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께서 네 백성과 네 거룩한 도시에게 칠십 이레를 정하셨나니 이것은 범법을 그치고 죄들을 끝내며 불법에 대하여 화해를 이루고 영존하는 의를 가져오며 환상 계시와 대언을 봉인하고 또 지극히 거룩하신 분에게 기름을 부으려 함이라.(다니엘서9장24절)
그러므로 알고 깨달을지어다. 즉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가는 때부터 통치자 메시아가 올 때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있을 것이며 참으로 고난의 때에 거리와 성벽이 다시 건축되고(다니엘서9장25절)
육십이 이레 뒤에 메시아가 끊어질 것이나 그것은 그분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니라. 앞으로 올 통치자의 백성이 그 도시와 그 성소를 파괴할 것이요, 그 일의 끝에는 홍수가 있을 것이며 또 그 전쟁이 끝날 때까지 황폐하게 하는 것이 작정되었느니라.(다니엘서9장26절)
그가 많은 사람과 한 이레 동안 언약을 확정할 것이며 그가 그 이레의 한중간에 희생물과 봉헌물을 그치게 하고 가증한 것들로 뒤덮기 위해 심지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작정된 그것이 그 황폐한 곳에 쏟아지리라, 하니라.(다니엘서9장27절)
제가 휴거이슈에 참여하면서 충격을 받았던 점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자기가 크리스천이라고 주장하면서 휴거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7년 환난의 기간을 믿지 않거나 천년왕국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세대주의적 해석을 적대시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이 사람들이 보는 성경은 개역성경이거나 혹은 개역개정성경이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세대주의자들 중에서도 환난의 기간을 3년 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셨던 3년 반의 기간이 환난의 전반부였기 때문에 나머지 3년 반만 남았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서는 후반부에서 반박해 드리겠습니다.
7년 환난 기간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위의 다니엘서 후반부의 구절들을 문자적으로 보지 않고 영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인터넷에서 다니엘서 9장 후반부의 구절들을 검색해 보면 제대로 된 해석도 일부 검색됩니다만, 대다수가 세대주의적 해석을 비판하는 글들이 검색됩니다. 그런 글들을 읽어보면 죄다 자기들 나름대로의 영적인 해석을 하거나 혹은 어떤 성경학자나 유명 목사의 영적인 해석을 인용하거나 혹은 문구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것을 알라. 즉 마지막 날들에 위험한 때가 오리라.(디모데후서3장1절) 항상 배우나 결코 진리를 아는 데까지 도달할 수 없느니라.(디모데후서3장7절) 그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는 때가 오리니 그들이 귀가 가려워 자기 욕심대로 자기를 위해 선생들을 쌓아 두고 또 진리에서 귀를 돌려 꾸며 낸 이야기들로 돌아서리라.(디모데후서4장3절~4절)
위의 성경말씀처럼 아마도 지금이 마지막 날들이라서 진리가 아닌 비진리가 득세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적 해석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어떤 것부터 반박을 해야 할지 난감합니다만, 제 생각에 성경 초보자들이 걸려서 넘어질 것 같은 것들을 몇 가지만 추려 보았습니다.
첫째. 칠십 이레는 490년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의 완전수라는 주장입니다.
칠십 이레는 특정한 기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救贖) 사역의 완성을 위한 완전수의 개념이라는 주장입니다. 7이 하나님의 완전수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칠십 이레는 하루를 일 년으로 계산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 기간이 얼마가 될지는 하나님만이 아신다는 것이죠.
저는 이런 주장 자체가 놀랍기 보다는 이런 논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더 놀랐습니다. 다니엘의 칠십 이레는 유대인들에게 적용되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물론 이 구절들은 마지막 때가 언제인지 예측할 수 있기에 이방인들도 참고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유대인들에게 전달된 메시지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는 기간으로 연결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게다가 칠십 이레라는 기간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육십이 이레라는 기간도 나오고 한 이레라는 기간도 나옵니다. 한 이레의 중간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육십이 이레를 주후 70년경으로 연결합니다. 로마에 의해서 성전이 파괴된 시기라는 주장이죠. 그래서 이들은 다니엘서의 예언들이 모두 로마시대에 성취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요한계시록의 예언들도 주후 70년에 성취되었다고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이 서로 매치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7년 환난을 부정하는 많은 이들이 네로가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네로 시대에 적그리스도가 성전에 들어가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면서 자기에게 경배하라고 했던 적이 있나요? 사람들이 오른 손과 이마에 표를 받은 적이 있나요? 피가 섞인 우박이 내리고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생명체의 삼분의 일이 죽고 나무와 푸른 풀이 삼분의 일이 불에 탄 적이 있나요? 큰 별이 떨어져 물이 쓰게 되어 사람들이 죽은 적이 있나요? 바닥없는 구덩이에서 괴물들이 나와서 사람들을 독침으로 공격한 적이 있나요? 입에서 유황불이 나오는 괴물들이 사람들의 삼분의 일을 죽인 적이 있나요? 도대체 로마의 역사서 어디에 이런 기록들이 있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주후 90년경에 기록된 책입니다. 만약 주후 70년에 요한계시록의 모든 기록들이 성취되었다면, 왜 주후 90년에 예언의 말씀을 기록하겠습니까. 요한계시록1장1절을 보면 앞으로 일어나야 할 것들을 보여주시려고 기록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둘째. 고레스 왕의 칙령이 먼저라는 주장입니다.
