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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방언에 대하여

이미지 출처: Pixabay

 

성경을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충돌하는 가장 민감한 주제를 세 가지만 말해보라고 하면 아마도 첫째는 영원한 구원인가 아니면 구원을 잃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환난 전에 휴거되는가 아니면 환난을 통과한 후에 휴거되는 것인가 하는 것이며, 마지막 셋째는 방언이 외국어인가 아니면 해석할 수 없는 말인가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저는 방언이라는 주제가 워낙 심한 갈등을 유발하기 때문에 건드리고 싶지 않았는데, 오늘 우연히 관련 영상을 보다가 깨달은 바가 있어서 이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남겨진 사람들도 이 문제 때문에 서로 갈등을 겪을 것이 뻔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도 두세 번 정도 이 문제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만, 휴거날짜 불발로 인해 포스팅했던 글들을 모두 삭제했기 때문에 다시 쓰게 되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대언자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며 목사나 전도사도 아닙니다. 그냥 여러분과 똑같은 일반 교회 성도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성경은 개인이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왜 이런 얘기를 하냐 하면 민감한 주제에 대한 글을 올리면 여러 사람들로부터 이메일이 오기 때문입니다. 제가 블로그를 개설한 이후로 가장 많은 공격을 받은 것은 정동수 목사님을 비방하는 사람들로부터였습니다. 놀라웠던 점은 현대역본 진영의 사람들 보다는 같은 침례교 진영인 말보회 성도들로부터 더욱 심한 공격을 받았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공격을 많이 받았던 경우는 제가 방언에 대한 글을 올렸을 때였습니다. 방언을 어떻게 믿는지는 각 사람의 자유입니다.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그 사람이 스스로 체험한 이후에 성경을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여 믿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체험과 해석도 존재할 수 있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의 믿음을 남에게 강요하면 안 됩니다. 대한민국은 종교(믿음)의 자유가 있는 나라입니다. 이런 점을 깊이 이해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방언하는 방법

 

방언의 규례에 관해 명확하게 나와 있는 고린도전서14장을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14장에는 방언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여자는 방언이 금지되어있다.

2. 남자들만 해야 하는데 두세 명씩 순서대로 해야 한다.

3. 방언할 때는 반드시 통역이 있어야 한다.

 

위의 규칙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성경으로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여자들은 교회에서 방언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는 말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여자는 방언이 금지되어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고린도전서14장34절, 개역개정)

 

이 구절은 흠정역이나 개역성경(개역개정 포함)이나 똑같아서 개역개정에서 가져왔습니다. 방언은 주로 현대역본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가급적 개역개정 성경으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여자들에게 허락되지 않는 말은 방언(speak)입니다. 영어성경에 speak로 나와 있습니다. KJV 뿐만 아니라 현대역본인 NIV, ESV, NRSV, NASB 등도 동일하게 speak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어에서 말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들은 say, talk, tell, mention, speak 등이 있고, 때에 따라서는 describe, comment, state, submit 등 다양한 표현방법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speak는 그냥 말한다는 일반적 의미 보다는 주로 언어 그 자체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영어를 할 수 있나요?"라고 물을 때, "Can you speak English?" 라고 하는 겁니다.

 

34절의 speak가 왜 방언을 뜻하는지는 고린도전서14장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킹 제임스 성경(KJV)만 가지고 설명하면 트집을 잡을 수도 있으니 개역성경과 가장 가까운 영국 개정역(RV)과 미국 표준역(ASV)의 현대판 버전인 NASB 성경으로 살펴보았습니다.

 

NASB 성경을 보면 개역성경에서 방언으로 번역된 2절, 4절, 5절, 6절, 13절, 18절, 19절, 21절, 23절, 26절, 27절, 39절이 모두 speak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34절의 speak만 예외적으로 방언이 아닐 수는 없습니다. 전체적인 문맥의 흐름으로 봐도 동일한 방언의 의미로 봐야 자연스럽습니다. 따라서 34절의 speak는 방언이 확실합니다.

