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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크리스천 성도는 반드시 지역교회에 가야만 할까?

기도하는 여자(출처: Pixabay)

 

오늘은 크리스천 성도님들에게 가장 민감한 주제 중의 하나를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크리스천 성도들은 반드시 지역교회(건물교회)에 가야만 할까? 라는 주제에 대해서입니다. 아마도 대다수의 성도님들은 이런 고민을 한 번쯤은 해 보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도가 된지 얼마 안 된 분들은 이 문제에 대해 특히 관심이 많을 겁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거의 대부분, 지역교회에는 반드시 가야 한다는 식의 글들이 많이 검색됩니다. 주로 지역교회 홈페이지나 블로그 또는 지역교회에서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이 쓴 글들이죠.

 

글이 좀 길어질 것 같아서,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역교회(건물교회)에 가는 것은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지역교회에 가야 구원을 받는다든지 지역교회에 안 가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구절이 없습니다. 지역교회에 가는 게 더 편한 분들은 가면 되고, 가고 싶지 않은 분들은 안 가도 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무조건 지역교회에 가야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지역교회는 행위구원을 가르치는 곳이 엄청나게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다른복음, 즉 마귀의 복음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초보자들이 이런 교회에 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옥을 피하려고 교회에 갔는데 오히려 지옥에 가게 되는 끔찍한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이유는 절대로 크리스천 성도님들을 실족시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성도님들을 실족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는 후반부에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교회가 무엇인지 성경적 정의를 살펴보겠습니다. 원래 교회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어떤 목적을 가지고 모인 집단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구약시대에 광야에 모여 있던 유대인의 모임도 교회라고 불렸습니다(사도행전7장38절). 테니스를 치려고 모인 사람들도 교회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모이면 그것 또한 교회입니다. 오늘날에는 온라인에서 모이는 모임도 교회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특정 목적을 가지고 온라인 공간에 모여서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에클레시아라는 말도 어떤 특정한 공간에 모인다는 뜻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한 크리스천 성도들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지체가 된 사람들, 그룹, 무리 그 자체를 뜻한다고 믿습니다.