물론 성전 재건의 첫 명령은 고레스 왕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다리오 1세 때에도 고레스의 칙령을 재확인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서9장25절은 단순히 성전 재건의 명령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알고 깨달을지어다. 즉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가는 때부터 통치자(the Prince) 메시아가 올 때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있을 것이며 참으로 고난의 때에 거리와 성벽이 다시 건축되고(다니엘서9장25절)
다니엘서9장25절의 문구를 자세히 보면,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라고 나옵니다. 예루살렘의 회복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성전의 건축이라고 나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건축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는 도시의 건축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회복과 건축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서에도 도시를 건축하겠다고 나와 있습니다(느헤미야2장5절).
또한 '거리와 성벽이 다시 건축되고'라고 나옵니다. 성벽의 재건이 포함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의 회복과 성벽의 재건은 아닥사스다 왕 때 이루어졌습니다.
고레스 왕 때는 성전건물의 건설작업이 시작된 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라(에스라1장3절)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정이 부족했고 건설공사를 방해하는 세력들도 있어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미완성으로 남았습니다. 다리오 1세 때에도 초기에는 진척이 없다가 한참이나 지나서 비로소 성전이 완공됩니다. 고레스와 다리오 1세 때에는 성전재건을 스룹바벨이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건물만 달랑 있었을 뿐, 운영은 엉망이었습니다. 공식적인 관리자가 없었고, 운영에 필요한 율법도 없었으며, 재정(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것이 아닥사스다 왕 때에 이르러 비로소 성전으로서 제대로 기능하게 됩니다. 율법이 다시 회복되었으며(하나님의 율법이 공식 법체계로 인정됨), 성전이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다스리는 중심 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이스라엘 도시의 성벽이 재건되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자치권이 회복되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성벽의 재건은 성전의 재건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만약 성벽이 없다면 성전 또한 항상 위협에 노출된 상태가 되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도성과 성전은 아닥사스다 왕 때 완벽하게 작동하게 됩니다. 금과 은을 비롯해서 제물(번제, 소제, 전제)에 필요한 것들을 국고에서 지원받고 성전 세금을 면제받는 등 재정지원을 풍부하게 받아서 재정 부족으로 운영이 멈추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아닥사스다 왕 때 예루살렘의 회복을 주도했던 사람은 느헤미야와 에스라입니다.
그리고 에스라에게 재판관과 관리 임명 권한이 주어지고 율법을 가르칠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제사장 겸 서기관으로서의 에스라에게는 불순종하는 도성의 백성들을 처벌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벌금, 투옥 등)이 주어졌습니다. 성전이 단순히 종교기관이 아니라 사법과 행정의 중심이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아닥사스다 왕 때 성벽이 재건되어 도시의 외형을 갖추게 되었고 하나님의 율법이 작동하게 되었으며 안정적인 재정을 바탕으로 성전이 예배와 제사, 교육, 재판 등을 담당하게 되어 공동체의 질서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이 영적 제도적으로 회복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9장25절에서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은 고레스 왕이 아니라 아닥사스다 왕의 칙령이 맞습니다.
셋째. 26절의 통치자가 메시아라는 주장입니다.
한 이레의 중간에 희생물과 봉헌물을 중단하는 일이 십자가사건이라는 겁니다. 그 이후부터는 교회가 성전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거죠. 성전을 황폐하게 하는 것도 유대인들에 대한 주님의 심판이라는 겁니다.
