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의 시기가 가까워서인지는 몰라도 여러 유투브 채널에서 종말과 관련된 영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특히 채널의 운영자가 기독교인이면서 동시에 일루미나티 음모론에 특화된 채널들이 이런 컨텐츠에 적극적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채널들 때문에 오히려 미혹될까 우려되는 점도 있습니다.
제가 이런 채널들에 염려하는 점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대다수의 잘못된 지역 교회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구원상실의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자꾸 예수님께서 오시는 날짜를 특정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구원상실의 교리가 왜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구독하는 채널 중에 일루미나티와 딥스테이트의 음모를 제법 잘 분석하는 채널이 있습니다. 조금 과장된 이야기들도 있고 너무 단정적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어서 제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들도 있습니다만, 제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심도 있게 보여주고 있어서 세상을 보는 눈을 좀 더 넓게 해주는 채널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어제 올라온 영상은 너무나 위험해 보였습니다. 지옥을 다녀왔다는 어떤 사람의 간증 영상이었는데,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 죄로 인해서 지옥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태복음6장15절을 인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감히 단언합니다만,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면서 사후세계를 경험했다는 말은 싹 다 거짓이라고 보면 됩니다. 천국과 지옥은 성경에 나오는 것이 전부입니다. 천국은 요한계시록21장에 새 예루살렘으로, 그리고 지옥은 누가복음16장에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로 어렴풋하게 알 수 있도록 나와 있을 뿐입니다. 그 이외에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전부 거짓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알았는데 그 사람은 십사여 년 전에 셋째 하늘로 채여 올라갔느니라. (몸 안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며 몸 밖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러한 사람을 알았는데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채여 올라가서 말할 수 없는 말들을 들었는데 사람이 그것들을 말하는 것은 법에 어긋나느니라.(고린도후서12장2절~4절)" 이처럼 사후세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께서 금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천국과 지옥을 갔다가 이 세상으로 다시 올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특별한 경우였습니다.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기록해야 할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확신과 영감을 주시고자 천국을 경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지옥을 체험했다는 것은 믿음으로 걷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고린도후서5장7절)" 지옥을 체험했다는 것은 보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보는 것은 일종의 표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12장39절,16장4절).
그리고 마태복음6장은 이방인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지켜야 할 천년왕국의 헌장입니다. 오늘날의 크리스천 성도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크리스천 성도들은 오직 믿음에 의해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행위로는 절대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이런 사실을 망각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마태복음, 사도행전, 야고보서, 히브리서 등을 읽고 걸려 넘어집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지 못하고 십자가 사건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넘어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6장에는 회당에 나가는 유대인들이 나오고 있으며 금식하는 유대인들이 나옵니다. 오늘날 크리스천 성도들이 유대인 회당에 나가나요? 금식하나요? 그리고 10절부터13절에는 유명한 주기도문이 나오는데, 거기에 보면 아버지의 왕국이라고 나옵니다. 이 왕국은 이스라엘에 한정된 왕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10장5절부터6절을 보면 "너희는 이방인들의 길로도 들어가지 말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어떤 도시로도 들어가지 말며 오직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로 가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태복음15장24절에서 이방인 여자가 예수님께 도와달라고 간청할 때,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들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어지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라."라고 매정하게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따라서 마태복음6장 말씀은 예수님께서 통치하실 유대인들의 왕국과 유대인 백성들을 의미하는 것이지 오늘날의 크리스천 성도와는 관계가 없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도덕적으로는 오늘날에도 적용할 말씀들이 있겠습니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은 아닌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성경구절 때문에 고민하시는 분들은 아래 정동수 목사님의 마태복음 강해 영상을 꼭 시청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큰 은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0hsexGpPVc&list=PL4P6SBDceLgHByJqg7BBMPDC8H7ZEvmfD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인간을 용서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과연 용서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네이버 국어사전을 보면 용서라는 것은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덮어 준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그 사람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비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일까요? 물론 겉으로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속마음은 어떨까요? 과연 그 사람의 잘못을 떠올리고도 불쾌한 느낌을 지울 수 있을까요? 내 부모형제를 살해한 살인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무고한 사람들을 테러로 죽이고 강간하는 무슬림들을 떠올려보세요. 백성들을 학대하고 굶겨 죽이는 북괴 김씨 왕조 일가를 떠올려보세요. 과연 그들을 마음속으로도 용서할 수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 마음속 생각만으로도 죄를 짓는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겉으로는 용서하는 척 할 수 있어도 마음속의 생각까지는 지울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인간의 한계입니다.