교회라는 말이 처음 나온 곳은 마태복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묻기를,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니, 제자들이 말하길, '침례자 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라고도 하며 예레미아나 대언자들 중의 하나라고 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마태복음16장13절~14절).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묻기를,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의 대답을 들은 예수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살과 피가 그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하셨느니라. 내가 또한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마태복음16장17절~18절)'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교회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임이 아닙니다. 신약교회는 베드로의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지는 교회를 뜻합니다. 성경을 보면 반석은 예수님을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주님이라는 고백과 그리스도라는 고백, 그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이 없이는 예수님의 교회의 일원이 될 수 없습니다. 베드로와 같은 믿음의 고백이 있다면 그러한 사람들을 교회라고 합니다. 즉, 크리스천 성도 자신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건물은 교회가 아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교회가 성령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나와 있습니다(요한계시록2장7절,11절,17절,29절, 요한계시록3장6절,13절,22절). 건물은 성령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죠. 또한 교회는 하나님께서 속 중심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안다고 나와 있습니다(요한계시록2장23절). 그리고 사도행전12장5절을 보면 교회가 기도한다고 나와 있으며, 사도행전15장4절을 보면 교회가 장로들을 영접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사도행전15장22절에는 교회가 기뻐한다고 나와 있으며, 고린도전서15장9절에는 사도 바울이 교회를 핍박했다고 나옵니다. 이 모든 성경구절들을 보면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에서 신약성경의 에클레시아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지체가 된 무리 그 자체를 뜻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러나 만약 어떤 곳에 모인다는 의미라고 확대해석을 한다고 해도 온라인 모임도 지역 모임과 비슷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서로 공감해주거나 댓글을 주고받는 것도 지역교회 못지않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믿음의 반석 위에 세우는 교회는 지역교회가 아닙니다. 히브리서12장23절에 '하늘에 기록된 처음 난 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모든 자들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들과'라는 구절에서의 교회도 지역교회가 아닙니다. 또한 사도행전20장28절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할 때의 교회도 지역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와 지역교회를 구분하여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교회는 베드로가 고백한 믿음의 교회이며, 지역교회는 교회의 오프라인 모임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 직후의 초대 교회는 건물교회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성도들의 개인 집에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어떤 지역의 어떤 교회로 가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신약성경에는 많은 지역교회들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이 서신을 보냈던 여러 지역교회들도 있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지역교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지역교회들은 시대적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지역교회에 서로 모여야만 복음을 들을 수 있었으며 지역교회를 통해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필요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교회가 필요했던 시절에는 이 교회들이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 성도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등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위의 교회들 중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교회는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다 사라졌습니다. 성경에 있던 어떤 지역교회도 지금 현재 남아 있는 교회는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시의 지역교회도 어떤 특정한 장소나 건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 즉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특정한 장소에 모여야만 교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그게 과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교회일까요? 예를 들어 서울의 어떤 특정한 장소에 모인 사람들과 남미 브라질의 어떤 특정한 장소에 모인 사람들이 과연 같은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들일까요? 교회라고 해서 다 같은 교회가 아닙니다. 심지어 구원교리가 서로 다른 교회들도 많이 존재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글의 후반부에서 자세히 적어 드리겠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무조건 모이기만 하면 하나님의 교회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더구나 초보자들은 이런 교회들을 구분하기도 힘듭니다. 아무 교회나 가면 실족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실족할 가능성이 있는 장소나 건물로의 모임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을까요? 성경에는 어떤 장소에 모이라는 말씀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만,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무리 그 자체를 뜻하는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구원 교리는 매우 명확하고 심플합니다.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나와 있으며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들어야 한다고 나와 있으며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이 수도 없이 나옵니다. 그러나 어떤 장소에 모여야 한다는 내용은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장소에 모이는 것이 중요했다면 모여야 한다는 말씀도 수도 없이 나와 있어야 합니다.

 

( 그렇다고 해도 바울의 서신들과 계시록의 교회 관련 말씀들은 지금 현재의 지역교회들에도 여전히 적용되는 말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

 

앞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초기 지역교회는 건물교회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건물교회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저는 그 뿌리가 바리새인들이 운영하는 유대교의 회당과 사두개인들이 운영하는 성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은 회당에 모여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기도드리며 율법을 세우고 지키는 일을 했습니다. 또한 안식일과 유대인의 종교적 명절을 지키는 의식을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법원의 역할도 했습니다. 유대교 율법에 따라서 시민들을 심판하고 단죄하였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유대교 회당은 그들의 성전과 더불어 훗날 카톨릭 성당이 만들어지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회당과 성전은 결코 유대인들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잡아 죽인 사람들이 바로 유대교 회당과 성전을 운영했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내게, 주여, 주여, 하고 말하는 자가 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는 아니하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7장21절)

 

카톨릭 성당에 저항하고 뛰쳐나온 사람들이 개신교도이며 이들이 세운 건물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건물교회가 지역교회로서의 보편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근본주의 크리스천들 중에는 건물교회는 옳지 않고 초대 교회처럼 성도들 개개인의 집에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역교회는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건물교회로 운영하는 것이 맞다 생각합니다. 개인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물리적, 시간적으로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출처: Pixabay)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의 진리가 퍼져 나가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에 맞게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이를 실행토록 하셨습니다. 미디어가 없던 과거에는 어쩔 수 없이 지역에 모여야만 했기에 지역에 있는 장소, 즉 건물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온라인을 통해서 얼마든지 복음을 들을 수 있고 얼마든지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인터넷이 지역 교회 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유투브에서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님의 성경강해 영상을 듣고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로마서10장17절)

 

