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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마태복음 24장40절,41절의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진다는 구절은 휴거가 아닙니다.

휴거 (출처: 사랑침례교회)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질 것이요, 두 여자가 방앗간에서 맷돌을 갈고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지리라.(마태복음24장40절~41절)

 

이 구절은 7년 환난기에 들어간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들 중에 하나입니다. 이 구절을 두고 크리스천 성도들이 환난기 도중에 휴거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일반 성도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목사님들까지도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4장은 환난통과설을 믿는 사람들과 환난 전 휴거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 극명하게 의견이 갈리고 있습니다. 세상의 마지막 때, 즉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7년 동안 인류에게 내려지는 극심한 고통을 모두 체험하고 견디면서 7년의 전 과정을 통과해서 살아남아 휴거를 받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과 그게 아니라 환난기 이전에 크리스천 성도들이 모두 휴거된다고 믿는 사람들의 의견이 완전 다르다는 거죠. 저는 환난 전 휴거를 믿고 있으며, 이것이 성경에 나타난 진리라고 믿습니다.(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진다는 마태복음24장40절~41절이 왜 휴거가 아닌지에 대해서는 글의 후반부에 자세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제부터 성경에 나와 있는 몇 가지 증거 구절들을 가지고 왜 환난 전 휴거가 맞는지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천년왕국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천년왕국이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직접 다스리는 이 땅에서의 왕국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왕이 되셔서 통치하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초림 때에 그 일을 하시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초림 당시에는 은혜의 복음이 아니라 왕국의 복음이 선포되었던 것입니다. 침례자 요한도 "너희는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3장2절)" 이렇게 외쳤으며, 예수님께서도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선포하기 시작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태복음4장17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그분을 거부해서 왕국이 연기되었죠.

 

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대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보낸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자기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얼마나 자주 네 자녀들을 함께 모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버림받아 너희에게 황폐하게 되었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말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할지어다. 할 때까지 이제부터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23장37절~39절)

 

이 구절에서 보다시피 예수님의 초림 때에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하였지만, 훗날 유대인들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할지어다’라고 회개하고 돌이킬 때에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다시 볼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초림 때 연기되었던 하나님의 왕국이 예수님의 재림 때에 다시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 때에는 또다시 왕국의 복음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의 전체적인 주제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왕국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 주제 속에 인간의 구원이 들어 있는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왕국을 강압적으로 세우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들, 즉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천년왕국을 주제로 한 글은 추후에 따로 포스팅할 기회가 있겠습니다만, 한 가지만 우선 말씀드리자면, 베드로후서 3장에 나오는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일, "그러나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들이 큰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원소들이 뜨거운 열에 녹으며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도 불태워지리라.(베드로후서3장10절)",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서두르라. 그 날에 하늘들이 불이 붙어 해체되고 원소들도 뜨거운 열로 녹으려니와(베드로후서3장12절)"라는 구절들은 예수님께서 지상 강림하신 그 즉시 그렇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앞에 나오는 8절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 사실에 대하여 무지한 자가 되지 말라.(베드로후서3장8절)" 즉, 주의 날은 하루를 뜻하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지상 재림과 천년왕국을 모두 포함하는 1천년 정도의 기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베드로후서3장에 굳이 8절의 말씀을 넣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10절,12절과 연계된 구절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것입니다. 만약 관련이 없다면 정말 생뚱맞은 글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구절을 성경에 기록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19장부터 22장 까지는 예수님의 재림과 천년왕국,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까지의 과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자와 어린양(출처: Pixabay)

 

