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을 보면 주의 날, 즉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상에 재림하실 때 7년간의 환난이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크리스천 성도들은 환난기가 오기 전에 예수님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 모두 휴거되는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일부 성도들 중에는 이러한 진실을 부정하고 7년의 환난기를 모두 통과한 후에 휴거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는 교회가 환난기의 중간에 휴거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를 환난통과설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그게 잘못된 믿음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관찰해 본 바에 따르면 이 문제도 결국 어떤 성경을 보느냐에 따라서 갈리는 것 같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대부분 환난전 휴거를 믿지만 소수 사본에 근거한 현대역본 성경(예를 들어 NIV, 개역성경 등)을 믿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환난통과설을 믿고 있었습니다. 또한 환난 속으로 들어가서 순교할 각오로 마귀의 세력과 싸우겠다는 종교적 열심이 강한 사람들도 환난통과설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보존해주신 유일한 성경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1611년 출판된 이후 400년 이상 지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교정하지 않은 성경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제임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곱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이스라엘의 다른 이름이죠. 즉, 킹 제임스는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그리스도 예수님이죠. 킹 제임스라는 말에 내포된 의미는 그리스도 예수님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는 사람들이 생각해낸 것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출판 당시 '홀리 바이블'이라는 타이틀로 출판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킹 제임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모든 크리스천 성도들은 환난 이전에 휴거된다는 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진리라고 믿습니다. 지금부터 왜 환난 전 휴거가 맞는지 성경을 근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만약 환난 후에 휴거된다면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게 됩니다.
천년왕국은 불신자들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성도들이 환난을 통과한 후에 휴거된다면, 아무도 천년왕국에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환난통과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대로라면, 환난을 통과하지 못하고 죽은 성도들은 천국에 갈 것이고 환난을 통과한 성도들은 휴거됩니다. 모두 천국에 가 버렸기 때문에 천년왕국에 들어갈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환난 통과설은 거짓임이 명백합니다.
휴거되어 천국에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서 천년왕국에 들어가 살게 된다는 주장도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휴거된 사람들은 이미 몸이 변해서 죽을 수 없으며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천년왕국에는 죽을 수 있는 몸을 가지고 들어가야 하며,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몸을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천년왕국에서는 100세에 죽게 되는 사람을 아이 때 죽는 것이라고 합니다(이사야서65장20절). 즉, 죽는 몸이라는 뜻이죠. 또한 나중에는 천년왕국의 인구수가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다고 나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계속 아이를 낳아서 인구수가 늘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요한계시록20장8절).
부활하거나 휴거된 몸이 왜 아이를 낳을 수 없는지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부활하거나 휴거된 크리스천 성도들은 몸이 변한다고 나와 있습니다(고린도전서15장49절/15장51절, 빌립보서3장21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몸이 변한 성도들은 사람이 아니라 천사들을 판단하는 존재가 된다고 말씀하셨으며(고린도전서6장3절) 장가가거나 시집갈 수 없는 상태의 몸으로 변한 하나님의 천사들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22장30절). 여기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천사들은 땅으로 내려온 타락한 천사들과는 다릅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죠. 따라서 휴거된 성도들이 다시 천년왕국에 들어가서 아이를 낳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천사들과 같은 몸이 구체적으로 어떤 몸인지에 대해서도 성경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우선 성도들의 몸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몸과 똑같이 변하게 된다는 성경구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때 사용하는 능력을 발휘하사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신의 영광스런 몸과 같게 만드시리라.(빌립보서3장21절)
우리가 땅에 속한 그 사람의 형상을 지닌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하신 그분의 형상을 지니게 되리라.(고린도전서15장49절)
위의 성경구절 이외에도 요한일서3장2절에도 성도들은 예수님의 몸과 같게 된다고 나와 있고, 그런 몸은 영에 속한 몸(고린도전서15장44절)이라 나와 있습니다. 부활하거나 휴거된 성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처럼 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어떤 몸을 가지고 계셨을까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썩지 않는 몸입니다(사도행전2장31절). 썩지 않는 몸이란 늙거나 병들거나 죽는 몸이 아닌, 엔트로피가 보존되는 영원하며 영존하는 생명을 지닌 영광스러운 몸을 뜻합니다. 부활한 성도들의 몸도 썩지 않는 몸이라고 나와 있습니다(고린도전서15장52절~54절, 베드로전서1장23절). 또한 닫힌 문을 통과하실 수 있는 몸이며(요한복음20장19절, 요한복음20장26절), 다른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는 몸이며(마가복음16장12절), 밀도를 초월하여 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몸입니다(요한복음20장17절, 누가복음24장31절). 엄청난 초능력을 지닌 몸이라는 뜻이죠. 즉, 아기를 낳을 수 있는 평범한 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몸은 피 시스템이 아니라 물 시스템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환난 속에서도 두 증인의 경우와 같이 부분적인 휴거는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아마 십사만 사천 명도 그렇게 휴거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환난성도가 휴거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휴거는 위로가 되는 복음이며 복된 소망입니다.
신실하신 증인이시요 죽은 자들 중에서 처음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요한계시록1장5절)
위의 성경구절을 보면 요한계시록의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교회에 말씀하시길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환난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은 은혜와 평강이 아닙니다. 신약성경은 총 35번이나 성도들을 향해 평강이 있으라 말씀하고 있으며,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누가복음24장36절, 요한복음20장19절,21절,26절).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말씀들로 서로 위로하라.(데살로니가전서4장18절)
저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느니라.(디도서2장13절)
위의 성경구절들도 마찬가지로 휴거는 서로 위로하는 복음이며 복된 소망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환난 속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견디어 내는 것은 결코 위로의 말씀이 아니며 복된 소망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대환난 시기를 일컬어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지옥과도 같은 시기라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24장21절). 교회가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교회가 불신자들과 똑같이 고난을 당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는 대환난으로 인해서 교회의 고통이 끝난 이후에 불신자들에게 환난이 임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불신자들과 똑같이 고통을 받게 되거나 오히려 불신자들 보다 더 심한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이 이해가 되시나요? 이는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셋째. 신랑은 신부를 강간범에게 맡겨 놓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 즉 교회는 예수님의 지체이자 예수님과 정혼한 신부이기 때문에(고린도전서6장15절, 12장27절, 에베소서4장25절, 5장30절, 로마서12장5절, 고린도후서11장2절, 요한계시록21장9절~10절, 19장7절, 19장9절)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위험한 곳에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정혼은 오늘날의 결혼과 동등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예수님은 남편이고 교회는 아내인 셈이지요. 7년 환난기에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땅 위에 떨어지는 시기입니다. 또한 사탄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마지막 발악을 하는 시기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성도들과 유대인을 극도로 박해하는 시기죠. 그 어떤 남편이 자신의 아내를 이런 곳에 남겨두겠습니까?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도 알 수 있는 겁니다. 결혼을 앞둔 신랑이 신부에게 '내가 처소를 마련하고 다시 올 때까지 강간범과 함께 있어주시오. 고통스럽겠지만 몇 년 동안 참고 기다리시오'라고 말하겠습니까? 이게 이해가 되십니까? 강간범인 사탄과 적그리스도가 자신의 신부를 마음껏 유린하도록 방치한 후에 결혼하겠다는 신랑이라니 상상이 가십니까? 우리 주님은 교회가 적그리스도에게 유린당하도록 방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7년간의 환난기는 거의 지옥과도 같은 시기입니다. 7년 환난기가 얼마나 극심한 고통의 시기인지에 대해서는 후반부에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넷째. 7년 환난기는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진노의 시간입니다.
