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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원은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들어가기 전에 우선 구원이 무엇인지부터 아셔야 합니다.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을 뜻합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죄에서 구원받지 못하면 그대로 죽어서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혹시 아직 구원받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우선 아래 링크를 클릭하셔서 지금당장 구원부터 받고 오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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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는 방법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서 성경의 기본 교리들을 올리고 있습니다. 구원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물인데 매우 특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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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한 마디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말은 성도들을 불안하게 하는 말입니다. 불안하게 하는 것은 예수님으로부터 온 게 아닙니다. 성도들을 불안하게 하는 말들은 모두 마귀로부터 온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제부터 왜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원이라는 단어 자체가 잃어버릴 수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게 구원입니다. 구원과 동시에 우리의 영과 혼은 영원하며 영존하는 안전이 보장되는 것이죠. (물론 몸도 나중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 또는 휴거되면서 썩지 않는 새로운 몸을 받게 됩니다.) 중간에서 잃어버릴 수 있다면 이미 구원이 아닙니다. '영원하다' 또는 '영존한다'라는 말과 '중간에서 끊어진다'는 말은 서로 모순되는 말입니다. 만약 중간에서 끊어진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구원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로마서3장4절)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시편116편11절)

 

중간에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인간의 어떤 행위 때문에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악행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악행을 하지 않아야 구원이 유지된다는 겁니다. 악행을 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의이며 그게 바로 구원의 조건이라는 겁니다. 구원이 완성되는 조건이 믿음 + 행위라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99퍼센트는 믿음이지만 1퍼센트는 사람의 행위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의 믿음입니다. 악행을 하지 않는 것도 인간의 행위입니다. 참는 것 자체가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행위가 조금이라도 들어간 믿음은 믿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1퍼센트라고 해도 그 1퍼센트의 인간의 행위가 구원의 조건에 포함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구원의 조건이 전적으로 그리스도 예수님께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달려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복음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됩니다. 이런 믿음은 오염된 믿음입니다. 주님은 이런 믿음은 받아주시지 않습니다. 인간의 모든 의는 더러운 누더기와 같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이사야서64장6절).

 

그리고 참는다고 해서 죄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는 마음속의 생각만으로도 죄를 짓는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잠언24장9절, 로마서8장6절, 마태복음5장28절).

 

