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을 읽을 때는 어떤 한 문장만을 교리로 삼으려 하면 안 됩니다. 문장의 앞과 뒤를 보고 문맥의 의미를 살피는 게 먼저입니다. 그래도 잘 이해가 안 되면 해당 챕터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어보면서 그 의미를 파악해야 하고 그래도 잘 이해가 안 되면 성경 전체의 논리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어떤 의도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야고보서는 구원교리를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성화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즉, 구원받은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의 행동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속으로는 믿지 않으면서 말로만 믿는다고 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믿었기 때문에 행동으로도 나타나는 사람인지 이런 것을 살펴보는 책입니다.
참고로 야고보서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님은 사도 요한의 형제 야고보(큰 야고보)일 가능성도 있고 주님의 형제 야고보일 가능성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큰 야고보가 기록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항상 함께 다녔으며 예수님께서 가까이 데리고 다녔던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요한의 비중이 높고 베드로도 전후서를 기록했기 때문에 큰 야고보 또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행위구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야고보서2장14절부터 26절까지의 말씀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행위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내 형제들아, 사람이 자기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행위가 없으면 그것이 무슨 유익을 주겠느냐?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가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떠나라. 너희는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하라, 하고는 몸에 필요한 그것들을 너희가 그들에게 주지 아니하면 그것이 무슨 유익을 주겠느냐? 이와 같이 믿음도 행위가 없으면 그것만으로는 죽은 것이니라. 참으로 어떤 사람은 이르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위가 있으니 네 행위가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내 행위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느니라. (야고보서2장14절~18절)
행위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문장은 야고보서 전체의 핵심입니다. 여기서의 죽은 믿음이란 애초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위가 있으니 네 행위가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내 행위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이 문장의 의미를 풀어서 쓰면 이렇습니다.
당신은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주장하지만 구원받은 사람에게서 나와야 하는 모습이 전혀 안 보인다. 내가 보기에는 당신은 구원받기 이전과 이후의 차이가 없는 거 같다. 내가 행위를 통해서 나의 믿음을 증명하고 있듯이 당신도 행위로 믿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당신을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인정하게 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즉, 자기 스스로 구원받았다는 어떤 사람에게서 믿음의 행위가 전혀 나오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으로 의심받게 된다는 겁니다. 이런 믿음이 바로 죽은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의 행위를 인간 기준의 어떤 선행(착한 일)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의를 더러운 누더기로 보십니다(이사야서64장6절). 물론 크리스천 성도는 당연히 인간 기준의 착한 일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 기준의 착한 일은 오히려 불교를 믿는 사람들과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이 더 잘 합니다. 크리스천 성도에게는 선한 행위도 중요합니다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야고보서4장17절, 요한삼서1장11절, 베드로전서3장11절). 인간 기준의 선행과 하나님 기준의 선을 행하는 것은 다릅니다. 선을 행한다는 것은 믿는 것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선을 행한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들은 정죄의 부활로 나오리라.(요한복음5장29절)
그때에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나님의 일들을 하리이까? 하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너희가 믿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한복음6장28절~29절)
영생은 이것이니 곧 그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인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한복음17장3절)
성도가 해야 할 일은 선을 행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성도가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일입니다. 따라서 선을 행하는 성도의 일은 예수님을 믿는 일입니다. 믿어야 생명의 부활로 나와서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생은 곧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알아야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지 못하는데 믿을 수는 없습니다. 즉, 믿는 것은 아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다시 태어난 크리스천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자 하는 열정이 생기고 그로 인해서 실제의 행동이 밖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구원받기 이전에 비해서 언행이 달라졌다든지, 성경책을 많이 본다든지, 지역교회에 나간다든지, 성경강해 영상을 시청하거나 듣는다든지, 경건서적을 읽는다든지, 낙태와 진화론을 반대한다든지,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을 보호하려고 한다든지, 교회 성도와 교제를 나눈다든지, 이해가 안 되거나 난해구절이 나오면 유투브나 인터넷 웹사이트 등에서 좀 더 심도 있게 공부한다든지,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한다든지 등등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들이 전혀 나오지 않고 구원받기 이전의 상황과 똑같거나 혹은 건성으로 지역교회에만 나온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의 믿음은 죽은 믿음일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믿음을 행위로도 증명해야 하는 겁니다.