마태복음24장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께서 오시는 때의 표적과 세상 끝의 표적에 대해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를 말씀하시면서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들로 도망가라 하셨고 도피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스라엘이 겨울이면 호주는 여름입니다. 만약 이 말씀이 교회에 주어진 말씀이라면 호주와 뉴질랜드에는 교회가 없다는 뜻이 됩니다. 이는 말이 안 되는 겁니다. 날씨뿐만 아니라 굳이 유대와 안식일을 꼭 집어서 말씀하신 것으로 봐서 주의 날의 진노가 1차적으로 유대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환난통과를 믿는 사람들이 크게 착각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구약시대를 신약시대로 착각하는 것이고 둘째는 유대인들을 교회로 착각한다는 것이며 셋째는 7년의 환난 속으로 들어가서 회개한 사람들을 교회로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환난 속에서 새롭게 성도가 된 사람들은 교회가 아니라 환난성도입니다.
신약시대는 십자가 사건 이후부터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아직도 구약시대입니다. 이점을 반드시 명심하셔야 합니다. 따라서 초림하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살아계셨을 당시에는 구약시대였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이전에 하신 말씀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구약성경의 말씀들과 신약성경의 십자가 사건 이전의 예언적 말씀들은 거의 모두 유대인들의 대환난 시기에 관한 말씀들이라는 것을 인지하신 후에 성경을 읽으셔야 합니다.
다니엘서9장24절을 보면 '주께서 네 백성과 네 거룩한 도시에게 칠십 이레를 정하셨나니'라고 나옵니다. 칠십 이레에 대해서 설명 드리자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모르시는 분들은 다니엘의 칠십 이레를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건 7년 환난기라는 개념이 다니엘의 칠십 이레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7년간의 환난을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에게 정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슬프도다! 그 날이 커서 어떤 날도 그것과 같지 아니하니 그날은 곧 야곱의 고난의 때니라. 그러나 그가 그 고난에서 구원을 받으리라.(예레미야서30장7절)
이런 식으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것은 기록된 바, 시온에서 구출자가 나와 야곱에게서 하나님의 성품에 위배되는 것을 치워 버리리니 내가 그들의 죄를 제거할 때에 이것이 그들을 향한 내 언약이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11장26절~27절)
위의 성경말씀에도 '야곱의 고난의 때', '야곱에게서 죄를 제거할 때'라고 나와 있습니다. 야곱은 이스라엘의 다른 이름이죠. 기본적으로 유대인들을 향한 진노이지 이방인들을 향한 진노가 아닌 것입니다(물론 하나님의 진노는 세상 모든 곳에 쏟아지기 때문에 이방인들도 고난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대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보낸 자들을 돌로 치는 자야.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자기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얼마나 자주 네 자녀들을 함께 모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버림받아 너희에게 황폐하게 되었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가 말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을 찬송할지어다. 할 때까지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23장37절~39절)
아시다시피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초림 때 왕국의 복음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잡아 죽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주의 날(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유대인들은 큰 환난을 당하게 되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그 큰 환난을 겪으면서 결국 깨닫게 되어 자신들이 죽였던 예수님이 하나님이며 자신들의 유일한 구세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가 말하노라, 그 온 땅에서 그 안의 삼분의 이는 끊어져 죽을 것이요, 삼분의 일만 그 안에 남을 것인데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고 은을 정제하듯 그들을 정제하여 금을 단련하듯 단련하리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그들의 말을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 백성은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주께서는 내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리라.(스가랴13장8절~9절)
그 날들의 환난 뒤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자기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들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며 그때에 사람의 아들의 표적이 하늘에 나타나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지파들이 애곡하며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가지고 하늘의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이 그의 선택받은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함께 모으리라.(마태복음24장29절~31절)
또 그 날에 내가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모든 민족들을 멸하려 하리라.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주민들 위에 은혜의 영과 간구하는 영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나 곧 자기들이 찌른 나를 바라보고 사람이 자기 외아들을 위하여 애곡하듯 그를 위하여 애곡하며 사람이 자기의 처음 난 자를 위하여 몹시 슬퍼하듯 그를 위하여 몹시 슬퍼하리로다.(스가랴12장9절~10절)
혹독한 환난의 기간을 거치면서 진리를 깨닫게 된 유대인들은 그제야 드디어 회개하고 슬피 울면서 그동안 자기들이 핍박했던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게 되는 겁니다.
다섯째. 주님께서 진노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는 의인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주의 날은 노아와 롯의 날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노아와 롯의 날이라고 하면 사람들의 악함과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만, 의로운 자들을 피신시켰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이런 식으로 행하사 의로운 자를 사악한 자와 함께 죽이시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의로운 자를 사악한 자처럼 여기시는 것도 결코 있을 수 없나이다. 땅의 심판자께서 의롭게 행하셔야 하지 아니하리까?(창세기18장25절~26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말이 맞다 인정하시며 만일 소돔 도시 안에 아브라함이 말한 숫자만큼의 의로운 자들을 찾으면 용서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창세기18장26절). 교회시대에는 믿음으로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이미 예수님의 피로 의롭게 되었기 때문에 의로운 자들입니다. 따라서 사악한 자들과 함께 죽일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롯과 롯의 가족들을 피신시키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급히 거기로 도피하라. 네가 거기에 갈 때까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창세기19장22절)
하나님께서는 롯이 피신할 때까지는 소돔과 고모라에 진노를 내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대홍수 사건 당시에도 노아의 가족들을 방주로 피신시켰고 노아의 친할아버지인 에녹은 아예 대홍수 훨씬 이전에 휴거되어 환난을 모면했습니다. 노아뿐만 아니라 에녹도 환난 전 휴거의 모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사건 당시에도 홍해를 갈라서 자신의 백성들을 피신시켰습니다. 아시다시피 파라오는 적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불신자들에게 떨어질 때에는 성도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 놓으십니다. 따라서 7년 환난기가 오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계시는 셋째 하늘로 옮겨 놓는 것입니다.
아래 성경구절을 보면 셋째 하늘에서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있을 때에 예수님의 아내, 즉 우리 크리스천 성도들이 자신을 예비하였다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그분께 존귀를 돌리자.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다가왔고 그분의 아내가 자신을 예비하였도다.(요한계시록19장7절)
예수님의 신부인 크리스천 성도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해서 이미 휴거되어 셋째 하늘에 있다는 뜻이죠. 그리고 혼인잔치가 끝나면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있는 죄인들을 처단하시기 위해 흰 말을 타고 내려오시는데 그 때 성도들도 함께 내려옵니다(요한계시록19장14절).
