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들에 대한 오해
이제 본격적으로 구원이 취소되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성경구절들을 살펴볼 겁니다. 그런데 그런 성경구절들이 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을 알고 나면 보다 쉽게 오해를 풀 수 있기 때문에 먼저 유대인들의 유월절 사건과 출애굽 이후에 광야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잠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출애굽기에서 홍해를 건너서 이집트를 탈출한 유월절 1세대 유대인들은 모두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게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상실교리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아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유월절에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뿌린 사람들은 모두 구원받았습니다. 어린양이 예수님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어린양의 피를 믿고 그 피를 뿌렸을 때 구원이 이루어진 겁니다. 그 이후부터 일어났던 모든 일들은 구원과는 상관없고 성화와 관련된 사건들입니다.
광야에 들어간 유대인들은 천사들의 음식인 만나를 먹었고 사십 년 동안 옷이 해어지지 않았으며 발이 부르트지 않았습니다(신명기8장4절, 느헤미야9장21절). 이는 천국의 예표이며 훗날 썩지 않는 몸을 받게 될 성도들과 교회의 예표입니다.
유대인들 중에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지 않은 사람도 있지 않겠냐는 의문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만, 성경 어디에도 당시 이집트에 있던 유대인들 중에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사람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유월절 당시를 기록한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행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주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출애굽기12장28절)
그리고 신약성경의 고린도전서10장을 보면 유대인 조상들이 모두 바다 속에서 침례를 받았다고 나와 있으며 모두 그리스도의 반석에서 나온 영적 음료를 마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10장4절을 영어성경으로 보면 반석이 Rock으로 나와 있습니다. 두 번 모두 R이 대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주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집트에서 탈출한 1세대 유대인들은 모두 구원받았음이 확실합니다. 즉, 광야에서의 삶은 구원받은 사람들의 성화과정입니다.
모세와 아론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전 글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인간의 죄는 도토리 키 재기와 같은 겁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황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숭배했던 죄나 모세가 반석에게 말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반석을 쳐서 물을 낸 죄나 차이가 별로 없다는 뜻입니다. 모세가 죄를 지어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해서 구원받지 못했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간음죄를 범한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비록 죄를 저질렀어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벌할 때 지옥으로 보내는 일은 하지 않으십니다. 체벌을 하실 뿐이죠. 물론 매우 심각한 죄를 저지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육체를 죽이십니다. 그러나 육체가 죽었다고 해서 구원이 취소되는 건 아닙니다. 영과 혼은 여전히 아브라함의 품에 있게 되며 몸도 나중에 주의 날에 최종적으로 구원받게 됩니다(다니엘서12장2절/13절, 이사야서26장19절, 시편71편20절).
신약시대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이 극악무도한 죄를 저지르면 그의 육체를 사탄에게 넘겨주어 죽이십니다. 그러나 영과 혼은 여전히 구원받은 상태 그대로입니다. 그의 육체 또한 나중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구원받습니다(고린도전서5장5절).
특히 구원받은 성도가 죽는다는 표현이나 멸망한다는 표현이 나올 때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정죄를 받아 죽게 되는 경우는 지옥에 떨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육체의 죽음을 뜻합니다(로마서8장13절, 고린도전서3장17절, 요한일서5장16절). 구원받은 이후에도 여전히 아담의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히브리서12장8절). 성경에는 형제(성도)가 범하는 죄는 죽을 수 있는 죄와 그렇지 않은 죄로 구분되어 있다고 나옵니다(요한일서5장16절~17절) 만약 성도가 하나님을 극도로 대적하는 죄를 짓게 되면 주님께서는 그 사람의 육체를 멸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절대로 잃지 않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요한복음5장24절)
위의 명확한 성경말씀을 보세요. 일단 구원받으면 영존하는 생명을 받게 되고, 정죄, 즉 죄의 판단을 받지 않게 되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나와 있습니다. 옮겨질 예정이 아니라 이미 옮겨진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영과 혼을 이미 영원한 생명의 자리로 옮겨 놓으셨습니다. 몸 또한 나중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썩지 않는 새로운 몸을 받게 됩니다.
구원이 취소되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구절 분석
지금부터 구원취소교리 또는 구원상실교리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애매모호한 성경구절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겠습니다. 인용한 성경구절들은 모두 킹 제임스 흠정역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 바로 그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마태복음24장13절)
이 구절은 인간의 행위로 끝까지 충실하게 버텨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가르치는 목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끝까지 견디지 못하면, 즉 죽을 때까지 지역교회와 목사에게 충성하지 못하면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가르치는 사이비 목사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끝은 인생의 끝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이 말씀은 14절과 함께 봐야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 바로 그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왕국의 이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증언하여 온 세상에 선포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태복음24장13절~14절)
왕국의 복음이 선포되면 끝이 오는 겁니다. 여기서의 왕국의 복음은 당연히 천년왕국을 의미합니다. 즉, 7년간의 환난이 끝나면 그제야 끝이 와서 천년왕국이 열린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끝까지 견디는 자는 환난 속으로 들어가는 유대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4장8절을 보면 "이 모든 것은 고통의 시작"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당연히 7년 환난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크리스천 성도들은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환난을 끝까지 견뎌서 또다시 구원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교회에게 주어진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올리브산에서 설교하실 당시에는 아직도 구약시대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간과하고 성경을 읽기 때문에 걸려 넘어지는 겁니다. 신약성경의 시작이 마태복음이기 때문에 마태복음부터 신약시대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올리브산에서 설교하셨을 당시는 아직도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입니다. 여전히 구약시대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아직 교회가 생기기 이전입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을 교회에 적용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에 대한 올리브산 설교말씀이 좀 더 자세히 나와 있는 구절은 마가복음13장입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인해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러나 주께서 대언자 다니엘을 통해 말씀하신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서서는 안 될 곳에 서 있는 것을 너희가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지어다.)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들로 도망할지어다.(마가복음13장14절)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서서는 안 될 곳, 즉 예루살렘의 성전에 서는 것을 보면(대환난이 시작되면) 깨닫고 도망가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초림 때에도 왕국을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거부해서 연기되었죠. 그러나 예수님께서 지상에 재림하셔서 왕국의 복음이 온 세상에 선포되면, 즉 천년왕국이 도래하면 그제야 끝이 온다는 겁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인해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러나 그들이 이 도시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다른 도시로 도망하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스라엘의 도시들을 다니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오리라.(마태복음10장22절~23절)
사람의 아들이 온다는 말씀도 동일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지상에 재림하셔서 마귀의 세력을 일순간에 멸하시면 곧바로 천년왕국이 시작됩니다. 마가복음13장14절 말씀도 환난 속에 들어간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환난 속에 들어간 유대인들에게는 끝까지 견뎌서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복음 선포의 대상자
때가 이르리니 그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며 귀가 가려워 자기 욕심대로 자기를 위해 선생들을 쌓아 두고 또 진리로부터 귀를 돌려 꾸며낸 이야기들로 돌아서리라.(디모데후서4장3절~4절)
여기서는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는 '그들'이 누구인지만 알면 됩니다. 누군지를 알고자 하면 바로 앞에 나오는 4장2절과 바로 뒤에 나오는 4장5절을 봐야 합니다.
말씀을 선포하라. 때에 맞든지 맞지 아니하든지 긴급히 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책망하고 꾸짖고 권면하라.(디모데후서4장2절)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서 깨어 있고 고난을 견디며 복음 전도자의 일을 행하고 네 사역을 온전히 입증하라.(디모데후서4장5절)
말씀 선포의 대상자가 바로 '그들'입니다. 즉, 복음을 들어야 할 대상자입니다. 불신자들이죠. 5절 말씀에도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이 복음 전도자라고 나와 있습니다. 애초에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향한 말씀 선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다가 잃어버리는 상황이 아닙니다. 진리로부터 귀를 돌린다는 것도 불신자들이 진리의 말씀을 듣고자 하지 않고 다른 꾸며낸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우리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이제 분명히 드러났느니라. 그분께서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을 통해 생명과 죽지 아니함을 밝히 드려내셨으며(디모데후서1장10절)
그러므로 내가 선택받은 자들을 위해 모든 것을 견디나니 이것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라.(디모데후서2장10절)
우리가 믿지 아니하여도 그분은 항상 신실하시니 자신을 부인할 수 없느니라.(디모데후서2장13절)
그리고 디모데후서는 죽지 않는 생명, 구원의 영원한 영광, 항상 신실하신 분 등, 오히려 구원이 영원하다는 말씀이 가득 들어 있는 책입니다.
무당과 심령술사들
한편 성령께서 마지막 때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유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에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시는데 이들은 위선으로 거짓말을 하며 자기 양심을 뜨거운 인두로 지진 자들이라. 이들이 혼인을 금하고 음식물을 삼가라고 명령할 것이나 음식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사 진리를 믿고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게 하셨느니라.(디모데전서4장1절~3절)
제가 구원상실 교리를 퍼뜨리는 사람들의 글을 반박하면서 느낀 점이 있는데, 국어를 잘 해야 바른 교리를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말씀인 듯싶습니다. 여러 단어들로 구성된 문장을 잘 이해해야만 합니다.