일방적인 시청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온라인을 통해서도 물어볼 수 있고 답변을 받을 수도 있으며 검색을 통해서 여러 답변들을 비교 검토할 수도 있고, 경건서적들을 구매하여 읽을 수도 있으며, 채팅방에 참여하여 토론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도들 각자에게 맞는 능력을 주셨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오프라인 지역교회에 어울리는 성도들도 많이 있을 겁니다. 그런 분들은 지역교회에 가시면 됩니다. 지역교회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하기 이전까지는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크리스천들을 핍박하던 시대와 그런 정권하에서는 교회가 구원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절대적인 기능을 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도 지역교회는 조직적인 힘이 필요할 때 크리스천 성도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지역교회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지역교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성도들은 억지로 나갈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성경적으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사람들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사람들은 영존하는 생명을 얻고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구원은 반드시 성령침례를 받아야만 완성됩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사 우리가 진실하신 분을 알게 하셨음을 우리가 알고 또 우리가 진실하신 분 곧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아노니 이분은 참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생명이시니라.(요한일서5장20절)", "나는 살아 있는 자라. 전에 죽었으나, 보라, 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요한계시록1장18절)",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장16절)",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이 말하길 "우리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매인 자든 자유로운 자든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고 모두가 마시게 되어 한 성령 안으로 들어왔느니라.(고린도전서12장13절)",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친히 기뻐하시는 대로 지체들을 곧 그것들 각각을 몸 안에 두셨느니라(고린도전저12장18절)". "이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개별적으로 지체들이니라.(고린도전서12장27절)"

 

위의 성경구절들을 간략히 요약하면, 1.그리스도 예수님은 영존하는 생명이며, 2.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으면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되며, 3.그리스도의 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령침례를 받아야 한다. 즉, 이 3가지 교리를 조합하면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순간 성령침례를 받게 되며 동시에 그리스도 예수님의 몸의 일부가 되어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구원받은 성도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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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제가 지역 교회 모임에 나가는 일을 꺼리는 이유는 교회 목사님들 중에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가르치는 분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몇 달 전에 평평지구를 믿는 교회 모임에 나간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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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반드시 가야 한다는 분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히브리서10장25절 말씀과 마태복음 28장19절~20절 말씀인 듯싶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지 말고 서로 권면하여 그 날이 다가옴을 너희가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브리서10장25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무엇이든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아멘.(마태복음28장19절~20절)"

 

우선 히브리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0장25절에서 폐한다는 말의 영어 원문에서의 단어는 forsake입니다. 그만둔다는 뜻이죠. 하던 일을 그만두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사람들의 습관이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모이던 사람이 안 모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안 나간 사람과는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모이는 일이라는 것 자체도 어디에서 모여야 하는지? 일주일에 몇 번을 모여야 하는지? 이런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모이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이 있다거나 구원을 잃게 된다거나 하는 말도 없죠. 이 구절은 단지 모이지 않는 습관을 버리자는 뜻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마태복음 28장19절~20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28장16절을 보면, "그 뒤에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정해 주신 산에 들어가"라고 나옵니다. 즉, 예수님의 열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본 제자들이죠. 이들을 사도라고 부릅니다. 오늘날에는 사도가 없죠. 18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이 내게 주어졌느니라." 즉, 예수님의 권능으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것이죠. 제자들에게도 예수님의 권능이 맡겨졌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에는 예수님의 권능이 들어 있는 것이니까요.

 

위의 성경구절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지 오늘날의 일반 성도들과는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권능과 함께 표적이 따른다고 하셨습니다(마가복음16장17절~18절). 마귀를 내쫒고 다른 나라 말(방언)을 할 수 있으며, 독사를 들어 올려도 해를 입지 않고, 치명적인 독을 마셔도 아무렇지 않게 되고, 병든 사람들을 낫게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일들을 오늘날의 일반 성도들이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일들은 성경이 완성되기 이전에 나타났던 표적이었습니다. 또한 초대 교회는 모두 유대인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표적이 필요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그들만의 전통이 있었는데, 하나님으로부터 온 권능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반드시 표적이 있어야 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일반 성도들에게도 권능을 주어 사람들의 병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가능하죠. 그러나 지금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주어져있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그런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12장39절,16장4절). 다시 말씀드려서 병치료 은사나 방언의 은사 등은 예수님의 제자들, 즉 사도들에게만 해당되었던, 그것도 교회가 생성되던 초기의 표적이었습니다. 방언에 대한 글은 아래 포스팅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s://smallstars7.tistory.com/48