여섯째. 크리스천 성도들은 진노의 시간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명백한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으므로 나도 너를 지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기 위해 앞으로 온 세상에 닥칠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하리라.(요한계시록3장10절)
위 성경구절의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한다는 영어 원문은 I will keep thee from the hour of temptation 입니다. 중고등학교 때 영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면 keep from 관용구를 다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keep from의 뜻은 '~을 하지 못하게 하다' 또는 '~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는 뜻입니다. 비슷한 관용구로는 prevent from이 있습니다. 위의 성경구절은 심지어 개역성경에서 조차도 올바르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keep을 단순히 환난 속에서 지킨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놀랐습니다.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그분의 아들께서 하늘로부터 오실 것을 기다리는지 보여주는데 이분은 다가올 진노로부터 우리를 구출하신 바로 그 예수님이시니라.(데살로니가전서1장10절)
위의 성경구절에서도 다가올 진노, 즉 환난으로부터 구출하셨다고 나옵니다. 구출하실 것이라니라 이미 구출하신 것입니다. 영어 성경에도 delivered us from the wrath to come 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will deliver가 아니라 delivered 입니다. 여기서 deliver는 구조하다, 구해내다, 구출하다 등의 뜻입니다. 이처럼 과거형으로 되어 있는 성경이 진리를 담고 있는 성경입니다. 그래서 어떤 성경을 보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노에 이르도록 정하지 아니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도록 정하셨느니라(데살로니가전서5장9절)
위의 성경말씀에서도 진노에 이르지 않도록 정해 놓으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크리스천 성도들은 진노의 시간인 환난기에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6장을 보면 환난을 일컬어 '어린양의 진노(요한계시록6장16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의 어린양은 당연히 그리스도 예수님을 뜻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구원받은 크리스천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몸이라고 나와 있습니다(로마서12장5절, 고린도전서12장27절, 에배소서5장30절). 만약 환난통과설이 맞는다면 예수님께서 스스로 자신의 몸에 진노한다는 뜻이 됩니다. 이는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것입니다.
참고로 성경에는 여러 가지 진노가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할 때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는 핍박과 시험이 있습니다(디모데후서3장12절, 요한복음15장18절, 데살로니가전서3장5절, 데살로니가후서1장4절). 그리고 마귀들의 괴롭힘이 있습니다(에베소서6장11절~12절). 그러나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는 진노는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어린양의 진노(요한계시록6장16절), 그분의 진노(요한계시록6장17절,16장9절), 주의 진노(요한계시록11장18절), 하나님의 진노(요한계시록14장10절,15장1절,15장7절,16장1절,19장15절)
위에서 보다시피 이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겪는 환난과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하시는 환난은 구분해야 합니다. 즉, 어린양의 진노를 의미하는 7년 동안의 환난은 교회와는 상관이 없는 환난입니다.

일곱째. 요한계시록4장 이후부터는 교회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 일 뒤에 내가 보니, 보라, 하늘에 한 문이 열려 있더라. 또 내가 들은 첫 번째 음성 곧 나팔소리같이 내게 이야기하던 음성이 이르시되, 이리 올라오라. 이후에 반드시 있을 것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요한계시록4장1절)
위의 성경구절은 사도 요한이 환상 속에서 휴거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말씀해주시기 위해 환상을 보여주셨는데, 비록 환상이지만 휴거의 예표가 되기 때문에 이후에 교회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환난은 6장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교회는 미리 휴거됨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치밀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나팔소리같은 음성이라 말씀하시면서 나팔소리가 있다고도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15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소리가 바로 이 소리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요한계시록 2장부터 3장까지에 나오는 여러 교회에게 말씀하실 때에는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에베소, 서모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필라델피아, 라오디게아 등 7개 교회 모두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환난기인 13장9절 말씀은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라고 교회를 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도 환난기에는 교회가 없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6장 이후부터는 이스라엘 지파가 나오고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올리브나무와 두 증인, 그리고 민족의 구분이 생깁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교회 시대를 끝내고 다시 유대인들과 상관하시는 시기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22장16절에 딱 한 번 다시 나오긴 합니다. 그러나 22장16절은 요한계시록을 마무리하면서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포함한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증언케 한다는 의미이지 환난 속에 교회를 넣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덟째. 적그리스도는 교회가 휴거된 이후에 등장합니다.
그가 그의 때에 드러나게 하려고 무엇이 저지하고 있는지 지금 너희가 알고 있나니 불법의 신비가 이미 일하고 있으나 다만 지금 막고 있는 이가 막되, 길에서 옮겨질 때까지 막으리라.(데살로니가후서2장6절~7절)
위의 성경구절에서 그는 적그리스도입니다. 적그리스도를 저지하고 있는 무엇(what)은 성령님을 뜻한다고 볼 수 있으며 막고 있는 이(he)는 교회를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는 둘을 합쳐서 교화와 교회 안에 내주하는 성령님을 뜻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일곱 영은 2장과 3장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일곱 교회는 오늘날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참고로 일부 주석에서는 일곱 영을 이사야서11장2절에 나오는 영들이라고 해석합니다만, 이는 적절한 해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사야서를 자세히 보면 일곱 영이 아니라 여섯 영입니다. 주의 영 = 지혜, 명철, 계략, 능력, 지식, 두려움 등 총 여섯입니다. 일곱이 아닙니다. 주어인 주의 영까지 합쳐서 일곱이라고 보는 건 좀 어색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는 일곱 영은 성령님을 뜻하는 말씀이며 일곱이 하나님의 완전수이기 때문에 성령님이 완벽한 존재임을 표현하기 위해 일곱 영이라 하신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소아시아 근방의 지역 교회들은 일곱 군데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훨씬 더 많은 지역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가 모든 교회를 대표한다는 뜻으로 일곱 지역교회만 기록해 놓으신 것입니다. 따라서 일곱 영 또한 완벽한 성령님을 뜻하는 동시에 일곱 교회, 즉 모든 교회에 내주하고 계신 성령님을 뜻하는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여러 호칭으로 표현됩니다. 교회, 예수님의 신부, 예수님의 몸, 처녀 등으로 부르기도 하며 새 사람(new man)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에베소서2장15절). 따라서 교회는 그(he)라는 표현이 가능합니다. what을 성령님으로 보는 게 합당한지의 의문을 가진 분들이 계실 수 있습니다만, 요한복음에 하나님을 일컬어 우리가 경배하는 것(what we worship)이라고 표현한 성경구절이 나옵니다(요한복음4장22절). 그리고 로마서를 보면 성령님을 중성 대명사 itself로 받을 때도 있습니다(로마서8장16절). 따라서 위의 성경구절에서의 무엇(what)은 성령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교회와 교회 안에 내주하고 계신 성령님께서 적그리스도를 막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휴거되면 그제야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2장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을 원하시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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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후서2장 성경난해구절 해설 - 환난 전 휴거와 환난 통과설
너희는 영으로나 말로나 혹은 우리에게서 왔다는 편지로나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이 이르렀다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말라.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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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째. 공중 휴거와 지상 재림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초림 때에도 두 번 오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자의 씨로 이 땅에 오실 때에는 비밀스럽게 오셨으며 30세가 되기 이전까지는 사람의 아들로서 평범한 사람처럼 사셨습니다. 30세 이후부터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면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때부터는 마리아에게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부르지도 않았습니다(요한복음2장4절, 요한복음19장26절).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때에도 두 번 오십니다. 한 번은 공중강림하시면서 비밀스럽게 갑자기 오십니다(요한계시록3장3절, 데살로니가전서4장17절). 그러나 지상에 재림하실 때에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구름 속에서 오시며 올리브 산 위에 내려오셔서 그분의 두 발로 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 구름을 타고 올라가셨을 때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 하셨던 성경기록을 성취하실 것입니다(스가랴서14장4절, 사도행전1장9절~11절, 요한계시록1장7절/10장1절, 마태복음24장29절~31절).