 

* 참고로 ASV는 RV의 미국버전입니다. RV는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본문을 바탕으로 번역된 성경입니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본문은 다수사본을 바탕으로 제작된 본문인 TR과는 달리 시내사본과 바티칸사본 등 소수(1프로)의 사본을 바탕으로 제작된 본문이라서 소수본문 또는 비평본문이라고 합니다. 소수본문은 네슬-알란드 본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늘날 천주교 성경을 비롯한 모든 현대역본 성경의 근간이 된 본문이기도 합니다.

 

TR은 라틴어 텍스투스 리셉투스(영어로는 received text)의 약자로서, 다수(99프로)의 사본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뜻에서 다수본문이라고도 하고 여러 사람들에 의해 받아들여졌다는 의미의 본문이라는 뜻에서 수용본문이라고도 불립니다. 그 밖에 공인본문(공통적으로 인정받은 본문), 표준원문 등으로도 불립니다. TR은 킹 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된 본문입니다.

 

 

두세 명씩 순서대로 해야 하며 통역이 있어야 한다.

 

만일 누가 방언(speak)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speak) 것이요(고린도전서14장27절~28절, 개역개정)

 

흠정역 성경뿐만 아니라 개역개정 성경도 방언은 두세 사람이 순서대로 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언할 때는 반드시 통역이 있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만약 통역이 없으면 교회 내에서는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자기와 하나님께 말한다는 것은 아마도 속으로 말한다는 것을 의미하거나 혹은 집에 가서 혼자 있을 때 하라는 뜻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무튼 이 문장과는 상관없이 교회 내에서는 잠잠히 있어야 한다는 문장은 누구라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명백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통역이 없이는 방언하지 말라는 말씀도 너무나 명확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참고로 27절에서 KJV와 ASV는 any man이라고 정확하게 남자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ASV의 개정판인 NASB는 anyone으로 변개했으며 NIV와 RSV/NRSV, ESV 등의 현대역본도 any 또는 anyone과 someone으로 변개하여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게 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현대역본들의 경우에도 28절에는 oneself라고 하지 않고 himself로 기록했습니다. 이는 앞의 27절이 남자라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그리고 27절의 단어를 교묘하게 변개했다고 해도 뒤에 나오는 34절에 여자는 방언하지 말라고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어차피 27절에서의 방언하는 사람은 남자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증명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통역이 없이는 방언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아마도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빙자하여 하나님을 욕하거나 교회를 저주하는 말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 글의 후반부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구원받으면 방언해야 한다?

 

방언을 해야만 구원받은 성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방언이 구원의 증거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28절)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29절)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30절)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린도전서12장28절~31절, 개역개정)

 

이 구절도 킹 제임스 성경이나 현대역본 성경이나 둘 다 내용이 똑같아서 그냥 개역개정에서 가져왔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은사들은 다양하지만 모든 은사를 다 소유하는 것은 아니고 각자의 역할에 맞는 은사가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30절을 보면 병 고치는 은사와 방언의 은사도 모든 성도에게 해당되지 않는다고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 중에는 방언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뜻입니다.

 

천주교에 저항해서 복음의 진리를 가지고 교회를 세운 마르틴 루터와 존 칼뱅(장 칼뱅), 츠빙글리 등도 방언하지 못했습니다. 역대 유명한 복음주의 목사들과 전도사, 선교사들도 대부분은 방언을 못했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존 웨슬리, 찰스 스펄전, D.L. 무디, 조지 휫필드, 팀 라헤이, 워렌 위어스비, 존 파이퍼, 존 맥아더 등도 방언을 못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모두 구원받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따라서 방언은 구원의 증표가 될 수 없음이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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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은 타 언어입니다.

 

오순절 날이 충만히 찼을 때에 그들이 다 한마음이 되어 한 곳에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우고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진 것들이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 각 사람 위에 앉으매 그들이 다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하게 하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더라.(사도행전2장1절~4절, 흠정역)

 

유대인들이 하늘 아래 모든 민족으로부터 나와 예루살렘에 거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독실한 사람들이더라. 이때에 이 일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지매 그 무리가 함께 와서 당황하였으니 이는 각 사람이 자기 자신의 말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더라.(사도행전2장5절~6절, 흠정역)

 