위의 문장에서 "믿음에서 떠나"라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을 뜻합니다. 믿었다가 믿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앞의 단어도 "어떤 사람들"입니다. '너희'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어떤 사람들"이란 7절에 나오는 "늙은 부녀들"을 말합니다. 지금도 무당이나 영매는 여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들이 결혼을 금하고 음식물을 삼가라고 '명령'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냥 말하는 게 아니라 어떤 권위를 가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일반 교회 성도들끼리는 명령을 할 이유가 없죠. 그리고 일반 성도가 왜 결혼을 못하게 한단 말입니까?
일부 주석가들의 말에 따르면 이 구절에서 음식물을 삼가라는 뜻은 아마도 채식주의를 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채식을 하게 되면 몸이 허약해지기 때문에 마귀에게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무당과 심령술사들은 마귀에게 점령당했기 때문에 양심을 뜨거운 인두로 지진 자들입니다. 믿지 않는 불신자들입니다. 애초부터 믿음에서 멀리 떠나 있는 자들이죠. 그래서 태연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이런 까닭으로 내가 긍휼을 얻었나니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내 안에서 모든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이후에 자신을 믿어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게 될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디모데전서1장16절)
보다시피 디모데전서 또한 1장에서 이미 구원이 영원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정동수 목사님은 1절에서의 믿음에서 떠난 자들을 목회자로 해석하셨습니다. 목회자들이 믿음에서 떠나 잘못된 교리로 교회 성도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죠. 물론 그들도 구원을 잃어버리지는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정동수 목사님의 해석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6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사역자가 되라는 명령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마귀들의 교리 중에는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교리도 있습니다. 복음을 처음 듣고 믿을 때 구원을 잃는다고 믿으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믿음은 처음부터 예수님의 피가 완전하지 않다고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복음을 처음 믿을 때 영원한 구원이라고 믿었다가 나중에 의심하는 경우는 괜찮습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기 때문에 그들의 구원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정동수 목사님께서는 아마도 후자를 염두에 두고 해석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인한다는 의미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또한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라. 우리가 그분을 부인하면 그분도 우리를 부인하시리라.(디모데후서2장12절)
우선 여기서의 우리는 사도 바울을 포함한 우리입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을 부인할 리가 있겠습니까? 이 말씀도 12절 한 구절만 봐서는 안 됩니다. 10절부터 19절까지 봐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선택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견디나니 이것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라. 그것은 신실한 말이로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으면 또한 그분과 함께 살리라.(디모데후서2장10절~11절)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또한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라. 우리가 그분을 부인하면 그분도 우리를 부인하시리라. 우리가 믿지 아니하여도 그분은 항상 신실하시니 자신을 부인할 수 없느니라.(디모데후서2장12절~13절)
그들에게 이것들을 기억하게 하고 그들이 말들로 인해 다투지 말 것을 주 앞에서 그들에게 명하라. 그것은 아무 유익도 끼치지 못하며 오히려 듣는 자들을 멸망시키느니라.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디모데후서2장14절~15절)
그러나 속되고 헛된 말장난들을 피하라. 그것들은 커져서 더욱더 하나님의 성품에 위배되는 것에 이르리라. 그들의 말은 궤양처럼 파먹을 터인데 그들 가운데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잘못하였으니 곧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말하여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뒤엎고 있느니라.(디모데후서2장16절~18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기초는 확고히 서 있고 거기에는, 주께서 자신의 백성인 자들을 아시느니라, 하며 또,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법에서 떠날지어다, 하는 이 봉인된 글이 있느니라.(디모데후서2장19절)
우선 10절 말씀에 구원이 영원한 영광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신실한 말이라고 합니다. 즉,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하다는 것이죠. 19절에도 하나님의 기초가 확고하다고 나와 있으며 주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법에서 떠난다고 나와 있으며 이는 봉인되어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변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12절과 13절 말씀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부인하면 그분도 부인하는데 그분은 항상 신실하시기 때문에 자신을 부인할 수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자신을 부인한다는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부인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신 말씀을 부인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요한복음 6장47절)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나의 아버지는 만유보다 더 위대하시니, 아무도 나의 아버지 손에서 그들을 빼앗아 갈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10장28~29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력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창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하리라.(로마서 8장38절~39절)
위와 같은 명백한 말씀들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12절 후반부에서 그분이 우리를 부인한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통치에 관한 말씀입니다. 해당 성경말씀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또한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라. 우리가 그분을 부인하면 그분도 우리를 부인하시리라.(디모데후서2장12절)
고난을 당한다(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다) = 통치의 보상을 받는다
예수님을 부인한다 = 부인하는 너희에게 통치의 보상을 주지 않는다
12절 후반부의 부인은 예수님께서 너희(부인하는 너희)와 함께 통치한다는 앞의 말씀을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즉, 보상에 관한 말씀인 것이죠. 당시에는 로마 제국의 압제가 심하던 때였으며 황제숭배를 강요하던 때였습니다. 따라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통치의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여기서의 통치는 천년왕국에서의 통치를 의미하는 겁니다.
부인하다로 쓰인 deny 다음에 사람이 나오면 다른 목적어가 나오는 게 보통입니다. 누가 ~하는 것을 부인한다 또는 거절한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런데 위의 말씀에서는 사람 뒤에 다른 목적어가 없습니다. 그분과 함께 통치한다는 말씀이 생략된 것이죠.
이런 구절들을 읽을 때는 항상 구원에 관한 말씀인지 보상에 관한 말씀인지를 잘 구별해야 합니다. 15절 말씀처럼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보아야 하고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해야 합니다.
성령이 소멸된다는 잘못된 번역과 해석
성령의 불길을 끄지 말라.(데살로니가전서5장19절)
여기서 끈다는 뜻으로 사용된 영어는 quench입니다. 개역성경은 이 단어를 소멸로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는 오해를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완전히 꺼서 없앤다는 뜻이 아닙니다. 타오르는 불길을 끈다는 뜻입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릅니다. 소멸된다는 것은 꺼서 없애버린다는 뜻이지만 타오르는 불길을 끈다는 것은 높은 상태에서 낮은 상태로 끈다는 뜻이지 완전히 없앤다는 뜻이 아닙니다.
영어사전을 보면 quench의 첫 번째 뜻은 갈증을 푼다는 뜻입니다. 무더운 여름에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일을 한 후에 시원한 물을 들이키는 것을 상상해 보시면 됩니다. 그 사람은 시원한 물로 인해서 갈증을 풀었지만 갈증이 영원히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순간적으로 진정되었을 뿐이죠.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갈증이 찾아옵니다. 마찬가지로 타오르는 불길은 순간적으로 끌 수 있지만 영원히 끌 수는 없는 겁니다.
데살로니가전서4장과 5장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때에 관한 내용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임박한 휴거를 기다리며 성령님의 강력한 불길을 타오르게 해야 한다는 뜻이죠.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의 타오르는 불길을 꺼뜨리지 말라는 겁니다. 불길을 활활 타오르게 해서 주님을 맞이하라는 의미의 문장입니다. 성령님이 완전히 소멸될까봐 걱정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증거가 같은 장의 9절에 나와 있습니다. 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노에 이르도록 정하지 아니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즉, 7년간의 환난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또한 5절에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밤에 속한 자녀들이 아니라 낮에 속한 자녀들이라고 나와 있으며, 23절과 24절에도 그리스도 예수님은 신실한 분이시기 때문에 교회 성도들을 흠 없이 보존해 주신다고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데살로니가전서5장은 오히려 전체적으로 구원을 잃을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성경적으로도 성령님이 완전히 소멸돼서 교회 성도를 떠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나와 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애초부터 그러한 일이 생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 안에 영원토록 거하신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14장16절).

히브리서 6장 성경 난해구절 완벽정리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선물을 맛보며 성령님께 참여한 자가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권능을 맛본 자들이 만일 떨어져 나가면 다시 그들을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니 그들은 자기들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새로이 십자가에 못 박고 공개적으로 그분을 모욕하느니라.(히브리서6장4절~6절)
이 구절들은 구원취소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며 가장 많이 인용하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개신교 진영에서만 이렇게 믿는 게 아니라 킹 제임스 진영 중에도 이런 믿음을 가진 곳이 있습니다. 럭크만 박사와 다수의 말보회 성도들입니다. 그동안의 제 경험에 의하면 말보회 성도들은 매우 교조적이고 자기들과 다른 이론에 대해서는 전투적 거부감이 강하기 때문에 그들을 설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대부분의 말보회 성도들은 히브리서가 교회시대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이 구절들을 구원취소교리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 책의 이름이 히브리서로 되어 있는 것은 그 대상이 유대인들이기 때문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엄연한 교회입니다(히브리서12장23절). 유대인들 중에 구원받아서 교회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 당시의 유대인 교회는 아직도 유대인들의 전통과 관습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이방인 교회에 비해서 신약교리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매우 느렸습니다.