참고로 구원상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악행, 즉 나쁜 행동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죠. 선행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 특징이 무엇인가 하면, 주로 자기가 평소에 범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자기가 무의식적으로 저지르는 죄들에 대해서는 대단히 관대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사람의 행위가 몇 퍼센트인지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적이 있습니까? 인간의 행위가 구원에 영향을 끼치는 한계를 정해주신 적이 있습니까? 1퍼센트인지 10퍼센트인지 50퍼센트인지 성경에 나와 있나요? 만약 1퍼센트가 허용된다면 100퍼센트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에는 뭐라고 나와 있나요? 로마서11장6절을 보면 믿음과 행위는 섞일 수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믿음이면 믿음 행위면 행위 둘 중의 하나만 가능하지 믿음+행위는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과 행위가 섞일 수 없다면 인간의 행위 100퍼센트로 구원에 이르던지 그게 아니면 믿음 100퍼센트로 구원에 이르던지 둘 중의 하나로만 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14장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보혈대속을 믿는 믿음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죠. 그렇다면 행위 100퍼센트는 될 수 없음이 명확하지 않습니까? 결국 믿음 100퍼센트만 가능한 것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공짜로 얻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값없이(공짜로) 주신 것이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로마서3장24절, 고린도전서2장12절, 에베소서2장8절, 디도서3장5절 등). 인간은 오직 믿음만으로 그 은혜를 감사하며 받으면 되는 겁니다. 그럼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구원받은 교회가 죄 때문에 구원을 잃을 수 있다면, 이는 구원에 조건이 붙는다는 뜻입니다. 조건이 있는 은혜와 조건이 있는 공짜가 존재할 수 있나요? 일단 조건이 붙으면 그건 은혜가 아니고 공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은혜와 공짜라는 단어 자체가 조건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글의 후반부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만, 구원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구원을 유지하는 것 또한 하나님이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권능과 말씀으로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행위종교와 은혜복음을 비교하는 말로 이른바 'do 종교'와 'done 복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복음을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고 행위로 구원을 유지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이 반드시 무엇을 해야(do)만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복음에서는 주님께서 구원에 관한 모든 사역을 이미 끝내놓으셨기(done) 때문에 인간은 예수님께서 끝내신 일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여기에는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 또는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행위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위에서의 "행위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나쁜 짓을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행위구원을 주장하는 분들은 항상 이런 식으로 오해를 합니다. '행위가 필요 없다'는 말과 '그래서 나쁜 짓을 해도 된다'는 말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서는 자연스럽게 선한 행위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한 행위는 인간 기준의 선행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에베소서2장10절). 또한 로마서6장1절과 2절을 보면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죄 가운데 거할 수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구원받은 이후에는 말씀의 젖을 먹고 점차 성화되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행위가 필요 없다고 해서 악행을 용인한다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만약 믿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서 아무런 믿음의 행위가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악행을 한다면 그는 애초부터 거듭난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놓으신 구원시스템에는 인간의 공로는 단 한 개도 없습니다. 순전히 주님께서 인간의 죄를 깨끗하게 해 놓으신 겁니다. 그런데 인간이 감히 주님께서 100퍼센트 깨끗하게 해 놓으신 사역에 대해서, "조금 더러워진 거 같으니까 인간의 행위로 다시 깨끗하게 해야 할 거 같습니다."라고 주님께 지적질을 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생각해 보세요. 인간이 구원받은 후 천국에 갔을 때, "하나님, 하나님께서 은혜로 99퍼센트를 해 주셨고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저의 행위 1퍼센트를 더해 구원을 유지했습니다."라고 자랑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에베소서2장9절을 보면 구원에 대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죄 때문에 구원을 잃을 수 있다면 구원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게 됩니다.

 

구원받은 이후에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요? 구원받은 이후에도 인간은 여전히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성경구절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모든 것에서 유죄가 되나니(야고보서2장10절)

 

성경은 조그마한 죄 하나만 범해도 모든 죄를 범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이후에 거짓말 한 번 안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담의 본성을 물려받은 인간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어떤 죄도 짓지 않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만약 본인이 단 하나의 죄도 짓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교만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율법의 행위로 무언가를 해 보려고 하는 자들은 모두 저주 아래에 있다고 하셨습니다(갈라디아서3장10절).

 

구원받은 이후의 인간의 행위는 구원의 유지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구원을 받는 것도 인간의 힘으로는 안 되고 구원을 유지하는 것도 인간의 힘으로는 안 됩니다. 구원 이후의 인간의 행위는 성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구원받아 다시 태어난 성도는 아직 어린 아기입니다. 아기는 말씀의 젖을 먹고 자라야 합니다(베드로전서2장2절). 따라서 이제 갓 태어난 성도에게 어른스러움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말씀의 젖을 먹고 점차 성장하게 되는 것이죠.

 

구원에 관한 성경구절은 99퍼센트 정도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1퍼센트 정도가 조금 모호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모호하게 되어 있는지 앞뒤 문맥을 살펴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겁니다. 1퍼센트로 99퍼센트를 뒤집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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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영원한 구원을 증명하는 구절들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제가 지역 교회 모임에 가는 일을 꺼리는 이유는 교회 목사님들 중에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가르치는 분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평평지구를 믿는 지역 교회에 나간 적이 있는데, 거기 목사님도 구원상실 교리를 가르치고 있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더구나 모임에 참석했던 평평지구 회원들조차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교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예수님의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나마 깨어 있다는 사람들이 이럴진대 다른 교회들은 오죽할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다른 어떤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한 것같이 그렇게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가 받아들인 것 외에 다른 어떤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갈라디아서1장8절~9절)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는 명백한 성경말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장16절)

 