육십이 이레 뒤에 메시아가 끊어질 것이나 그것은 그분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니라. 앞으로 올 통치자(the prince)의 백성이 그 도시와 그 성소를 파괴할 것이요, 그 일의 끝에는 홍수가 있을 것이며 또 그 전쟁이 끝날 때까지 황폐하게 하는 것이 작정되었느니라.(다니엘서9장26절)
그러나 이는 완전히 잘못된 해석입니다. 우선, 주님이 성전을 황폐하기 하기 위해서 스스로 가증한 것들로 뒤덮는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26절의 통치자는 소문자 the prince입니다. 대문자 P로 시작하는 25절의 메시아 the Prince와는 다릅니다. 성경 전체에서 주님을 상징하는 통치자는 모두 대문자 Prince입니다. 그러므로 소문자 prince는 적그리스도로서의 통치자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넷째. covenant는 적그리스도가 쓸 수 없는 단어라는 주장입니다.
언약(covenant)은 하나님만이 쓸 수 있는 단어라는 겁니다. 그래서 26절의 통치자는 적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이 또한 사실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인간들 사이에서의 covenant도 많이 존재합니다. 심지어 적그리스도의 예표인 가룟 유다도 언약(covenant)을 맺은 적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covenant (창세기21장27절)
이삭과 아비멜렉의 covenant (창세기26장28절)
야곱과 라반의 covenant (창세기31장44절)
유대인들과 가나안 땅의 거주민들과의 covenant (출애굽기34장15절)
다윗과 요나단의 covenant (사무엘기상18장2절, 20장8절, 23장18절)
가룟 유다와 수제사장들과의 covenant (누가복음22장5절)
사람들의 covenant (갈라디아서3장15절)
다섯째. 26절의 홍수는 실제의 홍수가 아니라 주님의 심판으로 황폐하게 된다는 것을 홍수로 표현했다는 주장입니다.
육십이 이레 뒤에 메시아가 끊어질 것이나 그것은 그분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니라. 앞으로 올 통치자의 백성이 그 도시와 그 성소를 파괴할 것이요, 그 일의 끝에는 홍수가 있을 것이며 또 그 전쟁이 끝날 때까지 황폐하게 하는 것이 작정되었느니라.(다니엘서9장26절)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의 홍수입니다. 또한 홍수를 일으키는 주체는 주님이 아니라 마귀입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았으니 이것은 그녀가 광야 곧 그녀의 처소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얼굴을 피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 양육 받게 하려 함이라. 뱀이 자기 입에서 여자의 뒤에 물을 홍수같이 내뿜어 여자를 홍수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였으나 땅이 여자를 도우며 자기 입을 벌려 용이 그의 입에서 내뿜은 홍수를 삼키니(요한계시록12장14절~16절)
적그리스도가 성전에 들어가서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면(데살로니가후서2장4절),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속았다는 것을 알고 도망가게 됩니다. 적그리스도는 성전을 가증한 것으로 뒤덮고 파괴한 후에 유대인들을 살육하기 시작할 겁니다. 그 때부터가 후반부 3년 반의 대환난의 시기가 됩니다.
대환난 때 유대인들은 광야와 산으로 도망가게 되는데 그곳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처소가 있습니다(스가랴서14장5절, 호세아서2장14~15절, 이사야서26장20절). 마귀가 그 처소에 홍수를 일으키지만 주님의 도우심으로 땅이 갈라져서 물을 모두 흡수하여 유대인들이 살아남게 될 겁니다.
다니엘서에서의 대환난 시기에 대한 문구도 신약성경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대언자 다니엘을 통해 말씀하신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서서는 안 될 곳에 서 있는 것을 너희가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지어다.)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들로 도망할지어다.(마가복음13장14절)
예루살렘이 군대들에 에워싸이는 것을 너희가 보거든 그곳의 황폐함이 가까이 온 줄 알라.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들로 도망하고 그곳의 한가운데 있는 자들은 밖으로 떠나며 시골에 있는 자들은 거기로 들어가지 말지어다.(누가복음21장20절)
여섯째. 요한계시록에는 인간이 건축한 건물성전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또 내가 막대기 같은 갈대를 받았는데 그때 그 천사가 서서 이르기를,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성전 밖에 있는 뜰은 내버려두고 측량하지 말라. 그것이 이방인들에게 주어졌으므로 그들이 그 거룩한 도시를 마흔두 달 동안 발로 짓밟으리라.(요한계시록11장1절~2절)
보다시피 건물성전이 존재합니다. 만약 위의 성전이 구원받은 사람 자체를 뜻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성전 밖의 뜰이라는 표현으로도 알 수 있다시피 이는 건물성전이 맞습니다. 위의 성전은 땅에 있는 성전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성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또한 맞지 않습니다. 그것(성전)이 이방인들에게 주어졌다고 나옵니다. 하늘에 있는 성전이 어떻게 이방인들에게 주어질 수 있습니까. 이방인들이 출입할 수 있는 바깥뜰만 이방인들에게 주어졌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습니다만, 위의 성경말씀에 따르면 그들(이방인들)이 거룩한 도시를 파괴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바깥뜰도 성전의 전체 건물 중의 일부입니다. 비록 바깥뜰이라고 해도 하늘에 있는 성전의 일부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도시를 파괴하는 이방인들에게 주어진단 말입니까? 그리고 그런 이방인들이 하늘나라에 간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러므로 위에서의 성전은 이 땅에 세워진 건물성전이 분명합니다.