또한 이들의 학습 속도가 느렸던 이유 중의 하나는 교회가 되기를 거부한 오리지널 유대인들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교회에 적대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회심해서 교회가 된 유대인들에게 접근해서 다시 유대교로 복귀시키려고 온갖 방법으로 교회를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학습 진도가 무척 더디게 진행되는 것에 불만과 위기감을 느꼈고, 그 상황을 히브리서 6장에 기록한 겁니다.
조금 후에 살펴보겠습니다만, 히브리서는 오히려 전체적으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파워풀한 문장들이 많이 들어 있는 책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책들 중 하나가 히브리서입니다.
히브리서 6장 말씀은 구원을 잃는다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히브리서6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9절에 있는 "그러나"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비록 우리가 이같이 말하지만 너희에 관하여는 더 좋은 것들과 또 구원에 동반되는 것들이 있음을 우리는 확신하노라.(히브리서6장9절)
'그러나'라는 단어는 앞의 내용을 완전히 뒤집는 접속부사로서 앞의 내용과 정반대의 얘기를 할 때 사용하는 접속사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문장 첫 마디에도 '비록'이라는 양보의 접속부사가 또 나옵니다. 이는 앞에서 했던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의 상반된 문장들을 논리적으로 잘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너희들이 떨어져 나가면 새로 회개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이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비록 우리가 너희에게 심한 말을 했지만 오히려 너희들의 구원을 우리가 확신한다고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4절부터 6절까지는 내용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떨어져 나간 사람은 회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성경적인 말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등의 여러 복음서에 따르면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누구든지'라는 것은 떨어져 나간 사람도 포함되는 겁니다. 다시 기회가 없는 게 아닙니다. 이는 비단 신약시대에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구약시대에도 구원의 기회는 죽을 때까지 계속 주어집니다.
게다가 떨어져나간 사람이 예수님을 새로이 십자가에 못을 박는다는 말도 너무나 어색한 말입니다. 떨어져나갈 정도의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항상 십자가에 못을 박는 사람이지 떨어져나간 후에 마음이 바뀌어서 새로 못을 박는다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일어나지 않을 일을 가정했기 때문에 이처럼 논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겁니다.
문장의 패턴도 4절부터 6절은 나머지 문장들과 완전히 다릅니다. 히브리서의 전체적인 화자의 주체는 'we(우리)'입니다. 그런데 4절부터 6절에는 'those(자들)'로 바뀌어 있습니다. 이 문장들만 독립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라고 했을 때는 바울 자신을 포함한 구원받은 히브리 교회 성도들을 의미하는 겁니다. 떨어져 나가서 회개하지 못하게 되는 '임의의 누군가'가 아닙니다.
따라서 히브리서6장 4절부터 6절까지의 말씀은 학습 진척이 없는 유대인 교회에게 빈말로 쓴 소리를 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실현될 수 없는 일을 가정한 말로써 히브리 교회 성도들에게 일종의 언어적 체벌을 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공부 좀 하라고 강한 말로 충격을 준 것이죠. 그 증거가 히브리서5장과 7장, 그리고 6장의 마지막에 나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5장 6장 7장에서 가르치고자 했던 것은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으로 구성된 교회 사람들에게 아무리 얘기를 해 주어도 이 주제에 대해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던 겁니다(히브리서5장11절).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들이 교회에 나와서 공부했던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기 때문에 이제는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할 때가 훨씬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초보적인 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갓난아이들이나 먹는 젖이나 빨고 있는 것이 너무 한심하다고 말합니다(히브리서5장12절~14절, 6장2절).
이처럼 유대인 교회에게 정신을 차리라는 뜻으로 강하게 말을 한 뒤에, 이제는 정신 좀 차렸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멜기세덱 얘기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히브리서6장20절). 그리고 히브리서7장에서 본격적으로 멜기세덱의 이야기를 모두 들려주고 있는 겁니다.
여기까지 잘 따라오셨다면 이제 히브리서6장의 전체적인 스토리가 이해되실 겁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히브리서는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책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이 영원하다는 문장들이 가득 들어있는 책입니다. 심지어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6장조차도 17절부터 19절에서 구원이 영원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관련된 히브리서 말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분께서 아들이실지라도 친히 고난 받으신 일들로 말미암아 순종하기를 배우사 완전하게 되셨으므로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창시자가 되시고(히브리서5장8절~9절)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도 약속의 상속자들에게 자신의 계획이 불변함을 더욱 풍성히 보여 주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써 확증하셨나니 이것은 우리 앞에 놓인 소망을 붙잡기 위해 피난처로 도피한 우리가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던 두 개의 변경할 수 없는 것들로 말미암아 확고한 안위를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에게 있는 이 소망은 혼의 닻과 같이 확실하고 굳건하여 휘장 안에 있는 것 속으로 들어가는데(히브리서6장17절~19절)
그러므로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심을 보건대 그분은 또한 자기를 통해 하나님께 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나니(히브리서7장25절)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에 의거하여 한 번 거룩한 곳에 들어가사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얻으셨느니라.(히브리서9장12절)
이런 까닭에 그분은 새 상속 언약의 중재자이시니 이것은 첫 상속 언약 아래 있던 범죄들을 구속하시려고 죽으심으로써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영원한 상속 유업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브리서9장15절)
바로 이 뜻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영원히 드려짐을 통해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히브리서10장10절)
이 사람은 죄들로 인해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뒤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그 이후부터 자기 원수들이 자기 발받침이 될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한 번 헌물을 드림으로써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기 때문이라.(히브리서10장12절~14절)
그 날들 이후에 내가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주가 말하노라. 내가 내 법들을 그들의 마음속에 두고 그들의 생각 속에 그것들을 기록하리라, 하신 뒤에 또, 내가 그들의 죄들과 불법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브리서10장16절~17절)
이는 너희에게 하늘에 더 좋고 영구한 실체가 있는 줄 너희 자신이 알므로 결박 중에 있는 나를 너희가 불쌍히 여겼고 너희 재산을 노략당하는 것도 기쁘게 여겼기 때문이라.(히브리서10장34절)
너희의 행실을 탐욕이 없게 하고 너희가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브리서13장5절)
이제 영존하는 언약의 피를 통해 양들의 저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이끌어 내신 화평의 하나님께서(히브리서13장20절)

천국에서의 보상의 손실
우리가 진리에 관한 지식을 받은 뒤에 고의로 죄를 지으면 다시는 죄들로 인한 희생물이 남아 있지 아니하고 대적들을 삼킬 불같은 격노와 심판에 대하여 두렵게 기다리는 어떤 일만 남아 있느니라.(히브리서10장26절~27절)
모세의 율법을 멸시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인해 긍휼을 얻지 못하고 죽었거늘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발로 밟고 자기를 거룩히 구별한 언약의 피를 거룩하지 아니한 것으로 여기며 은혜의 영께 무례히 행한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극심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해 보라.(히브리서10장28절~29절)
원수 갚는 일은 내게 속하였으니 내가 갚아 주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시고 또 다시, 주가 자신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분을 우리가 아노니(히브리서10장30절)
히브리서10장26절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절들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구원과는 상관없습니다. 설명이 좀 길어질 거 같아서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구절은 이 세상에서의 고난과 육체적인 죽음, 그리고 보상의 손실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뒤에 나오는 28절에 나와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멸시한 자가 죽었다는 겁니다. 즉, 불같은 격노와 심판은 육체의 죽음을 뜻하는 겁니다. 고라의 반역사건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글을 시작하면서 강조해 드렸습니다만,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 1세대들은 모두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여전히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됩니다. 큰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려서 몸을 죽이기도 하십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들이 광야에서 40년을 지내는 동안 모세의 율법을 무시하고 여러 가지 죄를 범해서 징계를 받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을 발로 밟고 새 언약의 피를 무시하면 징계를 받게 된다는 것이며, 모세를 대적했던 죄 보다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한 죄가 더 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의 형벌이 더 극심하다는 뜻입니다. 구원을 잃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리고 30절을 보면 주가 자신의 백성을 심판한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분명히 '자신의 백성'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구원하신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미래를 내다보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중간에 구원을 잃어버리도록 하시겠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는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선택한 백성을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26절이 왜 구원상실을 뜻하는 말씀이 아닌지를 더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만, 설명이 없다고 해도 이 구절은 구원을 잃는다는 뜻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10장에서 이미 구원이 영원하다고 여러 번 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히브리서10장10절, 12절~14절, 16절~17절, 34절). 그리고 위에서 히브리서6장을 설명하는 글에서도 살펴보았다시피 10장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전체에서 영원한 구원이라는 구절이 여러 번 나옵니다.