위의 성경말씀을 논리적으로 잘 보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자는 어떻게 된다고 나와 있습니까? 멸망하지 않는다고 나와 있지 않습니까? 믿음 이후로는 멸망으로부터 안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됩니다. 중간에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생명이라면 영존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요? 성경에는 이와 비슷한 구절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며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한복음 3장36절)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요한복음 6장47절)

 

너희의 행실을 탐욕이 없게 하고 너희가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브리서13장5절)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시니(요한복음 11장25절~26절)

 

그분께서 또한 너희를 끝까지 견고하게 하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너희가 책망받을 것이 없게 하시리라.(고린도전서1장8절)

 

이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과 또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를 통해 영존하는 안위와 좋은 소망을 주신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말과 일에서 너희를 굳게 세우시기를 원하노라.(데살로니가후서2장16절~17절)

 

바로 이 뜻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한 번 영원히 드려짐을 통해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히브리서10장10절)

 

이는 그분께서 한 번 헌물을 드림으로써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기 때문이라.(히브리서10장14절)

 

위의 성경구절들에서 보다시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대속사역을 통해 단 한 번에 영원한 희생물을 드리셨습니다. 그로 인해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영원토록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 중간에서 끊어질 수 있다면 영원이나 영존과 같은 말씀은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다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내가 네게 이르기를,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한 것에 놀라지 말라.(요한복음 3장7절)

 

그분을 받아들인 자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들이니라.(요한복음 1장12절~13절)

 

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며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베드로전서 1장23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 옛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장17절)

 

이처럼 다시 태어나서 영원한 구원을 얻은 성도들은 태어나지 않은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옛것들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태어나서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가 다시 자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구원받아 다시 태어난 성도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기 때문이라.(로마서8장1절~2절)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분의 씨가 그 안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라. 그는 하나님에게서 태어났으므로 죄를 지을 수 없느니라.(요한일서3장9절)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함을 우리가 아노라. 오히려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자신을 지키므로 저 사악한 자가 그를 건드리지 못하느니라.(요한일서5장18절)

 

구원받아 그리스도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면 지옥의 정죄에서 영원무궁토록 해방됩니다. 사탄도 교회 성도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구원받은 영과 혼은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몸도 나중에 휴거되거나 부활해서 영화로운 새 몸을 받으면 그 이후부터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위의 구절들에서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은 영원과 영존이라는 성경말씀과도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한정된 약속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구원받아 다시 태어난 교회성도는 영원무궁토록 죄에서 해방됩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도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과거의 루시퍼나 타락한 천사들처럼 죄를 지어서 천국에서 추방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구원받은 교회는 영원무궁토록 완전한 존재입니다(히브리서10장14절).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내가 행하면 그것을 행하는 자가 더 이상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거하는 죄니라.(로마서7장20절)

 

그러나 영화로운 새 몸을 받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옛 몸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몸은 죄를 범하게 되는 겁니다. 사도 바울조차도 이 세상을 살면서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옛사람으로 인한 비참한 심정을 토로하면서 자신이 원치 않는 죄를 범하는 것은 구원받은 자신이 아니라 옛사람, 즉 내 안에 거하는 죄가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던 겁니다.

게다가 한 번 구원받으면 돌이킬 수 없다는 말씀이 성경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를 이루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지만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느니라.(고린도후서7장10절)

 

참고로 이 구절에서의 구원은 영어 킹 제임스 성경에는 "not to be repented of"로 되어 있어서 돌이킬 수 없는 구원이라고 바르게 기록되어 있는데, 천주교 소수사본을 바탕으로 번역된 현대역본 성경은 "no regret" 또는 "without regret"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돌이킬 수 없다는 단어를 삭제하고 후회라는 단어로 대체하여 성경을 변개한 것입니다.