 

오늘날의 방언은 성령님의 은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방언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성경을 읽은 지 몇 년 안되는 성경 초보자이며 순전히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참고하시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방언에 대해

smallstars7.tistory.com

 

교회나 목사님을 통해야만 뭔가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더러 계신데, 성경에는 크리스천 성도의 몸 자체가 성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성도 본인이 제사장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린도전서3장16절)", "너희도 살아 있는 돌들로서 영적 집으로 건축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도다.(베드로전서2장5절)" 크리스천 성도 스스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면 되는 것이지 중간단계인 어떤 건물교회나 목사님을 통해서 나아갈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일반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일 것입니다. 복음의 전파는 옛날 방식대로 하지 않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역교회에 가지 않고도 유투브나 블로그 등을 통해서도 충분히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지역교회에서 개인이 오프라인으로 전파하는 것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혹은 볼 수 있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침례를 주는 일도 일반 성도들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라인 모임만으로는 물침례를 주는 일이 어렵고 오프라인이라고 해도 성도들끼리는 물침례를 주기 힘들죠. 물침례를 주는 일은 주로 목사님들이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물침례는 구원받은 남자가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구원받았을 확률이 높죠. 물침례는 다시 태어나는 것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크리스천 성도 자신도 예수님처럼 죽었다가 묻혔다가 부활했다는 의미의 퍼포먼스입니다. 물침례는 성령침례를 받은 사람, 즉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구원을 만천하에 공표하기 위해서 하는 행위일 뿐, 그 행위를 해야만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물침례는 백 번 받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인해서 성령침례를 받아야만 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구원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 하나님의 은혜로만 받을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에베소서2장8절, 로마서11장6절, 로마서3장28절, 갈라디아서2장16절). 물침례를 포함한 어떤 행위로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징표는 할례입니다. 구약에서의 믿음의 표식이죠. 신약에서의 물침례와 비슷한 것입니다. 그러나 할례든 물침례든 믿음이 없이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이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것을 의로 여겼다고 하셨습니다(로마서4장3절).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구원받을 당시에는 아직 할례 받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브라함도 이방인이었습니다(로마서4장9절~10절).

그가 할례의 표적 곧 아직 할례 받지 않은 때에 자기가 소유한 믿음의 의를 봉인한 표식을 받았으니 이것은 그가 할례를 받지는 아니하였으나 믿는 모든 자들의 조상이 되어 의가 그들에게도 인정되게 하려 함이요, 또 할례자들에게 속할 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아직 할례 받지 않은 때에 소유한 그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자들에게 할례의 조상이 되려 함이라. 그가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그 약속은 아브라함에게나 그의 씨에게나 율법을 통해 주어지지 아니하고 믿음의 의를 통해 주어졌느니라.(로마서4장11절~13절)

 

기도하는 남자(출처: Pixabay)

 

지역교회에서의 실족 가능성

 

지금부터는 왜 오늘날에는 지역교회에 가는 것이 실족할 가능성이 더 큰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킹제임스 영어 성경을 믿습니다. 그리고 한국어 번역 성경으로는 킹제임스 영어 성경을 가장 충실하게 번역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신뢰합니다. 그래서 저는 국내 교파 중에서는 침례교를 가장 좋아하고 그 중에서도 흠정역 성경을 사용하는 침례교회를 좋아합니다. 더불어서 저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왕이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진짜 세상을 아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좋습니다. 몇 년 전에 그런 조건에 부합하는 작은 지역 교회에 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 교회는 침례교회였고 지구가 평평하고 우주는 없다는 성경적 진실을 가르치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그 교회 목사님은 행위구원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또한 놀랍게도 구원상실교리까지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뿐만 아니라 거기에 참석한 성도들 중 다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자랑하는 성도도 있었습니다. 목사님과 목사님의 와이프도 방언을 지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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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 올바르게 제대로 방언하는 방법 (고린도전서 14장 방언방법)