공중강림은 예수님께서 지상에 오시지 않고 공중으로만 오십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사도 바울은 밧모 섬에 있을 때 하나님의 환상계시를 통해서 '이리 올라오라'는 음성을 들은 바 있습니다(요한계시록4장1절). 그냥 요한에게 내려오셔서 말씀하실 수도 있는 것인데 굳이 올라오라고 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 엘리야도 머리 위로 데려가신다 하였고(열왕기하2장3정,5절),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습니다(열왕기하2장11절). 따라서 크리스천 성도들은 위에서 부르시는 하나님을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받기 위하여 푯대를 향해 밀치며 나아가노라(빌립보서3장14절)
위의 성경구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은 영어 성경에 the prize of the high calling of God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high calling 즉, 공중에서 부르신다는 뜻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4장17절)
위의 성경구절에서도 공중에서 주를 만난다고 명확히 나와 있습니다.
공중휴거를 제대로 알려면 유대인의 결혼풍습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크리스천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님과 정혼한 사이입니다. 유대인들의 정혼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약혼과는 다릅니다. 정식으로 결혼식을 치르지는 않았지만 이미 부부가 된 것으로 봅니다. 신랑은 함께 살 집을 마련한 후에 신부를 데리러 오는데, 그 날은 신랑의 아버지가 정합니다. 보통은 1년 정도 후에 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2년 정도 걸리기도 합니다. 우리의 신랑인 그리스도 예수님 또한 천국에서 우리의 처소를 마련하신 후에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십니다(요한복음14장2절~3절).
저는 호세아서6장2절에 나오는 셋째 날에 우리(유대인들)를 일으키신다는 말씀이 주께서 오시는 날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오라, 우리가 주께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낫게 하시리라. 그분께서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시리라. 이틀 뒤에 그분께서 우리를 되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분의 눈앞에서 살리로다. 우리가 계속해서 주를 알려 하면 그때에 우리가 알리라. 그분의 나오심은 아침같이 예비되어 있으며 그분께서는 비같이 곧 땅에 내리는 늦은 비와 이른 비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세아서6장1절~3절)
주께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하셨기 때문에, 이틀 뒤에 되살리신다는 뜻은 주님께서 2000년이 다 차는 해에 유대인들을 되살려서 3000년이 시작되는 해에 천년왕국을 시작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늦은 비와 이른 비같이 오신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비같이 임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비가 내리는 것을 주님이 오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늦은 비가 먼저고 이른 비가 나중입니다. 저는 이 구절이 주님께서 봄(늦은 비)에 공중강림하시고 7년 후 가을(이른 비)에 지상재림하신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긴 기다림 끝에 신랑이 오면 결혼식이 열리고 7일간의 혼인잔치가 열립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예수님의 신부이자 예수님의 몸 된 성도들은 모두 부활하거나 휴거되어 천국에서 결혼식을 치르게 되며, 천국에서도 혼인잔치가 열리게 됩니다(요한계시록19장7절 및 19장9절). 천국에서 열리는 혼인잔치의 기간은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만, 아마도 7년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상에서의 7년간의 환난기 동안 성도들이 옮겨진 곳이 천국이기 때문이며, 성경에는 다니엘의 칠십 이레의 경우나 에스겔서 4장 말씀처럼 하루를 1년으로 등가 적용한 경우가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유대 결혼 풍습에 따르면 신랑은 7일간의 혼인잔치 이후에 신부를 만인에게 공개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도 7일간(7년간)의 혼인잔치 이후에 크리스천 성도들을 데리고 지상에 다시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중강림의 특징은 은밀히 도둑처럼 오십니다만, 지상재림의 특징은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만천하를 울리며 공개적으로 오십니다. 아래 지상재림의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보라, 그분께서 구름들과 함께 오시리라.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겠고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의 모든 족속들이 그분으로 인해 통곡하리니 참으로 그러하리로다. 아멘(요한계시록1장7절)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늘에 있던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은 채 흰 말들을 타고 그분을 따르더라.(요한계시록19장14절)
위 성경구절에서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의 실체는 아래와 같습니다.
그러나 각 사람이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시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 속한 자들이니라.(고린도전서15장23절)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타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로새서3장4절)
예수님의 재림 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구원받은 예수님의 신부, 즉 크리스천 성도들입니다. 아시다시피 부활의 영광은 세 단계로 진행됩니다. 첫 열매 - 수확 - 이삭줍기로 진행됩니다. 위의 성경구절에 따르면 수확에 해당되는 성도들만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 때 함께 내려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확은 당연히 교회시대의 성도들을 뜻합니다. 함께 내려온다는 뜻은 그 이전에 올라갔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올라가야 내려올 것이 아닙니까? 즉, 공중휴거가 먼저고 지상 재림이 나중이라는 뜻입니다.
열째. 고린도전서의 마지막 나팔 소리는 요한계시록의 일곱 번째 나팔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나팔절에 나팔을 100번 분다고 합니다. 마지막 100번째에는 좀 더 길게 부는데 이게 마지막 나팔소리라고 합니다. 이 마지막 긴 나팔소리를 히브리어로 '테키야'라고 합니다. 설령 이게 아니라고 해도 일곱 번째 나팔은 마지막 나팔이 아닙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신비를 보이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고린도전서15장51절)
위의 성경구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나팔이 7번 나오니까 7번째 나팔을 마지막 나팔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의 마지막 나팔은 전혀 다른 나팔입니다. 지금부터 왜 그런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요한계시록에는 7번째 나팔 이후에도 또 다른 나팔이 있습니다.