그러므로 너희의 확신을 버리지 말라. 그것이 큰 보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뒤에 그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해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하니라.(히브리서10장35절~36절)
위의 말씀을 자세히 보세요. 확신을 버리지 않으면 큰 보상을 얻게 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 말인즉, 확신을 버리면 보상을 잃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이 구절을 26절과 비교해서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고의로 짓는 죄 = 확신을 버리는 죄 = 보상을 잃어버림
즉, 27절에서의 불같은 격노와 심판의 최종 결과는 보상을 잃어버림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성화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되면 육체가 죽게 되거나 천국에서 보상의 손실을 당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구원을 잃지 않는다면 비록 그들이 죽는다고 해도 천국(당시에는 낙원)에 갈 것이기 때문에 살아남은 사람들에 비해서 그리 나쁠 것도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죠. 오히려 이 세상에서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고 일찍 죽어서 천국에 가면 더 좋은 게 아닐까싶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의 보상이 어떤 보상인지 이 세상에서의 시각으로는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에 쉽게 판단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일찍 죽는 사람들은 더 이상 성화되는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천국에서의 보상이 적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또는 심판을 받아 죽게 되었다는 자체가 큰 손실을 당하게 될 것임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천국에서의 보상은 부활 또는 휴거될 때 받는 몸 그 자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고린도후서5장10절)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이 구절을 설명하실 때 이 세상에서 몸을 가지고 했던 일들에 대한 보상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저는 달리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이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교회 성도들은 이미 부활 또는 휴거되어 천국에 가 있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여기서의 몸은 주님의 재림 이후 주님으로부터 새로 받은 영화로운 몸을 뜻한다고 봐야 합니다.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은 영어 성경에 "the things done in his body"로 나와 있습니다. 새로운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성화된 삶을 살았던 성도들의 보상이 천국에서의 영화로운 몸 안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지금 현재의 우리들은 모릅니다. 천국에 가 봐야 알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제 생각에는 영화로운 몸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몸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차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 기초 위에 세운 일이 남아 있으면 그는 보상을 받을 것이요, 어떤 사람의 일이 불타면 그는 보상의 손실을 당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에 의해 받는 것 같이 받으리라.(고린도전서3장14절~15절)
구원받은 사람이 죄를 지어서 자신이 한 일들이 불타면 그는 보상의 손실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은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불에 탄다는 뜻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불탄다는 뜻이 아닙니다. 죄의 정도에 따라서 그만큼의 분량만 불에 탄다는 뜻입니다. 비록 성화된 것들이 불에 탄다고 해도 구원은 잃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히브리서10장26절에서 "고의로 죄를 지으면"이라고 할 때는 육체의 죽음과 보상의 손실을 당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봐야 합니다. 히브리서10장의 결론부분을 살펴보면 더 명확해집니다.
이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러나 어떤 사람이 뒤로 물러가면 내 혼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에 이르는 자들에게 속하지 아니하고 믿어서 혼을 구원하는 자들에게 속하느니라.(히브리서10장38절~39절)
즉, 히브리서10장에서 말하는 죄는 뒤로 물러가는 죄를 뜻합니다. 왜 하필 뒤로 물러가는 죄라고 표현했을까요? 그 이유는 이들이 아직도 히브리인으로서 유대인의 전통을 고집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에 의해 다시 옛날의 율법으로 돌아가게 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으로는 구원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10장의 결론에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하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10장 결론에서 "우리는 믿어서 구원된 자들"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우리는 사도 바울을 포함한 히브리 교회 성도들을 뜻합니다. 앞에서 여러 차례 경고를 주긴 했지만, 그러나 결국 우리는 뒤로 물러가는 자들이 아니고 멸망하는 자들도 아니라는 겁니다. 믿어서 혼의 구원에 이른 자들, 즉 영원히 구원받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죄를 지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는 죽는 경우도 있지만 이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징계가 있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며 징계가 없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히브리서12장8절).
교회 성도가 큰 잘못을 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몸을 죽이신다고 명확하게 기록된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짓는 것을 보거든 그는 간구할 것이요, 그러면 그분께서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짓는 자들을 위해 생명을 그에게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는데 나는 그가 그것으로 인해 기도하라고 말하지 아니하노라. 모든 불의가 죄이지만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느니라.(요한일서5장16절~17절)
위에서 형제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구원받은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형제일지라도 육체의 죽음에 이르는 큰 죄를 짓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대표적으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죄를 범하지 않았던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님 딱 한 분밖에 없었습니다. 그분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다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노아도 아브라함도 다윗도 모두 죄인이었으며 그들 모두가 구원받은 이후에도 죄를 지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과 사도 바울이 구원받은 이후에 죄를 지었다고 해서 구원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이기는 자와 생명책
이기는 자 곧 그는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지 아니하고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요한계시록3장5절)
여기서 이긴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이긴다는 뜻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계시록에서 이긴다는 표현은 영어로 overcometh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이 이 단어를 또 사용한 곳이 있는지 찾아보면 될 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기는 자는 믿는 자를 뜻합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 1,2,3서를 기록했습니다. 이기는 자에 대한 정의는 요한일서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니라. 그분의 명령들은 무겁지 아니하니 이는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것은 세상을 이기기 때문이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한일서5장3절~5절)
여기에서도 사도 요한이 동일하게 overcometh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긴다는 것은 세상을 이긴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세상을 이기는 승리가 우리의 믿음이라고 했고, 최종적인 결론으로 이기는 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기는 자 =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
사도 요한은 그냥 당연한 말을 한 겁니다. 믿는 자는 이기는 자이고 믿지 않는 자는 지는 자라는 뜻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을 한 건데 해당 구절을 읽은 교회 성도들 중의 일부가 자기 자신을 지는 자라고 착각을 하기 때문에 이 구절을 오해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성도라고 해도 여전히 아담의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지는 자라고 착각하게 되는 거죠.
그러나 사도 요한은 이기는 자는 믿는 자이기 때문에 일단 믿어서 구원받으면 절대로 지는 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 않게 됩니다. 이 말씀은 믿는 자와 불신자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서 기록된 겁니다. 그러므로 위의 구절은 믿음으로 인해 은혜로 구원받으면 절대로 생명책에서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한 말씀입니다.
참고로 생명책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으로 태어날 때 기록되는 하나님의 생명책이 있고, 다른 하나는 어린양의 생명책이 있습니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됩니다(시편139편16절).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체 죽으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집니다(시편69편28절, 출애굽기32장32절~33절, 요한계시록3장5절). 그리고 성경 말씀을 고의로 변개한 사람도 생명책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집니다(요한계시록22장19절).
생명책은 이것 말고도 하나 더 존재합니다. 어린양의 생명책, 즉 그리스도 예수님의 생명책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하나님의 생명책은 인간이 잉태되는 순간 기록되는 반면, 어린양의 생명책은 구원받는 순간 기록됩니다(요한계시록13장8절, 요한계시록20장15절, 요한계시록21장27절). 즉, 하나님의 생명책은 신자든 불신자든 죽기 전까지는 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가 죽는 순간 구원받은 신자는 이름이 삭제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게 되고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불신자는 이름이 삭제되는 책이며, 어린양의 생명책은 태어나는 순간에는 이름이 없지만,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게 되는 순간 이름이 기록되는 책인 것입니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등록되면 절대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주의 날에 하나님의 생명책과 어린양의 생명책을 비교해 보면 두 책이 정확하게 일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전을 더럽히면 육체를 멸하신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리니 이는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하며 너희가 그 성전이기 때문이라.(고린도전서3장17절)
여기서 더럽힌다는 영어 단어는 defile로서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더러움이 아닙니다. defile은 그냥 더럽히는 게 아니라 신성을 모독한다는 뜻이 들어있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도입부에서도 잠깐 말씀드렸다시피 성경에서 교회를 향해 멸한다고 나올 때는 육체를 죽인다는 뜻입니다. 교회에 대해서 destroy 또는 destruction 이라고 할 때는 몸이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교회는 절대로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교회를 선택하셨는데 중간에서 구원을 잃어버리는 사람을 선택하셨겠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사람처럼 실수하는 존재로 여기는 것으로서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전지전능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 반역의 행위입니다.
성경을 볼 때는 항상 명백한 말씀들을 따라야 합니다. 성경은 수많은 구절들에서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장16절)
위의 말씀을 논리적으로 잘 보세요. 누구든지 믿음 이후로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됩니다. '누구든지'라는 단어와 '믿는 자'라는 단어와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는다'는 명백한 문구를 이해하셔야 합니다. 이 말씀은 믿지 않는 죄를 제외하고는 어떤 죄를 지어도 구원을 잃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사람의 죄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죄와 의의 판단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인간의 모든 의는 더러운 누더기일 뿐입니다(이사야서64장6절).