오늘은 성경 고린도전서14장에서 제시하고 있는 방언방법에 대해서 간단하게 알아보겠습니다. 개역개정 성경과 킹제임스 성경, 그리고 NIV 영어 성경, KJV 영어 성경 등, 네 가지로 살펴보겠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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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행위구원이라는 것은 천주교의 구원교리이며 마귀의 교리입니다. 성경을 보면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받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위는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거나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사역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믿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지역교회가 행위구원 또는 구원상실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아무 생각 없이 지역교회에 갔다간 지옥에 갈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초보 성도가 진리를 가르치는 교회를 선택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책이 다 비슷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가서 목사님들이나 성경교사들, 여러 설교자들의 말을 듣는다고 해도, 그게 처음 듣는 말이라면 그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초보자들은 쉽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한국만 해도 장로교, 감리교, 순복음교, 성결교, 성공회 등의 개신교 교파와 (참고로 침례교는 엄밀히 말하면 프로테스탄트 개신교가 아님) 여호와의증인, 몰몬교, 통일교, 구원파, 신천지 등과 같은 이단도 있고, 기독교로 가장한 천주교도 있습니다.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이 함부로 교회에 갔다간 구원받기는커녕 잘못하면 패가망신하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로 위험한 것입니다. 오히려 중세시대 암흑기에 극소수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유럽의 변방으로 숨어 다니면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던 시절이 훨씬 더 확실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구원의 교리입니다. 구원교리가 잘못되어 있으면 평생을 지역교회에 다녀도 결국은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특히 유아세례나 행위구원과 같은 구원교리를 가르치는 지역교회에 나간다면 큰 낭패를 보게 됩니다. 어렵사리 구원을 받거나 이미 받았다고 해도 구원상실교리를 가르치는 교회에 가면 평생 동안 마음을 졸이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으면 평안을 얻어야 하는데,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가르치는 교회에 가게 되면 평안을 얻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신약성경이라고 해도 마태복음, 사도행전 등은 아직 신약이 완성되기 이전의 과도기와 변천기의 내용이 많기 때문에 주의해서 가르쳐야 하는데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이 책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인도 걸려서 넘어지고 교회 성도들까지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하면 둘 다 도랑에 빠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15장14절).

 

그리고 천주교로부터 프로테스탄트 해서 뛰쳐나온 개신교 교회들도 그 뿌리는 천주교입니다. 그래서 이들 교파가 사용하는 성경의 내용이 천주교 성경의 내용과 매우 흡사합니다. 또한 교회 성도들이 이스라엘을 대체했다고 믿는 것 역시도 비슷합니다. 이렇게 성경이 잘못되어 있고 교리가 잘못되어 있으면 교회를 안 가는 것만 못 합니다. 개역개정성경을 비롯한 현대 역본들과 킹제임스 성경이 어떻게 다른지는 아래 링크한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s://smallstars7.tistory.com/68

 

천주교의 실체 - 04편, 카톨릭은 왜 성경을 삭제하고 변개했는가?

성경 변개의 문제는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에 세세한 내용을 전부 다루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제가 그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저는 천주교가 왜 성경 말씀을 삭제하고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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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제대로 성경공부를 한 목사님들이 많지 않습니다. 성경 66권 전서를 강해하는 목사님들 자체가 드뭅니다. 그래서 다수의 목사님들이 성경 강해보다는 QT, 즉 짧은 성경구절 한두 개를 가지고 묵상의 시간을 갖거나 혹은 도덕적 삶에 관한 얘기를 하거나, 시국 얘기를 하면서 시간을 때우기 때문에 정작 하나님에 대한 성경 지식을 쌓기가 매우 힘듭니다. 요한복음에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것이 바로 영생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영생은 이것이니 곧 그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인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한복음17장3절)"