위키백과나 네이버 지식백과, 나무위키 등에 나온 천년왕국 관련 내용은 너무나 부실하고 자의적이기 때문에 마치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해서 둘 다 도랑에 빠진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마태복음15장14절) 그런 글을 신뢰하게 되면 도랑에 빠지게 됩니다. 물론 천년왕국 자체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천년왕국의 존재를 믿는 성도들이라면 목사나 성경학자가 영해하는 방식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문자 그대로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항상 숫자 7로 역사하십니다. 성경대로 믿는다면 천지창조 이후 지금까지 약 6천년의 세월이 흘렀으며 이후 1천년은 안식하는 기간입니다. 반드시 1천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저는 천년왕국 이전에 휴거된다는 ‘전 천년의 진리’를 믿습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으로 성경의 연대를 계산하는 것은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유대력(히브리력)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이후 지금까지 5784년이 지났다고 되어 있어서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기간과 무려 200년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세의 징조는 단순히 어림짐작하는 기간으로 추측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알려주신 예언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이 다시 건국된다고 예언되어 있으며(이사야서14장1절), 예루살렘도 회복된다고 나와 있습니다(스가랴서1장16절).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뜻합니다(예레미아서24장1절~5절, 호세아서9장10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바로 이 때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이 가까이 이른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24장33절).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24장34절에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성취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이 세대란 이 모든 일들이 성취되는 것을 보는 세대를 뜻합니다. 시편90편10절에 사람의 햇수는 70년이고 강건하면 80년이라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건국 또는 예루살렘의 회복 이후 70년~80년이 되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왜 크리스천 성도들이 천년왕국 이전에 휴거되는지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째, 천년왕국에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람들이 들어갑니다.

 

천년왕국에는 환난을 통과한 성도들, 이른바 ‘환난기성도’들이 들어가야 합니다. 또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몸을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때부터는 날수가 많지 않은 어린 아기나 자기 날들을 채우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거기에 없으리니 이는 아이가 백세에 죽을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나 죄인은 백세가 되어도 저주받은 자가 되리라.(이사야서65장20절)" 만약 환난통과설을 믿는 사람들의 주장대로라면, 7년 동안 끝까지 견뎌낸 사람들이 휴거된다는 뜻이 됩니다. 휴거되는 순간 몸이 영화로운 몸으로 바뀌게 됩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죠(마태복음22장30절). 그럼 천년왕국에는 누가 들어갑니까? 믿음을 가지고 7년을 버텨낸 모든 성도들이 휴거되고 나면 이 땅에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또한 불신자들은 천년왕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즉, 환난통과설대로 해석한다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람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천년왕국에 단 한 명도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둘 째,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아내를 환난기 속에 남겨두지 않으십니다.

 

크리스천 성도들은 예수님과 정혼한 아내(고린도후서11장2절)이자 예수님의 몸(로마서12장5절,고린도전서12장27절,에배소서5장30절)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요한계시록19장7절,19장9절)가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즉, 크리스천 성도들은 하나님과 결혼서약을 맺은 신부(新婦)입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자신과 정혼한 여자를 위험한 곳에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자신의 약혼자가 강간범들로 가득 찬 곳에 끌려간다면 그것을 그냥 지켜볼 남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신부를 마귀의 소굴에 남겨두시겠습니까? 이건 논리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오직 노아의 날들이 어떠했던 것 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마태복음24장37절)" 이 구절에서 보다시피 하나님께서는 구속받은 크리스천 성도들을 안전한 도피처, 즉 방주에 옮겨 놓으실 겁니다. 그 방주가 바로 주님과 성도들의 결혼식 장소이자 예수님께서 계신 셋 째 하늘입니다.

 

불독수리 (출처: Pixabay)

 

셋 째,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붙잡혀 간 사람들은 독수리의 밥이 될 사람들을 뜻합니다.

 

마태복음24장40절~41절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질 것이요, 두 여자가 방앗간에서 맷돌을 갈고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지리라." 그런데 이와 똑같은 구절이 누가복음에도 나와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질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질 것이며 두 남자가 들에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지리라, 하시니라. 그들이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에서 그런 일이 있으리이까? 하니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어디든지 시체가 있는 곳, 거기에 독수리들이 함께 모이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17장34절~37절)

 

위의 성경구절을 보면 붙잡혀 간 사람들은 시체가 되어 독수리의 밥이 된다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24장에서도 28절에도 "또 어디든지 사체가 있는 곳, 거기에 독수리들이 함께 모이리라."라고 하면서 40절의 붙잡혀 가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사람임을 미리 알려주고 계십니다.

