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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음모론

19세기 건축물과 리셋 음모론자들의 무리한 논리

파리 개선문(출처: Pixabay)

리셋 음모론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서 일부의 사람들은 로마시대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1800년대에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들은 인간이 만든 게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그 당시의 사람들 수준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음모론 지지자들은 19세기 중반의 세계 여러 도시 사진들을 보면 사람들이 안 보이고 건물들만 덩그러니 있어서 마치 건물들을 모두 지어 놓은 후에 사람들을 그 곳에 이주시킨 게 아니냐는 의혹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존에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전부 이동시키거나 혹은 모두 죽인 후, 건물들을 새로 만들고 책이라든지 모든 역사 기록물을 다시 만들어서 새로운 사람들로 채운다는 식이죠.

 

이런 일을 주도한 사람들은 거인들이었을 것이다, 외계인이었을 것이다, 타타리아 제국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대조선 제국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아틀란티스 제국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알려지지 않은 제2 제3의 인간종족이었을 것이다. 등등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채운 사람들은 어디에서 데려왔다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 사람들의 기억은 어떻게 조작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대답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황당하게도 그냥 막연하게 리셋 이론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리셋 음모론 영상을 퍼뜨리는 사람들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퍼뜨리는 영상 속에는 평평지구와 같은 사실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진실을 알리겠다는 선의로 영상을 퍼뜨리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들은 진실 속에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서 사람들을 현혹하는 사악한 사람들입니다. 특히 아직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부정하도록 만들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오늘은 해당 영상에서 주장하는 세 가지 포인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9세기 중반 세계 각지의 도시 사진들 중에 사람들이 안 보이는 사진들이 있다.

2. 그 당시 사람들의 기술로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을 어떻게 지을 수 있었을까?

3. 19세기와 20세기 초의 거대한 박람회 건물들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만들 수 있었으며 왜 파괴했는가? 예술적 가치가 높은 건물들을 파괴한다는 게 말이 되나?

 

상트페테르부르크 네바 강의 니콜라예프스키 다리(1860년 사진)

1. 19세기 중반 세계 각지의 도시 사진들 중에 사람들이 안 보이는 사진들이 있다.

 

그 이유는 19세기 카메라의 특징 때문입니다. 카메라의 기술적인 이론은 19세기 이전부터 있었지만, 실제로 카메라를 만들고 촬영하여 인화된 사진은 1826년에야 처음 나왔습니다. 그 당시의 카메라는 노출 시간이 무려 8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카메라가 대중화된 것은 다게레오타입 카메라가 판매되기 시작한 1839년부터라고 하는데, 이 때도 여전히 몇 분에서 최대 30분까지의 긴 노출시간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다게레오타입에서 조금 개선된 칼로타입 카메라는 1841년에 발명되었는데 이 역시도 몇 분 정도는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움직이는 피사체는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음모론자도 있습니다. 1850년대가 되면 노출 시간이 몇 초대로 줄어들었는데 어째서 그 이후에 촬영된 도시 사진들에도 사람이 없을 수가 있냐는 것이죠.

 

저는 이런 의문이 조금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카메라 가격이 너무 비쌌기 때문입니다. 새 카메라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기존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했을 겁니다. 만약 1845년에 칼로타입 카메라를 구매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 사람이 1850년에도 기존에 가지고 있던 칼로타입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1850년~1860년에 사람이 없는 사진들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그게 리셋이론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에와라논이라는 음모론자의 영상에는 1840년부터 1860년의 각 도시의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사람이 한 명도 안 보이는 게 이상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그 이후에는 갑자기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주장합니다. 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났다는 겁니다. 근데 그게 몇 년도 사진인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과연 1840년대부터 1860년대의 도시들에는 사람이 없었을까요?

 

https://russiatrek.org/blog/art/st-petersburg-in-the-1850s-in-daziaros-lithographs/

 

St. Petersburg in the 1850s · Russia Travel Blog

Joseph Daziaro (1806-1865) came to the Russian Empire from Italy in the early 1820s. He opened a publishing business and specialized in the sale of lithograph prints. His firm can be called the first private publishing house of printed artistic graphics in

russiatrek.org

위의 웹사이트에는 1850년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러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활동했던 조셉 다지아로(Joseph Daziaro, 1831-1892)라는 사진작가이자 석판화가의 작품들입니다. 비록 사진이 아니라 그림입니다만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당시만 해도 아직은 사진보다는 그림이 더 많았습니다.