요한복음3장16절뿐만 아니라 신약성경 전체에 걸쳐서 구원과 관련한 대부분의 말씀들이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구원이 영원하다는 구절이 약 99퍼센트라면 구원을 잃을 수도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하게 되는 구절은 약 1퍼센트 정도입니다. 1퍼센트로 99퍼센트를 뒤집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구원받은 교회라고해도 죄를 지으면 징계를 받게 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의 징계는 당연히 이 세상을 살면서 벌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몸이 아플 수도 있고 경제적으로 곤란을 당할 수도 있고 심하면 몸이 죽을 수도 있는 겁니다. 교회가 죄를 지으면 당연히 징계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히브리서12장8절).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갈라디아서3장26절, 로마서8장14절~17절, 요한일서3장1절~2절). 한 번 아들이면 영원한 아들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식이 잘못을 하면 아버지는 아들을 징계합니다. 남의 자식은 징계할 필요가 없죠. 그래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악한 일을 해도 징계를 받지 않는 겁니다. 징계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결국 그 사람들은 지옥에 갈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5장을 보면 새엄마와 음행하는 자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그런 자를 사탄에게 넘겨주어 육체를 멸하도록 판단하였으니 이것은 영이 주 예수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린도전서5장5절)
위의 말씀을 잘 보세요. 멸한다(destruction)는 단어가 또 나오죠? 몸을 죽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몸을 죽인다고 나와 있나요? 주의 날에 영이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부활하도록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토록 무지막지한 죄를 지은 사람임에도 구원은 영원히 보장되어 있는 겁니다. 다만, 교회가 저런 죄를 저지르면 하나님께 누가 되기 때문에 육체를 죽여서 더 이상 죄를 짓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죠.

입으로만 믿는다고 하는 자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나 행위로는 그분을 부인하니 그들은 가증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이요 모든 선한 일에 대해 버림받은 자들이니라.(디도서1장16절)
이 구절은 앞의 15절과 함께 봐야 하는 말씀입니다.
순수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순수하나 더럽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순수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들의 생각과 양심마저도 더럽혀져 있느니라.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나 행위로는 그분을 부인하니 그들은 가증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이요 모든 선한 일에 대해 버림받은 자들이니라.(디도서1장15절~16절)
행위로만 부인하는 자들이 아니라 믿지도 않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말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들과 동일한 자들이죠. 즉, 처음부터 구원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제멋대로 행하며 헛된 말을 하고 속이는 자들인데, 특별히 할례 받은 자들이라고 나와 있으며(디도서1장10절), 진리에서 돌아서서 꾸며낸 이야기를 하는 유대인들이라고 나와 있기 때문에(디도서1장14절)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하고 유대인들의 율법을 전파하는 사람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의 폐해
갈라디아서도 디도서와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이 율법주의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 많이 표현되어 있는 책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율법에 의해 의롭다고 인정받은 자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아무런 효력이 없고 너희는 은혜에서 떨어져 나갔느니라.(갈라디아서5장4절)
위의 구절도 구원상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인용하는 말씀입니다. "봐라. 은혜에서 떨어져 나갔다고 되어 있지 않느냐?"라는 거죠. 그런데 이 구절은 뒷부분 보다 앞부분이 중요합니다. 앞부분에 율법에 의해 의롭게 된 사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사람이 율법으로 구원받을 수 있나요? 율법에 의지한 사람은 불신자와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람은 애초부터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문장에서의 떨어져나간 은혜라는 의미는 처음부터 은혜와는 상관없는 자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 할례파들이 교회에 침투해서 온갖 거짓 가르침으로 교회 성도들에게 구약의 율법을 강요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뜨게 하느니라(갈라디아서5장9절)"고 말합니다. 성경은 누룩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나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집단을 부패시키는 원흉으로 봅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끌려 다니는 교회 성도들이 너무 안타까워서 차라리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이 아예 교회에서 잘려나가기를 원한다고까지 말을 했습니다(갈라디아서5장12절).
은혜복음을 거부하고 육신의 율법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율법에 얽매이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결국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인간이 모든 율법을 다 지키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율법의 행위로 무언가를 해 보려고 하는 자들은 모두 저주 아래에 있다고 하셨습니다(갈라디아서3장10절).
더구나 신약시대는 예수님께서 이미 모든 율법의 끝마침이 되셨으며(로마서10장4절),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하셨기 때문에(요한복음14장6절) 반드시 십자가 보혈대속을 믿는 믿음으로만 아버지께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은 빨리 포기하고 믿음만을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정죄를 받도록 옛적부터 미리 정해진 자들
사랑하는 자들아, 공통의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쓰려고 모든 열심을 내던 차에 성도들에게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너희가 힘써 싸우라고 내가 너희에게 써서 권면할 필요가 생겼나니 이는 알지 못하는 가운데 기어들어온 어떤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 그들은 이 정죄를 받도록 옛적부터 미리 정해진 자들로서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며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고 유일하신 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니라.(유다서1장3절~4절)
우선 이 구절에서 알지 못하는 가운데 기어들어온 사람들은 '너희들'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입니다. 이것만 봐도 이미 불신자들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위의 구절에서 "유일하신 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은 영어 성경에는 "denying the only Lord God, and our Lord Jesus Christ"로 나와 있는데,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님에 따르면 이 구절은 원래 그리스도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라는 뜻이 담겨있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불신자들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마지막 때에 자기 정욕대로 걸으면서 조롱하는 사람들이라고 나와 있습니다(유다서1장18절, 베드로후서3장4절).
그러므로 유다서에서의 은혜를 색욕으로 바꾸는 사람들은 불신자들 중에서도 특히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씀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투덜거리고 불평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정죄를 받도록 옛적부터 미리 정해진 자들은 믿는 자들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라고 봐야 합니다. 즉, 불신자들이라는 뜻이지요. 다만, 이는 하나님의 미리 아심(베드로전서1장2절)을 통해서 정죄하시기로 정하셨다는 뜻이지 태어날 때부터 불신자로 정해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불신자 본인이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믿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에 정죄를 받은 겁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자들과는 다릅니다. 은혜를 어떻게 색욕거리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에베소서2장8절). 그러나 불신자들은 은혜를 거절하죠. 믿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는 것, 즉 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은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어지는 7절의 소돔과 고모라에서 낯선 육체를 따라간 것입니다. 불신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은혜를 색욕거리를 바꾼 짓이라는 거죠. 그로 인해서 영원한 불로 보복을 당하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다서 1장4절의 색욕은 불신의 결과이며 주님의 천사들과 성행위를 하고자 했던 동성애자들, 즉 불신자들의 행위로 봐야 합니다.
지역교회(건물교회)에 다니는 불신자
한 때는 너희가 사악한 행위들로 인해 멀리 떨어져 너희 생각 속에서 원수가 되었으나 이제는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자신의 육체의 몸으로 화해를 이루사 너희를 자신의 눈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들로 제시하려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 안에 거하여 터를 다지고 정착해서 너희가 들은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리하시리라. 그 복음이 하늘 아래 있는 모든 창조물에게 선포되었으며 나 바울은 그 복음의 사역자가 되었노라.(골로새서1장21절~23절)
위의 구절들도 국어를 잘 하는 사람은 구원상실을 의미하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선 도입부의 '한 때는'이라는 말과 '이제는'이라는 말로 봐서 여기서의 원수는 과거의 일이며 지금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만일(if)'입니다. 지역 교회(건물 교회)에는 100퍼센트 구원받은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닙니다. 구원받지 못한 불신자들도 존재합니다. 말로만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는 믿지 않지만 믿는 척하는 사람들이죠. 혹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는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구원받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즉, 위의 구절에서 "복음의 소망에서 떠난다"는 의미는 애초에 복음을 제대로 믿지 않아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의미하는 겁니다. 믿었다가 떠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복음에서 떠난다는 의미입니다. 더 쉽게 말씀드리자면, 어떤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달했는데, 그가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떠난 겁니다. 이제 이해가 되시나요? 신약성경에는 이와 비슷한 표현이 더러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장4절에서도 "떨어져 나갔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또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이며, 처음부터 믿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서 위의 말씀은 "너희가 실제로는 믿지 않고 말로만 믿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 즉 구원받은 성도로 제시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골로새서1장에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명백한 말씀이 들어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능에서 구출하사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셨으니 그분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골로새서1장13절~14절)
위에서의 아들의 왕국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다스리는 왕국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왕국은 천년왕국을 의미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권능이 미치는 모든 곳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둘 다 구원받은 교회가 가는 곳이죠. 중요한 것은 이미 그 왕국으로 옮겼다고 나와 있다는 겁니다. 과거형입니다. 옮길 예정이 아니라 이미 옮긴 겁니다. 그리고 그분의 피를 통해 죄들의 용서를 받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 또한 과거형입니다. 즉, 우리(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죄의 용서를 받은 상태이고 하나님의 왕국으로 이미 옮겨진 상태라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
형제들아,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진리를 떠나 잘못하는데 누가 그를 돌아서게 하면 그 죄인을 그의 길의 잘못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한 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을 그가 알게 할지니라.(야고보서5장19절~20절)
이 구절도 '진리를 떠나'라는 말을 착각해서 구원을 잃는다고 오해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서도 '어떤 사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위에서 여러 차례 말씀드렸습니다만, 성경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어떤 사람'이라고 할 때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구원받아서 진리 안으로 들어와 있다가 떠난 사람이 아닙니다. 아예 진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불신자를 뜻합니다. 그 불신자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해서 구원받게 하면 그의 죄가 예수님의 피로 제거된다는 뜻입니다.