그 날들의 환난 뒤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자기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들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며 그 때에 사람의 아들의 표적이 하늘에 나타나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지파들이 애곡하며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가지고 하늘의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이 그의 선택받은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함께 모으리라.(마태복음24장29절~31절)
위의 마태복음 성경구절은 유대인들을 모으는 장면입니다. 땅의 모든 지파라고 할 때의 지파와 선택받은 자들은 유대인들을 뜻합니다. 지금은 그걸 따지려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나팔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분명 환난 뒤에도 나팔 소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7번째 나팔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또한 천년왕국 시대에도 모든 민족은 예루살렘에 와서 장막절을 지켜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스가랴서14장16절). 아시다시피 장막절에는 나팔을 불어야 하며 영원한 규례로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민수기10장8절). 따라서 천년왕국 시대에도 나팔소리가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의 나팔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뜻이죠. 7번째 나팔 이후에도 최소한 1천1번의 나팔소리가 더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당시는 주후 55년경이었고,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할 당시는 주후 96년경입니다. 따라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계시록 자체를 몰랐을 때입니다. 7번째 나팔이 무엇인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이 말 한 마지막 나팔이 계시록의 7번째 나팔과는 상관이 없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이해하고 있었을 겁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나팔은 일곱 천사가 부는 나팔입니다.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이런 식으로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15장에 나오는 마지막 나팔 소리는 천사들이 부는 나팔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팔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말씀들로 서로 위로하라.(데살로니가전서4장17절~18절)
데살로니가전서4장17절에는 하나님의 나팔소리라고 나와 있고, 고린도전서15장51절에는 마지막 나팔소리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두 성경구절을 참고하면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의 반대말은 처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처음 나팔소리는 언제 울렸을까요? 하나님의 처음 나팔소리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을 때 처음 울렸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만나려고 백성을 진영에서 데리고 나와 그들을 산기슭에 세웠는데 시내 산이 온통 연기로 자욱하였으니 이는 주께서 불 가운데서 그 위로 내려오셨기 때문이더라. 그곳의 연기가 용광로 연기같이 위로 올라갔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였더라. 나팔 소리가 오랫동안 나며 점점 더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하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음성으로 응답하셨더라.(출애굽기19장17절~19절)
진정한 의미의 구약이 시작되는 것이죠. 이 때 3천 명이 사망하게 됩니다(출애굽기32장28절). 반면 신약시대에는 성령님의 침례를 받아 3천명이 구원받게 되어(사도행전2장41절) 그리스도의 공중강림 때 휴거 받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처음 나팔은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이 땅의 백성들을 정죄하시는 나팔이며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은 은혜의 복음으로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셔서 하늘로 끌어 올리는 나팔입니다. 즉, 하나님의 첫째 나팔은 땅에 관한 나팔이며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은 하늘에 관한 나팔인 것입니다.
계시록4장을 다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이 일 뒤에 내가 보니, 보라, 하늘에 한 문이 열려 있더라. 또 내가 들은 첫 번째 음성 곧 나팔소리같이 내게 이야기하던 음성이 이르시되, 이리 올라오라. 이후에 반드시 있을 것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요한계시록4장1절)
여기서 말씀하시는 나팔소리같은 음성이 바로 고린도전서15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소리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음성 자체가 하나님의 나팔소리라 생각합니다. 아래 성경말씀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에 놀라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자들이 그의 음성을 듣고 나올 때가 오고 있는데(요한복음5장28절)
위의 성경구절도 부활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도 그의 음성, 즉 예수님의 음성이라 나옵니다. 이 음성이 바로 나팔소리와 같은 음성이며,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소리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는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나팔뿐만 아니라 둘째 아담이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일컬어 마지막 아담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아담에 대응하는 마지막 아담인 것이죠. 하나님의 첫째 나팔과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이 대비되는 것과 똑같은 구조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5장에는 이 외에도 서로 대비되는 두 가지의 개념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첫째 나팔소리 ⇔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소리(51절)
첫째 아담 ⇔ 마지막 아담(45절)
첫 열매 그리스도(영원한 생명)(20절,23절) ⇔ 멸망의 마지막 원수 사망(26절)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 ⇔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되는 것(22절)
썩는 것 ⇔ 썩지 않는 것(42절)
수치 ⇔ 영광(43절)
연약함 ⇔ 권능(43절)
본성에 속한 몸 ⇔ 영에 속한 몸(44절)
본성에 속한 것 ⇔ 영에 속한 것(46절)
땅에서 나서 땅에 속한 사람 ⇔ 하늘에서 나신 주님(47절)
땅에 속한 자들 ⇔ 하늘에 속한 자들(48절)
땅에 속한 그 사람의 형상 ⇔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49절)
썩는 살과 피 ⇔ 썩지 않는 하늘의 왕국(50절)
썩을 것과 죽을 것 ⇔ 썩지 않음과 죽지 아니함(53절~54절)
율법과 사망(출애굽기19장 첫 번째 나팔소리 참조) ⇔ 우리에게 승리를 주는 그리스도(마지막 나팔소리)(56절~57절)
따라서 고린도전서15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소리는 하나님의 첫 나팔소리와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나팔소리를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율법(사망)이 하나님의 첫 번째 나팔소리이고 은혜(영원한 생명)가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소리라는 뜻이죠. 마지막 나팔소리는 사실상 두 번째 나팔소리입니다. 마지막 아담이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도 사실은 두 번째 아담이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분명히 그런 의미로 받아들였을 겁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소리는 나팔소리같은 하나님의 목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열한째. 환난 전 휴거의 교리는 예수회나 존 넬슨 다비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일부에서는 환난 전 휴거는 프란시스코 리베라(1537~1591)라는 예수회 신부에 의해서 최초로 유포되었고 존 넬슨 다비(1800-1882)가 퍼뜨렸다고 주장합니다. 예수회가 고안했기 때문에 환난전 휴거는 가짜라는 것입니다. 과연 이게 맞는 말일까요?
저를 비롯한 바이블빌리버 크리스천 성도들이 환난 전 휴거를 믿는 것은 예수회 신부나 존 다비와 같은 신학자들 때문이 아닙니다.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예수회의 본체인 로마 카톨릭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삼위일체가 가짜인가요? 카톨릭이 삼위일체를 믿으니까 우리는 믿지 말아야 하나요? 이는 말이 안 되는 논리입니다. 삼위일체의 진리가 성경에 나와 있으니까 믿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환난 전 휴거도 성경 그대로 믿을 뿐입니다.

그리고 다비 이전에 이미 세대주의가 존재했으며 환난 전 휴거도 여러 차례 언급되었습니다. 콜로라도 크리스찬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이자 20년 이상 신학을 연구한 윌리엄 C. 왓슨의 'Dispensationalism Before Darby(2015년 출판)'라는 책을 보면 나다니엘 홈즈(Nathaniel Holmes, 1599-1692)라는 영국의 청교도 신학자가 휴거에 관해 쓴 글이 나옵니다.
성도들이 구름 속에서 주님을 만나기 위해 높은 곳으로 휴거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될 수 있을까요? 땅이 불타고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일어날 때 보존되기 위해서라면 어떨까요? 베드로후서 3:10.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에 타서 물 위로 들어올려져 대홍수에서 보존되었던 것처럼, 성도들도 불타면서 구름 속에서 방주인 그리스도께로 들어올려져 악인들이 멸망할 불의 대홍수에서 보존되어야 할까요?(145쪽)
1639년 코네티컷에서 첫 번째 교회를 세운 에프라임 휘트(Ephraim Huit, 1591-1644)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왕국은 유대인들에게 주어졌지만 우리 주님의 성육신 때에는 왕국이 유대인들로부터 빼앗겨 로마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와 '신부로서 왕족의 옷을 입은 교회'가 하늘로부터 내려올 때 마침내 구원받을 것입니다.(142~143쪽)
이 외에도 이 책에는 많은 사람들이 환난 전 휴거에 관해 언급한 적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존 다비가 퍼뜨린 게 아닙니다.