 

다시 태어난 성도들에겐 성령님께서 내주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분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자신의 영을 통해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로마서 8장11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그분께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니 곧 진리의 영이시라. 세상은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나니 이는 세상이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아나니 이는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거하시며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라.(요한복음 14장16절~17절)

 

 

다시 태어난 교회는 아버지하나님의 아들(양자)입니다.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받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니 이는 너희가 다시 두려움에 이르게 하는 속박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 삼으시는 영을 받았기 때문이라. 그분을 의지하여 우리가,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르짖느니라.(로마서8장14절~15절)

 

이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구속하시고 우리가 아들로 입양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영을 너희 마음속에 보내사,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르짖게 하셨느니라.(갈라디아서4장5절~6절)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이나 사람의 뜻에서 태어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서 태어났느니라.(요한복음1장12절~13절)

 

이것은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의 창건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친히 우리를 택하시며 자신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들로 입양하심으로써 자신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심에 따른 것이니라. 그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받아 주셨고(에베소서1장4절~6절)

 

하나님께서 입양한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과 교회가 부자관계가 된 것이죠. 그 누구도 그 어떤 존재도 하나님께서 결정한 것을 번복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아들이 아버지를 부인한다고 해도 부자관계가 없던 일이 되는 게 아닙니다. 한 번 하나님의 아들이 되면 영원무궁토록 아들입니다.

 

 

다시 태어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매인 자든 자유로운 자든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고 모두가 마시게 되어 한 성령 안으로 들어왔느니라.(고린도전서12장13절)

 

이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개별적으로 지체들이니라.(고린도전서12장27절)

 

또 모든 것을 그분의 발아래 두시며 그분을 모든 것 위에 머리가 되게 하사 교회에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분의 몸이니 곧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이니라.(에베소서1장22절~23절)

 

그분께서는 몸 곧 교회의 머리시니라. 그분께서 시작이시요 죽은 자들로부터 처음 난 자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 가운데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골로새서1장18절)

 

그리스도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구원받아 다시 태어나면 하나님의 몸이 되는 겁니다. 어떤 창조물이 감히 하나님의 몸을 공격해서 빼앗아갈 수 있단 말입니까? 구원받은 교회성도 본인조차도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교회는 이미 하나님의 몸의 일부가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몸을 해체해서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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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교회를 당신의 피로 사셔서 봉인하셨습니다.

 

간혹 믿었다가 믿지 않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거짓말이거나 착각입니다. 처음부터 믿지 않은 것이지 믿었다가 믿음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본인이 믿었다고 착각했던 것일 뿐이죠.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요한복음5장24절)

 

위의 성경구절에서 보다시피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되어 있습니다. 옮겨질 예정이 아니라 이미 옮겨진 것입니다. 영어 성경에도 'is passed from death unto life'라고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죄들 가운데서 죽었을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또 우리를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우리를 함께 앉히셨으니(에베소서2장6절)

 

위의 성경구절에서도 구원받은 성도들을 하늘의 처소들에 앉히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앉힐 예정이 아니라 이미 앉히신 것입니다. 영어 성경에도 'made us sit together'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모든 양 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사도행전 20장28절)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들은 뒤에 그분을 신뢰하였고 너희가 믿은 뒤에 또한 그분 안에서 약속의 저 거룩하신 영으로 봉인되었느니라. 이 영께서는 값 주고 사신 그 소유물이 구속받을 때까지 우리 상속 유업의 보증이 되사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시느니라.(에베소서1장13절~14절)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에베소서 4장30절)

 

위의 성경말씀에서 보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피로 교회, 즉 구원받은 성도들을 사셨습니다. 이미 흘린 피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환불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구속(부활)의 날까지 봉인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봉인을 어느 누가 해제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이외에 그 어떤 존재도 그렇게 하지 못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해도 육신은 여전히 죄성을 지닌 아담의 피를 지녔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죄는 이미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없애주셨기 때문에 지옥에 갈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내가 계속해서 죄를 짓는다고 해도 지옥에 갈 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사례가 고린도전서에 나옵니다. 고린도전서5장을 보면 교회 내에 어떤 사람이 이방인들도 행하지 않는 극악한 음행을 저질렀는데,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이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를 사탄에게 넘겨주어 육체를 멸하도록 판단하였으니 이것은 영이 주 예수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린도전서5장5절)

 

즉, 이토록 무지막지한 죄를 저질렀어도 벌을 받는 것은 육신의 죽음, 즉 이 세상에서의 죽음뿐이며 그의 영은 주의 날에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성경구절은 구원받은 후에 죄를 지어도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고 주의 날에 부활해서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증언하는 사례입니다. 물론 이런 죄를 저지른 사람은 천국에서 받을 보상이 거의 없을 겁니다(고린도전서3장15절).