야고보서가 작성되던 당시는 로마시대였습니다. 로마 전역에 이방신들을 섬기던 신전이 있었고 그곳에 무녀들이 있었는데 무녀(巫女)들은 창녀의 역할도 했습니다. 당시의 남자들은 로마의 신전에 들러서 무녀들과 음행하고 즐기는 것을 당연시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그런 짓을 계속 일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고린도전서6장15절~18절 참조). 구원받기 전과 후가 차이가 없다면 그런 사람을 어찌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네가 한 하나님이 계시는 줄 믿으니 그것은 잘 하는 일이니라. 마귀들도 믿고 떠느니라. 그러나 오 허무한 사람아, 행위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인 줄 네가 알고자 하느냐?(야고보서2장19절~20절)
행위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은 앞에서 이미 설명해 드렸습니다. 애초부터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믿음이 없으니 행위도 없는 겁니다. 그런데 위의 성경말씀에는 약간 난해한 문장이 들어있습니다. 한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마귀들도 알고 믿고 떤다는 문장이죠. 하나님이 한 하나님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귀도 믿고 있고 떨고 있다니? 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위의 말씀은 하나님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고 믿음의 행위는 전혀 하지 않는 거짓 믿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런 거짓 믿음은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위의 성경구절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가짜 믿음이라는 큰 틀에서는 벗어나지 않습니다. 대동소이하다는 뜻이죠. 다만, 저는 그러한 거짓 믿음이 루시퍼와 타락한 천사들이 이 세상에 내려온 이후에 생긴 거짓 믿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거짓 믿음은 마귀들이 셋째 하늘에서 가지고 있었던 그러한 거짓 믿음을 뜻한다고 봅니다. 이 세상에서의 루시퍼와 타락한 천사들에게는 더 이상 회개할 기회가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지옥으로 갈 운명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회개할 기회가 주어졌던 곳은 셋째 하늘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금방 알아보긴 했지만(마가복음1장24절, 3장11절, 5장7절, 마태복음8장29절, 누가복음4장34절)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생각을 못 하는 겁니다. 더 이상의 기회가 없기에 아예 회개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만, 이는 제 개인적인 성경해석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가능한 많은 인간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겁니다.
루시퍼와 타락한 천사들에게는 어째서 더 이상 회개할 기회가 없는지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된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s://smallstars7.tistory.com/326
사탄 루시퍼가 창조된 시기 - 재창조 이론의 허구성 증명
저는 얼마 전에 재창조 이론, 즉 간극 이론은 성경에는 없는 잘못된 이론이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재창조 이론을 믿고 있는 분들 중에서는 사탄의 창조시기와 관련해서 아직도
smallstars7.tistory.com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민족들을 약하게 한 자야, 네가 어찌 끊어져 땅바닥으로 떨어졌는가! 네가 네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내가 하늘로 올라가 내가 하나님의 별들 위로 내 왕좌를 높이리라. 내가 또한 북쪽의 옆면들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내가 구름들이 있는 높은 곳 위로 올라가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이 되리라, 하였도다.(이사야서14장12절~14절)
루시퍼가 셋째 하늘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이유를 추측하자면,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서 만든 창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만심이 생겨서 하나님과 똑같이 되고자 했던 겁니다. 루시퍼는 자신의 쿠데타가 실패할 것을 몰랐습니다. 만약 알았더라면 애초에 교만한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루시퍼는 자유의지를 가진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이 자유의지입니다. 만약 인간에게 루시퍼와 같은 능력이 있었다면 아마도 루시퍼와 똑같이 하나님께 반역하고 쿠데타를 일으킬 인간들이 수두룩했을 겁니다.