그들이 모두 놀라고 이상히 여기며 서로 이르되, 보라, 말하는 이 사람들은 다 갈릴리 사람들이 아니냐? 그런데 어떻게 우리 각 사람이 우리가 태어난 곳의 우리 언어로 듣느냐?(사도행전2장7절~8절, 흠정역)

 

타 언어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에 흠정역에서 가져왔습니다. 위의 성경말씀을 전체적으로 읽어보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이 아니라 각 사람들이 태어난 나라와 지역의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 말, 즉 외국어라는 뜻이죠. 개역개정도 비슷합니다. 개역개정도 4절을 다른 언어라고 번역했습니다. 다만 개역개정은 8절을 방언으로 번역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각 사람이 태어난 곳의 방언으로 듣는다고 했기 때문에 개역개정으로 봐도 타 언어임이 분명합니다.

 

베드로가 아직 이 말들을 할 때에 성령님께서 말씀을 들은 모든 자들 위에 내려오시며 할례자들에 속한 자들로서 믿는 자들 곧 베드로와 함께 온 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님이 선물로 부어진 것으로 인해 다 놀라니 이는 이방인들이 타 언어들로 말하며 하나님을 크게 높이는 것을 그들이 들었기 때문이더라.(사도행전10장44절~46절, 흠정역)

 

위의 성경구절들은 최초로 이방인이 구원받는 엄청나게 중요한 장면입니다. 로마의 백부장인 이방인 고넬료와 그의 지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은혜복음을 전하니까 오순절 날 성령강림 사건 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진 겁니다. 이방인들이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아서 타 언어로 말을 하게 되었던 겁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함께 온 성도들이 고넬료를 비롯한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높이는 말을 다 알아듣고 모두 놀라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서도 타 언어가 분명합니다. 만약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이었다면 하나님을 높이는 말인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개역개정 성경에도 46절에서 하나님을 높이는 방언이라고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타 언어가 확실합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곳은 마가복음16장17절 말씀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방언이 나오는 구절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나오는 사도행전2장과 이방인 고넬료가 구원받는 사도행전10장, 불신상태에 있던 유대인들이 구원받는 사도행전19장, 그리고 여러 가지 은사에 대해 설명하는 고린도전서12장과 14장, 그리고 지금부터 살펴볼 마가복음16장17절이 전부입니다.

 

개역성경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여러 민족들의 언어도 방언이라고 번역했습니다만, 개역성경이 방언이라고 번역한 요한계시록의 구절들은 각 나라와 민족과 족속들의 언어가 있다는 단순한 사실만을 기록하고 있을 뿐, 성도가 방언하는 내용이 전혀 아니고 방언을 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기 때문에 제외하겠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새 언어들로 말하며 뱀들을 집어 올리며 어떤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하시더라.(마가복음16장17절~18절, 흠정역)

 

방언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위의 말씀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17절만 좋아하고 18절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뱀들을 집어 올리는 일은 왜 안 합니까? 문맥적 의미로 보면 여기서의 뱀들은 독사들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치명적인 것은 왜 마시지 않나요? 청산가리와 같은 독극물을 마셔도 멀쩡해야 하는데 그런 것은 못하니까 가장 만만한 방언만을 하는 것이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병을 고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은사주의자들이 병든 환자를 치료한다고 할 때는 믿는 사람에 한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거짓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치료를 했는데 낫지 않으면 환자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핑계를 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마가복음에는 병든 사람이 불신자가 아니라는 말이 없습니다.

마태복음8장16절을 보면 많은 병든 자들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그들 모두를 고쳐주셨습니다. 16절에는 마귀 들린 사람들도 고쳐주었다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병든 사람들 중에도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고쳐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자가 믿음이 없어서 병이 낫지 않는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병 치료의 은사를 주는 이유는 불신자들에게 기적을 보여서 믿게 하고자 함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믿지 않는 병자들에게 베풀어야 하는 능력입니다. 만약 병 치료의 은사가 있다면 지금 당장 암 병동에 가서 암 환자들을 모두 치료해야 합니다.

 

마가복음16장에 나오는 은사들은 오늘날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사도들에게 주어진 은사였습니다. 아직 성경책이 만들어지지 못한 시기였기 때문에 성경기록이 완성되기 이전까지 사람들이 사도들을 믿을 수 있도록 잠시 동안만 허락된 기적의 은사였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 조차도 그의 사역 말년에는 병든 환자를 치료하지 못했던 겁니다(디모데전서5장23절, 디모데후서4장20절).