 

다음 성경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일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분을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로마서4장5절)

 

여기서의 일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행위를 뜻합니다. 그런데 그런 행위를 하지 않고 심지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이미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은 사람은 칭의, 즉 예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들입니다. 행위와 상관없이 우리를 구원해주신 예수님을 향한 믿음, 그 믿음이 하나님께도 의로 여겨진다는 뜻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나는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늘로부터 내려오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내려왔느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은 이것이니 곧 그분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 중에서 내가 하나도 잃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그것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이것이니 곧 아들을 보고 그를 믿는 모든 자가 영존하는 생명을 얻는 것이니라.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 하시니라.(요한복음6장37절~40절)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자들을 결코 내쫓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모두 부활시키거나 휴거시켜서 영존하는 생명을 주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아버지의 뜻이라는 겁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나의 아버지는 만유보다 더 위대하시니, 아무도 나의 아버지 손에서 그들을 빼앗아 갈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10장28~29절)

 

위의 성경 말씀에서 '아무도'라는 뜻은 구원받은 성도 자신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성도들을 사셨기 때문에 구원받은 인간이 아무리 나쁜 짓을 한다고 해도 이미 하나님의 소유가 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어떤 힘도 하나님의 권능을 이길 수 없습니다. 심지어 '나는 지금부터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작정한다고 해도 그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그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 자신을 포함해서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생명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믿음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믿음으로 지켜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기록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두었으니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이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게 하려 함이라.(갈라디아서3장22절)

 

너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것 바로 그것을 확신하노라.(빌립보서 1장6절)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에게 미치고 믿는 모든 자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의니 거기에는 차별이 없느니라.(로마서3장22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갈라디아서2장20절)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해 수치를 멸시하시며 십자가를 견디셨고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혀지셨느니라.(히브리서12장2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거룩히 구별하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존하시며 부르신 자들에게 편지하노니(유다서1장1절)

 

우리가 믿지 아니하여도 그분은 항상 신실하시니 그분은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느니라.(디모데후서2장13절)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는도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으니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시리요? 그분께서 이르셨으니 그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시리요?(민수기 23장19절)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이제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이들은 세상에 있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오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키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한복음 17장11절)

 

 

교회는 완벽한 존재입니다.

또 너희는 모든 권력과 권능의 머리이신 그분 안에서 완벽하며(골로새서2장10절)

 

교회는 완벽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중간에 구원을 잃을 수 있는 존재라면 완벽이라는 단어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참고로 영어 킹 제임스 성경은 complete로 되어 있는데, 천주교 소수사본을 바탕으로 번역된 현대역본 성경들은 이 단어를 fullness로 변개하여 의미를 왜곡시켰습니다.

 

그분께서 한 번 헌물을 드림으로써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기 때문이라.(히브리서10장12절~14절)