인간이 말로만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의 행동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동만 한다면 이런 사람이 지닌 믿음은 거짓 믿음이며, 다른 말로는 죽은 믿음 또는 마귀의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물론 인간은 더 이상 회개할 기회가 없는 마귀들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야고보서에서 죽은 믿음 또는 마귀의 믿음이라고 할 때는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마귀들이 셋째 하늘에서 쫓겨나게 된 원인이었던 그 거짓 믿음, 즉 속으로는 믿지 않는 믿음이라는 측면에서 마귀와 똑같기 때문에 그렇게 칭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해석합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말로만 "주여 주여"하는 자들에 대한 말씀이 있는데(마태복음7장21절~23절), 그들은 겉으로만 믿는 척을 했을 뿐, 실제로는 믿는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처음부터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에게도 의롭다 인정받는 것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 위에 드릴 때에 행위로 의롭다고 인정받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보는 바와 같이 믿음이 그의 행위와 함께 일하였고 행위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것이 그에게 의로 전가되었느니라, 하고 말하는 성경기록이 성취되었고 그는 하나님의 친구라 불렸느니라. 그런즉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사람이 행위로 의롭다 인정받고 믿음만으로 인정받지 아니하느니라.(야고보서2장21절~24절)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릴 때 행위로 의롭게 되었다는 말씀을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인간의 어떤 행위로도 의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인간의 행위로는 절대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이름이 아브람이었을 때 이미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창세기15장6절). 이미 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쳐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행위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은 사람들의 눈에도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사람들로부터도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게 하고 싶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러 갈 때 여러 명의 청년들이 있었습니다(창세기22장5절). 아브라함은 자신의 믿음을 그 청년들 앞에서 증명하였던 겁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고자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바치는 행위를 통해서 사람들 앞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여겨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다고 인정받았으면 그 일에 대하여 자랑할 것이 그에게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 기록이 무어라고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하느니라. 그런데 일하는 자에게는 품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겨지지만, 일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분을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로마서4장2절~5절)
위의 로마서4장은 야고보서의 아브라함 관련 구절을 해설하고 있는 성경말씀이라고 보면 됩니다. 보다시피 아브라함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더라도 주님을 믿는 그 믿음만 있으면 그 믿음이 의로 여겨진다고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논쟁의 여지가 없이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는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 성령 안에서 의롭다 인정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시고 세상에서 사람들이 믿는 분이 되시고 들려서 영광으로 들어가셨느니라.(디모데전서3장16절)
위의 성경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의롭다 인정받으셨다고 나옵니다. 하나님은 원래 의로운 분이신데 의롭다 인정을 받으셨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이 말씀은 사람들 앞에서도 의롭다는 것을 증명하셨다는 뜻입니다. 육체로 오신 하나님, 즉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창녀 라합도 사자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다른 길로 보냈을 때에 행위로 의롭다고 인정받지 아니하였느냐?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그렇게 행위 없는 믿음도 죽었느니라.(야고보서2장25절~26절)
창녀 라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이미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었습니다. 위의 성경말씀은 그녀가 자신의 믿음을 유대인들에게 행위로 증명하였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으로부터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고 유대인들로부터는 행위로 의롭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르단 저쪽에 있던 아모리 족속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진멸한 일을 우리가 들었노라. 우리가 이 일들에 관하여 들은 뒤에 곧바로 우리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인해 어떤 사람에게도 더 이상 용기가 남지 아니하였나니 주 너희 하나님 즉 그분은 위로 하늘에서와 아래로 땅에서 하나님이시니라.(여호수아기2장10절~11절)
라합은 여호와 하나님을 이미 자신의 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라합은 유대인 정탐꾼들을 숨겨주고 탈출시켜야만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라합이 여리고성을 정탐하러 온 유대인들을 고발하였다면 그녀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어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믿음이 행위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노아의 방주와 짐승의 표
비록 야고보서에 나오는 스토리는 아니지만 방주를 만들었던 노아도 동일한 경우입니다. 행위구원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던 것을 행위라고 주장합니다. 믿음만으로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 또한 창녀 라합의 경우와 마찬가지입니다. 노아는 인간을 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창세기6장13절). 만약 방주를 만들지 않으면 그는 죽게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명령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 노아가 방주를 만든 것은 믿음으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행위로 나온 것입니다. 믿음 따로 행위 따로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의 표도 마찬가자입니다. 일부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은 환난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믿음만으로는 안 되고 행위를 통해서 구원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짐승의 표를 거부하는 행위를 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 또한 오해입니다. 성경에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기록되어 있는데 어떻게 짐승의 표를 받을 수 있습니까. 믿음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행위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짐승의 표를 거부하면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고 짐승의 표를 받으면 지옥에서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믿음이 있다면 이 둘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제가 위에서 극단적 세대주의자라고 표현한 이유는 저의 성경해석 방법이 그들보다 상대적으로 온건하다는 뜻에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성경을 오해하여 극단적인 교리를 주장하기 때문에 그렇게 칭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의 진리는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는 방법도 하나입니다. 둘이나 셋이 될 수는 없다고 믿습니다. 환난 속에 들어간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방식을 거부하고 인간의 행위를 내세우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행위구원의 교리는 마귀의 교리입니다. 환난 속에 들어간 사람도 제대로 된 복음으로 구원을 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그들을 지옥에 보낼 수는 없습니다. 이런 짓을 어찌 그냥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있단 말입니까.
환난 속에 들어가서 행위구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아마도 이럴 겁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긴 하지만, 예수님의 피만으로는 부족하다. 짐승의 표를 거부하기 전까지 나는 아직 구원받은 상태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피가 짐승의 표보다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짐승의 표 따위가 하나님의 거룩한 피를 이기고 인간의 구원을 결정한다는 믿음은 마귀의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짐승의 표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일단 구원받은 이후에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지 나중에 일어날 인간의 행동을 미리 염두에 두고 하나님의 피를 무시하는 믿음이 어찌 순수한 믿음일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이런 믿음은 받아주시지 않습니다.