 

이런 일도 있습니다. 동네 교회를 다니던 어떤 성도님이 우연한 기회에 휴거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레프트 비하인드'라는 영화를 감상했는데, 수 십 년 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단 한 번도 휴거에 대한 말씀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면서 분통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많은 한국 교회가 휴거나 천년왕국 등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자체를 전혀 가르치지 않는 교회도 수두룩하다고 합니다. 휴거를 가르치는 목사님이 있다고 해도, 거의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다가올 천년왕국을 모릅니. 또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휴거가 두 번 있다는 식으로 잘못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성도들은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돼서 엄청난 불안과 공포를 느끼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 지식이 많다고 자부하는 목사님들조차도 대부분은 이스라엘 대체신학(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고 믿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영적해석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목사님들은 별로 없습니다. 교회와 맞지 않는 부분은 그냥 영해를 해버립니다. 또한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성경을 성경으로 푸는 해석 방법 보다는 자기 자신의 영적 해석이나 학교에서 배웠던 영적 해석, 또는 유명한 사람들이 영적으로 해석한 내용 그대로를 성도들에게 가르칩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해석 방법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하며 한 번에 이해가 안 되는 단어나 문장이 있으면 그와 동일한 단어와 문장이 나와 있는 다른 성경구절에서는 무엇이라고 하는지 찾아 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을 성경을 성경으로 푼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경책 자체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행히 킹제임스 성경을 먼저 접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합리적인 판단을 할 줄 아는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킹제임스 성경을 신뢰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의 대다수 교회에서는 킹제임스 성경 대신 천주교에서 나온 소수본문(비평본문)을 바탕으로 한 현대역본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현대역본들은 더 이상 읽기 힘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저는 개역개정 등의 현대역본들을 읽기가 너무나 불편했습니다. 내용 자체도 문제지만, 어색해서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좀 심하게 말씀드리자면, 마치 영어에 서툰 조선시대 사람이 번역한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역교회에는 정말 다양한 목사님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끝맺음을 한 율법을 오늘날에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사님들도 있고, 목사님이 제사장이 되어 예배를 마치 제사의식처럼 행하기도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오순절 은사주의운동에 심취해서 성도들을 뒤로 넘어뜨리고 록음악을 틀고 집단 방언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어떤 침례교 목사님은 신비주의를 지지하고 관상기도를 가르치기도 합니다. 관상기도는 한 마디로 말해서 기도 중 무아지경에 빠져 자아를 잃어버리게 되어 마귀와 결합하는 행위라고 보면 됩니다. 심지어는 자기 교회만 옳고 자기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가르치는 목사들도 있습니다. 또한 부도덕한 목사들도 있습니다. 여자 성도들을 추행하거나 성폭행하는 파렴치한 목사들도 있고, 교회를 재산 축적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목사들도 있죠.

 

성경 교리와 부도덕으로 인한 것들만 문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의사 한 분은 교회에 나갔다가 목사님의 설교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여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합니다. 그 의사는 정치, 경제, 이념적으로 우파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목사님이 허구한 날 좌파적인 발언만 하고 촛불집회를 푸쉬하는 바람에 설교를 듣는 자체가 고통이 되어 병까지 얻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념 성향이 그 반대의 경우였더라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명목으로 헌금을 요구하는 교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일부 목사들은 헌금 리스트만 수십 개를 만들어서 돈벌이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지역 교회에 가는 것을 꺼려하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지역 교회들이 타락한 이유는 어쩌면 헌금강요의 문제가 가장 큰 이유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서 돈이 우상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 지역교회에는 교회를 탈퇴하려고 하면 포도나무 가지가 끊어진다느니 교통사고를 당할 것이라느니 암에 걸린다느니 하면서 협박을 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으면 평안을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역교회에서 이런 식으로 성도들을 겁박하고 불안을 주는 게 과연 예수님의 뜻인지 묻고 싶습니다.

