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EQ4U3fRbtB0
TV시리즈는 '빨간머리 앤'이 아니라 '빨강머리 앤'으로 방영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1984년 후지TV에서 방영되었고, 한국에서는 1985년 KBS2 TV에서 방영되었습니다. 그 이후 투니버스, EBS, 애니맥스 등에서 재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는 이 애니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싫어하는 편이었죠. 왜냐하면 소녀들이나 보는 유치한 내용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가 어른이 되고 나서 뒤늦게 우연한 기회에 이 명작 애니메이션을 봤습니다. 빨강머리 앤은 제가 지금까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그런 애니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기금까지 봤던 모든 애니메이션 중에 최고의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애니메이션을 본 후에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원작 소설을 모두 구매했고 영화와 드라마로 리메이크된 버전도 전부 보게 될 정도로 이 작품을 좋아하게 되었죠. 그러나 어떤 영화도 드라마도 일본에서 만든 TV애니메이션을 능가하지는 못했습니다. 심지어 원작소설도 이 TV 애니메이션 보다 감동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만큼 잘 만든 애니메이션입니다. 특히 초기 KBS 방영 한국어 더빙버전이 압도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원작 애니에서의 특유의 외모와 표정을 담아낸 캐릭터, 배경미술, 배경음악 등도 훌륭하지만, 한국어를 더빙한 성우들의 연기력이 너무나 천재적입니다. 주인공 앤 셜리 역할을 했던 성우 故정경애님을 비롯해서 모든 성우분들이 뛰어납니다. 그 이후 리메이크된 더빙 버전도 있습니다만, 리메이크 버전은 초기 KBS 버전에 비해서 너무 이질적이고 성우들의 건조한 목소리로 인해 애니메이션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어서 비추입니다.
* 유투브에 한국어 더빙 버전이 올라와 있긴 합니다만, 저작권의 문제 때문인지 자주 잘리는 바람에, 또다시 잘릴 경우를 대비해서 움짤 영상을 추가했습니다.
먼저 소개해 드릴 장면은 마릴라 커스버트가 앤을 고아원으로 돌려보내려고 스팬서 부인 댁에 왔지만,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서 앤을 다시 데려가기로 결심하는 장면입니다. 이 시리즈를 끝까지 보신 분은 아시겠습니다만, 마릴라가 앤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장면은 훗날 매슈 커스버트가 죽었을 때 슬픔에 젖어 울고 있는 앤에게 넌 처음부터 내 딸이었다고 고백하는 장면과 오버랩됩니다.
위 장면은 소설책에 아래와 같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의 전체 에피소드 중에서 위의 장면이 가장 명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릴라에게 앤이 어떤 존재인지 마릴라 스스로 깨닫게 되는 장면이죠. 소설책에서는 마릴라가 앤을 향해서 달려갈 때 마릴라의 심정을 적고 있습니다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앤이 아파서 잠든 사이에 창가에 앉아서 오늘 일어났던 일을 회상하는 성우의 나래이션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이게 훨씬 더 공감되고 감동적입니다.
위 장면은 소설책에 아래와 같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제가 선정한 3번째 명장면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프린스 애드웨드 섬을 방문한 캐나다의 수상을 보기 위해 읍내에 간 사이에 다이애나의 여동생 미니 메이가 후두염에 걸린 위급한 상황을 앤이 해결하는 장면입니다. 이것은 짧은 동영상 파일로 올려드리려고 했습니다만, 티스토리는 리뷰를 위한 1분 정도 되는 짧은 영상 조차도 저작권을 걸어서 업로드 못하게 해 놓았네요..ㅠ 故정경애 성우님의 목소리를 꼭 들려드리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故정경애 성우님의 목소리를 들으시려면 아래 네이버 블로그를 방문하시면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smallstars7/222647772935
위의 장면은 원작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 에피소드입니다. 앤은 절친 다이애나와 함께 선생님이 되고자 퀸스 학원에 함께 가고자 했으나, 다이애나는 내키지 않아서 갈등하는 장면입니다. 원작 소설에서는 다이애나의 부모님이 퀸스에 보내지 않겠다고 해서 함께 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문장 딱 한 줄만 나옵니다만, 에니메이션에서는 이 부분을 단독 에피소드로 만들어서 또 하나의 감동적인 장면을 만들어냈습니다.
위 장면의 앤과 마릴라의 대화는 아래와 같습니다.
앤: 다이애나가 퀸 학원에 가지 않는다니요. 그런 건 생각지도 않았어요. 게다가 다이애나도 다이애나죠. 아버지께 분명히 가고 싶다고 하면 될 텐데 금방 단념해 버리자나요.
마릴라: 앤. 네 결점은 말이다. 매사를 자기 멋대로 생각해 버리는 거야. 다이애나의 일은 베리씨가 잘 알아서 결정하신 거니까, 네가 간섭을 하고 끼어들 일이 아니에요.
앤: 그래도 좀 심하잖아요. 다이애나의 기분도 알아보지 않고.
마릴라: 너야 말로 다이애나의 기분을 알고 있니? 다이애나도 정말 너와 마찬가지로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충격을 받은 앤의 표정)
퀸 학원엔 그 때문에 가는 거자나. 틀림없이 네가 너무 졸라대니까, 다이애나는 그만 솔직한 자기 기분을 털어놓을 수 없게 된 게 아닐까? 그 아인 그 아이로서 자기에게 가장 어울리는 생활방식을 찾고 있을게다.
앤: (풀이 죽은 표정으로) 저는요, 다이애나와 함께 입시준비를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다이애나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믿었는데...