그는 대적하는 자요, 또 하나님이라 불리거나 혹은 경배 받는 모든 것 위로 자기를 높이는 자로서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성전 안에 앉아 자기가 하나님인 것을 스스로 보이느니라.(데살로니가후서2장4절)
위에서도 보다시피 적그리스도는 성전 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대적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성전 안에 앉았다는 표현이 있기 때문에 이 구절에서의 성전은 건물 성전이 틀림없으며 다른 해석은 불가능합니다.
일곱째. 환난은 후반부 3년 반의 기간만 남아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비성경적인 주장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으로 봐도 갑자기 대환난으로 들어가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환난 속에 들어간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킬 시간이 필요합니다. 유대인들도 왕국의 복음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합니다. 대환난의 시기는 거의 준 지옥과도 같은 끔찍한 시기입니다. 만약 교회의 휴거 후 곧바로 대환난이 시작된다면 남겨진 사람들은 회개할 생각을 하기도 전에 너무 빨리 죽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적그리스도는 많은 사람들과 한 이레 동안 언약을 맺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한 이레는 7년입니다. 이렇게 명백하게 7년의 언약이라고 나온 것을 부정하면 안 됩니다. 또한 그는 한 이레의 중간에 성전에 들어가서 황폐하게 한다고 하였으며(다니엘서9장26절~27절), 성전에 들어가서 자기가 하나님이라 주장한다고 성경에 나와 있고(데살로니가후서2장4절), 날마다 드리는 희생물을 제거하고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운다고 하였습니다(다니엘서12장11절).
유대인들은 그 모습을 보고 도망가게 됩니다. 그 시기가 대환난이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그렇다면 대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성전이 존재해야만 합니다. 교회의 휴거 이후 성전이 건축될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휴거 직후 곧바로 대환난이 시작될 수 없다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일부에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12장1절에서 교회는 살아있는 희생물이라 했고, 고린도전서15장31절에서 날마다 죽는다고 했기 때문에 이 두 구절을 믹스해서 날마다 드리는 희생물이 바로 교회라는 주장을 합니다. 그래서 다니엘서에 나와 있는 성전은 건물 성전이 아니라 교회를 의미한다는 겁니다. 교회가 휴거되면 곧바로 대환난이 온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이런 해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선 다니엘서는 교회에게 주어진 메시지가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메시지입니다. 그 당시에는 교회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적그리스도는 희생물만 그치게 한 게 아니라 봉헌물도 그치게 했습니다. 로마서12장1절에는 봉헌물이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날마다 죽는다고 말했던 이유는 희생물로서 죽는다는 뜻이 아니라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에 반박하기 위해서 부활이 있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매일 죽을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이었습니다. 성전 제사의 희생물로서 죽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또한 다니엘서9장26절에 그 도시와 그 성소라고 분명하게 나와 있기 때문에 희생물과 봉헌물을 그치게 한다는 27절은 건물 성전에서의 희생물과 봉헌물이 틀림없습니다. 더구나 데살로니가후서2장4절에는 적그리스도가 성전에 들어간다고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이 구절은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11장1절~2절을 보면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이 있다고 나오며 또한 그 도시를 42개월간 짓밟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 문구는 명백히 건물 성전을 의미합니다. 만약 대환난의 기간이 42개월밖에 안 된다면, 교회의 휴거 직후부터 건물 성전이 더럽혀져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휴거되기 전에 건물 성전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러므로 환난의 기간은 3년 반이 아닙니다. 최소한 건물성전이 건설될 기간이 추가적으로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예수님께서 초림 때 33년 반 동안 이 땅에 계셨다는 것도 힌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3년 반은 연수로는 34년입니다. 3+4=7입니다. 물론 온전한 34년이 아니라 약 6개월 정도 모자라는 기간입니다만, 저는 이게 오히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환난의 기간이 줄어든다는 마태복음24장22절의 예언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임신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기 때문에 곧바로 대환난으로 이어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교회가 휴거된 이후라야 임신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습니다. 전반기 3년 반의 기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임신하지 말라는 명령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는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s://smallstars7.tistory.com/306