 

교회 성도들 간에도 엄청난 간격이 존재합니다. 성도들 중에는 자신의 믿음이 깊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성경 지식을 잔뜩 늘어놓거나 자신이 나름대로 해석한 성경구절이 진리인양 남을 가르치려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성도들은 방언을 자랑하며 자신이 마치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성도인양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도라면 무조건 방언을 해야 한다면서 방언을 배우라고 합니다. 이것을 일명 학습방언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조금만 자기와 생각하는 바가 달라도 다른 성도를 향해 함부로 이단이라 비난하는 경우까지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라도 교회에는 꼭 가야한다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마지막 말이 있습니다. '혼자서는 성경의 진리를 깨우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지금은 인터넷 시대이고 유투브 시대입니다. 누구나 컴퓨터와 스마트폰만 있으면 실력있는 목사님들의 설교나 강해영상을 쉽게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반드시 지역교회에 가야만 복음을 들을 수 있는게 아니라는 뜻이죠. 오히려 더 정확하고 더 퀄리티가 높은 강해영상들을 골라서 볼 수가 있습니다. 의문점이 있으면 검색을 통해서 여러 답변들을 비교 검토할 수도 있죠. 저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유투브 등도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 만들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역교회에 가는 것은 행위인가요? 믿음인가요? 물침례를 받는 것은 행위인가요? 믿음인가요? 성경은 분명하게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지역교회에 다니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행위입니다. 물침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요한복음에도 성령침례를 강조하고 있으며, 4장 이후로는 물침례에 대한 내용이 나오지 않으며, 요한계시록에는 아예 침례라는 말 자체가 안 나옵니다. 앞서 물침례는 이미 성령침례를 받아서 구원받은 성도가 만천하에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는 행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물침례를 받는 사람이 구원을 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 물침례를 주는 사람이 알 수 있을까요? 물침례를 주는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알고 계십니다. 물론, 진짜로 구원받은 성도는 느낌상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구원받았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물침례를 받는 행위로는 절대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를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것 같이 한 몸과 한 성령이 있고 한 주와 한 믿음과 한 침례가 있으며 한 하나님이 계시니 곧 모든 것의 아버지시라. 그분께서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에 두루 계시며 또 너희 모두 안에 계시느니라.(에베소서4장4절~6절)" 이 성경말씀에 분명히 한 침례가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두 침례가 아니라 한 침례입니다. 이것은 물침례가 아니라 성령침례를 뜻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만, 구원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하면 둘 다 도랑에 빠진다고 하셨고(마태복음15장14절, 누가복음6장39절), 잘못된 종교 지도자들은 신도들을 천국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며(마태복음23장13절), 두 배나 더 지옥으로 이끈다고도 하셨습니다(마태복음23장15절). 즉, 잘못된 교회에 나가서 잘못된 목사를 만나면 지옥으로 가게 될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오른 쪽에 있던 강도가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주님으로 영접하니까 그 즉시 구원받았습니다.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던 고넬료는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그는 이방인이었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과 모임을 갖거나 했던 일이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었기에 베드로가 전한 복음을 듣고 구원받았습니다. 모든 내용으로 판단하면 교회 모임에 참석하는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직 복음을 듣고 믿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 목사님들조차도 교회에 나오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킹제임스 영어 성경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가 추천하는 영상은 킹제임스 영어 성경을 번역하신 정동수 목사님의 강해영상들입니다. 초보 성도님들께서는 아래 정동수 목사님의 강해영상을 추천합니다. 제목은 마태복음 강해입니다만,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강해입니다. 직접 보시고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자유의지와 양심과 이성을 주셨습니다. 지역교회에 갈지 말지, 또는 가기로 결정했다면 어떤 지역교회에 갈지는 하나님께서 부여한 이성을 가지고 스스로 판단하신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0hsexGpPVc&list=PL4P6SBDceLgHByJqg7BBMPDC8H7ZEvmf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