 

 

넷 째, 휴거는 비밀스럽게 갑자기 찾아옵니다.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그렇게 오는 줄을 너희 자신이 완전히 아느니라.(데살로니가전서5장2절)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알지 못하고 오직 내 아버지께서만 아시느니라.(마태복음24장36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시각에 너희 주가 올지 너희가 알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24장42절)

 

위의 구절들에서 보다시피 휴거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간에 갑자기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환난기에는 예수님께서 예정된 시간에 공개적으로 찾아오십니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의 표적이 하늘에 나타나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지파들이 애곡하며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가지고 하늘의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이 그의 선택 받은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함께 모으리라.(마태복음24장30절~31절)

 

여기서의 나팔소리는 휴거를 알리는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이 선택한 백성들을 모으실 때 보내는 일반적인 나팔소리입니다(나팔절). 환난 전에 휴거받아서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되는 사람들(고린도전서15장51절)이 아닙니다. 마태복음24장31절에 나오는 선택받은 자들은 믿음을 가지고 7년 환난기를 통과하면서 살아남은 성도들, 이른바 ‘환난성도’라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다섯 째, 휴거는 부활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단 한 번의 사건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4장16절~17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과 거의 동시에 살아있는 자들의 휴거가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예수님의 몸(로마서12장5절,고린도전서12장27절,에배소서5장30절)이기 때문에 한 번에 다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환난기를 통과한 성도들이 휴거를 받는다면 두 번, 세 번 결혼식을 해야 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성경 어디에도 두 번, 세 번 결혼한다는 말은 없습니다. 또한 붙잡혀 간 사람들에 대해서는 찬양이나 안식 등의 영광스러운 문구가 전혀 없고 주님과 만난다는 말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여섯 째, 유대인들의 결혼 풍습을 알면 왜 환난 전 휴거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들에게 맡겼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완벽하게 보존해 왔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도 성경을 볼 수 있게 된 것이죠. 물론 이 모두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내려주셨으며 여러 가지 전통 또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유대인들만의 독특한 결혼 풍습입니다. 성경은 크리스천 성도들이 믿음으로 거듭나서 구원받는 것을 그리스도 예수님과 결혼하는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유대인들의 결혼 풍습을 따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셔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결혼하기 전에 정혼이라는 것을 먼저 합니다. 정혼은 오늘날의 약혼과는 다릅니다. 만약 배우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약혼은 파혼하면 그만이지만, 정혼은 파혼이 안 됩니다. 이혼을 해야 합니다. 정혼하는 순간 부부사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성령님에 의해 임신하였을 때 주의 천사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요셉에게 네 아내 마리아를 버리지 말라 하신 것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정혼하기 위해서는 신랑이 신부 아버지에게 지참금(신부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신랑은 그리스도 예수님이며 신부는 저를 포함한 크리스천 성도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과 피를 지참금으로 지불하시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여기서 신부의 아버지는 사탄 마귀입니다. 이 세상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마귀의 자식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리스도께서 흘린 피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의미입니다만, 유대인의 결혼 풍습에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신부의 집에서 잔치가 열리는 동안 신랑이 신부에게 포도주를 따라주면서 청혼을 합니다. 신부가 잔을 받으면 혼인이 성사되는 것이죠. 청혼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하며 신부가 잔을 받는 것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혼인이 성사되면 신랑은 신부를 데리러 올 것을 약속하고 함께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신랑의 집(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신랑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신부에게 선물을 줍니다. 신부는 선물을 보면서 신랑이 자신을 데리러 오기까지 순결을 지키며 기다립니다. 여기서의 선물은 당연히 성경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부는 신랑이 언제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언제든지 떠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대체로 1년 정도 지나면 신부를 데리러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늦어지면 2년이 될 수도 있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이후,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삼천 혼이 구원을 받은 이후 벌써 2천년 정도가 지났습니다만, 아직도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언제 오실지 알 수 없다 하셨기 때문에 그냥 기다려야 하는 것이죠. 오늘날 세상의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이렇게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참으로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유대인 신부도 마찬가지의 심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옵니다. 한 밤중에 신랑의 들러리들이 뿔나팔을 불면서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왔음을 알리죠. 신부와 함께 있던 신부의 들러리들은 기름으로 횃불을 밝히면서 신랑을 맞이합니다. 그리스도의 공중강림도 이와 비슷하게 진행됩니다(고린도전서15장51절~54절). 바로 이 때 크리스천 성도들이 학수고대하던 휴거가 이루어집니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부활하고 그와 거의 동시에 휴거가 발생합니다(데살로니가전서4장16절~17절). 성도들이 휴거될 때는 몸이 순식간에 변화되는데 변화된 몸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같은 그런 영화로운 몸이며 생식이 불가능한 상태가 됩니다.

