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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강아지와 고양이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오늘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분들께 조금 껄끄러운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긴 하겠습니다만, 남녀 간의 교제가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감정과 배려하는 마음 보다는 사회적 지위와 물질적인 풍요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고 사탄의 세력들이 남녀 사이를 갈라치기 하고 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 성별 혐오감을 부추긴 탓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결혼을 포기하고 강아지나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삼아서 혼자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이게 말세의 큰 징조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반려동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짐승에게 반려자라는 타이틀을 붙인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짐승에게 반려라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원래 이 단어는 부부사이를 나타낼 때만 사용했었습니다. 과거에는 반려자라고 하면 모두가 부부라고 알아들었습니다.

 

귀여운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특히 강아지는 사람을 잘 따르고 항상 주인에게 충성하기 때문에 가족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천들 중에서는 애완동물이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짐승은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잠시 후에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 전에 아셔야 할 사실은 짐승이 천국에 간다는 믿음은 성경적인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러한 믿음을 다른 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관한 말씀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이 말은 신실한 말이요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한 말이로다. 죄인들 중에 내가 우두머리니라.(디모데전서1장15절)

 

그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악한 현 세상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자신을 주셨으니(갈라디아서1장4절)

 

위의 성경말씀을 잘 보세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죄인들, 즉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자신을 희생하신 이유도 '우리'의 죄들 때문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의 '우리'는 사람을 뜻합니다. 짐승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신 겁니다. 그게 사도 바울이 교회에게 선포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외의 복음은 다른 복음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다른 어떤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한 것같이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가 받아들인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갈라디아서1장8절~9절)

 

이렇게 명백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짐승이 천국에 간다고 믿는 것은 성경적인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을 믿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구원에 관한 복음은 명확해야 합니다. 만약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천국에 갈 수 있다면 타락한 천사들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성경을 보면 사탄과 그의 졸개 마귀들은 회개하기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이 세상으로 추방되어 지옥에 갈 운명으로 정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이사야서15절, 마태복음25장41절, 베드로후서2장4절 등). 그러므로 천사들에게는 더 이상 회개할 기회가 없는 겁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마귀의 삼위일체가 모두 짐승으로 표기되어 있음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짐승이 죽는 문제 때문에 구원받은 성도에게 저주가 임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노아의 아들 함의 예가 있습니다. 노아에게 나쁜 짓을 했던 함은 방주에 올랐던 인물입니다. 그는 분명히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는 함을 저주하지 못하고 대신 그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이 문제는 저도 정답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짐승의 경우를 말하는 것일지라도 다른 복음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비성경적인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 안 됩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지금부터 짐승이 천국에 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짐승의 피는 거룩한 피가 아닙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들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니라.(히브리서10장4절)

 

죄를 제거할 수 있는 피는 거룩한 그리스도 예수님의 피가 유일합니다. 짐승의 피는 죄를 제거할 수 없습니다. 물론 구약시대에는 인간의 죄 때문에 짐승을 죽여서 그 피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만, 그것은 일시적으로 죄를 덮을 뿐이지 영원히 제거하지는 못했습니다. 즉, 짐승의 피도 더럽다는 뜻입니다.

 

둘째. 구원받아 천국에 가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피를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죄가 없다고 인정해주시는 겁니다. 그러나 짐승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셋째. 어린이의 경우

 

인간의 경우에는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어린이가 구원받아 천국에 간다는 내용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짐승이 천국에 간다는 구절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회심하여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18장3절)

 

위의 성경말씀을 논리적으로 보면 어린이는 이미 회심한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회심은 예수님을 믿어서 교회가 된 회심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직 선악을 모르는 어린이는 아담과 이브가 타락하기 이전의 상태와 비슷한 인간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선악을 모르는 어린이는 교회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천국에서 동일한 지위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영원무궁토록 구원이 유지됩니다만, 교회가 아닌 어린이들은 천국에서 자라면서 그 과정에서 선과 악을 알게 되는 순간 한 번의 테스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아이들이라는 겁니다. 짐승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짐승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내용이나 그렇게 오해할만한 내용조차도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넷째. 전도서3장19절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짐승들에게도 일어나나니 곧 한 가지 일이 그들에게 일어나느니라. 이것이 죽는 것 같이 저것도 죽나니 참으로 그들이 다 한 호흡을 가졌도다. 그러므로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날 것이 없나니 이는 모든 것이 헛된 것이기 때문이로다.(전도서3장19절)

 

위의 말씀에서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날 것이 없다는 한 문장만을 떼어다가 사람과 짐승이 똑같다고 주장하는 일부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전체 문장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착각입니다. 제가 여러 가지의 성경논쟁을 하면서 항상 느끼는 바입니다만, 국어를 잘 해야 정확하게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말씀인 이유 중에 하나가 아마도 문장의 해석을 뜻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에서 사람과 짐승이 같다는 것은 죽음에 대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호흡, 즉 숨을 쉬는 존재는 언젠가 죽는다는 뜻이죠. 똑같이 죽는 존재라는 의미이지 그 이상의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히브리서9장27절)

 

둘 다 죽는다고 해서 같은 존재는 아닙니다. 사람은 짐승과 다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입니다(창세기1장26절, 27절, 9장6절, 고린도전서11장7절). 짐승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가 아닙니다.

 

또한 사람은 모든 창조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서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특별 창조물이라는 뜻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있는 혼이 되니라.(창세기2장7절)

 

다섯째. 짐승의 영은 땅으로 내려갑니다.