건물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지역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모두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 중에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존재합니다.
성경에서 불신자를 표현할 때 진리에서 떠난다는 식으로 표현된 곳이 몇 군데 있는데 이 말씀은 진리 근처에 오지도 못했다는 뜻입니다. 영어로 do err from으로 나와 있는데 err from은 어떤 길에서 벗어나있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이 걱정했던 것은 성화의 완성
오히려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시킴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한 뒤에 어떤 방법으로든 나 자신이 버림받은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린도전서9장27절)
이 구절도 구원취소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입니다. 버림받는 상황이 구원이 취소되는 상황이라는 거죠. 그러나 이 말씀도 성화와 관련된 말씀이지 구원 자체를 잃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던 출애굽 당시의 유대인들과 똑같은 경우입니다.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유대인들은 모두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광야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범했기 때문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구원받은 유대인들에게 주는 보상의 상금입니다.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은 이미 받았습니다.
고린도전서9장27절은 24절과 연결된 말씀입니다. 24절을 보면 경주할 때 열심히 달려서 상을 받아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보상에 관한 구절이었던 겁니다. 보상을 받을 자격은 오직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만 부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경주에 참가할 자격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경주에 참가할 수조차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성화되는 삶을 살지 못하고 끝까지 경주를 완주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바울 자신도 아직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저주받은 육신을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고통과 갈등을 잘 표현한 말씀이 있습니다.
내 지체들 속에서 다른 법이 내 생각의 법과 싸워 내 지체들 안에 있는 죄의 법에게 나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내가 보는도다.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출하랴?(로마서7장23절~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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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6장과 동성애에 관하여
성경은 동성애를 반대합니다. 그러나 동성애도 인간이 저지르는 많은 죄들 중 하나입니다. 즉, 용서받을 수 있는 죄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피로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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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의 간절한 유대 형제에 대한 사랑
내게는 마음속에 큰 근심이 있고 계속해서 슬픔이 있노라. 육체에 따른 내 형제들, 내 친족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받기를 바랄 수도 있으리니(로마서9장2절~3절)
3절에서 바랄 수도 있다는 뜻으로 번역된 영어는 I could wish로 시작되는 가정법 구절입니다.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한 것이죠. 사도 바울이 자기 동포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실제로 그리스도의 저주를 받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만큼 간절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죠.
이정도만 해도 자기 형제들을 향한 바울의 사랑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록 실현되지 못할 가정이라고 합니다만 어떻게 주님의 저주를 받겠다는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감히 생각조차도 할 수 없을 겁니다.
바울의 사랑이 이렇게 크다면 예수님의 사랑은 얼마나 큰 것일까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가정법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실제로 십자가에 달려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큰 것인지 바울과의 비교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영지주의 거짓교사들
이들은 물 없는 샘이요 폭풍에 밀려다니는 구름이라. 그들을 위해 어둠의 안개가 영원토록 예비되어 있나니 이는 그들이 크게 부풀린 헛된 말들을 하면서, 잘못된 행위 속에서 사는 자들로부터 빠져나와 깨끗하게 된 자들을 육체의 정욕과 심한 방종을 통해 꾀어내기 때문이라. 그들이 저들에게 해방의 자유를 약속하지만 자신들은 부패의 종이니 이는 어떤 사람이 누구에게 정복되면 정복한 바로 그 사람에게 그가 속박되기 때문이라.(베드로후서2장17절~19절)
만일 그들이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통해 세상의 오염에서 벗어난 뒤에 다시 그 안에 말려들어 정복되면 마지막 끝이 처음보다 그들에게 더 나쁘니 그들이 의의 길을 안 뒤에 자기들에게 전달된 거룩한 명령을 버리고 돌아서는 것보다 차라리 그것을 알지 못한 것이 그들에게 더 나았으리라. 그러나 개는 자기가 토한 것으로 되돌아가고 씻긴 돼지는 진창 속에서 뒹군다, 하는 참된 잠언에 따라 그 일이 그들에게 일어났도다.(베드로후서2장20절~22절)
위의 성경말씀에서 성경초보자들이 헷갈릴만한 구절은 "그들이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통해 세상의 오염에서 벗어난 뒤에"라는 문장일 겁니다. 그러나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일단 이 문장에서 주어는 '너희'가 아니라 '그들'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여기서의 그들(they)은 애초부터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는 베드로후서를 기록하면서 구원받는 너희(you) 또는 우리(we, us)와 구원받지 못한 그들(they, them)을 구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이 문장이 마치 구원을 받은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문장에는 그들이 구원받았다는 확실한 표현이 안 나옵니다. 단지 세상의 더러운 삶을 피하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보고자 했던 사람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들이 거듭났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안 나옵니다. 17절을 보면 오히려 이들은 지옥에 가기로 정해진 자들입니다. "그들을 위해 어둠의 안개가 영원토록 예비되어 있나니".
더러움을 피해 지역교회에 나온 사람들이 전부 다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심으로 믿고 다시 태어나야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지역교회에 나가는 사람들 중에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대한민국에는 이단교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사도 베드로가 구원받은 성도를 표현하는 문장은 1장에 나옵니다.
그것들로 말미암아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나니 이것은 이 약속들에 힘입어 너희가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베드로후서1장4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열심을 내어 너희가 부름받은 것과 선택받은 것을 확고히 하라. 너희가 이것들을 행하면 결코 넘어지지 아니하리니(베드로후서1장10절)
보다시피 호칭부터 다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형제', '우리', '너희'로 불립니다. '그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는 주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며,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며, 나중에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이 구절들에서는 구원받았다는 확실한 증표가 나옵니다.
베드로후서2장은 거짓교사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먼저 사도 베드로가 왜 이 말씀을 기록했는지부터 알아야 이 챕터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 소아시아에 있던 교회들은 공통적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지주의 이단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거짓교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종말과 하나님의 심판은 없고 단지 자연법칙에 따라서 세상이 흘러가는 것이라고 선동했으며 사도들의 가르침은 꾸며낸 이야기라고 비난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의 선동이 먹혔던 이유는 주님의 재림이 늦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이후 남아있던 사람들은 주님께서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오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한 세대인줄로만 알았던 겁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십자가사건 당시의 사람들도 대부분 죽어서 없어졌고 주님의 재림은 요원해보였습니다. 그때 마귀의 개입으로 거짓교사들이 등장한 겁니다.
초기 교회시대의 영지주의자들은 플라톤의 이원론에 기초를 두어 영혼만이 선하며 물질은 원래 악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육체 또한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육체가 행하는 모든 것들은 악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영혼만 깨끗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무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사역과 구원의 진리, 그리고 성화의 삶과 성화의 열매는 그들에게 관심 밖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거짓교사들은 주님의 재림과 심판이 없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방종하면서 마음껏 쾌락에 빠져서 살아도 된다는 논리로 사람들을 선동했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라. 곧 마지막 날들에 비웃는 자들이 와서 자기들의 정욕을 따라 걸으며 이르되, 그분께서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모든 것이 창조의 시작 이후로 있었던 것같이 그대로 계속되느니라, 하리라. 이는 그들이 하늘들이 옛적부터 있었고 또 땅이 물에서 나와 물 가운데 서 있는 것을 일부러 알려 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베드로후서3장3절~5절)
이런 식으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조롱하고 사람들을 선동하여 거짓 교리로 이끄는 거짓교사들에 대해서는 유다서에도 나와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공통의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쓰려고 모든 열심을 내던 차에 성도들에게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너희가 힘써 싸우라고 내가 너희에게 써서 권면할 필요가 생겼나니 이는 알지 못하는 가운데 기어들어 온 어떤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 그들은 이 정죄를 받도록 옛적부터 미리 정해진 자들로서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며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고 유일하신 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니라.(유다서1장3절~4절)
보다시피 거짓교사들은 은근슬쩍 교회에 침투해 들어온 불신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미리 아심에 따라서 지옥에 갈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고 교회 내에 육신의 정욕을 퍼뜨리는 자들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동물이 개와 돼지입니다. 개와 돼지가 원래대로 되돌아갔다는 것은 구원받았다가 구원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애초부터 구원받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비록 돼지가 자기 몸을 물로 씻었지만 그것은 겉으로만 그랬을 뿐이지 속이 깨끗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속으로 거듭나야 하는 겁니다. 겉으로 그런 척 한다고 해서 구원받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안타깝지만, 현재 여러 지역교회 내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들
내게, 주여, 주여, 하고 말하는 자가 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는 아니하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마태복음7장21절~23절)
이 말씀도 구원상실교리를 주장하는 분들이 좋아하는 구절들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들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심플합니다.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는 말씀은 과거시제입니다. 따라서 그동안 알았는데 이제 와서 알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한 번도 안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I never knew you."라고 되어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명백히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자도 예수님의 권능으로 병자들을 치료하고 마귀를 내쫓는 일들을 했습니다(누가복음10장19절~20절, 마태복음10장1절, 4절, 마가복음6장12절~13절). 그리고 구약시대의 발람이라는 거짓 대언자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베드로후서2장15절, 요한계시록2장15절). 그는 하나님의 군대에 의해 심판을 받아 죽었습니다(민수기31장8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발람을 사용하셔서 정확한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경우에는 악한 사람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만을 위해서 하나님의 권능을 이용하고자 했을 뿐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영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짓만 골라서 했습니다.