위의 히브리서 말씀에서의 완전은 perfect입니다. 퍼펙트라는 단어도 구원을 잃을 수 있는 존재에는 사용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이 구절은 KJV는 물론이고 NIV와 같은 현대역본도 perfect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너희는 마지막 때에 드러날 준비가 되어 있는 구원에 이르도록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받고 있느니라.(베드로전서 1장5절)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교회를 사셨으며, 교회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받고 있으며, 부활의 날까지 하나님에 의해 봉인되어 있으며, 성령 하나님께서 영원히 내주하시며, 아들 하나님과 아버지 하나님의 손안에서 보호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감히 하나님의 권능을 이기고 봉인을 뜯어내어 하나님의 손 안에서 교회를 빼앗을 수 있단 말입니까? 성도 자신은 물론이고 사탄조차도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만약 구원을 받았다가 잃어버릴 수 있다면 그것은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구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구원을 불완전하게 만들어 놓으실까요? 이는 하나님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마귀의 아들이었다가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가 다시 마귀의 아들로, 이런 식으로 왔다 갔다 한다는 게 믿겨지시나요? 하나님께서 이토록 경박스럽게 구원 시스템을 만드셨을까요? 위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구원은 우리의 믿음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믿음으로 지켜지는 것입니다. 한 번 믿음으로 구원받으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믿음으로 우리를 꽉 잡고 놓아주시지 않습니다.

 

성령침례란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 안으로 푹 잠기는 것을 뜻합니다. 성령님과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은 하나이시기 때문에 성령침례를 받게 되면 삼위일체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교회를 사셔서 자신의 몸 안에 가두시는 것이죠. 따라서 한 번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밖으로 나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존재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 번 구원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면 영원히 하나님 안에, 즉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는 구원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도 않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은 악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행하는 모든 의를 더러운 누더기로 보십니다(이사야서64장6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은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7장21절). 여기서 하나님아버지의 일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성경은 성경으로 푼다고 했습니다. 아래의 성경구절에 정답이 나와 있습니다.

 

그때에 그들이(예수님의 제자들) 그분께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나님의 일들을 하리이까? 하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너희가 믿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한복음6장28절~29절)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이것이니 곧 아들을 보고 그를 믿는 모든 자가 영존하는 생명을 얻는 것이니라.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 하시니라.(요한복음6장40절)

위의 성경말씀에서 보다시피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믿는 것이며 그게 바로 하나님의 일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 그 자체를 원하시는 겁니다.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에베소서 2장8절)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선물로 받은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된 게 아닙니다. 구원을 받을 때는 인간의 행위 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받았는데 구원을 잃을 때는 인간의 행위가 영향을 끼친다? 이는 논리적 모순입니다. 따라서 구원을 잃는 것도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으며(디도서3장5절)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그것이 더 이상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라. 그러나 만일 그것이 행위에서 난 것이면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행위가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니라.(로마서 11장6절)

 

그러므로 우리가 결론을 내리노니 사람은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느니라.(로마서 3장28절)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고, 구원을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행위로는 구원을 잃을 수도 없습니다. 오직 믿음을 통해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으며, 구원의 유지 또한 예수님의 권능과 말씀으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력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창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하리라.(로마서 8장38절~39절)

 

위의 성경구절에서 보시다시피 현재나 미래의 어떤 일도 어떤 창조물도 구원을 잃어버리게 할 수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어떤 창조물에는 구원받은 성도 자신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들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하고 또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라.(요한일서 5장13절)

 

 

 

성경문제

 

지금은 말세의 시대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구원이 제일 중요합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개역개정 성경을 읽고 혹시 실족할 가능성이 있다 생각되는 부분을 가져왔습니다. 구원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몇 개의 구절들만 비교해 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2장2절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개역개정)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킹제임스흠정역)

 

킹제임스 성경은 이미 구원받은 성도가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통해 성화를 이루라는 의미로 적혀 있는데, 개역개정 성경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자라는 과정을 통해서 구원을 이루라는 뜻으로 적혀 있습니다. 개역개정 성경만을 보는 사람들은 이 구절을 읽고 오해하기 딱 좋지 않겠습니까? 이 구절을 오해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고 착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구원받은 성도들은 다시 태어난 자들이라고 나와 있습니다(요한복음1장12절~13절, 3장7절, 베드로전서1장23절, 고린도후서5장17절). 태어난 후에는 성경말씀으로 성장해야 하는 것이죠. 개역개정 성경은 말씀이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단지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되어 있어서 그 젖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도 모르게끔 만들어 놓았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나와 있는데 개역개정 성경은 믿음이 아니라 성장하는 과정, 즉 어떤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이루어 나가라는 의미로 적혀 있어서 행위구원의 교리처럼 되어 있습니다.