 

위로 올라가는 사람의 영과 땅으로 내려가는 짐승의 영을 누가 알리요?(전도서3장21절)

 

전도서는 주님을 의지하지 않는 삶은 헛된 삶이라는 교훈을 담은 책입니다. 위의 말씀도 죽음 이후를 말하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강조하는 문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짐승의 영이 땅으로 내려간다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영은 위로(셋째 하늘) 올라갑니다. 그러나 짐승의 영은 땅으로 내려갑니다. 땅의 어디인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만, 어딘가로 내려가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는 이 말씀이 짐승의 영이 소멸되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짐승은 죄를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짐승이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짐승의 영은 위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땅으로 내려간다고 나와 있습니다. 죄를 지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땅으로 내려가는 겁니다.

아래의 구절도 짐승이 소멸됨을 증명합니다.

 

둘째 천사가 자기 병을 바다에 쏟아 부으매 바다가 죽은 사람의 피같이 되어 모든 살아 있는 혼이 바다에서 죽더라.(요한계시록16장3절)

 

여기서의 혼은 바다짐승의 혼을 뜻합니다. 그런데 바다짐승의 혼이 죽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혼은 죽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에 영원한 존재입니다. 또한 성경적으로 혼은 사람 그 자체를 뜻합니다(창세기46장26절~27절, 출애굽기12장15절, 레위기4장2절, 사도행전2장41절). 그러므로 영원한 존재인 사람의 혼이 죽는다는 표현은 불가능합니다.

 

성경에서 사람이 죽는다고 표현된 문장들은 이 세상에서 살 때만 필요한 몸이 죽는다는 뜻입니다. 물론 지옥에 간다는 것을 사망으로 표현하거나 둘째 사망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성경에는 사람의 혼이 죽는다는 표현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위의 성경구절을 참고하면 짐승은 사람과는 달리 혼이 죽어서 소멸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논리적으로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혼이 사람 그 자체를 뜻한다면 짐승의 혼은 짐승 그 자체를 뜻합니다. 혼이 죽은 짐승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냥 사라졌다고 봐야 합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여섯째. 짐승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인간이 먹어치우는 소는 연간 약 3억 2천만 마리이고, 돼지는 약 14억 마리, 닭은 약 800억 마리 이상이라고 합니다. 불과 1년만에 먹는 양이 이 정도 입니다. 인류는 노아의 대홍수 사건 이후부터 육식을 했습니다. 수천 년 이상 인류가 먹어서 없앤 소, 돼지, 닭, 양 등을 비롯한 육류의 숫자는 아마도 조 단위를 넘어서 경 단위 아니 해 단위 이상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람이 먹어서 없앤 것들만 있지 않습니다. 짐승들끼리도 서로 잡아먹습니다. 이 또한 인류가 소비하는 숫자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많을 겁니다. 여기에는 사자와 호랑이, 곰, 악어 등과 같은 대형 육식동물이 잡아먹는 수많은 초식동물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고 뱀이나 오소리와 같은 작은 육식동물이 잡아먹는 설치류와 작은 동물들도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대형 짐승들은 또 어떻습니까. 코끼리나 하마, 코뿔소, 기린 등의 짐승들도 수천 년 동안 엄청난 숫자가 존재했을 겁니다. 바다의 고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작은 물고기들도 짐승입니다. 바다짐승들이죠. 이들의 숫자 또한 어마어마합니다. 청어, 대구, 고등어, 참치 등도 모두 짐승들입니다. 이들의 숫자는 육지의 가축들 보다 훨씬 숫자가 많을 겁니다. 하늘을 나는 짐승들은 또 어떻습니까. 새들의 종류도 엄청납니다. 그 숫자도 포함해야 합니다. 게다가 짐승들만 포함되지 않습니다. 곤충들도 있고 절지동물들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새 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나오는데, 그곳은 교회가 최종적으로 살게 될 곳입니다. 새 예루살렘의 크기는 아담 이후부터 지금까지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숫자까지 더한다고 해도 모두가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건 인간의 경우에 한정된 것이지, 수천 년 동안 죽은 모든 짐승들을 포함하는 공간은 못 됩니다.

 

새 예루살렘이 아니라 그냥 땅에 살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제가 위에 열거한 해 단위 자 단위를 넘어 양 단위 이상의 짐승들이 살 공간이 있을까요? 천국에서는 짐승들끼리 서로 잡아먹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에덴동산이 회복된 천년왕국의 예에서 보다시피 짐승들은 다시 초식을 하게 된다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이사야서11장7절, 65장25절). 만약 짐승들이 모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아야 한다면 단 한 마리도 죽지 않게 될 것이라서 콩나물시루에 있는 콩나물처럼 서로 옴짝달싹도 못하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 서로 붙어있기만 해도 다행일 겁니다. 층층으로 겹겹이 쌓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의 성경말씀을 보세요.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으니 이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졌고 바다도 다시는 있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더라.(요한계시록21장1절)

 

구원받은 우리가 살게 될 영원의 세계에는 바다가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만약 짐승들이 영원한 천국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한다면 바다짐승들은 가야 할 곳이 없게 됩니다.

 

 

일곱째. 애완동물과 천국에서 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욕심입니다.

 

천주교에서는 구원받지 못한 체 죽은 사람들을 그리워해서 연옥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에 없는 겁니다. 인간이 자신들의 욕심에 따라서 만든 허상이죠. 천국에서 애완동물과 함께 살고자 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소유욕입니다. 성경에는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는 욕심은 탐욕이며, 탐욕은 우상숭배라고 나와 있습니다(골로새서3장5절).

 

동물복제도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애완동물을 복제하는 일은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인위적으로 생명을 복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가증한 일입니다. 저는 인간의 복제도 조만간 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전에 주님이 오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저도 예전에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더 이상 슬픔도 아픔도 괴로움도 없다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애완동물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치유를 받게 될 겁니다. 아마도 다시는 생각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을 생각나지 않게 할 정도의 기쁨이 충만한 곳이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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