그리고 위의 구절에서 불법을 행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이 거짓으로 대언하고 거짓으로 마귀를 내쫓았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그들에 의해서 기적이 일어난 적이 없었는데, 기적을 행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뜻이죠. 사도행전19장을 보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서 마귀를 내쫓는 장면이 나오는데, 제사장 스게와라의 일곱 아들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들은 오히려 마귀에게 패배하여 도망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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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말하는 음행과 정욕, 음란 그리고 갈라디아서 5장의 색욕에 대하여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서 성경의 기본 교리들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미 구원받은 성도님들은 그냥 패스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남겨진 사람들이 읽을 것이기 때문에 크리스천, 즉 교회 성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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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의 상속유업을 받지 못하는 사람
너희가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을 일삼는 자나 부정한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결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왕국에서 아무 상속 유업도 받지 못하느니라.(에베소서5장5절)
위의 말씀은 구원을 잃는다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왕국에서의 상속 유업에 관한 말씀입니다. 여기서의 왕국은 당연히 천년왕국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상속 유업이 과연 무슨 뜻인지만 알면 될 겁니다. 신약성경에서 '상속 유업'을 검색하면 총 16번이 나옵니다. 모두 보상에 관한 말씀이며 천년왕국에서의 통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상속 유업의 보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로세서3장24절)
위의 골로세서 말씀을 보면 상속 유업이 보상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상속 유업을 받지 못한다는 뜻은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구원을 잃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교회는 훗날 천년왕국에서 통치할 권한을 받게 됩니다(요한계시록2장26절, 요한계시록5장10절, 디모데후서2장12절, 요한계시록20장4절앞부분). 이게 바로 상속 유업입니다.
에베소서5장5절에서의 음행은 영어로 whoremonger입니다. 매춘부와 노는 사람 또는 호색가라는 뜻입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 근처에는 다이애나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 신전에는 무녀(巫女)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창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에 사는 남자들은 다이애나 신전에 가서 매춘을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이었습니다. 심지어 구원받았다는 사람들조차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흠정역은 단순히 음행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음행을 일삼는 자"라고 번역한 겁니다. 표준 킹제임스도 "음행에 빠진 자"라고 번역했고 근본역은 "호색꾼"으로 번역했습니다. 어쩌다 한두 번 음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수시로 음행하는 자를 뜻합니다. 구원받기 이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은 사람이죠.
부정한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의 경우에도 그런 짓을 수시로 저지르는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상숭배는 당연히 안 되는 짓이죠.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신을 숭배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런 사람들은 천년왕국에서 통치할 자격을 상실하게 됩니다.
여기서 거론된 죄들이 더 자세하게 나온 곳은 갈라디아서5장입니다.
이제 육신의 행위들은 명백하니 이것들이라. 곧 간음과 음행과 부정함과 색욕과 우상 숭배와 마술과 증오와 불화와 경쟁과 진노와 다툼과 폭동과 이단 파당과 시기와 살인과 술 취함과 흥청댐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내가 또한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 같이 이것들에 대하여 미리 말하노니 그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갈라디아서5장19절~21절)
이 경우에도 그런 짓들을 수시로 지속적으로 저지르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천년왕국에서 통치자로서의 유업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왕국을 상속받지 못한다는 말은 왕국에서 상속 유업을 받지 못한다는 말과 동일한 말입니다.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가리니 네가 가진 그것을 굳게 붙잡아 아무도 네 왕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요한계시록3장11절)
위의 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의 왕관도 천년왕국에서 통치할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자격을 뜻합니다.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이 왕국의 통치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런 자격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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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3장11절 왕관(crown)의 의미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그것을 굳게 붙잡아 아무도 네 왕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요한계시록3장11절) 이 말씀은 교회가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천년왕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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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모독 죄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갖 종류의 죄와 신성모독은 사람들이 용서받지만 성령님을 대적하여 신성모독 하는 것은 사람들이 용서받지 못하며 또 누구든지 사람의 아들을 대적하는 말을 하면 그는 용서받지만 누구든지 성령님을 대적하여 말하면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그는 용서받지 못하리라.(마태복음12장31절~32절)
이 구절은 소위 말하는 '성령 훼방죄'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구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은사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제일 좋아할 듯싶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 내에서 춤을 추고 울부짖으면서 뒤로 넘어지고 두 팔을 벌리고 방언기도를 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짓 좀 하지 말라고 하면 "당신은 지금 성령 훼방죄"를 범한 것이라고 하면서 이제 당신은 구원이 취소되었으며 더 이상 회개할 기회도 없으니 무조건 지옥에 가게 된다고 협박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면 될 듯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성령 훼방죄'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실 훼방이라는 말도 맞는 말이 아닙니다. 더 정확한 명칭은 '성령 모독죄'입니다. 위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저런 말씀을 하셨는지를 먼저 살펴봐야만 합니다.
이 당시의 상황이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곳은 마가복음3장입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든 죄는 사람들의 아들들이 용서받고 그들이 신성모독 할 때 쓰는 신성모독도 다 용서받지만 성령님을 대적하여 신성모독 하는 자는 결코 용서받지 못하며 영원한 정죄의 위험에 처해 있느니라, 하시니라.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그가 부정한 영에 사로잡혔다 하였기 때문이더라.(마가복음3장28절~30절)
예수님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위에 명확히 나와 있습니다. 서기관들과 같은 불신자들이 그(예수님)가 부정한 영에 사로잡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이 이르되, 그가 바알세붑에 사로잡혀 마귀들의 통치자를 의지하여 마귀들을 내쫓는다, 하니(마가복음3장22절)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기적들을 행하셨는데, 유대 서기관들이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보고 그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마귀로부터 왔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절대 용서받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지금은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저 일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셨을 때에만 가능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초림 당시에만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에 '성령 모독죄'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울 왕의 경우
사울이 구원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주께서 이스라엘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주께서 또한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시리라, 하므로(사무엘기상28장19절)
위의 말씀에 따르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은 사무일이 있던 낙원(아브라함의 품)으로 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구원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 나오는 사무엘은 실제의 사무엘이 아니라 사울이 영매의 마법에 홀려서 환상을 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환상이 아닙니다. 실제로 사무엘의 영이 올라온 것입니다. 엔돌의 영매가 마법을 부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올려 보내신 겁니다.
12절과 13절을 보면 영매가 놀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매는 처음에 사울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땅속에서 올라오는 사무엘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만약 엔돌의 무당이 실제로 마법을 부릴 수 있고 신기한 영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째서 사울과 사무엘을 알아보지 못했단 말입니까? 자기가 불러올리기로 작정을 했다면 이미 자신의 마음속에 누구인지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사무엘의 말은 예언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예언한 그대로 사울은 다음날 블레셋에게 패배하여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 역시도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죽은 사람의 영을 불러내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며 성경 전체에서 딱 한 번 발생한 일입니다. 원칙적으로 죽은 사람은 현실 세계의 사람과 소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이런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민수기22장을 보면 나귀가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역시도 성경 전체에서 딱 한 번 나오는 기적입니다.