 

https://www.alamy.com/nevsky-prospect-in-st-petersburg-in-the-19th-century-image415575260.html?imageid=3BF055DD-FE92-485A-BF9B-C34574B5715F

 

Nevsky Prospect in St. Petersburg in the 19th century Stock Photo - Ala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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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alamy.com

위의 사진은 1850년에 촬영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내 사진입니다.

 

러시아의 도시 말고도 사람들이 거리에 있는 세계 여러 도시들의 사진들도 많이 있습니다. 구글에서 1850s photograph 또는 1860s photograph 라고 검색한 후에 도시에 사람이 있는 사진을 클릭하면 유사한 연관 사진들을 많이 검색할 수 있습니다.

2. 그 당시 사람들의 기술로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을 어떻게 지을 수 있었을까?

 

리셋 음모론자들은 19세기 건물들 중에는 중세 르네상스와 고딕 양식 등 거대하고 화려한 건물이 많다고 하면서 이런 건축기술은 당시의 사람들 수준을 뛰어 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런 건물들은 서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양에도 있기 때문에 전 세계를 리셋하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과연 이게 맞는 말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빅 벤(출처: Pixabay)

빅벤은 1858년에 완공된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 무려 100미터에 가까운 높이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건축물의 공사 현장을 스캐치한 그림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빅벤은 물론이고 웨스트민스터 궁의 건축 과정을 그린 그림들도 남아 있습니다.

 

https://www.alamy.com/westminster-bridge-london-1855-image501368882.html

 

Westminster Bridge, London 1855 Stock Photo - Ala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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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alamy.com

 

위의 사진은 1925년에 지어진 서울역의 초기 사진입니다. 건물의 크기와 사람들의 크기를 비교해 보면 얼마나 웅장한 건물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도 공사 과정의 사진이 남아 있습니다. 물론 20세기 초기 건물이라서 건축 기술이 많이 발전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음모론자들은 지금도 저런 건물을 짓는 것은 어렵다고 주장하지 않습니까?

 

출처: 서울특별시 홈페이지
크리스탈 팰리스와 분수대 전경(출처: 위키피디아)

위의 사진은 1851년 런던에서 열린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건축된 크리스탈 팰리스(Crystal Palace)입니다. 외부가 온통 유리로 된 거대한 건축물이죠. 음모론자 에와라논은 당시에는 다량의 유리를 공급할 수 있는 유리공장도 없었는데 이렇게 저렇게 거대한 유리 건축물을 건설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https://youtu.be/IdvIuVqAnlY

 

그러나 위의 영상을 보세요. 11년 전에 올라온 유투브 영상인데, 1851년 크리스탈 팰리스를 만들 때 사용된 유리를 공급했던 회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당시에도 유리를 대량으로 공급했던 유리 제조사가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크리스탈 팰리스를 단기간에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숙련된 건설 노동자가 무려 5천명이나 동원되었기 때문이며, 동시에 2천명이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외벽이 거의 대부분 조립식 모듈 형식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만들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의 설계도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1893년 시카고 박람회 전경(출처: 위키피디아)

3. 19세기와 20세기 초의 거대한 박람회 건물들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만들 수 있었으며 왜 파괴했는가? 예술적 가치가 높은 건물들을 파괴한다는 게 말이 되나?

 

박람회 건물들을 무조건 파괴한 게 아닙니다. 일부 가치 있는 건축물은 보존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파리에 있는 에펠탑을 들 수 있습니다. 에펠탑은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설되었습니다. 에펠탑은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건물로 남아 있습니다. 파리에 있는 인류학 박물관 건물도 1937년 개최되었던 '국제 예술 및 기술 박람회'를 위해 건설되었던 건물입니다. 지금도 그대로 남아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위에서 말씀했던 런던의 크리스털 팰리스도 1851년 세계 박람회 이후에도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1930년 화재로 대부분이 파괴되어 철거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박람회 건물들은 위의 경우처럼 철골이나 석조 건물로 지은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가건물이었습니다. 짚단과 스투코를 이용하거나 골판지, 캔버스, 합판 또는 나무와 석고로 만든 가건물들이죠. 이런 건물들은 지을 때부터 이미 파괴하기로 계획이 되어 있었던 겁니다.