 

17절에서의 믿는 자들이 예수님의 사도라는 명확한 증거가 14절과 15절에 나옵니다. 마가복음16장14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모두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 뒤에 열한 제자가 음식 앞에 앉았을 때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것과 마음이 강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그분께서 일어나신 뒤에 그분을 본 자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더라.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으려니와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새 언어들로 말하며 뱀들을 집어 올리며 어떤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하시더라. 참으로 그때에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뒤에 하늘로 들어가시고 하나님 오른쪽에 앉으시니라. 그들이 나가서 모든 곳에서 복음을 선포하매 주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며 따르는 표적들로 말씀을 확증해 주시니라. 아멘.(마가복음16장14절~20절)

 

보다시피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말씀하신 겁니다. 온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려면 다른 나라 말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타 언어의 은사가 주어진 겁니다. 그런데 제자들 중에도 믿음이 약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타 언어뿐만 아니라 독사를 들어 올려도 해를 입지 않고, 독극물을 마셔도 괜찮고, 병든 사람에게 안수하면 낫게 하는 기적(표적)들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믿는 제자들에게만 그들이 믿는 그대로 기적이 일어날 것임을 약속해주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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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상태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트랜스(trance)는 다음과 같은 뜻으로 나옵니다.

 

[명사][심리] 정상적인 의식이 아닌 상태. 최면 상태나 히스테리 상태에서 나타나는데, 외계와 접촉을 끊고 깊은 명상 상태에 들어가 특수한 희열에 잠기는 것을 이른다.

 

지금부터는 순전히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기독교를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마귀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마귀가 직접 나타나는 경우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사람 속으로 들어가서 그 사람을 조종하여 종교를 만든다고 봅니다.

 

그런데 마귀가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경우를 보면 대체로 병이 들거나 제정신이 아니거나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마귀와 사람이 완벽하게 결합해야만 겉으로 보기에 정상인처럼 보이게 되어 마귀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귀와 사람이 완벽하게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 방언과 명상입니다. 방언은 불교에서도 하고 힌두교에서도 하고 무당들도 합니다. 명상할 때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주문을 외우는 것을 만트라(Mantra)라고 합니다. 방언과 명상을 통해서 트랜스상태로 들어가면 자기를 비우게 되는데 그 과정을 통해서 마귀가 인간의 영을 지배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불교와 힌두교를 비롯해서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들은 명상을 통해서 자아를 비워 신을 영접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도 히라 산(山)의 동굴에서 명상을 하다가 어떤 빛의 계시를 받고 이슬람교를 창시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빛은 사탄이었을 겁니다. 스페인의 이냐시오 데 욜라도 신비주의 명상훈련을 통해서 마귀를 영접하고 예수회를 창립했습니다. 지금도 예수회는 가입 시 독특한 영성수련을 요한다고 합니다. 예수회 인물들이 피도 눈물도 없이 잔인했던 이유도 그들이 마귀의 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용한 명상을 통해서만 트랜스상태에 빠지게 되는 건 아닙니다. 소음이 있어도 트랜스상태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소음 속에서 일정한 리듬과 비트가 정신을 혼미케 하기 때문에 그런 소음과 박자에 몰두하다보면 자아가 비워지게 되는 것이죠. 국내 무속신앙에서도 그런 장면을 볼 수 있는데,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장구와 꽹과리를 칠 때 무당이 방언을 하면서 트랜스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newswise.com/articles/language-center-of-the-brain-is-not-under-the-control-of-subjects-who-speak-in-tongues

 

Language Center of the Brain Is Not Under the Control of Subjects Who “Speak in Tongues” | Newswise

Glossolalia, otherwise referred to as "speaking in tongues," has been around for thousands of years. Now, in a first of its kind study, scientists are shining the light on this mysterious practice -- attempting to explain what actually happens physiologi

www.newswise.com

 