구원에 인간의 행위가 첨가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시스템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두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천국에 가서 하나님께 "99프로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셨지만 나머지 1프로는 저의 행위로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라고 자랑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짐승의 표를 거부하는 행위는 성경을 믿지 않는 일반인들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냥 음모론 같은 지식에 의지해서 거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그냥 찝찝해서 거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급자족이 가능한 사람도 거부할 수 있을 겁니다. 또는 환난 속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게 된 성도라고 해도 수면제를 먹여서 강제로 짐승의 표를 받게 되는 경우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따라서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와는 관계없이 구원은 인간의 행위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대환난에서 끝까지 견디는 자
일부 세대주의자들 중에서는 대환난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인간의 행위로 끝까지 견뎌야만 구원받아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달라서 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성취해야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는 잘못된 해석입니다.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성경문구를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은 시대를 나눠서 봐야 합니다. 그러나 구원에 관해서는 오직 믿음뿐입니다. 시대와 상관없이 인간의 어떤 행위로도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 바로 그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왕국의 이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증언으로 온 세상에 선포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태복음24장13절~14절)
위의 구절은 천국과 지옥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여기서의 끝은 환난의 끝을 뜻하며 끝까지 견뎌 구원받는 자들이란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자들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14절을 잘 보세요. 왕국의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증언되고 온 세상에 선포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는 마귀의 세력이 무너지고 하늘의 왕국이 선포되면서 천년왕국이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환난 속에서 회개하고 구원받아서 적그리스도에게 저항하다가 목이 잘려 죽은 사람은 끝까지 견딘 사람인가요 아니면 중간에 탈락한 사람인가요? 이들도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끝까지 견디지 못해서 천년왕국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날들이 단축되지 아니하면 어떤 육체도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나 선택 받은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이 짧아지리라.(마태복음24장22절)
위 문장에 나오는 단어들을 잘 보세요. 예수님께서는 환난이 길어지면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교회의 휴거 이후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은 유대인들이 단 한 명도 없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환난이 길어지면 단 한 명도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뜻일까요? 그런 뜻이 전혀 아닙니다. '선택받는 자들'이라 말씀하셨으므로 환난 속에서도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문장에서 주목해서 봐야 할 단어는 '육체'입니다. 성경은 사람을 칭할 때 혼이라고 합니다(창세기2장7절, 46장26절~27절, 출애굽기12장15절). 특히 구원받은 인간을 칭할 때 혼이라 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사도행전2장41절). 따라서 육체가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은 인간의 몸이 죽는다는 뜻이며 문맥상 천년왕국에 몸을 가지고 들어가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즉, 이 구절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만약 환난의 기간이 길어지면 천년왕국에 들어갈 사람이 한 명도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분께서, 오라, 하고 말씀하시매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와 예수님께 가려고 물 위로 걸어갔으나 바람이 사나운 것을 보고 두려워하다가 가라앉기 시작하므로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즉시 예수님께서 손을 내미사 그를 붙잡으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오 믿음이 적은 자여, 네가 어찌하여 의심하였느냐? 하시니라.(마태복음14장29절~31절)
위는 베드로가 물에 빠지는 순간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구원은 천국에 가게 해 달라는 구원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save)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성경에서 구원이라고 할 때는 영원한 생명을 뜻하는 구원인지 아니면 어떤 위기에서 탈출하는 상황인지 또는 위의 마태복음 말씀처럼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상황인지를 잘 보고 판단하셔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항상 문맥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앞뒤 구절도 살피고, 때에 따라서는 해당 챕터 전체를, 더 나아가 해당 책 전체를 이해하고 읽으셔야 합니다.
구원에 관한한 오직 하나님의 공로와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이는 시대와 상관없는 대원칙입니다. 창조물 따위가 창조주의 권한을 침범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교만입니다. 또한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것도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시스템에 인간의 행위가 들어갈 수 있다면 마귀가 그 행위에 개입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가능성 자체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을 때는 물론이고 구원의 유지 또한 하나님께서 해 주십니다.
물론 인간이 모든 율법을 다 지키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인간이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모든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 자체가 율법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으로 무엇을 조금이라도 탐하거나 또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약시대의 모든 율법은 인간에게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용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들로는 어떤 육체도 그분의 눈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없나니 율법에 의해서는 죄를 알게 되느니라.(로마서3장20절)
그러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율법이 죄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리니 율법이, 너는 탐내지 말라, 하고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욕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로마서7장7절)
구약시대에는 율법을 지켜야만 했기 때문에 믿음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일부 세대주의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구약시대에 모든 율법을 다 지켜서 구원받은 사람이 과연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대체 그게 누구인가요?