 

 

박람회 건물을 철거하는 현장을 담아낸 위의 사진에서 보다시피 가건물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건물이 아니라 석조 건물이라고 해도 박람회 건물들을 파괴하지 않고 보존하려면 지자체에서 유지하고 보수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갑니다. 관광객이 많이 올 정도의 가치가 있다면 그런 비용을 감수하겠습니다만, 대부분의 건물들은 그런 정도의 가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박물관이나 학교 또는 공무원을 위한 청사 건물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석재로 건축한 건물이라고 할지라도 외형에 치우친 건물이기 때문에 실제로 활용할 때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임시로 건설했기 때문에 내진 설계도 안 되어 있고, 단열이 안 돼서 단열처리를 따로 해야 합니다. 게다가 배관시설이라든지 난방시설이라든지 전기시설이라든지 화장실 시스템 등을 새로 실치해야 하는데 건물 내 외부를 여기 저기 개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로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일례로, 워싱턴 대학교의 건축환경대학 건물은 1909년 시애틀에서 개최된 알래스카-유콘-태평양 박람회를 위해 건축된 건물이었습니다. 이 건물은 천장을 완전히 새로 설치하였으며 각종 기계 시스템을 넣기 위해서 건물 내부를 거의 다 뜯어 고쳤다고 합니다. 배관도 새로 해야 했고 전기설비도 몇 차례나 공사를 다시 해야 했다고 합니다. 계단도 전부 재구성을 했고 단열 처리를 위해서 일부 창문을 제외한 모든 문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고 합니다. 수차례의 공사를 하면서 막대한 돈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시카고 과학산업박물관(출처: 위키피디아)

박람회의 아름다운 건축물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면서 박람회 당시의 건물과 똑같이 복원한 사례도 있습니다. 시카고에 있는 과학산업박물관(Museum of Science and Industry)은 원래 1893년 만국박람회의 건물들 중 미술궁전(Palace of Fine Arts)로 건설되었습니다. 박람회 당시의 화이트시티 건물들은 모두 목재와 석고로 만든 임시건물들이었습니다만, 미술궁전은 예외였습니다. 외관은 비록 석고였지만 하부구조는 석재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람회가 끝난 이후에도 박물관으로 사용되면서 살아남았던 겁니다.

 

그러나 박물관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건물이 텅 비게 되자 복원의 필요성이 재기되었고 그 이후 1920년대 중반부터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복원 작업이 진행되어 1930년대 초에 완전한 석조 건물로 복원되었으며 그 이후에도 여러 단계에 걸쳐서 추가 복원되어 1940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정착된 것입니다. 완전 복원까지 엄청난 돈이 들어가긴 했습니다만 과학산업박물관 같은 웅장하고 화려한 르네상스식 건축물도 20세기 초의 기술로도 얼마든지 복원하여 건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이 사례입니다.

 

에와라논은 1833년에 완공된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과 같은 거대하고 예술적 가치가 높은 석조 건축물 등에 대해서 놀라움을 가지며, 무려 9,500만 킬로그램이나 되는 돌을 어떻게 가져왔을까 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이동 수단도 변변치 않았고 전동공구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그토록 정밀한 조각품들을 빈틈 하나 없이 아치 구조에 삽입을 했을까? 라는 의문이겠죠.

 

솔직히 저도 보면서 개선문의 예술적 치밀함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또한 그 당시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 확신합니다. 개선문을 가까이서 촬영한 사진을 보면 거대한 석재 기둥이 통짜로 되어 있는 게 아닙니다. 수많은 벽돌을 쌓아 올린 겁니다.

 

그리고 조각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켈란젤로는 15세기에 피에타를 조각했습니다. 그런데 19세기에 왜 조각을 못 하겠습니까? 19세기에 유행했던 베일드 대리석 조각상 작품들을 보면 당시의 조각가들이 얼마나 뛰어난 조각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 역시 19세기의 일부 건축물들은 미스테리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운하 건설과 같은 것은 정말 신기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극히 일부이고 크고 웅장한 건물들은 대부분 당시의 사람들이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전 세계적인 진흙홍수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지역에서의 진흙홍수는 가능했을 겁니다. 따라서 건물이 묻혀 있는 것은 해당 지역의 문제였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홍수나 산사태로 인해서 진흙이 밀려 왔거나 했을 겁니다. 혹은 처음부터 일부러 그렇게 건설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반지하를 만들어 세 놓는 건물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1,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전 세계적으로 학교가 새로 만들어지고 교과서가 보급되면서 진화론과 우주, 둥근지구 등의 세뇌작업이 있었다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그러한 리셋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19세기에 전 세계의 모든 역사 자료를 전부 없애고 새로운 역사 자료들로 대체했다는 식의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딥스테이트가 힘이 있는 조직이라고 해도 전 세계의 모든 역사 자료들을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이는 성경을 부정하기 위한 음모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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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음모론의 치명적인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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