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이 세상에는 오직 성령하나님 한 분만 계시다는 오해입니다. 아버지하나님은 셋째 하늘에 계시고 예수님(아들하나님)은 아버지하나님의 오른 편에 계시고 성령하나님만 교회에 내주하고 계시다는 것이죠.
이런 오해가 생기는 이유는 구원받을 때 성령님을 선물로 받는다는 사실이 너무 강렬해서 다른 분들도 선물로 받는다는 생각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교회성도들은 성령강림을 기초적인 성경지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10장에서 이방인이 최초로 구원받게 된 이후부터는 구원받는 즉시 성령님의 내주와 함께 봉인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하나님과 아들하나님도 크리스천 성도 안에 내주하신다는 사실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모든 대언자들도 그분에 대해 증언하기를, 누구든지 그분을 믿는 자는 그분의 이름을 통해 죄들의 사면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아직 이 말들을 할 때에 성령님께서 말씀을 들은 모든 자들에게 내려오시매(사도행전10장43절~44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그분께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니 곧 진리의 영이시라. 세상은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나니 이는 세상이 그분을 보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아나니 이는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거하시며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라.(요한복음14장16절~17절)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들은 뒤에 그리스도를 신뢰하였고 너희가 믿은 뒤에 또한 그분 안에서 약속의 저 거룩하신 영으로 봉인되었느니라.(에베소서1장13절)
그분께서 자신의 영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이것에 의해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고 있음과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심을 우리가 아느니라.(요한일서4장13절)
알다시피 구원받은 성도는 성령님을 선물로 받습니다. 그러나 성령님만 받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피를 믿고 다시 태어난 성도는 그 순간 성령님뿐만 아니라 아들하나님과 아버지하나님도 그 교회성도 안에 영원토록 내주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성경구절들과 함께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시지만 뚜렷한 세 분의 인격체로 존재하십니다. 아버지하나님과 말씀하나님(예수님)과 성령하나님은 각각 따로 행동하시고 역할이 구분됩니다. 그러나 따로 행동하신다고 해서 떨어져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 분은 항상 함께 계시며 서로 연결되어있습니다. 세 하나님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셋째 하늘에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고 이 땅에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십니다.
사실 삼위일체라는 개념이 심플하지 않고 명확하지 않아서 조금 어려울 수 있습니다. 초보신자들만이 아니라 교회를 오래 다니고 성경책을 많이 읽은 분들도 여전히 어려워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현대역본 성경책들의 번역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며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주는 목회자나 경건서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님께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설명하실 때, 시간(time)으로 비유하여 설명하십니다.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구성되어있고 세 시기가 구분되어 독립적으로 기능합니다. 과거는 현재가 아니고 현재는 미래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셋은 하나의 시간입니다. 또한 세 시기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시간이 안 됩니다. 저는 이 예시가 상당히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100퍼센트 완벽하게 설명하는 예시라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만, 저는 이 예시만큼 삼위일체 하나님을 적절하게 설명한 예를 아직까지는 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설명할 때 잘못 설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고 물을 끓이면 수증기가 된다거나, 집에서는 아버지이자 남편이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이라는 식입니다. 이게 바로 양태론(모양이 변한다)이라는 이단교리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한 분이며 때와 장소에 따라서 그분의 형태만 변한다는 논리입니다. 이 논리는 성경과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 아니라 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세 분의 하나님이 한 하나님입니다.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요한일서5장7절)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바로 물속에서 올라오실 때에, 보라, 하늘들이 그분께 열렸으며 또 하나님의 영께서 비둘기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내려앉으시는 것을 그분께서 보셨는데, 보라,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마태복음3장16절~17절)
보다시피 예수님과 하나님의 영(성령님)과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늘로부터의 음성(아버지하나님)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존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하나님의 세 인격체가 동시에 나타난 것이죠. 이 구절을 읽고 예수님께서 분신술과 복화술을 사용하셨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위의 성경말씀은 명백히 세 분의 인격체로 존재하시는 한 하나님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내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어서 다시 태어난 사람은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게 됩니다. 성령침례는 구원받는 순간 성령하나님 안으로 푹 잠기는 것을 뜻합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너희는 죽었고 너희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느니라.(골로새서3장3절)
위에서 너희가 죽었다는 것은 죄의 지배를 받으며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옛 사람'의 수명이 다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그분과 그분의 피를 믿는 성도 역시 영적으로 그 십자가에 함께 못 박혔다는 것입니다. 즉, 다시 태어났다는 뜻이죠. 그리고 일단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꽉 잡고 놓아주시지 않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교회성도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님께서도 교회성도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하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그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품으신 사랑을 우리가 알았고 또 믿었나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며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한일서4장15절~16절)
그 날에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너희가 알리라.(요한복음14장20절)
위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경우입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각각의 개별 인격체로서의 하나님께서도 성도 안에 내주하신다는 성경구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성령님의 내주는 글의 서두에서 이미 여러 성경구절들을 보여드렸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리스도 예수님과 아버지하나님께서도 교회성도 안에 계신다는 구절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우선 그리스도 예수님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신비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리려 하시는데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골로새서1장27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갈라디아서2장20절)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살펴보고 너희 자신을 검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알지 못한다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들이니라.(고린도후서13장5절)
이번에는 아버지하나님께서 교회성도 안에 계신다는 성경구절들입니다.