훨씬 더 오래된 기록도 존재합니다. 미국의 복음주의 전도사인 캔 존슨(Ken Johnson, 1965~)이 저술한 The Rapture(2009년 출판)라는 책을 보면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직후의 교회들, 즉, 초기 교회에 관해 집중적으로 연구한 책입니다. 이 책의 겉면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The Pretribulational Rapture of the Church Viewed from the Bible and the Ancient Church. 환난 전 휴거에 대한 성경과 고대 교회의 시각(The Rapture 표지문).
이 책에는 로마시대 Lugdunum(현재 리옹)의 주교였던 이레네우스(Irenaeus, AD 125년 ~ 202년)의 기록이 나오는데, 그는 AD 170년에 이단에 맞서다(Against Heresies)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When in the end that the Church will suddenly be caught-up from this, it is said, there will be tribulation such as not been since the beginning, nor will be.
마지막 때에 교회가 갑자기 들려 올라가게 되면, 이제까지 없었던 고난이 있을 것이며 그러한 고난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 터툴리안(Tertullian)이라는 사람은 AD 207년에 성서학자 마르키온(Marcion)의 논리에 반박하는 글에서
He (Paul) says those who remain unto the coming of Christ, along with the dead in Christ, will rise first, being caught up in the clouds to meet the Lord in the air.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가 오실 때 살아서 남아 있는 자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카르타고의 주교였던 키프리아누스(Cyprianus, AD 210년 ~ 258년)는 AD 250년에 키프리아누스의 논설(21-26)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We who see the terrible things have begun, and know that still more terrible things are imminent, may regard it as the greatest advantage to depart from it as quickly as possible. Do you not give God thanks, do you not congratulate yourself, that by any early departure you are taken away, and delivered from the shipwrecks and disasters that are imminent?
끔찍한 일들이 시작되었음을 보고, 더 끔찍한 일들이 임박했음을 아는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그 재앙을 떠나는 것을 가장 큰 이점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당신은 임박한 난파선과 재난에 앞서 채어 (올라)가는 출발에 의해 구원받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지도 않고 스스로 축하하지도 않나요?
위의 기록들은 예수회 신부였던 프란시스코 리베라(1537~1591) 보다도 1천3백년이나 앞서서 기록된 것들입니다.
이처럼 훨씬 오래된 기록에서도 이미 환난 전 휴거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누가 무슨 말을 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을 읽고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환난 전에 휴거가 있음을 누구라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환난 전 휴거가 예수회의 교리라고 최초로 주장했던 사람, 바로 그 자가 오히려 예수회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모든 기록으로 판단하면 프란시스코 리베라 이전에도 환난 전 휴거의 교리가 있었습니다. 다만 로마 카톨릭 암흑기가 길었기 때문에 없었던 것처럼 보였던 것이죠. 환난 전 휴거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대속의 복음과 한 몸처럼 붙어 있는 복된 소망입니다. 환난 전 휴거의 진리가 사람들에게 전해지면 십자가 보혈 대속의 복음을 알게 되어 구원받는 일이 생깁니다. 마귀는 이것을 두려워하여 환난 전 휴거의 진리를 어떻게 해서든 감추고자 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카톨릭 암흑기에는 이와 같은 진리가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열두째. 계시록에 등장하는 십사만 사천 명은 교회가 아닙니다.
또 내가 봉인된 자들의 수에 대하여 들었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십사만 사천이더라. 유다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갓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아셀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시므온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스불론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라.(요한계시록7장2절~8절)
위의 사람들은 교회가 아닙니다. 이들은 유대인들이며 환난기 성도들입니다. 절대로 이방인들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단 한 번이라도 이방인들을 가리켜 유다지파, 레위지파 등으로 부른 적이 있습니까? 성경은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위의 성경말씀을 비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말에 현혹되면 안 됩니다. 비유에 대해서는 아래 포스팅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s://smallstars7.tistory.com/283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비유가 아니라 실화입니다.
성경을 비유로만 읽기 시작하면 이단이 만들어집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기본적으로 문자 그대로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실 때는 반드시 비유임을 밝히시고 말씀하셨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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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왕좌 앞과 네 짐승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 같은 것을 부르더라. 땅에서 구속받은 십사만 사천 외에는 아무도 능히 그 노래를 배우지 못하더라. 이들은 여자들과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지 않은 자들이니 그들은 처녀들이니라. 이들은 어린양께서 가시는 대로 따라가는 자들이며 사람들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하나님과 어린양께 첫 열매가 된 자들이더라.(요한계시록14장3절~4절)
위의 성경말씀에서 이들을 처녀들(virgins)이라 부르고 있는데, 여기서의 처녀들은 헬라어 원어 성경을 보면 남성 명사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남자들입니다.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 예수님과 정혼한 교회를 처녀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처녀들'을 교회라고 착각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처녀들은 예수님의 신부인 교회가 아닙니다. 성경은 단 한 번도 교회를 복수 명사인 처녀들이라 표현하지 않습니다. 단수 명사인 '한 처녀'라고 표현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속한 질투로 너희에 대하여 질투하노니 이는 내가 너희를 순결한 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기 위해 한 남편에게 너희를 정혼시켰기 때문이라.(고린도후서11장2절)
위의 고린도후서11장2절의 '처녀'는 여성명사입니다. 사도 바울이 크리스천 형제들을 향해서 처녀라고 했기 때문에 여성명사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처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인 그리스도 예수님과 결혼해야 할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사만 사천 명은 남성명사인 '처녀들'입니다. 처녀들은 결혼식과 무관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동시에 신부입니다. 따라서 여기서의 처녀들은 교회가 아니라 환난기 성도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환난 속에서 구원받은 첫 열매죠. 이들 뒤에 많은 열매들이 수확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자들과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뜻은 결혼하지 않는 남자들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혹자들은 이 구절에서 나오는 여자들을 음녀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만, 요한계시록에서 음녀를 칭할 때는 직설적으로 '음녀'라고 하던지 또는 단수로 '여자'라고 하지 '여자들'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지파의 숫자를 세실 때 항상 남자들의 숫자만 세셨습니다. 만약 여기서의 더럽힌다는 뜻이 음녀와의 간음(배도)을 뜻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14만4천명을 뜻하는 처녀들이 남성명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여자들은 믿음이 없어서 14만4천에 들어가지 못하나요? 그리고 14만4천명이 교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여자들은 크리스천이 될 수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만약 교회가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면, 굳이 2명의 증인과 복음을 선포하는 14만4천명이 왜 필요합니까? 환난 기간 중에도 그냥 크리스천 성도들이 복음을 전파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따라서 14만4천명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특별한 사람들이며 특별한 권능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라고 봐야 합니다. 또한 이들이 선포하는 복음은 교회시대의 복음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재림과 천년왕국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왕국의 복음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2천 년 전에 이스라엘에 오셨던 그 당시의 복음과 똑같은 복음입니다.
환난 속의 복음은 은혜의 복음이 아닙니다. 교회가 휴거된 이후 천년왕국을 기다리며 새롭게 선포되는 왕국의 복음입니다. 144,000명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초림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 번 왕국의 복음을 선포하며 다니는 유대인들입니다. 다만 초림 때에는 유대인들에게만 선포되었던 복음이었으나 환난기에는 모든 민족에게 선포됩니다(마태복음24장14절).