위의 논문은 2006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방언하는 사람들의 뇌를 검사한 연구논문입니다. 방언하는 동안 SPECT(단일 광자 방출 컴퓨터 단층 촬영)로 뇌를 촬영하여 뇌의 혈류량과 활동을 측정하였습니다. 5명의 피 실험자를 대상으로 실험하였는데, 이 논문에 따르면 방언하는 동안 방언하는 사람의 뇌의 전두엽 활동이 감소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주의 집중과 감정 반응에 관여하는 좌측 기저 핵의 활동도 감소했다고 합니다. 피 실험자는 방언하는 동안 언어 중추를 제어하지 못했으며 의도적인 통제력이 부족했다고 합니다. 엔드류 B 뉴버그 박사(Dr. Newberg)는 피 실험자의 자아감이 다른 무언가에 의해 장악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이번 연구가 방언할 때 뇌를 촬영한 최초의 연구이므로 향후 더 많은 검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저도 예전에 은사주의 교회에서 사람들이 방언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어두운 가운데 조명이 비추면서 쿵쿵거리는 드럼소리와 전자기타소리가 점점 분위기를 고조시키더니 사람들이 방언하면서 왁자지껄한 소음과 일정한 비트의 음악소리가 짬뽕이 되어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 마치 사람들이 뭔가에 취해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였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눈을 감거나 하늘을 보는 사람도 있었고 손을 벌리면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마구 머리를 흔드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뒤로 넘어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을 해보니 아마도 그게 트랜스상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성령 훼방 죄

 

방언을 비판하면 성령 훼방 죄에 걸려서 무조건 지옥에 가게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죄는 마태복음12장31절~32절 말씀에 나오는데, 다른 모든 죄는 용서받지만 성령님을 대적하여 말하면 절대로 용서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죄는 오늘날에는 적용될 수 없는 죄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초림 당시에만 적용될 수 있는 죄입니다. 그 이유는 마가복음3장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마가복음3장22절과 28절~3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명확히 나와 있습니다. 서기관들과 같은 불신자들이 그(예수님)가 부정한 영에 사로잡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기적들을 행하셨는데, 유대 서기관들이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보고 그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마귀로부터 왔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절대 용서받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지금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죠.

 

그리고 위에서 살펴보았다시피 방언은 타 언어입니다. 알 수 없는 말로 중얼거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방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저주하거나 교회를 저주하는 말일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방언할 때는 반드시 통역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왜 방언을 포기하지 못하는가?

 

방언을 하게 되면 특수한 체험을 하게 된 것으로 인해서 본인이 하나님께 선택받았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방언을 통해서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얻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한 번 방언에 맛이 들리면 절대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겁니다.

 

위의 이유와 마찬가지의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두려움 때문입니다. 방언을 포기하게 되면 구원의 확신이 없어지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래서 더 방언에 집착하게 되어 점점 깊은 수렁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 아니라 불신자들을 위한 표적이라고 했습니다(고린도전서14장22절). 즉, 전통적으로 표적을 보여주어야만 믿었던 불신상태의 유대인들에게 해당되거나 또는 다른 나라에 사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외국어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39절에서 방언(외국어)하는 것을 막지 말라는 뜻도 그 당시 유대인불신자들과 외국인들에게 복음을 믿게 하기 위해서는 필요하기 때문에 막지 말라고 한 겁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14장에서 방언에 대해 평가하기를 이해할 수 있는 말 다섯 마디를 하는 게 1만 마디의 방언을 하는 것 보다 낫다고 했습니다(고린도전서14장19절). 어떤 말을 하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듣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만약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라면 통역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방언을 꼭 해야 한다면 벙어리는 어떻게 하나님과 소통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과연 방언으로 말을 해야만 알아들으실까요? 한국말로 하면 못 알아들으실까요? 바벨탑 사건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모든 언어는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한국어로 해도 다 알아들으십니다. 심지어 입으로 말을 안 해도 됩니다. 속으로 말해도 다 알아들으십니다. 사탄 루시퍼가 하나님께 반역해야 하겠다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는데 천국에서 쫓겨나서 땅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방언은 오히려 주님과의 일치를 방해하는 행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도할 때는 맑은 정신으로 조용한 곳에서 한국말로 하면 됩니다. 남들이 들을까봐 염려가 된다면 속으로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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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별 : 네이버 블로그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에베소서2장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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