한 하나님이 계시니 곧 모든 것의 아버지시라. 그분께서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에 두루 계시며 또 너희 모두 안에 계시느니라.(에베소서4장6절)
하나님의 성전이 우상들과 무슨 합의를 보겠느냐?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니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고 그들 안에서 거닐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고린도후서6장16절)
에베소서4장6절은 사실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말씀입니다만 특별히 아버지를 강조하고 있어서 인용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후서6장16절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문구가 있기 때문에 아버지하나님이심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구원받은 교회성도 안에는 성령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님과 아버지하나님이 동시에 내주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내주하신다는 표현도 있는 것이고 각각의 개별 인격체로서의 하나님께서 내주하신다는 표현도 있는 겁니다. 한 하나님은 세 분의 인격체로 존재하시지만 시간(time)의 경우처럼 세 분은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을 읽으시면 그와 동시에 아버지하나님과 아들하나님도 아시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의 중보사역 - 하나님의 사랑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이르되, 이제 구원과 힘과 우리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그리스도의 권능이 왔도다. 이는 우리 형제들을 고소하는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으로 그들을 고소하던 자가 쫓겨 내려갔기 때문이라.(요한계시록12장10절)
보다시피 사탄마귀가 성도들을 아버지하나님께 고소하기 때문에 성도들을 보호할 변호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을 보증해주시는 예수님께서 중보하시는 겁니다.
참고로 중보(中保)라는 단어는 둘 사이의 중간이라는 뜻의 가운데 중(中), 보호하고 책임진다는 뜻의 보증할 보(保)로 이루어진 단어인데, 한자적 의미는 중간에서 지키고 보호한다는 뜻입니다. 기독교적으로 중보자(中保者)라고 할 때는 하나님과 성도 사이의 다리가 되어주시는 분, 즉 예수그리스도와 성령하나님을 지칭합니다. 그러므로 동사로 사용하여 '중보하다'라고 할 때는 '그리스도예수님과 성령하나님께서 크리스천성도를 지키고 보호해주신다'라는 의미입니다. 킹 제임스 영어 성경에는 변호자(중보자)라는 단어로 advocate이 사용되었고, '중보하다'라고 할 때는 maketh intercession이 사용되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그리스도예수님과 성령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아버지하나님께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고 변호해주신다는 뜻입니다.
앞서 달려가신 분 곧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사 우리를 위해 거기로 들어가셨느니라(히브리서6장20절).
내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죄를 짓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지어도 아버지와 함께 계신 변호자가 우리에게 계시니 곧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시라.(요한일서2장1절)
정죄하는 자가 누구냐? 죽으신 분은 그리스도시요, 참으로 다시 일어나신 분도 그리스도신데 그분께서는 바로 하나님 오른쪽에 계시며 또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느니라.(로마서8장34절)
그러므로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심을 보건대 그분은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나니(히브리서7장25절)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죄 없는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으면 예수님께서 "이 사람의 죄 값은 제가 치렀습니다."라고 선언하시는 것이죠. 영원한 구원의 약속에 따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끝까지 구원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어린양의 생명책(요한계시록21장27절)에 우리의 이름을 기록해주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의 생명책을 보시고 우리의 죄가 제거되었다고 인정을 해주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방식대로 무엇을 위해 기도할지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말로 할 수 없는 신음으로 친히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해 중보하시기 때문이니라.(로마서8장26절~27절)
예수님의 변호와 성령님의 변호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변호는 우리의 죄에 대한 변호이고 성령님의 변호는 우리의 생각을 잘 정리해서 대변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성령님의 중보는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말실수를 하더라도 그것을 수정해서 전달해주시는 역할입니다. 일종의 통역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구절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성령님의 중보 또한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예수님은 우리의 '신분'을 위해 하늘 법정에서 중보하시고, 성령님은 우리의 '삶과 연약함'을 위해 우리 마음속에서 중보하시는 겁니다.