열셋째. 교회가 휴거된 이후에 건물성전이 지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가 성전을 떠나실 때에 그분의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보여 드리려고 그분께 오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아니하느냐?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서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지 아니하고 다 무너지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24장1절~2절)
예수님께서 예언하신대로 그 당시의 성전은 주후 70년이 되던 해에 무너져서 흔적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건물성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이미 그 기능을 다 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대속 사역이 완성된 즉후 성전의 휘장이 갈라지면서 성도들은 더 이상 건물성전과 대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아도 되었으며, 크리스천 성도들의 몸 자체가 성전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시고 숨을 거두시니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졌더라.(마가복음15장37절~38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린도전서3장16절)
무슨 말이냐? 너희 몸이 너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전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가 그분을 하나님에게서 받았고 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고린도전서6장19절)
너희도 살아 있는 돌들로서 영적 집으로 건축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도다.(베드로전서2장5절)
따라서 교회시대에는 크리스천 성도들의 몸 자체가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크리스천 성도는 유대인이든 이방이이든 상관없이 복음을 믿고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면 누구든지 구원받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신부이자 예수님의 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 성도들이 휴거되고 나면 이 세상에는 성전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또다시 이스라엘 백성들과 상관하는 시기가 되기 때문에 반드시 성전이 필요한 것이죠.
더구나 유대인들은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학수고대하는 메시아는 반드시 성전으로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군대들의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주가 갑자기 자신의 성전에 오리니 곧 너희가 기뻐하는 언약의 사자라. 보라, 그가 오리라.(말라기서3장1절)
위의 성경말씀에 따라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절대로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사도행전2장 및 3장 참조). 왜냐하면 갑자기 성전에 임하신다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환난기에 건물성전이 있다는 성경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대언자 다니엘을 통해 말씀하신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것을 너희가 보거든 (누구든지 읽는 자는 깨달을지어다.)(마태복음24장15절)
위의 성경구절은 환난기에 적그리스도가 성전에 선다는 것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만 보고 거룩한 곳이 예루살렘 도시를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좀 더 구체적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건물성전을 뜻하는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래 성경말씀들을 보면 거룩한 곳이 건물성전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대적하는 자요, 또 하나님이라 불리거나 혹은 경배 받는 모든 것 위로 자기를 높이는 자로서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성전 안에 앉아 자기가 하나님인 것을 스스로 보이느니라.(데살로니가후서2장4절)
또 내가 막대기 같은 갈대를 받았는데 그때 그 천사가 서서 이르기를,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성전 밖에 있는 뜰은 내버려두고 측량하지 말라. 그것이 이방인들에게 주어졌으므로 그들이 그 거룩한 도시를 마흔두 달 동안 발로 짓밟으리라.(요한계시록11장1절~2절)
데살로니가후서에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분명히 나와 있으며, 요한계시록11장에는 제단이라는 단어와 측량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건물임이 틀림없습니다. 또한 '마흔두 달 동안'이라는 말도 7년간의 환난기를 뜻하는 명백한 말씀입니다.
즉, 구약시대에는 건물성전이었고, 신약시대에는 교회 성도들 자신의 몸이 성전이었고, 환난기에는 다시 건물성전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열넷째. 요한계시록20장의 짐승의 표를 거부한 사람들의 부활 이전에 교회는 이미 결혼식을 끝냈습니다.
환난통과설을 믿는 사람들은 짐승의 표를 거부한 사람들을 교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표를 거부한 사람들은 교회가 아닙니다. 환난성도들을 뜻합니다. 요한계시록20장4절의 첫 문장을 보면 '왕좌들과 그것들 위에 앉은 자들'이 나오는데 바로 이들이 교회입니다. 즉, 요한계시록20장5절에서의 첫째 부활은 교회와 환난기 성도 모두를 포함하는 부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포함하여 예수님 이후부터 천년왕국 직전까지의 모든 부활을 포함하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고 천년왕국 이후에 부활하는 사람들은 둘째 부활이며 동시에 둘째 사망이 되는 것이죠.
짐승의 표를 거부한 사람들이 교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대로라면, 예수님과의 혼인식은 환난이 끝난 후에 천년왕국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에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아래 성경구절을 보세요.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그분께 존귀를 돌릴지니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이르렀고 그분의 아내가 자신을 예비하였도다.(요한계시록19장7절)
위의 성경구절에서 보다시피 교회는 이미 예수님과의 혼인식을 마쳤기 때문에 아내(wife)라는 호칭이 붙여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잔치를 하는 것이죠. 혼인식이 끝났으니까 혼인 잔치를 하는 것입니다. 혼인식 이전까지는 교회는 아내가 아니라 신부(bridegroom)로 불렸습니다(요한계시록18장23절). 따라서 교회는 요한계시록20장 이전에 이미 휴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님과 정혼한 사이이기 때문에 영적으로는 이미 아내가 된 상태입니다. 아내로 비유된 곳도 있습니다(에베소서5장23절~24절 참조). 그러나 아직 결혼식을 거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식으로 아내가 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권능에 의해서 보호받고 있는 예비아내로서의 자격을 가지고 있는 상태죠. 그래서 요한계시록 이전까지의 성경은 교회를 예수님의 아내라고 정식으로 호칭하지 못했던 겁니다. 성경에서 교회가 예수님의 아내라고 직접적으로 표현된 곳은 요한계시록19장7절이 처음입니다.
너희 허리에 띠를 띠고 너희 등불을 타오르게 하며 너희 자신은 마치 자기 주인이 결혼식에서 돌아올 때에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같이 되라. 그가 와서 문을 두드리면 그들이 즉시 그에게 열어 주리라.(누가복음12장35절~36절)
위의 성경말씀에서도 보다시피 주인(예수님)이 결혼식에서 돌아올 때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미 결혼식을 끝낸 상태라는 뜻이죠.
그때에 하늘의 왕국은 마치 자기 등잔을 가지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으리라.(마태복음25장1절)
마태복음25장에 나오는 열처녀 비유는 교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7년간의 환난 속으로 들어간 유대인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25장1절 첫 단어가 '그때에'라는 단어입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24장을 참고하면 환난 속에 들어가 있는 바로 그 때를 뜻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올리브산 설교 말씀은 마태복음24장과 25장까지입니다. 1차적으로는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이죠. 따라서 기름이 떨어진 다섯 처녀는 구원을 잃어버린 교회가 아닙니다. 믿음을 가지고 환란의 끝까지 견뎌야 하는데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탈락한 유대인들을 뜻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자 예수님의 신부이며 한 처녀입니다(고린도후서11장2절). 열 처녀가 아닙니다. 성경은 단 한 번도 교회를 복수의 처녀들로 표현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열 처녀가 가지고 있던 기름은 성령님이 아닙니다. 성령이 어떻게 소멸될 수 있습니까? 성령님은 기름이 떨어지듯이 소멸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성령님은 교회 성도가 구원받는 그 즉시 성도에게로 들어가서 영원토록 떠나지 않습니다(요한복음 14장16절). 그리고 기름이 떨어지면 돈을 주고 사라고 나와 있습니다. 성령님을 돈 주고 산다는 게 말이 됩니까?