 

빌립보서2장12절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개역개정)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같이 내가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킹제임스흠정역)

 

킹제임스 성경은 이미 얻은 구원을 밖으로 드러내라는 뜻으로 번역하였는데, 개역개정 성경은 아직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앞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고 완전히 오역을 해 놓았습니다. 즉, 무엇인가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성취하라는 뉘앙스로 번역되어 있어서 자칫 행위구원으로 착각할 소지가 다분합니다. 킹제임스 영어 성경을 보면 'work out your own salvation'으로 되어 있습니다. 'work out'이라는 단어는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을 밖으로 드러낸다는 뜻이죠. 즉, 이미 구원받은 성도에게 하는 말입니다.

 

골로새서1장14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개역개정)

 

그분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킹제임스흠정역)

 

개역개정 성경은 피를 삭제하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피 흘림이 없으면 죄의 사면이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히브리서9장22절). 따라서 피를 제거한 것은 그리스도의 피를 믿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에베소서4장6절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개역개정)

 

한 하나님이 계시니 곧 모든 것의 아버지시라. 그분께서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에 두루 계시며 또 너희 모두 안에 계시느니라.(킹제임스흠정역)

 

킹제임스 성경은 한 하나님이라고 정확히 표현하였으며, 너희 즉, 구원받은 성도들 안에 계신다고 나와 있는데, 개역개정 성경은 하나님이 한 분이라고 잘못된 표현을 하고 있으며 성도들 안에 내주하고 계신다는 부분도 삭제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한 분이 아니라 세 분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 이렇게 세 분의 인격체로 존재하시는데 이 세 분이 한 하나님이라고 나와 있습니다(요한일서5장7절). 성경을 보면 아버지 하나님과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나와 있습니다(요한복음17장3절). 따라서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영생을 얻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7장12절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개역개정)

 

내가 그들과 함께 세상에 있을 때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켰나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내가 지켰고 멸망의 아들 외에는 그 중의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성경기록이 성취되게 하려 함이니이다.(킹제임스흠정역)

 

개역개정성경은 아버지의 이름이 원래 예수였다고 오역하여 아버지 하나님도 예수님이라고 오해하게끔 하였습니다. 이는 양태론과 이중아담론 등 많은 이단이 생기게 된 원인 중 하나입니다. 앞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믿음의 대상이 정확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킹제임스 흠정역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진 자들, 즉, 예수님의 제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켰다고 올바르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여기서의 이름은 아버지 하나님의 권능을 뜻하는 말입니다.

 

로마서1장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개역개정)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 복음이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로다.(킹제임스흠정역)

 

고린도전서9장18절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개역개정)

 

그런면 나의 보상이 무엇이냐? 진실로 내가 복음을 선포할 때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값없이 선포하고 이로써 복음 안에 있는 나의 권리를 남용하지 아니하는 것, 그것이로다.(킹제임스흠정역)

 

위의 로마서와 고린도전서의 성경구절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구절입니다. 개역개정 성경은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되어 있는 것에서 그리스도를 삭제하여 어떤 복음인지 모르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복음의 종류가 많이 있습니다. 왕국의 복음도 있고 거짓 복음도 있고 다른 복음도 있습니다. 어떤 복음인지 알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명확하게 적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15장29절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개역개정)

 

내가 너희에게 갈 때에 그리스도의 복음의 복을 충만히 가지고 갈 줄로 확신하노라.(킹제임스흠정역)

 

이번에는 복음이라는 단어를 삭제한 경우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명확하게 나와 있지만, 개역개정 성경은 복음이라는 말씀을 삭제하여 충만한 복이 어떤 복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로마서11장6절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개역개정)

 

만일 은혜로 된 것이라면 더 이상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라. 그러나 만일 그것이 행위에서 난 것이라면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행위가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니라.(킹제임스흠정역)

 