여기까지는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성령님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교회성도 안에 내주하고 계시기 때문에 아버지도 모든 것을 알고 계실 터인데 굳이 중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좀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이런 의문은 충분히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아버지께 중보하신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속마음을 꿰뚫어보시고 우리의 머리카락 개수까지도 모두 파악하고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나 주는 마음을 살피고 속 중심을 시험하여 각 사람의 길들과 그의 행위들의 열매대로 그에게 주느니라.(예레미아서17장10절)
그분의 눈앞에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창조물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분의 눈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느니라.(히브리서4장13절)
더욱이 아버지께서 너희 머리털까지도 다 세셨나니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들보다 더 귀중하니라.(누가복음12장7절)
이처럼 우리를 속속들이 다 알고 계시는 분이 아버지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시는 아버지께 중보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시기 위함이며 우리를 향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 전에 우선, 아버지하나님과 아들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의 역할이 왜 구분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중보사역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창건 이전부터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영원무궁토록 지속하시고 또한 완전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애초에 세 분의 역할분담 자체가 필요 없었을 겁니다. 관련된 성경구절들을 살펴보면서 이것을 증명하겠습니다.
우선 아버지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성경구절과 아들하나님과 성령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성경구절을 살펴보고, 세 분의 역할분담이 왜 필요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 이후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3장16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력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창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느니라.(로마서8장38절~39절)
그 날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리라. 내가 너희를 위해 아버지께 기도하겠다고 너희에게 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고 또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음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요한복음16장26절~27절)
요한복음3장16절에서의 하나님은 아버지하나님입니다. 그분의 독생자는 당연히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을 보내셨다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근원이 아버지라는 뜻이죠. 로마서8장38절과 39절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현재와 미래의 그 어떤 행위도 어떤 창조물도 떼어 놓지 못할 정도로 굳건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외에도 아버지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구절은 성경 곳곳에 많이 나옵니다(로마서5장5절, 8절, 에베소서2장4절, 요한일서3장1절, 4장9절, 16절 등). 그밖에 죄 사함, 용서, 위로 등의 사랑에 준하는 단어로 검색하면 더 많이 나옵니다.
즉, 우리의 구원사역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하나님뿐만 아니라 아들하나님과 성령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겁니다. 왜냐하면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마음과 아들의 마음과 성령의 마음이 똑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 변호하시는 것입니다.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세 분 모두 똑같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죠.
한편 유월절 전에 예수님께서 자기 때가 와서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야 할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한복음13장1절)
내 명령은 이것이니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자기 친구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놓는 것,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은 아무에게도 없나니(요한복음15장12절~13절)
형제들아, 이제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성령의 사랑으로 인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기도 가운데 나와 함께 분투하며 나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여(로마서15장30절)
보다시피 아버지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 예수님과 성령님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죄 없는 피를 흘리셨습니다. 성령님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복음을 문자로 기록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친히 변호사가 되어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신다는 자체가 사랑의 증거입니다.
한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 중보하시는 이유
삼위일체 하나님의 두 인격체께서 우리를 위해서 중보하시고 나머지 한 인격체인 아버지께서 확증해주시는 이유는 우리를 향한 사랑을 완성하시기 위해서이며 궁극적으로는 그 일을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아들하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아들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역할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고 인간의 믿음을 증명하고 변호하시는 것이며, 성령하나님의 역할은 예수님의 사역을 도우시고 말씀을 기록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우리의 속마음을 대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하나님의 역할은 최종적으로 그 일을 확증해주시는 것입니다. 결국 세 분의 역할이 합력하여 우리를 향한 사랑을 완성하시는 것이죠.
아버지께서도 예수님의 사역에 함께 참여하셨습니다. 로마서8장39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나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역을 통해서 베푸신 겁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로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아버지와 함께하셨음을 밝히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한복음10장30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사역에는 당연히 성령님도 함께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서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대속되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계시고, 우리의 속마음까지 모두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중보와 성령님의 중보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버지께서 확증해주심으로 인해서 그 일이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더욱 크게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것은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이 무한하다는 것과 완벽하다는 것을 하늘과 땅을 비롯하여 영적인 세계에까지 모두에게 보여주심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중보도 성령님의 중보도 모두 아버지의 뜻이고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또한 그 중보를 확증해주시는 것도 아버지의 뜻이며 사랑입니다. 이는 동시에 아들하나님의 사랑이며 성령하나님의 사랑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그렇게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내가 그들을 위해 나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오니 이것은 그들도 진리로 거룩히 구별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이들만을 위해 기도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말로 인해 나를 믿을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오니 이것은 그들이 다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사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세상이 믿게 하소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나니 이것은 그들이 하나로 완전해지게 하려 함이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여, 원하건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사 아버지께서 세상의 창건 이전에 나를 사랑하셨으므로 친히 내게 주신 내 영광을 그들이 보게 하옵소서.(요한복음17장18절~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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