등불을 켜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교회가 아니라 이미 교회와의 결혼식을 마치고 지상으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유대인들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두 번 결혼하십니다. 한 번은 공중강림하시면서 자신의 신부인 교회의 휴거사건을 일으키신 후 하늘에서 결혼식을 하시고, 나머지 한 번은 7년 환난 이후에 교회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오셔서 유대인과 결혼하십니다.
열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 그리고 양 민족과 염소 민족 비유는 모두 동일한 비유의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지상으로 재림하실 때 벌어지는 사건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유대인의 결혼식 이후에 펼쳐지는 혼인잔치가 바로 천년왕국입니다(마태복음25장10절). 열 처녀 중 기름이 떨어진 다섯 처녀와 게으른 종과 염소 민족은 천년왕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물론 열처녀 비유를 영적으로 교회에 적용해서 마지막 때에 믿음을 굳게 유지하면서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러나 열처녀가 실제의 교회라고 주장하면 자칫 교회가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는 잘못된 교리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하셔야 합니다.
열다섯째. 환난 후 휴거 이론은 복음을 전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만약 교회의 휴거가 환난 이후에 있다면, 불신자들은 복음을 소홀히 여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환난이 오기 전에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환난이 닥치면 그 때에 가서 믿으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열여섯째. 7년 환난기는 인간이 견디기 힘든 엄청난 재앙이 몰아치는 거의 준 지옥과도 같은 시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그 날들이 짧아지지 아니하면 어떤 육체도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로되 선택 받은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이 짧아지리라.(마태복음24장22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에겐 구원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환난기가 길어지면 그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환난기에 들어간 사람들에게는 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환난기에 들어간 인간들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십니다. 그래서 그 날들이 짧아지는 것이죠. 요한계시록8장12절을 보면 해와 달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입어 어두워진다고 나와 있기 때문에 그만큼 날이 짧아진다는 뜻이라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7년 환난기에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고통은 요한계시록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우선 요한계시록 6장을 보면, 땅의 사분의 일에 기근이 들고 짐승들이 사람을 해치는 일이 생깁니다.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게 되고 달이 피처럼 붉게 변합니다. 하늘의 별들이 땅에 떨어집니다. (참고로 별은 하늘에 달려 있는 조명의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땅에 떨어질 때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면서 떨어집니다. 이를 두고 과학에서는 유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이 두루마리가 함께 말리는 것같이 말려서 떠나갑니다. 하늘이 말려서 떠나간다는 의미는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합니다만, 하늘돔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아마도 인간과 동식물을 보호해주던 하늘의 어떤 것들이 없어진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산과 섬이 옮겨진다고 되어 있는데 엄청난 지진을 동반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요한계시록 7장입니다. 땅과 바다에 바람이 불지 않는 일이 생깁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이 세상에 바람이 불지 않으면 얼마나 답답하고 얼마나 생기가 없겠습니까. 이어지는 요한계시록 8장을 보면,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땅 위로 쏟아지고 나무의 삼분의 일이 타고 푸른 풀이 타는 일이 생깁니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며 바다 생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파괴됩니다. 하늘로부터 큰 별이 떨어져서 강들의 삼분의 일과 물들의 근원 위에 떨어지는데 물들이 쓰게 되어 사람들이 그 물을 마시고 죽게 됩니다. 그리고 낮과 밤의 삼분의 일이 빛을 내지 못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요한계시록 9장에는 땅 속에서 올라오는 메뚜기라 불리는 괴물이 사람을 공격한다고 나와 있는데, 그 괴물은 사람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으며 사자의 이빨을 가지고 있으며 흉갑과 날개를 가지고 있고 전갈과 같은 꼬리가 달려 있다 합니다. 그 괴물에게 공격받은 사람들은 다섯 달 동안 전갈이 사람을 쏘는 고통처럼 강한 고통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 때는 사람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다고 합니다. 상상이 가십니까? 얼마나 고통이 심하면 차라리 죽고 싶어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죽을 수조차도 없다고 합니다.
이어서 또 다른 괴물이 나와서 사람을 해치는데 괴물의 모습은 사람과 비슷하며 불과 청옥과 유황으로 된 흉갑을 지니고 있으며 입에서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는데 그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사람들의 삼분의 일을 죽이고 뱀처럼 생긴 꼬리들로 사람들을 해친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회개하지 아니하고 우상들에게 경배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불신자들은 그 때까지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을 보면 유명한 짐승의 표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오른 손 안에나 이마 안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사람들은 사거나 팔 수 없기 때문에 적그리스도의 세상에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16장을 보면 이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은 악취가 나며 몹시 아픈 헌데가 생긴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이 창조된 이래로 가장 크고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고 모든 섬이 사라지고 산들도 보이지 않게 되며 큰 우박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합니다. 정말 기막힌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지독한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예수님의 심판을 받아 진노의 포도즙 틀에서 포도송이들이 으깨지듯이 모두 죽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의 궁극적인 운명은 요한계시록 14장과 20장에 명확히 나와 있는데, 불 호수에 던져져서 불과 유황으로 영원무궁토록 밤이나 낮이나 고통 받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년이나 몇 십 년도 아니고 영원무궁토록 밤낮으로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지옥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믿음이 없던 사람들이 환난기 동안 믿음이 생겨서 적그리스도 세력에 저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환난기 성도라고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 중의 대다수는 목이 잘리는 순교를 통해서 천국에 들어가게 되고 그 중 극소수가 적그리스도 세력을 피해서 도망 다니거나 숨어 지내면서 7년을 견디어 살아남아 천년왕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7년간의 환난기는 거의 지옥과도 같은 시기입니다.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런 곳에 들어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평안을 주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들을 지옥과도 같은 곳에 넣는 것은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크리스천 성도가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은 거짓 교리이며 마귀의 교리입니다. 환난을 통과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환난기의 고통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믿음을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믿음만으로는 좀 부족하니 내가 무엇인가를 노력해서 구원을 지켜내겠다는 목적이죠.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 칭찬을 듣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교만입니다. 성경은 교만을 큰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교만입니다.
그리고 환난 속에 들어간 사람들이 명심하셔야 할 게 있습니다. 구원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할 거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공짜로 받는 겁니다. 그런데 환난기는 교회시대와 조금 다른 게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행위로 증명해야 합니다. 어떻게 증명할까요? 심플합니다. 짐승의 표를 거부하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짐승의 표를 받으면 아무런 희망도 남지 않게 됩니다. 무조건 지옥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하고 짐승의 표만은 절대로 받지 마셔야 합니다.
그러나 짐승의 표를 거부하는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행위는 믿음의 결과입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휴거된 이후의 환난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환난 속에서 구원받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를 클릭하셔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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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사람들이 구원받는 방법 - 행위구원은 마귀의 교리입니다.
휴거되지 못하고 남겨진 분들 중에서 구원받고자 하시는 분들은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을 주의 깊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구원받는 방법은 딱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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