 밑에서 고통 받던 그 당시의 백성들 입장이 되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일본의 통치가 이씨 왕조의 통치 보다 가혹했을까요? 일본은 자신들의 총독을 살해한 안중근에게도 변호사를 붙여주고 정식 재판을 받게 해서 법대로 처리했습니다. 인두로 지지고 곤장을 치고 주리를 틀고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고 하면서 망나니의 칼로 목을 베던 이씨 왕조와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시의 양반들은 일반 백성들이 한글을 종이에 쓰면 큰 죄로 여겼으며 매로 다스렸습니다. 백성들이 글을 배우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양반상민천민 등으로 나눠져 있던 신분제도를 폐지하고 전국적으로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학교에 가게 했으며 학교에서 조선어 시험을 보게 할 정도로 한글을 보급했고 109일을 한글날로 지정했으며 한글신문을 발간하도록 허락했습니다.

 

일제시절에는 누구나 공부만 잘 하고 능력만 있으면 학교 선생도 될 수 있었고 의사가 될 수도 있었고, 변호사, 검사, 심지어 판사도 될 수 있었습니다. 소설가 박완서의 자전적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어 보면 당시 학부모들의 가장 큰 꿈은 자기 자식을 공부시켜서 조선총독부 공무원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오늘날로 치면 삼성전자에 입사하는 것과 비슷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조선시대에 비해서 모든 경제지표가 수직 상승하였던 시기가 일본의 통치시절이었습니다. 해방 직후의 각종 경제지표가 낮다는 이유로 일본의 통치 시대를 평가절하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그건 일본이 2차대전에 모든 돈을 쏟아 부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한국이라는 나라는 없었고 병합된 상태였기 때문에 일본 본토와 똑같이 숫가락 젓가락까지도 총알로 만들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음을 감안해야 합니다. 2차대전 패망 직후의 경제지표를 가지고 일제시대 전체를 폄하하는 짓거리에 속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왜 한국인들은 이런 선동에 잘 속아 넘어가는 것일까요? 결국은 반일에 세뇌된 탓이라고 봐야 합니다. 객관적으로 비교검토하는 시각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죠.

 

이 외에도 쓸 얘기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이정도만 해도 제가 말씀드리려는 취지를 이해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성경적으로 보는 과거사의 시각을 말씀드릴 차례입니다만. 글이 너무나 길어졌기 때문에 성경적 시각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 글에 나눠서 올려드리겠습니다.

 

 

https://smallstars7.tistory.com/97

 

성경적 시각으로 보는 과거사 - 2부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즉 이스라엘 민족을 축복하면 복을 주신다고 하셨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면 저주를 내린다고 나와 있습니다(창세기12장1절~3절). 또한 주의 날, 즉 예수님께서

smallstars7.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