야고보서는 구약시대와 마찬가지라서 믿음+행위의 책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아래의 성경말씀을 자세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모든 것에서 유죄가 되나니(야고보서2장10절)
보다시피 야고보서에는 조그마한 율법 단 한 개만이라도 어기면 모든 율법을 어긴 것과 마찬가지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존재할 수 있을까요?
구약시대에도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씀드리면 비딱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렇게 되받아칩니다. "그럼 율법은 무시해도 되겠네요? 안식일도 무시하고 그냥 자기 멋대로 살아도 되겠네요?"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지금 은혜의 시대라고 해서 방탕하게 사는 크리스천들이 있나요? 구약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 이후로는 성화의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구약 성도들에게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성화되는 과정입니다. 그게 훗날 천국에서 보상을 받는 기준이 되는 겁니다.
제가 계속해서 말씀드립니다만, 유월절에 이집트를 탈출한 1세대 유대인들은 어린양의 피를 뿌리는 순간 모두 구원받았습니다. 광야에서의 40년은 성화의 과정입니다. 물론 그들이 율법을 어기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구원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아론과 미리암도 불신의 행위를 했으며(민수기12장) 모세도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습니다(민수기20장). 즉,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이 모두 하나님께 대한 반역으로 인해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옥으로 간 게 아니라 아브라함의 품(낙원)에 들어갔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랩은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계실까봐 말씀드립니다만, 일단 가나안땅은 천국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기억하셔야 합니다. 가나안땅에서도 범죄행위와 질병과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천국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래의 성경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를 홀로 내버려두라. 내가 그들에게 맹렬히 진노하여 그들을 소멸(육체의 죽음)시키고 너로부터 큰 민족을 만들리라, 하시니(출애굽기32장10절)
위의 말씀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아왔을 때, 백성들이 황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보고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를 진멸하신 후에 모세로부터 새로운 민족을 일으키시겠다고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랩도 황금송아지를 만드는 일에 가담했습니다(출애굽기32장3절).
만약 일부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어린양의 피로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들이 구원을 잃을 수 있다면, 유대인들은 단 한 명도 구원을 유지하지 못하고 모두 지옥에 갔다는 뜻이 됩니다. 왜냐하면 모세와 여호수아를 포함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지 않았던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도 한 번 구원받은 성도는 절대로 구원을 잃지 않습니다. 환난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님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믿음 이후부터는 성화의 과정입니다. 믿음과 성화의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는 아래 링크를 클릭하셔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smallstars7.tistory.com/285
구원상실교리 반박(총정리) 2편 - 잘못 해석된 성경구절들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들에 대한 오해 이제 본격적으로 구원이 취소되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성경구절들을 살펴볼 겁니다. 그런데 그런 성경구절들이 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지를 가장 잘
smallstars7.tistory.com
https://smallstars7.tistory.com/284
구원상실교리 반박(총정리) 1편 -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믿으면 지옥에 갑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날이 임박했기 때문에 제목을 좀 자극적으로 적었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쓰는 글의 내용도 자극적일 수 있습니다. 행위구원교리(구원상실교리)를 믿고 있는 분들께서는 불쾌한
smallstars7.tistory.com
https://smallstars7.tistory.com/282
구원은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들어가기 전에 우선 구원이 무엇인지부터 깨달아야 합니다.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을 뜻합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죄에서 구원받지 못하면 그대로 죽어서 지
smallstars7.tistory.com
https://smallstars7.tistory.com/312
방언에 대하여
성경을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충돌하는 가장 민감한 주제를 세 가지만 말해보라고 하면 아마도 첫째는 영원한 구원인가 아니면 구원을 잃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환난 전에 휴거
smallstars7.tistory.com
https://blog.naver.com/smallstars7
작은별 : 네이버 블로그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에베소서2장8절)
blog.naver.com
'성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나님의 이름이 말씀인 이유(성경을 바르게 읽는 법) (0) | 2025.12.01 |
|---|---|
|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은 JHVH, 즉 여호와입니다. (0) | 2025.11.25 |
| 70인역의 실체 (0) | 2025.11.17 |
|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는 진짜 의미 (0) | 2025.11.15 |
| 데살로니가후서2장 성경난해구절 해설 - 환난 전 휴거와 환난 통과설 (0) | 2025.1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