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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과 크리스천 성도

웃는 사람들(출처: Pixabay)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첫째 명령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둘째 명령으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율법과 모든 대언서의 말씀들이 이 두 가지 명령에 매달려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22장37절~40절). 이 중에서도 오늘은 둘 째 명령에 대해서 조금 깊이 있게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된 성도들은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웃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면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해치는 행위일 것입니다. 이웃을 해치는 행위는 결국 심판의 날에 예수님으로부터 보상의 손실을 당하게 되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도 주의 날이 오면 예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는다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라.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고린도후서5장10절)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무시하느냐?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리라.(로마서14장10절)

 

물론 위의 심판은 구원과는 상관없습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따라서 위의 심판은 구원과 관계된 심판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주실 보상의 심판을 뜻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이미 놓인 기초 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건초나 짚을 세우면 각 사람의 일이 드러나리라. 그 날이 그것을 밝히 드러내리니 이는 그것이 불에 의해 드러나며 그 불이 각 사람의 일이 어떤 종류인지 시험할 것이기 때문이라. 어떤 사람이 그 기초 위에 세운 일이 남아 있으면 그는 보상을 받을 것이요, 어떤 사람의 일이 불타면 그는 보상의 손실을 당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에 의해 받는 것 같이 받으리라.(고린도전서3장11절~15절)

 

보라, 내가 속히 가리니 내가 줄 보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할 행위대로 주리라.(요한계시록22장12절)

 

오늘은 문득,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면서 상처를 주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고의적으로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람도 있겠습니다만, 딱히 상처를 주려는 생각이 없지만,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판결(출처: Pexels)

 

그래서 그러한 직업군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사람을 많이 만나면 상처를 많이 줄 가능성이 크겠죠? 지금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직업군은 판검사, 경찰, 의사 등의 직업군입니다. 판검사와 경찰은 사람을 정죄하는 일을 합니다. 물론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억울한 사람도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만원 박사님이 그런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지만원 박사님은 자기 나름대로 현대사를 해석했다는 이유로 온갖 명목으로 고소고발을 수없이 당해서 고령의 나이인데도 2년이나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미국을 비롯해서 자유주의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에서조차 소위 PC주의에 저항하면 각종 명목으로 고소고발을 당해서 감옥에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참으로 말세가 가까이 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양형의 문제뿐만이 아닐 겁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합니다만, 판검사, 경찰 등은 여전히 태도가 고압적인 경우가 많을 겁니다. 대놓고 고압적이지는 않다고 해도 은근히 위협하거나 무시하거나 하겠죠. 그게 아니라고 해도 상당히 사무적인 태도일 것이라 짐작됩니다. 왜냐하면 입장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죠. 정죄하는 입장인 판검사나 경찰은 피의자를 내려다보게 되고 아무래도 피의자 입장에서는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고소고발이 많은 나라라고 합니다. (참고로 요한계시록12장10절에는 크리스천 성도들을 고소하는 자가 사탄마귀라고 나와 있습니다.) 누구라도 피의자가 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이죠. 인터넷에 글을 한 번만 잘못 써도 고소고발을 당하게 됩니다. 이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판검사와 경찰에게서 듣는 말은 직장에서, 또는 길거리에서 듣는 말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도 어떤 면에서는 판검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치료를 받는 환자의 입장에서는 자기 몸이 아프기 때문에 의사가 불친절하게 말을 한다고 해도 그 상황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의사의 경우에는 판검사나 경찰보다도 더 책임감이 막중하리라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말로써 상처를 주는 것에 더해서 환자를 더 아프게 하거나 치료를 더디게 하거나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도 인간입니다. 오진을 할 수도 있고 그로 인해서 잘못된 처방을 할 수도 있죠. 심지어는 수술을 하다가 환자를 사망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사 본인이 최선을 다 했는데도 역부족이었다면 예수님 앞에서 변명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인간이 매 순간 최선을 다 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치과의사(출처: Pixabay)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크리스천 성도들은 가급적 사람을 많이 상대하지 않는 직업을 갖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득이 사람을 많이 상대해야 하는 직업이라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목사님과 같은 경우에도 많은 사람을 상대합니다만, 이 경우는 주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강해나 설교 등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판검사나 의사 등과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게 되면 하나님의 마음에도 상처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그리스도 예수님의 몸 된 지체인 크리스천 성도들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크리스천 성도, 즉 형제의 마음에 상처를 주게 되면 크든 작든 반드시 천국에서 보상의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둘 째 명령에 따른 천국에서의 보상의 심판에 대해 몇 가지의 직업군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둘 째 명령 보다는 첫 째 명령, 즉 나의 마음과 혼과 생각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훨씬 더 보상이 클 것임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참고로 불신자들도 부활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흰 왕좌 심판과 둘째 사망).

 

또 내가 크고 흰 왕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았는데 땅과 하늘이 그분의 얼굴을 피해 물러가서 그것들의 자리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펼쳐져 있고 또 다른 책 즉 생명책이 펼쳐져 있더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그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바다가 자기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을 내주었고 사망과 지옥이 자기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그들이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았으며 사망과 지옥이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이것은 둘째 사망이니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요한계시록20장11절~15절)

 

위의 요한계시록 성경말씀을 보면 지옥도 등급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래봐야 다 지옥이겠지만요. 아직까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모르는 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천국에서의 보상이 아무리 적다고 해도 일단은 구원받고 천국에 가야 합니다. 그 다음은 부차적인 문제들일 뿐입니다. 설령 불에 의해 받는 것처럼 구원을 받는다고 해도(고린도전서3장15절), 무조건 구원부터 받아야 합니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말 그대로 하늘과 땅의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 이상의 차이입니다. 천국이든 지옥이든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는 성도들도 부활해서 영원히 천국에서 살게 됩니다만, 지옥에 가는 사람들도 부활해서 영원히 지옥에서 살게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불신자로 이 세상에서의 인생을 끝마치게 되면 영원무궁토록 지옥에서 살게 됩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