성경에 용서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그들의 불의에 대하여 긍휼을 베풀고 다시는 그들의 죄들과 그들의 불법들을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느니라.(히브리서8장12절)" 네, 그렇습니다. 용서라는 것은 기억조차 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사역의 가장 큰 은혜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크리스천 성도들의 죄들과 불법들을 기억조차 못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죄는 물론이거니와 미래의 죄들까지도 모두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용서할 때 이런 식으로 완벽하게 지워버릴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사람을 용서하지 못해서 지옥에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용서하는 행위로는 절대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인간의 어떤 행위도 구원에 영향을 미치지 못 합니다.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에베소서2장8절~9절)" 또한 성경에는 의로운 자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나와 있으며(로마서3장10절), 인간의 모든 의는 더러운 누더기와 같다고 나와 있으며(이사야서64장6절), 인간의 마음은 극도로 사악하다고도 나와 있습니다(예레미야서17장9절). 악하면 항상 악한 것이지 어쩌다 악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인간의 선한 행위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용서하는 행위조차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단지 더러운 누더기일 뿐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5장과 6장의 말씀들은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만, 유대인들조차도 지킬 수 없는 말씀들입니다. 오른쪽 눈이나 손이 실족하면 눈을 빼 버리고 손을 잘라야 하며,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을 내주고, 원수를 사랑하고,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간음한 것과 똑같다는 말씀 등은 유대인이라고 해도 지킬 수 없는 것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심지어 바리새인들의 의를 능가하지 못하면 하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마태복음5장20절). 아시다시피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만든 수많은 율법들을 단 하나도 어기지 않고 지키는 엄격한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의를 능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은 지키지 못할 수많은 율법들을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너희 자신의 의, 즉 사람들이 지키는 율법으로는 절대로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하심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의 의를 능가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의를 능가하는 의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의는 예수님을 믿고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거절했기 때문에 왕국이 연기된 것이죠. "그때에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들을 하리이까? 하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라.(요한복음6장28절~29절)"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에서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똑같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장16절)",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며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한복음 3장36절)",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요한복음 6장47절)"
야고보서에도 마태복음과 비슷하게 마치 구원이 행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제가 포스팅한 글이 있으니 아래의 글을 꼭 읽어보실 것을 권장합니다.
https://smallstars7.tistory.com/81
https://smallstars7.tistory.com/34
한 번 구원받으면 절대로 구원을 잃어버리지 못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다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요한복음1장12절~13절,요한복음3장7절,베드로전서1장23절,고린도후서5장17절). 아기가 태어난 후에 다시 자궁으로 들어갈 수 있나요?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로 교회를 사셨습니다(사도행전20장28절). 하나님의 피 값이 이미 지불되었기 때문에 환불이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부활의 그날까지 교회를 봉인하셨으며(에베소서4장30절)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요한복음10장28절~29절,베드로전서1장5절).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에베소서2장8절~9절). 인간의 행위는 단 하나도 개입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사람의 행위로는 구원을 잃을 수도 없습니다. 구원을 유지하는 것도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믿음으로 지켜지는 것입니다(갈라디아서2장20절/3장22절,빌립보서1장6절,요한복음17장11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력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창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하리라.(로마서 8장38절~39절)
https://smallstars7.tistory.com/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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