성경은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만약 마귀가 사울에게 환상을 보게 했던 것이라면 어떻게 미래의 일까지 그대로 실현되었겠습니까?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영을 사울과 만나게 하신 것은 아마도 구약시대에 죽은 사람의 영은 현실세계에서 그대로 늙은 상태로 보이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시고자 하신 뜻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몸이 죽어서 땅 속에 묻혀있던 구약성도와 신약성도가 모두 부활해서 새 몸을 받게 됩니다. 이에 관해서 말씀드리자면 글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아래 링크된 7년 환난 관련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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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7년 환난을 통과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환난전 휴거 총정리)
성경을 보면 주의 날, 즉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상에 재림하실 때 7년간의 환난기가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크리스천 성도들은 환난기가 오기 전에 예수님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 모두 휴거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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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처녀 비유
마태복음25장에 나오는 열처녀 비유는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따로 성경구절들을 적지 않겠습니다. 휴거 관련 글을 쓸 때 여러 차례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휴거 글들을 삭제했기 때문에 간단하게 다시 적어 드리겠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교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7년간의 환난 속으로 들어간 유대인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25장1절 첫 단어가 '그때에'라는 단어입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24장을 참고하면 환난 속에 들어가 있는 바로 그 때를 뜻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올리브산 설교 말씀은 마태복음24장과 25장까지입니다. 1차적으로는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이죠. 따라서 기름이 떨어진 다섯 처녀는 구원을 잃어버린 교회가 아닙니다. 믿음을 가지고 환란의 끝까지 견뎌야 하는데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탈락한 유대인들을 뜻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자 예수님의 신부이며 한 처녀입니다(고린도후서11장2절). 열 처녀가 아닙니다. 성경은 단 한 번도 교회를 복수의 처녀들로 표현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열 처녀가 가지고 있던 기름은 성령님이 아닙니다. 성령이 어떻게 소멸될 수 있습니까? 성령님은 기름이 떨어지듯이 소멸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성령님은 교회 성도가 구원받는 그 즉시 성도에게로 들어가서 영원토록 떠나지 않습니다(요한복음 14장16절). 그리고 기름이 떨어지면 돈을 주고 사라고 나와 있습니다. 성령님을 돈 주고 산다는 게 말이 됩니까?
등불을 켜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교회가 아니라 이미 교회와의 결혼식을 마치고 지상으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유대인들입니다.
너희 허리에 띠를 띠고 너희 등불을 타오르게 하며 너희 자신은 마치 자기 주인이 결혼식에서 돌아올 때에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같이 되라. 그가 와서 문을 두드리면 그들이 즉시 그에게 열어 주리라.(누가복음12장35절~36절)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두 번 결혼하십니다. 한 번은 공중강림하시면서 자신의 신부인 교회의 휴거사건을 일으키신 후 하늘에서 결혼식을 하시고, 나머지 한 번은 7년 환난 이후에 교회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오셔서 유대인과 결혼하십니다.
열 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 그리고 양 민족과 염소 민족 비유는 모두 동일한 비유의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지상으로 재림하실 때 벌어지는 사건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유대인의 결혼식 이후에 펼쳐지는 혼인잔치가 바로 천년왕국입니다(마태복음25장10절). 열 처녀 중 기름이 떨어진 다섯 처녀와 게으른 종과 염소 민족은 천년왕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가지치기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시니 내 안에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모든 가지는 그분께서 제거하시고 열매를 맺는 모든 가지는 깨끗하게 하사 그것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느니라.(요한복음15장1절~2절)
이 구절도 육체의 죽음을 말하는 겁니다. 제가 블로그 글들을 쓰면서 가끔 말씀드리고 있습니다만 국어를 잘 해야 믿음이 성장합니다. 위의 말씀을 잘 보세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내 안에 있는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일단 예수님 안에 있으면 예수님 밖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6절을 보면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버려진 가지처럼 시들어져서 불 속에 던져 태운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 있는 가지와는 다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은 불신자입니다.
따라서 2절에서의 '제거'는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성도의 육체를 죽인다는 뜻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웬만하면 아주 작은 열매라도 생산하게 됩니다. 그런데 열매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계속해서 죄만 짓는 성도를 뜻한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할 뿐더러 불신자들에게도 본보기로 삼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육신을 이 세상에서 제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천년왕국에서의 유대인들의 규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를 능가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결코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5장20절)
여기서 말씀하시는 하늘의 왕국은 천년왕국을 뜻합니다. 그리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는 유대인들에게 해당되는 의입니다. 이방인들에게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방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율법의 의'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너희의 의'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성경은 율법으로는 절대로 의롭게 될 수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의를 능가해야만 하늘의 왕국에 들어간다는 겁니다. 오늘날 유대인들 중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보다 더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아마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천년왕국에서는 가능합니다.
마태복음5장은 예수님의 산상수훈 말씀입니다. 이 말씀들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지킬 수 없는 명령들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왜냐하면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유대인들의 규범이기 때문입니다. 천년왕국은 예수님께서 직접 통치하는 왕국입니다. 그리고 사탄이 1천년 동안 바닥없는 구덩이에 갇혀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마귀의 유혹이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지킬 수 없는 규범도 그 때는 지킬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위의 20절 말씀은 율법으로 의롭게 되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해석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를 능가하는 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의를 뜻한다는 것이죠. 저는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 보다는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천년왕국에서의 유대인들의 규범이라고 보는 게 더 맞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20절 이후에도 지금은 지킬 수 없는 말씀들이 계속 나오기 때문입니다.
옛 사람들이 말한바, 너는 간음하지 말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그녀에게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속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네게서 내버리라. 네 지체 중의 하나가 없어지고 네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네게 유익하니라. 만일 네 오른손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네게서 내버리라. 네 지체 중의 하나가 없어지고 네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네게 유익하니라.(마태복음5장27절~30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악에게 맞서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그에게 다른 뺨도 돌려대며 또 어떤 사람이 너를 법에 고소하여 네 덧옷을 빼앗으려 하거든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고 또 누구든지 너로 하여금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와 함께 십 리를 가며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고 네게 빌리고자 하는 자에게 등을 돌리지 말라. 그들이 말한바, 너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며 악의를 품고 너희를 다루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마태복음5장39절~44절)
위에서의 너희도 당연히 유대인들을 의미합니다. 이 당시는 아직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입니다. 아직 교회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들을 교회에 적용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죽인 원수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유대인들을 학살한 히틀러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예쁜 여자를 음란한 시선으로 보았다고 해서 자기 눈을 빼버릴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므로 위의 말씀들은 천년왕국에서만 실현이 가능한 규범의 말씀들이라고 봐야 합니다. 특히 이 말씀들은 천년왕국을 이끌어가는 민족인 유대인들에게 해당되는 규범입니다. 천년왕국은 마귀가 없기 때문에 유혹이 없고 죄를 범하고자 하는 충동이 없는 시대입니다. 마태복음5장은 이점을 반드시 이해하시고 읽으셔야 합니다.
물론 산상수훈의 말씀을 이방인들에게도 영적으로 적용하여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율법으로는 절대로 의롭게 될 수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오직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특히 교회시대에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대속의 복음을 믿어야만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해주십니다.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께서 본래의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나니 그런즉 그분께서 또한 너를 아끼지 아니하실까 조심하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엄하심을 보라. 넘어진 자들에게는 엄하심이 있으나 네가 그분의 선하심에 거하면 너를 향하여는 선하심이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잘려 나가리라.(로마서11장21절~22절)
아시다시피 로마서는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구절들이 무수히 들어있는 책입니다. 따라서 위의 구절에서 "너도 잘려 나가리라"는 뜻은 구원을 잃는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문맥을 파악해야 합니다.
이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너도'입니다. '너도'는 너와 대비되는 누군가를 말하는데, 바로 유대인을 뜻합니다.
로마서11장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유대인들이 왜 잘려나갔는지 설명하는 챕터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도 유대인이라고 하면서 비록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지만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소수의 성도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눈이 멀었기 때문에 그들을 질투하게 하려고 이방인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충만하게 된 이후에는 다시 유대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다고 말합니다.
즉, 위의 성경말씀에서 잘려 나간다는 뜻은 구원받은 개별 교회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전체 교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륜이 유대인에서 이방인으로 옮겨갔듯이 교회도 예수님의 선하심을 거부하면 유대인들처럼 될 수 있다는 경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이 또다시 바뀔 수도 있다는 말씀이죠.
그들도 여전히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여지리니 하나님은 능히 그들을 다시 접붙이실 수 있느니라. 네가 본래 야생 올리브나무에서 잘려 본성에 역행하며 좋은 올리브나무에 접붙여졌을진대 하물며 본래의 가지인 이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자신의 올리브나무에 접붙여지겠느냐?(로마서11장23절~24절)
야생 올리브나무인 너희들(교회)이 좋은 올리브나무(유대인)에 접붙여졌는데 잠시 잘려져 나갔던 좋은 올리브나무 가지가 다시 자기 자신에게 접붙여지는 것은 얼마나 쉽겠느냐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이 교회에서 유대인으로 다시 바뀌는 것은 쉬운 일이라는 것이죠.
따라서 22절에서의 "잘려 나가리라"는 말씀은 개별 성도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이 바뀔 수도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개별 성도가 구원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 전혀 아닙니다.
그런데 어차피 교회는 마지막 때가 되면 모두 휴거됩니다. 교회시대 자체가 끝이 납니다. 지금은 마지막 때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와 있기 때문에 휴거가 임박한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륜이 바뀔 때가 임박했습니다. 7년의 환난기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경륜이 유대인 중심 사역으로 다시 바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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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에베소서2장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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