마릴라: 하지만, 아무도 자신의 생활방식을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거다 앤.
자기 생각에 매몰되면 남의 입장을 배려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위의 에피소드는 그런 교훈을 상기시키게 하는 명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번 장면도 원작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 에피소드죠. 매튜가 심장발작으로 쓰러졌다는 얘기를 조세핀 할머니에게 전해 듣고는 학업을 멈추고 그 즉시 초록색 지붕의 집으로 달려가는 장면입니다.
아래는 다이얼로그입니다.
조세핀: 어, 저런! 넌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로구나.
앤: 어, 어떻게 된 일인지, 조세핀 할머니,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아저씨의 심장이 어떤데요? 무슨 병이에요?
조세핀: 글쎄 말이다. 나도 확실한 건 모르고 있지만, 협심증이라고 하던가...
나이 들었으니까 그런 일도 있을 만하지.
앤: 협심증이요?
조세핀: 네게 알리지 않은 건 대단하지 않다는 뜻이지 않겠니?
그건 그렇고, 두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 너한테 쓸데없는 걱정을 시킬까봐 지금까지 숨겨오고 있었으니.
앤: [일어서며] [GASP]
조세핀: 앤 진정해라. 매튜의 일이라면 걱정할 것 없다. 앉아서 식사를 끝내도록 해요.
나래이션: 앤은 매튜의 심장이 전부터 나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자신이 싫어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매튜의 상태가 몹시 나쁜데도 자기에게 걱정을 시킬까봐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릴라: 아니, 앤!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아무 연락도 없이 갑자기 돌아오다니, 깜짝 놀랐지 뭐냐.
앤: 아주머니 너무하셨어요. 왜 저한테 말해 주지 않으셨어요.
마릴라: 무슨 얘기냐? 학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앤: 아저씨 일이에요. 아저씨 심장병으로 누워 계시는 거죠?
마릴라: 어, 그 일 말이구나. 누구한테서 들었니?
앤: 조세핀 할머니요.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나 걱정돼서 안절부절 못한다는 것은 드러나는 현상만 보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느낌은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안부를 알고 싶어서 한 시라도 빨리 가고 싶어 하는, 그런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행복이 아닐까요?
제가 선정한 빨강머리 앤 TV시리즈의 6번째 장면입니다. 매튜가 죽은 후 마릴라가 앤에게 마음속 얘기를 하는 장면이죠. 앤이 지붕에서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을 때, 마릴라가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있었던 생각이었습니다만, 이제서야 밖으로 꺼내서 얘기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이 장면은 소설에 그대로 나옵니다만, 뉘앙스는 차이가 있습니다. 빨강머리 앤은 TV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더해가면서 없던 에피소드를 새로 추가하고 있던 내용도 살이 많이 붙었습니다. 위의 장면도 원작 소설 보다 훨씬 드라마틱하게 각색되어 있습니다.
소설책에는 아래와 같이 나와 있습니다.
실제 애니메이션 다이얼로그는 아래와 같습니다.
앤: 흑흑, 아주머니, 실컷 울게 해 주세요. 우는 게 그 아픔 보다는 덜 괴로워요. 아주머니, 얼마 동안 제 방에 있어 주세요. 저 좀 안아주세요. 네, 이렇게요. 흑흑, 다이애나를 곁에 있게 할 수는 없었어요. 그 아인 정말 친절하고 인정이 많지만, 이번 일은 그 아이의 슬픔이 아니자나요. 제 마음 속에 들어와서 저를 위로해 줄 수는 없어요. 이건 우리 둘의, 아주머니와 저의 슬픔인 거예요. 흑흑 아주머니, 아저씨가 안 계시게 되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아요.
마릴라: 둘이서 힘을 합해 살아 나가야지. 네가 없었더라면, 만일 우리 집에 와 있지 않았더라면, 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을 거다.
앤: 아주머니...아주머니..
마릴라: 흑흑..앤...지금까지 너한테는 좀 심하게 대했던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저씨만큼 너를 귀여워하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앤: 흑흑...아주머니...
마릴라: 흑..지금 같아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말이지 이런 때가 아니라면 생각한 것을 입 밖에 내서 말하지 못한단다. 널 말이야, 내가 진통을 겪으면서 낳은 친 딸처럼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어. 초록색 지붕 집에서 살게 되면서부터 너만이 나의 기쁨이었고 또 위안이었단다...흑흑.
앤: 흑흑...아주머니...
평소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편이었던 마릴라도 이 순간 만큼은 속에 있는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습니다.
제가 선정한 마지막 명장면은 앤과 길버트가 화해하는 장면입니다. 이 부분도 동영상으로 꼭 올려드리고 싶었습니다만, 티스토리의 정책 때문에 업로드가 불가능해서 아쉽습니다. 앤의 목소리를 연기하는 故정경애 성우님은 숙녀가 된 앤도 정말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약간 수줍은듯한 호흡과 속도, 강약, 그리고 내면의 진정성까지 느껴지는 목소리 연기는 정말 천재적이라고 생각됩니다. 길버트를 연기한 故오세홍 성우님의 하모니도 정말 대단합니다. 두 분 성우의 목소리를 들려드리지 못해서 정말 안타깝네요. (위에 링크한 제 네이버 블로그를 방문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회에서의 앤의 마지막 대사는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피파의 노래'에서 인용한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천국에 계시고, 세상은 평안하도다"
참고로 원작 소설에서는 '하나님은 천국에 계시고 세상은 공평하도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원본은 '하나님은 천국에 계시고 세상 모든 것이 바로 되고 있도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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