마태복음24장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라는 뜻 - 환난 전 휴거의 증거
요한계시록과 더불어 마지막 때에 관한 성경말씀 중 가장 유명한 챕터는 아마도 예수님의 올리브산 설교말씀이 들어 있는 마태복음24장과 25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이 말씀은 대환난 속으
smallstars7.tistory.com
마태복음24장22절에서 환난의 날들이 짧아진다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7년의 기간에서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짧아질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얼마인지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8장12절을 보면 해와 달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입어서 그것들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고 낮에도 삼분의 일 동안 빛을 내지 아니한다고 나와 있기 때문에 그 정도의 기간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레고리력으로 2032년에 주님이 지상으로 재림하신다고 보는 사람들 중에는 2025년에 공중강림하셨어야 했기 때문에 6개월이나 1년 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추측일 뿐, 정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대환난 시기를 묘사한 요엘서2장에 그 기간을 추측할 수 있는 구절이 있긴 합니다. 요엘서2장25절에서 메뚜기와 자벌레와 쐐기벌레와 털벌레가 먹은 햇수를 되돌려 주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곤충들의 활동시기를 각각 더하여 모두 합한 것인지, 아니면 이 곤충들이 대체로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기 때문에 공통의 활동시기를 뜻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합니다.
그리고 환난의 시기에는 숫자 일곱이 계속 나옵니다. 일곱 봉인, 일곱 나팔, 일곱 금병(대접), 일곱 뿔, 일곱 눈, 일곱 영, 일곱 천사, 일곱 천둥, 일곱 머리, 일곱 재앙, 일곱 왕 등 거의 모든 숫자가 7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의 기간이 3년 반이라는 주장은 일곱과 연관된 환난의 전체적인 구조와 맞지 않습니다.
이 논리에 따라서 저는 주님과 교회의 결혼식 이후에 이어지는 혼인만찬 기간도 7년 동안일 것으로 예상합니다. 주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의 경우에도 결혼식 후의 혼인만찬 기간이 7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셋째 하늘에서는 이 세상에서와는 달리 시간의 개념이 없는 곳이긴 합니다만, 이 세상에서는 7년으로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위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마태복음24장22절 말씀에 따라서 그 기간이 어느 정도는 줄어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대환난은 적그리스도가 단일국가 시스템을 구축한 이후에야 가능합니다. 하나의 시스템을 가지고 통솔해야 군대를 비롯한 모든 조직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세력들이 단일국가 시스템을 구축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스템 없이 곧바로 대환난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리입니다.
또한 적그리스도는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쌓아서 지도자로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일정한 기간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휴거되고 나면 이 세상은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겁니다. 적그리스도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서 일정한 기간 동안 그 혼란을 수습할 겁니다. 그래야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는 그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전 세계적인 지도자의 위치에 등극하게 될 것이며, 성전에 들어가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기회를 잡게 될 겁니다.
https://smallstars7.tistory.com/289
교회가 7년 환난을 통과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환난전 휴거 총정리)
성경을 보면 주의 날, 즉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상에 재림하실 때 7년간의 환난이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크리스천 성도들은 환난기가 오기 전에 예수님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 모두 휴거되는
smallstars7.tistory.com
https://smallstars7.tistory.com/273
구원받는 방법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서 성경의 기본 교리들을 올리고 있습니다. 구원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물인데 매우 특별
smallstars7.tistory.com
https://blog.naver.com/smallstars7
작은별 : 네이버 블로그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에베소서2장8절)
blog.naver.com
'성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살과 피 그리고 반석 - 베드로는 카톨릭의 초대 교황이 아닙니다. (0) | 2026.02.17 |
|---|---|
| 록 음악을 듣는 크리스천 성도들에 관하여 (0) | 2026.02.13 |
| 구원에 관한한 뻔뻔한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0) | 2026.01.29 |
| 유대인을 조금이라도 미워했던 성도님들은 회개하셔야 합니다. (0) | 2026.01.28 |
| 남겨진 사람들이 구원받는 방법 - 행위구원은 마귀의 교리입니다. (0) | 2026.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