 

신랑과 신부가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데, 그 이후 7일간의 혼인잔치가 열리고 신부는 신방에서 7일 동안 있어야 합니다. 신랑은 혼인잔치가 끝난 7일 이후에 신부를 만인에게 공개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휴거된 성도들은 셋 째 하늘에서 결혼식을 거행합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칠십 이레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서의 이레는 7일이 아니라 7년을 뜻합니다. 즉, 하루가 1년을 뜻하죠. 따라서 지상에서 7년간의 환난기가 있을 동안 크리스천 성도들은 셋 째 하늘에서 7년간 대기하고 있다가 예수님과 함께 지상에 내려와서 만 천하에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위의 증거들 이외에도 계시록을 보면 셋 째 하늘에서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아내, 즉 우리 크리스천 성도들이 자신을 예비하였다고 나와 있습니다(요한계시록19장7절). 이미 휴거되어 셋 째 하늘에 있다는 뜻이죠. 그리고 혼인잔치가 끝나면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있는 죄인들을 처단하시기 위해 흰 말을 타고 내려오시는데 그 때 성도들도 함께 내려옵니다(요한계시록19장14절). 또한 크리스천 성도들에게는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해 주신다고 하셨으며(요한계시록3장10절), 환난이 시작되는 계시록 4장 이후부터는 교회가 나오지 않는 점 등, 여러 증거들로 판단해 볼 때 크리스천 성도들은 환난 전에 휴거받는 것이 확실합니다.

 

 

이상으로 마태복음 24장40절,41절의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진다는 구절이 휴거가 아님을 증명하였습니다.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혹시 환난 속에서 믿음을 지켜 살아남거나 혹은 순교하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심리가 있지 않나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런 생각을 가진 분이 계시다면 당장 내려놔야 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가 감히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을 때 '저는 환난 속에서 이 정도의 일을 했습니다.'라고 생색을 낼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모두 100퍼센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지 인간의 행위는 단 일 점도 보태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믿음 또한 행위가 아니냐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다고 하는데, 성경에는 믿음은 행위가 아니라고 나와 있습니다(로마서116, 로마서328).

 

그러나 사실 환난 전 휴거를 믿거나 환난 중 휴거를 믿거나 심지어 환난 후 휴거를 믿는다고 해도 구원받고 안 받고의 문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환난 중 또는 환난 후 휴거를 믿게 되면 삶이 참 고달파집니다.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불안하기 때문이죠.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대환난기는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의 극심한 고통의 시기입니다.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고(마태복음24장29절,요한계시록6장13절), 전갈메뚜기와 같은 괴물들이 땅 속에서 올라와 사람들을 해치고(요한계시록9장3절~4절),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고(요한계시록13장13절),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요한계시록9장6절) 그야말로 준 지옥과도 같은 시기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아내 될 성도들을 이런 곳에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환난 전에 휴거된다는 성경의 말씀을 믿고 하루하루를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복된 날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