위의 성경구절은 행위로는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엄청나게 중요한 성경구절입니다. 그런데 개역개정 성경은 후반부를 삭제하였습니다. 후반부는 행위는 은혜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이 외에도 개역개정 성경은 마태복음18잘11절, 누가보금9장56절 등 구원과 관련된 여러 구절을 삭제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4장1절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개역개정)

 

그런즉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하셨으니 그와 같이 너희도 같은 생각으로 무장하라. 이는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한 자가 이미 죄를 그쳤기 때문이니(킹제임스흠정역)

 

개역개정 성경은 '우리'라는 단어를 삭제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감추고 있습니다. 또한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하셨다는 말씀을 그냥 육체의 고난을 받았다고 하여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셨다는 사실도 감추고 있습니다.

 

 

결론

 

지금까지 구원과 관련한 중요한 성경 구절들을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이 외에도 개역 성경과 개역개정 성경은 굉장히 많은 부분이 변개되거나 삭제되거나 추가되었습니다. 개역 성경과 개역개정 성경은 천주교 성경과 거의 흡사합니다. 번역을 위해 참고한 원본이 동일한 계열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보혈대속을 통해서 지옥에 가야 할 인간의 모든 죄를 미래의 죄까지도 모두 포함하여 단 한 번에 완벽하게 영원무궁토록 제거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받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미흡하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행위를 더하려고 한다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인간의 행위로 그리스도의 순수한 피를 오염시키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께 대한 반역행위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후서를 마감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의 서신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른 성경기록들(구약성경)을 왜곡했던 경우가 있었던 것처럼 바울의 서신도 왜곡하다가 스스로 파멸에 이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베드로후서3장16절). 여기서 뜻하는 왜곡과 파멸이 무엇인지는 마지막 구절에 나와 있습니다. 베드로는 오직 은혜 안에서 자라야만 한다고 하면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서 자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베드로후서3장18절). 즉, 오직 은혜라는 겁니다. 은혜의 반대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왜곡해서 파멸에 이르는 짓은 행위구원의 교리라는 뜻입니다.

 

또한 저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믿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무궁토록 완전하게 하신 십자가 보혈대속사역을 믿지 않는 겁니다. 예수님의 피가 퍼펙트하다고 믿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중간에 잃어버릴 수도 있는 구원은 불완전한 구원이죠. 이런 구원은 구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한 번에 성도들을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다고 나와 있으며 구원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고 하셨으며 수많은 구절에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믿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겁니다.

 

다만 구원받은 이후에 성경공부를 하다보면 조금 헷갈리는 구절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서 영원한 구원을 의심하게 되거나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구원받은 후에 의심한다고 해서 구원을 잃어버리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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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상실교리 반박(총정리) 1편 -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믿으면 지옥에 갑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날이 임박했기 때문에 제목을 좀 자극적으로 적었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쓰는 글의 내용도 자극적일 수 있습니다. 행위구원교리(구원상실교리)를 믿고 있는 분들께서는 불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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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는 행위구원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어떤 한 문장만을 교리로 삼으려 하면 안 됩니다. 문장의 앞과 뒤를 보고 문맥의 의미를 살피는 게 먼저입니다. 그래도 잘 이해가 안 되면 해당 챕터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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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상실교리 반박(총정리) 2편 - 잘못 해석된 성경구절들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들에 대한 오해 이제 본격적으로 구원이 취소되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성경구절들을 살펴볼 겁니다. 그런데 그런 성경구절들이 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지를 가장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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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구원받았는지 확인하는 법

지금부터 쓰는 글은 성경말씀과 여러 목사님들(외국인 목사 포함)의 설교 말씀을 참고하여 작성하는 글입니다. 목사님들의 성함을 밝히지 않는 것은 제 개인적인 의견을 추가하고자 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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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성도는 반드시 지역교회에 가야만 할까?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서 성경의 기본 교리들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 글은 남겨진 사람들이 읽을 것이기 때문에 크리스천, 즉 교회 성도는 아닐 겁니다. 환난성도들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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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별 : 네이버 블로그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에베소서2장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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